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소소한 일상 (1)
숙모 이 씨는 지켜보다가 자신이 등장해도 될 때가 된 듯 보이자,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아주버님 그리고 형님, 전자가 돌아왔으니 이제 되었어요. 우리 서둘러 집으로 갑시다. 날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구요.”
주변에 나와 구경하던 마을 주민들도 덩달아 어서 귀가부터 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노진씨가 그 말들을 듣고 막 자리를 뜨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앙…….”
이때, 뒤에서 큰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빠, 아빠아, 소석이 무서워…….”
막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던 고청운은 이 소리가 자신의 아들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간파했다. 방금 그는 너무 흥분해서 깊이 잠들어 있던 아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여기는 제 아들 소석입니다.”
고청운은 고삼원의 품에 안겨 엉엉 우는 소석을 건네받아 속삭였다.
“자, 이제 뚝. 아버지 여기 있다.”
소석은 자신이 익숙한 품에 안겼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흑흑 흐느끼며 울음을 멈췄다. 아이는 방금 소란에 잠이 깨서 눈을 떴는데, 아버지를 찾을 수 없어 울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 눈을 뜬 아이는 눈앞에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며 자기를 쳐다보고 있자, 두려운 듯이 머리를 아버지의 품속에 파묻었다.
“이 아이가 우리 손자로구나?”
소진씨는 눈을 반짝이며 소석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두 손을 앞으로 내었다.
“소석이 맞지?”
노진씨도 소석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며느리는?”
고계산은 진작부터 같이 온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으나 간미가 계속 보이지가 않자 급히 물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머리를 쓸며, 방금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그들에게 말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하, 처가 또 회임 중이라서요. 지금 4개월을 막 넘겼는데, 임산부가 오기는 길이 좋지 않아 경성에 남으라 하였습니다. 원래는 따라올 예정이었어요.”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는 또 한바탕 축하를 건넸다.
고청운네 가족들은 이제 아무 걱정이 없으니 손자를 하나 더 보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을 들어왔었다! 고청운과 간미가 소석을 낳고 나서도 오랫동안 둘째 아이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은연중에 자기들끼리 무슨 연유일지 말을 나누어 보았을 뿐 그들에게 편지로 묻기가 곤란했었는데, 이제 회임한 것을 알았으니 이젠 진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하늘빛을 보더니 다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할머니, 어머니, 일단 집에 돌아가서 다시 말씀들 나누시죠.”
이렇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청운을 둘러싸고 마을 후미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갔다.
고청운은 가는 도중에 낯익은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따금 그들이 던지는 한두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였는데, 사람들 너무 많아서 때때로 어떤 말들은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도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와 조금 가까이 있을 수만 있다는 것으로도 매우 흥이 나는 모양새였다.
* * *
고씨 집안에 도착한 후, 마을 사람들은 짐을 내리는 것을 도와주고는 알아서 눈치껏 떠났다. 다들 오늘 그들의 온 가족이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외부인이 감히 방해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고백산도 이를 알기에 고청운에게 몇 마디 하고는 다시 가족들을 데리고 떠났다.
이렇게, 마침내 집 안에는 그들 가족만 남게 되었다.
노진씨와 소진씨는 고청운을 마주하고 또 한바탕을 울다가 소석이 다시 훌쩍이며 울려고 하자, 그제야 비로소 감정을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되찾으며 잇달아 자리에 앉았다.
고청운은 본격적으로 소석에게 집안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일찍이 경성에서부터 고향으로 가는 배 안에서까지 방언으로 이야기를 해 오고 있었기에, 소석도 반쯤은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라는 것을 안 소석은 안심했다.
‘아빠가 말했던 분들이구나.’
그래서 소석은 얌전히 굴었는데, 그들에게 안기려고 하지는 않고 그저 고청운의 목덜미를 꼭 껴안을 뿐이었다.
