198화. 그림
장인, 장모님 댁에서 점심을 먹은 후, 고청운은 소석과 함께 하겸죽의 집으로 향했다. 하겸죽 일가는 현재 대부분 현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현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도화진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았다. 도화진은 현에서 매우 가까워 반 시진 정도 걸렸다. 우마차를 이용할 경우는 반시진도 채 안 되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간미의 집을 떠날 때, 소석은 오전 내내 외숙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했는데, 보아하니 그 집 정원의 화초들이 또 한 차례 수난을 당한 모양이었다.
고청운이 미리 방문첩도 보내두었기 때문에, 하겸죽은 일찍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나게 되자 매우 격동하여, 서로 상대방을 훑어보았다.
“청운이, 자네는 하나도 안 변했군. 하나도 나이가 들지 않은 것 같아.”
“체, 제 나이가 아직 젊은데. 어떻게 늙을 수 있겠습니까? 전 아직도 키가 자라고 있습니다, 제 키가 조금 더 커진 것을 몰라보시겠습니까?”
고청운이 뻔뻔스럽게 자신을 추켜세웠다.
“제가 사형이랑은 달리 좀 젊기는 하지요. 사형은 이미 이립(*而立: 나이 삼십)의 나이가 아닙니까.”
고청운의 키가 큰 것은 사실이었는데, 이미 180cm 정도는 되었던 것이었다. 일전의 북방에서 온 학자들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여간 이제 그는 방자명보다도 키가 더 커졌다. 이 일로 방자명은 어렸을 적 그 난쟁이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냐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체, 무슨 이립이 나이고 삼십이라는 게야. 나는 아직 스물여덟 살이라고. 나를 너무 나이든 사람처럼 이야기하지는 말아 주게.”
하겸죽이 그의 어깨를 힘껏 쥐어박았다.
모두들 집주인과 손님의 자리에 각자 착석을 하였다. 하겸죽의 아내가 나와 고청운과 인사를 하고 난 뒤 후원으로 돌아가자, 방에는 아이 둘이 더 자리에 남게 되었다.
“하 사형네 집 두 자제가 맞죠? 아들이 하허연(何虚年)이고, 딸은 교교(巧巧)이고요?”
고청운은 하겸죽의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큰 아이는 더 어릴 때 만났었는데 지금은 이미 8살이나 되어 있었고, 작은 아이는 이제 2살이 조금 넘은 딸아이로, 희고 보드라워 보였으며 눈이 그렁그렁해서는 오라버니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하겸죽은 자못 득의양양하게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어때? 우리 딸 귀엽지 않은가?”
교교는 그가 경성에서 돌아온 이후에 태어난 딸이었다. 그는 혼인한 지 여러 해 되어 이렇게 아들과 딸 하나씩 두고 보배처럼 여기고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의 아내가 또 회임한 상태였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딸도 아마 제게 오는 중일 겁니다.”
하겸죽이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흘겨보며 말했다.
“자네가 아들인지 아닌지를 어찌 알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다음번을 노려보지요.”
고청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연이 네가 소석이를 데리고 가서 놀아주거라.”
하겸죽이 분부했다. 그는 아이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자, 놀러 가도록 보내주었다.
소석은 고청운의 무릎에 기대어 있다가 눈앞의 여자아이를 보았는데,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가 보거라, 가서 형아랑 여동생이랑 같이 놀거라.”
아이들에게 기념 선물을 건네준 고청운은 아이의 엽전처럼 생긴 동그란 귀를 손으로 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오늘 아침에 벌써 외숙부와 함께 놀다가 왔던 소석은 낯을 가리지 않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달려가 여동생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얘, 나랑 같이 놀자.”
어린아이 셋이 나란히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을 가릴 수가 없었는지 하겸죽이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 정말 자네를 똑 닮았군.”
그는 이번에 소석을 처음 보았는데, 그가 4년 전 귀향하기 전까지 소석이 아직 어머니의 태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3년 후에 시험 보러 갈 겁니까? 이번에 제가 스승님 옆집에 이중 정원이 있는 집을 하나 구입했는데, 다음에 시험을 치러 경성에 오면 우리 집에서 지낼 수 있을 테니 더 편하게 시험을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 참 더할 나위 없이 좋구나.”
하겸죽은 생각해 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나도 가긴 갈 것이야. 어차피 지금은 뱃길로 다닐 수 있지 않나. 한 달 하고도 며칠만 더 가면 경성에 도달할 수 있으니, 길은 어렵지 않겠군. 자네도 알다시피 임산현에서의 생활은 매우 안온하지 않은가. 여기에 머물기만 하고 가지 않으면 시험에 대한 투지가 없어질 것 같아.
여기서 오래 살게 되면, 주위에 자네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주 적으니 서서히 내가 꼭 무슨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게 된다는 말이야. 그나마 나는 현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니 다행이네. 일부 수재들의 뛰어난 학식과 기량을 보며 끊임없이 나도 공부하고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채찍질하고 있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했다.
“시간이 좀 남으면, 유학을 가보는 건 어떠세요? 제가 일전에 소주에 머물렀을 때 보니, 그쪽의 학풍이 매우 뛰어나고, 그곳에서 공부하는 문인들의 기량도 매우 뛰어난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설령 그들이 부성으로 옮겨가 살더라도 주변에 거인 자체가 별로 없었고, 있더라도 대부분 나이가 많은 거인들이라 더 이상 학업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자들이 많았다.
