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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197)화 (197/504)

197화. 극히 드문 일

위채에 도착했을 때, 육훤은 하인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육훤이 예를 올린 후, 궁금한 듯 물었다.

“동생은 오늘 잘 있는지요? 어머니께서 기뻐하고 계신 듯한데, 무슨 경사라도 있으신가요?”

속으로 그는 스승님이 이미 서신으로 알려 주었기에 무슨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동생인 담자례가 진사에 합격한 것이었다.

담 씨가 빙긋이 웃고 볼록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 어미는 잘 있단다. 아침은 들고 온 것이냐?”

육훤은 고개를 저으며, 그리운 듯 육택을 한 번 쳐다보고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오늘 아침은 아버지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육택은 껄껄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그럼 같이 먹자꾸나. 참, 방금 편지를 받았느니라. 네 외숙부가 2갑으로 진사에 합격했다는구나.”

육훤은 깜짝 놀란 듯 급히 축하의 말을 건넸다.

“어머니, 외숙부께서 이렇게 큰일을 해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담 씨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육택에게 말했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기쁜 날이니, 나리, 하인들에게도 이 기쁨을 좀 나누어 주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당신 편한 대로 하시오.”

육택은 이런 안채의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리 오너라. 가서 집사에게 전해 이번 달 임금으로 두 달치 임금을 더해 주라고 해라.”

담 씨는 웃는 얼굴로 분부를 내리고 잠시 더 생각해 보더니 또 말했다.

“곁채의 두 분 마님댁에도 똑같은 대우를 해 드리거라.”

하인은 “예.” 하고 대답하였고, 얼굴에 희색이 더 짙어졌다. 

육택이 이번에는 육훤에게 말했다.

“아까 보니 네게 서신이 한 통 배달된 것 같은데, 네 스승님 쪽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시더냐?”

시간을 가늠해 보니, 고청운도 담자례와 같은 회차의 시험을 쳤을 것이니 성적도 같은 날 발표되었을 것이었다.

육훤은 씩 웃으며 기뻐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도 진사에 합격하셨다고 합니다. 시간이 나면 저를 보러 오겠다고 하셨어요.”

작년에 헤어질 때 스승님이 해 준 말이 기억난 그는 앞뒤 분간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아니면 제가 뵈러 가도 될까요? 어차피 스승님 본가는 여기서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거리입니다. 아주 금방이에요.”

그는 스승님이 자신을 만나러 와 주는 것을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 기다림이 더 얼마나 걸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는 혹시라도 스승님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 

육훤은 일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더니 그가 몹시 그리웠다.

육택은 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대답했다. 

“그러렴, 내가 동의해주마. 다만, 스승님 댁에 가서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만 잘 기억하고 있거라.”

“아버지, 안심하세요. 제가 얼마나 말을 잘 듣는데요. 스승님 댁에 절대 민폐가 되지 않겠습니다.”

육택은 자화자찬하는 꼬맹이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하하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가 같이 갈지 좀 봐야겠구나. 네가 아직 어리니 혼자 말을 태워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

“아니에요, 혼자 말을 타고 싶어요.”

육훤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담 씨는 그들 부자가 서로 대화하는 사이에 끼어있는 자신이 일개 남인 듯 느껴졌다. 방금 자신의 남동생의 일을 거론할 때만 해도 그들이 이토록 관심을 가져주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녀의 눈가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고청운이라는 사람은 담 씨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으나 그 이름은 오히려 익숙했다. 낯설다는 것은 그녀와 직접적으로 교제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익숙하다는 것은 그의 이름을 가끔씩 이 저택에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매달 혹은 적어도 두 달에는 한 번씩 역참을 통해 왕래하는 서신 덕에, 그녀는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또 그자는 자신의 남동생과 원한 관계이지 않던가. 