고청운은 아이가 낯선 곳에 막 도착해서 마음이 불안해서일 뿐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평소 아이의 성정으로 미루어 보아 이렇게 낯을 가리는 날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었다.
노진씨를 포함하여 다들 이 귀한 소석을 안아보고야 싶었지만, 지금 아이가 완강히 저항하는 모습을 보니 억지로 안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고청운도 있으니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있었다.
모두들 격앙된 표정으로 잠시 말을 나눴다. 그러다 고청운의 눈에 이제 제법 많이 자란 고청평과 고청안이 들어왔다.
“평평이와 안안이가 이렇게 잘 크다니!”
고청평과 고청안은 모두 연한 청색 장삼을 걸친 채 점잖고 예의가 바른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올해 16살과 14살이 되었는데, 외모는 이목구비가 반듯했고 5~6할 정도는 서로 닮아 있었다. 동생인 고청안이 형보다 조금 더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었으며, 고청평은 이제 막 사춘기인지 마른 체구에 여드름이 조금 나 있었다.
고청평 형제는 고청운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얼굴이 상기된 채 쩔쩔매며 한참을 입을 열지 못했고, 간단한 한마디도 뱉지를 못하였다.
고이하는 이 모습을 보자 자기가 더 갑갑한 나머지 두 형제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먼저 한마디 꺼냈다.
“빨리 형님이라고 못 부르느냐? 집에서는 형님이 이러쿵저러쿵 노래를 부르듯 말만 잘하더니, 형님을 만나자마자 어째 주둥이 막힌 조롱박처럼 말 한 마디도 못 하는 게야.”
그는 자식들이 특출 나 보이지 않는 게 정말 한스러웠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 씨도 형제를 한 번 노려봤다가 다시 고청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전자야, 이 두 동생들이 이렇다. 보다시피 사람은 너무 견실해 보이는데, 듣기 좋은 말 한마디 번지르르하게 할 줄은 모르는구나. 집에서 자기 형한테도 이러는데, 이 녀석들이 밖에서는 동창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형님.”
그때 드디어 고청평과 고청안이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를 쳐다보고는 다시 얌전하게 고청운의 품에 안긴 소석을 쳐다보았다.
“얌전한 성정이 간사한 것보다는 무조건 나은 법입니다. 제가 두 아이 모두 어떤 성정인지 잘 아는데, 이 아이들은 앞으로 반드시 출세할 거예요. 숙부와 숙모는 복을 누리실 일만 남으셨어요.”
고청운은 웃으며 이 씨를 한번 보았다.
“4년간 못 뵈는 동안, 숙모는 더 귀티가 나시는군요.”
이 씨는 좋아 보이는 재질의 면직 의상을 입고 있기도 했거니와, 확실히 몸매도 이전보다 조금 더 체격이 커지고 사람도 몇 살이나 젊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뚱뚱한 것을 못생겼다고 여기지 않았고, 너무 뚱뚱한 것이 아닌 이상 복이 있다고 여겼다.
과연 이 씨는 말을 듣자마자 동그란 얼굴에 눈시울까지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들들의 출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효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우리와 할머니, 할아버지께만 잘할 줄 알면 좋겠구나.”
고청운은 마음속으로 상당히 의아해하였는데, 몇 년 못 본 사이에 숙모의 말씨가 이전보다 훨씬 더 듣기 거북살스럽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와 숙부는 현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더 좋은 말씨를 가질 수 있게 단련이 된 것 같았는데, 보아하니 가족들 모두 다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듯했다.
노진씨는 고청운과 이 씨만 서로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게 불편해져서 말을 중간에 가로챘다.
“전자야, 이제 막 돌아와 아직 밥을 먹지 못했을 텐데, 우선은 밥부터 먹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니?”
그녀는 말하다 보니 소석이 보여, 아이에게는 한층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석아, 배고프지 않니? 증조할미가 밥 먹는데 데려다줄까?”
