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돌아오다
처음에는 소석을 다루기 어려웠다. 아이는 자신을 돌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고청운에게 매달려 울며불며 보챘는데, 주변에 익숙한 사람들의 총애까지 사라진 걸 알고 점점 더 강하게 보챘었다.
어린애들은 모두 이랬다. 어른들의 총애만 받으면 유난히 응석받이로 자라는데, 만약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면 아주 어릴 적부터 사람 눈치를 볼 줄 알았을 것이었다.
예전에 그는 이런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이해가 갔다. 그의 아들이 바로 그 적절한 예인데, 이 조그마한 녀석이 벌써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빨리 안 먹어라, 좀 있으면 맛이 없어진다!”
잠시 후, 고청운이 비로소 한마디 했다.
소석은 그제야 어물어물 자신의 나무 그릇을 들더니 먼저 국물을 마신 후, 자신의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생선을 입에 넣자 맛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또 감히 뱉지는 못하고 급히 삼켜서 입을 오물거렸는데, 아버지가 줄곧 자기를 쳐다보고 있지 않는 것을 보고 또 울려고 하였다.
소석은 자기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제대로 먹거라. 밥알이 식탁에 떨어져도 주워 먹어야 해.”
고청운이 담담하게 한마디 하였다.
소석은 이제 3살이 되었는데, 그전에는 집에서 연 씨나 하인이 밥을 떠먹여 주었다. 고청운이 몇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소석은 스스로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도대체 익숙하지가 않아서 어리광을 부리자, 집안의 여인들이 참지 못하고 앞다투어 밥을 먹여 주었다.
방인소조차 소석이 아직 어리니 조금 더 큰 후에 천천히 가르치겠다고 할 정도였다.
고청운은 방인소 등이 소석의 공세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고, 오직 자신과 단 둘이 있을 때 반드시 스스로 밥 먹는 법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에서는 소석이 적응하지 못할까 봐 이리저리 보살피며 따라다닌 뒤,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밥 먹는 동작도 익숙해지고 밥알을 흘리는 일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래도 고청운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소석은 ‘네.’ 하고 대답하고는 동작을 좀 더 조심히 했다.
* * *
그들이 밥을 다 먹자, 소만이 방으로 들어와 그릇을 치워줬고, 뒤이어 고삼원이 따뜻한 물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고청운은 소석의 얼굴을 닦아 준 뒤 아이를 데리고 갑판으로 산책을 나갔다.
방자명은 옆방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마침 갑판 위에서 바람을 쐬고 있던 그는 부자가 나오는 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밥을 다 먹은 게야?”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재종조부!”
소석이 방자명과 인사를 했다. 아이는 지금 눈물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단지 눈이 약간 부어 있어 일찍이 울었던 티가 나고 있었다.
방자명은 땅딸막한 키의 작은 몸을 보고 쪼그리고 앉아 몇 마디 말을 건넨 후 일어나 고청운에게도 말을 건넸다.
“청운아, 네가 정말 모진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 소석이가 울면 나와 내 처는 뛰쳐나가 달래 주고 싶었을 텐데, 넌 그런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있다니 말이야. 소석이가 아까 또 울었니?”
방자명에 있어서 그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아들이 그의 맞은편에서 목이 메도록 울고 있는데, 고청운은 되레 맛있다는 듯 밥을 먹고 있다니 말이다.
소석이 바다를 구경하느라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을 보고는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이가 다 그렇지요. 며칠간은 좀 난리를 치더니 지금은 점점 더 난동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봐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게지요.”
고청운은 사실 소석이 이제 겨우 3살이 넘었기에 너무 얌전하게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는 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배고픈 느낌을 알게 하고, 모든 문제가 울거나 칭얼대서 또는 애교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소석을 무원칙하게 총애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 어떤 사람은 소석을 봐 주거나 인정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소석이 고청운의 정성 어린 보살핌 아래 배 위에서 줄곧 병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소석이 워낙 건강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고청운이 밤에도 한두 번쯤 깨서 품에 안겨 자는 소석이 괜찮은지 살핀 덕분도 있었다.
배에서 고청운은 소석과 함께 잠을 잤는데, 다른 이에게 맡겨 잠을 재우는 것은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훈련은 훈련이고, 안전과 관계된 것은 역시 자신이 직접 관여하는 것이 좋았다.
밤새 내내 같이 붙어서 잠을 자서 그런 것인지, 소석은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라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배에서 고청운이 이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사전에 당부를 해 두었기에, 소석도 서서히 어느 정도 포기하고 혼자 어려움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적어도 소석은 이제 제 옷을 스스로 입고 밥 한 끼 정도는 혼자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방자명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넌 정말 아이를 잘 보는구나. 내 부인도 소석이가 이전보다 더 점잖아 보인다고 하던데.”