담 씨는 안색이 약간 어두워진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는 약간 우울해진 상태로 불룩해진 배에 손을 살짝 올려놓았는데, 순간 배에서 한 차례 진동이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아야’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육택과 육훤은 그 소리를 듣고는 바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담 씨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아기가 발차기를 하네요.”

육훤이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 

“동생이 건강해 보이는군요. 아버지, 먼저 식당에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식사 후에 저는 가서 짐을 좀 꾸릴게요.”

“그래, 가 보거라. 그런데 그렇게까지 급할 필요가 있겠느냐? 네 스승님은 아직 너랑 놀아주실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육택은 지금의 고청운이 막 고향에 도착하여 친지와 고향 친구들을 만나느라 육훤과 오래 있어 주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육훤은 마음이 조급하였으나, 그래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금방 의논을 한 것처럼 며칠 후에 다시 찾아뵙기로 하였다. 

* * *

고청운이 돌아온 다음 날, 고백산은 마침내 사람을 찾아 길한 날을 잡았고, 열흘 후에 비석을 세우는 패방 의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벌써 유명한 석공에게 의뢰하여 비석을 주문해 놓았으나, 비석이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고청운의 진사 시험 합격을 축하하는 연회는 준비가 다 갖춰져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함께 의논한 결과 3일 후가 적당하다고 결정하였다. 

고청운이 계산을 해 보고, 사람들이 보내온 방문첩들을 한 번 흩어 보았는데, 윗부분에는 모두 축하 인사 혹은 안부를 묻는 말들이 쓰여 있었다. 어떤 방문첩은 회신을 해야 했고 또 어떤 경우는 회신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방문첩들을 통해 그는 임산현의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었는데, 여기 방문첩에는 보내온 주인들의 이름과 신분, 본적 등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 방문첩들이 고청운에게 보내진 이유는 반드시 고청운이 모임이나 초청에 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지 친분을 쌓고 관계를 맺는 일종의 방법일 뿐이었다. 

그래도 고청운은 웬만해서는 그들의 미움을 사지 않고자 답장을 꼭 한 부씩 써서 회신하였는데, 그가 직접 부치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 품을 들이는 것쯤은 괜찮았다. 

그가 이 방문첩들에 대한 회신 작업을 끝내고 나니 시간이 벌써 반 시진이나 흘러 버렸다. 고청운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소석을 깨끗이 단장시켜 둔 것을 보고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 육택의 생각대로 그는 친척과 친구들네 집에 방문해야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니?”

고청운은 우마차에 앉아 무릎에 올라가 있는 아들을 보며 물었다.

소석은 눈알을 한 번 굴리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답하는 소석에게서는 젖내가 물씬 풍겼다. 가족들이 소석이 양유를 마시는 것을 알고 그를 위해 미리 준비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럼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는?”

고청운이 또 물었다.

“좋아요.”

소석이 웃었다. 

모두들 오늘 이른 아침부터 아이를 둘러싸고 한껏 추대해 주었기에 소석이 이렇게 대답한 것 같았다.

그들 중 고청운의 어머니는 소석의 치수를 알게 되었으니 지금쯤이면 아이의 옷을 짓고 있을 것이었다. 

* * *

아침에 그는 먼저 하 수재의 집을 방문하였으나 그들은 모두 집에 없었다. 부성에 있는 벗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고청운은 어쩔 수 없이 준비해 온 선물만 남겨둔 채 소석과 간미의 집으로 갔다. 

이번이 소석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외숙부들을 만나는 첫 외가 방문인 셈이었다. 고청운은 연 씨와 간미가 준비해 준 한 무더기의 선물을 싸 들고 소석의 외가를 향했다. 

간미네 도착해 모두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하나씩 자리에 앉았다. 

방 씨는 고청운 부자만 도착한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매우 기뻐하면서 소석을 안아 들고는 놓아주지를 않았다. 

방금 대문을 들어섰을 때, 고청운은 파헤쳐지고 훼손된 화초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는 문득 이전에 간미가 집에서 간유가 화초를 해코지했던 위대한 공적을 말해줬던 기억이 났다. 