소석은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으나, 아버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침묵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배에서 뭘 좀 먹이고 왔어요. 어머니, 주방에 계란찜이나 좀 만들어 달라고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잘게 썬 파는 넣지 않도록 부탁드려요.”
고청운은 아이의 이마를 만져보고 열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했다.
소진씨는 말을 듣자마자 부엌으로 급히 가면서 말했다.
“내가 주방에 가서 직접 만들어주마. 계란찜은 내가 만든 것이 나을 게야. 오늘 저녁 돌아오는 것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우리 먼저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니었을 텐데……. 기다려서 같이 먹었어야 했구나.”
고청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소석의 배를 채워주고 싶어 하는 소진씨의 마음만은 이해가 되었다.
식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청운은 경성의 최근 동향과 시험에 관계된 사정 등 가족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였다. 그가 이미 한림원의 서길사가 되었다는 말을 하자, 모두들 더 기뻐해 주었다.
모두들 실은 한림원 서길사가 어떤 관리직인지 몰랐지만, 일단은 관직이라니 기뻐해 주는 것이었다.
고청평과 고청안은 같은 공부를 하는 처지라 한림원이 내포하는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눈에 그를 향한 숭배의 빛이 짙게 배어 있었다.
* * *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청운은 어렵사리 저녁 식사를 마쳤다. 날이 저물어 어디 가서 싱싱한 돼지고기 등 재료를 살 곳도 없었기에, 원래 있던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원래 그는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으나, 마지막에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친히 권하는 통에 성화에 못 이겨 절임육 몇 조각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고삼원은 왕순에게 경성에서 데리고 온 두 사람의 하인의 숙식 등의 문제를 일임하고, 다른 방에서 식사를 하였다.
“또 닭을 잡지 말라는 말을 하다니. 그럴 것이면 우리 집에서 뭐 하러 이렇게 닭을 많이 키웠겠어. 아무거나 먹어도 된단다.”
소진씨는 입으로는 원망하는 말을 뱉고 있었으나, 눈은 고청운과 소석에게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정말이지 자신의 아들과 손자가 잘 자라주어서 너무 잘되었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이야 손주가 나한테 안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지만, 괜찮아. 곧 익숙해지면 안아 볼 수 있을 것이야.’
“아니면, 이 할미가 우리 소석이 맘마 먹여줄까?”
그녀는 다시 한번 단념치 않고 소석에게 물어보았으나, 소석은 높은 의자에 앉아 수저를 휘저으며 계란찜을 스스로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어머니, 제가 말씀드렸죠? 소석이는 벌써 3살이 넘었으니 혼자 밥 먹을 줄 알아야 해요. 흠, 저는 제가 2살 때 이미 혼자 먹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나저나 그때는 왜 아무도 저를 떠먹여 주시지 않았던 거죠? 아니, 아무튼 안 됩니다. 이 녀석은 이미 다 컸으니 떠 먹여주시면 안 돼요. 이 녀석은 오냐오냐 하는 것에 길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고청운은 다시 한번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그 말에 소석은 빛나던 큰 눈이 일순간 흐려졌고, 그저 말없이 스스로 계란찜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조차도 안 된다는 건가? 혼자 밥 먹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노진씨는 고청운이 질투를 하는 것이라 여겨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장성한 녀석이 제 아들을 질투라도 하는 게야? 부끄럽지도 않으냐?”
고청운은 눈썹을 찡그렸으나, 당분간은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둘의 모습을 보고 모두들 참지 못하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고계산은 두 사람이 힘들까 봐 식사를 마친 후 얼른 목욕을 하게 하고 다시 잠을 자러 가도록 식당에서 내보냈다. 할 말이 있으면 내일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당연히 이 말에 동의했다. 그들의 아들이 지금 피부가 많이 창백해져서 눈 밑의 검푸른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성에서 여기까지 돌아오느라 길에서 틀림없이 적지 않은 수고를 했을 터였다. 게다가 날도 이미 많이 늦었으니, 지금은 아들이 서둘러 집에 돌아가 쉬는 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