하겸죽은 아직 이리도 젊으니 분명 학문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 고청운이 보기에 그는 투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듯, 하겸죽은 이런 생활 방식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고청운이 보기에도 이런 방식의 생활을 하는 것엔 꽤 부러운 면도 있었다.
처자식도 그의 등을 떠밀지 않으며,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도 있었고 생활은 매우 윤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그의 일이라, 고청운은 이에 대해 더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원래 고청운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지금의 하겸죽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만, 자신은 각종 인연이 더 닿아 지금에 이르렀을 뿐, 그저 그렇게 끊임없이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그도 원하는 바가 생겼는데, 이 시공간 속에 무언가를 남기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것은 그의 야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주는 거리가 너무 머네.”
하겸죽은 부채를 흔들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었나? 나는 집 지키는 개과야. 떠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
고청운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끓여 식힌 물 한 잔을 마셨다.
“자네가 서신에 요즘 그림 실력이 늘었다고 쓰지 않았었는가? 내가 좀 가서 보지. 자네가 또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닌지 직접 봐야겠어.”
하겸죽이 노하여 손을 내밀어 한 대 때리더니 일침을 가했다.
“어차피 자네보다는 내가 더 잘 배웠을 거야. 어서 내 서재로 가세.”
두 사람은 서재로 가는 도중에도 계속 담소를 이어 나갔다.
지나간 긴 시간은 두 사람의 우정을 빛바래게 만들지 않고 도리어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 * *
이 시대의 ‘그림’이라는 것은 수묵화를 가리켰다. 일반적으로 붓을 사용해 그렸는데, 수용성 안료로 화선지에 그림을 그렸다. 산수, 기물, 화초와 새 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그림을 구성하여 그리고, 색조가 단순 명쾌하며 화풍이 추상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고청운도 같은 것을 배웠는데, 그가 그림에 입문했을 때 인물만 그릴 줄 알자, 방인소는 그가 그림을 제대로 그릴 줄 안다고 평론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속으로 은근히 꿍하게 생각하고 있던 바둑을 두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데 조금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중에 벼슬길이 정해지고 나면, 그림을 배우는 데나 전념할 예정이었다. 만약 그가 몇십 년을 더 살면서 연습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화가라도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전생 대부분의 노력을 독서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쏟느라, 소묘니 유화니 하는 것을 배워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쪽으로는 배우지도, 잘 알지도 못하고, 그저 휩쓸리듯 전시회 몇 번 본 것이 다였다.
그들의 그림을 비교해 보니, 지금은 하겸죽의 그림이 고청운의 것보다 훨씬 더 잘 그렸다. 그는 주로 꽃과 새를 그리는 화조화들을 주로 그렸는데, 그 필치가 섬세하고 소탈함이 묻어났다.
고청운은 그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림에서 눈이 떼어지지 않아 하겸죽에게 그림 한 폭을 달라고 청하였다.
하겸죽은 얼굴에 춘풍이라도 분 듯 싱그러운 얼굴을 하고서는 단번에 알았노라 대답한 뒤, 고청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러지, 그림을 가지고 가서 표구(*表具: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하여 오겠네. 자네가 경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완성해서 집으로 보내주겠네. 신임 진사가 내 그림을 원했다는 말이 전해지면, 내가 곧 유명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네.”
고청운이 그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하늘을 올려다본 고청운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고청운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도산사에 들러야 했기에 그의 집에 더 머물 수가 없었다.
“제가 가져온 책 잊지 마세요. 반드시 틈나는 대로 봐야 할 겁니다.”
고청운은 자신이 시험 보기 전 준비했던 자료를 건네며 말했다.
“다음번 시험은 일찍 상경해야 해요. 지난번처럼 시간을 촉박하게 와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일찍 경성에 도착하면, 지금 조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를 입수하기가 비교적 쉬울 거예요. 지금은 과학과 관련된 문항이 더 자주 출제 되고 있는 걸 보면, 조정에서 현실을 중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 사형, 예전처럼 집에서 열심히 시나 짓고 책 읽는 것만 하면 안 될 거예요.”
하겸죽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청운은 이만 작별을 고하고 밖으로 나섰다.
소석은 어린 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들을 집에 다 데려가고 싶었다. 결국 고청운의 눈 밖에 난 소석은 그제야 억울하게 울면서 연이 형과 여동생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며 이별을 고했다.
* * *
그들이 떠난 뒤에, 하겸죽의 아내가 고청운이 보내온 자료를 뒤적이며 다시 한번 탄식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정말 잘해 주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마음을 써 주시다니요.”
하겸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우리 두 사람이 무슨 보통 친분이겠소? 청운이는 늘 벗들에게 진실하게 대하는데, 이런 사람을 절친한 지기로 둘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복이오. 물론 이런 귀한 벗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오.”
하겸죽은 눈이 가늘게 만들며 임양부에 살고 있는 조문헌을 떠올렸다. 어쩐지 조문헌은 경성에서 돌아와 며칠간 도화진에서 머무르다 말고 총총히 부성으로 이사하였는데, 알고 보니 고청운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하겸죽도 청운이 자신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을 듣고는 그가 싫어졌는데, 어릴 적 서당에서부터 알고 지내며 그가 속 좁은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암암리에 뒤에서 뒤통수까지 칠 줄은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