고청운의 적통 처남 간유는 올해로 막 6살이 되었는데, 글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되었음에도 한창 장난을 칠 나이였다. 

지금 고청운은 그런 그가 소석과 진지하게 놀아주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철이 꽤 든 것 같았다. 그에게서 그렇게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이 자세히 살펴보니, 간지원은 4년 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방 씨는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어째 간지원이 도통 전혀 변한 게 없어 보이자. 고청운은 세월이 그를 비껴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몸매조차 변하지 않고 여전히 진중하고 온화한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고청운은 속으로 탄식을 내지르다가 옷깃을 여미고 단정하게 앉아 있던 간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16살로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었는데, 작년에 막 동생(童生)이 되었으나 원시는 아직 합격하지 못한 상태였다. 

모두가 으레 인사말을 몇 마디씩 나누고 나자, 방 씨는 바로 경성의 근황을 물었다.

고청운이 하나하나 일일이 대답해 드리는데, 소석이 중간에 시도 때도 껴들어서 한두 마디 오물오물 덧붙이자 모두의 웃음을 자아냈다.

간미의 근황까지 다 전해 드린 후, 방 씨가 고청운에게 말했다. 

“소석이가 자네와 꼭 닮았군.”

일종의 남다른 자부심이 있던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아들이 자신을 닮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 아닌가?

“자네가 간미와 내 아버지를 돌봐 준다니 마음이 놓인다네.”

방 씨는 한숨을 쉬며 고청운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버지가 보내신 서신에 그를 칭찬하는 내용이 많았기에, 내심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했던 것이다.

“장모님, 안심하십시오. 제가 스승님과 할머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고청운은 정중히 말씀드렸다. 방인소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었다. 거인부터 진사까지 가는 여정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야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 그는 이 중요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방인소의 지극한 가르침 없이 이 어린 소년이 어찌 지금의 진사가 될 수 있었으랴. 아마 방인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늙어서까지 그저 수재의 신분으로 평생 시험을 치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간지원이 웃으며 방 씨에게 말했다.

“만약에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도 같이 경성으로 같이 옮겨가서 지내는 것은 어떻소?”

방 씨는 약간 어리둥절하더니, 즉각 머리를 저으며 한마디 했다.

“아닙니다. 부군께서는 임산현에 남아서 계속 가르침을 전하셔야지요.”

오랜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동안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임산현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가르치는 일이 잘 맞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다시 경성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후로 고청운은 간지원과 자리를 옮겨 바둑을 두었는데, 바둑을 두며 한담도 나누고 임산현에 생긴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소석은 간유와 간경이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 함께 놀았다. 간경과 고삼원이 있어서 고청운은 안심하고 맡겨둘 수 있었다. 간경은 이렇게 커서도 여전히 어렸을 적처럼 진지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좀 진부하긴 하였지만, 이런 성정의 사람이 아이를 봐주는 것은 아주 괜찮았다. 

이번에 고청운은 바둑 솜씨가 아주 뛰어나게 되었는지 비록 지더라도 예전처럼 비참하게 깨지지 않았다. 

솔직히 그는 바둑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방인소는 처음엔 늘 고청운과 바둑을 두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청운의 바둑 실력이 많이 늘지 않자 그의 바둑머리는 어떻게 해 볼 머리가 안 된다며 나중에는 간미나 연 씨를 찾아 바둑을 뒀으면 두었지, 그와 함께 바둑을 두진 않았다. 

고청운은 억울했다. 그는 원래 바둑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독서에 쏟아야 했던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 다른 곳에까지 시간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또 화본을 집필하고, 칠현금과 그림까지 배워야 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찌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바둑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그를 너무 난처하게 만드는 처사가 아닌가? 그가 무슨 초인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칠현금을 타고 바둑을 두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따위의 문인의 고상한 취미에 하나같이 정통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그를 통해 입증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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