그의 아내가 거론되자 고청운이 물었다.
“몸은 괜찮으시고요?”
그녀는 회임한 몸이 아니던가.
“괜찮은 것 같아.”
방자명의 얼굴에 웃음이 더욱 커졌다.
“우리의 이번 항해는 물도 바람도 순탄한 것 같군. 오는 동안 풍랑도 없는 것이 배 속의 아이에게 별 힘든 일은 없을 듯해.”
“그거 정말 다행이군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허벅지를 꼭 붙잡고 있는 소석을 안아 올려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소석은 그의 목을 껴안더니 자신의 키가 갑자기 커진 것을 보고 흥분하여 신나게 소리쳤다.
“아빠, 바다, 바다예요!”
“그래, 바다로구나.”
고청운은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가 던지는 질문들에 인내심을 갖고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바다에는 물이 왜 이렇게 많아요?”
“혹시 소석이가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해요?”
“바닷속에 용왕이 정말 있나요?”
고청운은 결국 아이를 데리고 갑판 위로 걸어가 질문에 답하면서 또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월양군성에 가까워짐에 따라, 고청운은 점차 흥분하기 시작했다.
‘곧 집에 도착하겠구나!’
마침내 월양군에서 하선할 때, 고청운은 낯익은 광경들을 눈에 담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방자명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빠, 엄마랑 외증조할머니, 외증조할아버지는요?”
“그들은 경성에 있고, 우리는 지금 월양군이라는 곳에 있단다. 이번에는 고향에 가서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뵐 거야.”
고청운이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 주었다.
소석은 엄마랑 가족들이 없다는 말에 볼이 뾰로통했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월양군에서 고청운은 미리 써놓은 편지를 역참에 부쳐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육택과 육훤에게 보내는 편지로, 그들은 줄곧 연락해 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 월양군으로 돌아온 김에 시간이 있으면 육훤을 보고 갈 생각이었다. 이것은 그가 약조했던 것으로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었다.
몇 명은 귀가를 하러 하선했고, 고청운과 방자명은 이날 정오 무렵 임산현으로 들어가는 배 한 척이 있어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이 배편을 타고 내일 집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은 더 설레었다. 고청운은 가족만 떠올리면 배를 더 빨리 몰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 * *
그들은 간신히 다음 날 저녁 임산현에 도착하였다. 이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도 그들은 너무 일찍 도착하여 현지의 현령을 놀라게 했다.
고청운과 방자명에게 초청장을 전하여 연회 참석을 청했으나, 그들은 참석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지금 당장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던 것이다.
현령도 그들의 사정을 알고는 급히 부두로 직접 달려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정해 함께 술을 마시기로 한 뒤 더 이상 자리를 청하지 않았다.
이때 고이하는 이미 소식을 듣고 부두로 달려와 있었는데, 현령이 자리를 떠난 후에야 감히 다가올 수 있었다.
“전자야, 네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고이하는 고청운을 보고 흥분해서 말했다.
“며칠째 언제 도착할지 지켜보고 있었다. 어제도 너희 아버지가 현성까지 오셔서 물어보고 계시더라.”
그가 고삼원의 품에서 잠든 작은 소석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고이하와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여름날 저녁은 어차피 천천히 해가 지지 않는가. 하여 그는 그냥 체면 불고하고 말했다.
“숙부, 제가 지금 고향집으로 바로 가보고 싶은데, 혹시 우마차가 있을까요? 지금 집으로 갈 수 있을까요?”
고청운은 지금 애가 타서 한순간도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고이하는 그를 현성에서 하루 묵게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고는 그렇게 말하기가 미안했다.
“지금 당장 우마차를 몰아서 집에 데려다주마. 숙모도 모두 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마차가 더 빠르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숙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마음에 걸렸다. 오히려 고삼원과 숙부가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석은 계속 잠들어 있었다.
* * *
안절부절못하며 우마차를 탄 고청운은 반 시진 만에 겨우 임계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얼마 가지 않아 이미 소식을 듣고 집에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던 고계산이 지체 없이 달려 나왔다.
익숙한 모습이 보이자 고청운도 이내 우마차에서 뛰어내려 달려 나갔다.
“전자, 전자야! 내 새끼 전자야!”
노진씨와 소진씨도 달려와 울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전자가 돌아왔어요!”
고청운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와 눈물을 흘리며 그들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외쳤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친지들의 낯익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자, 고청운은 더는 참지 못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달려 나가 무릎을 꿇고 눈시울을 붉혔는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착한 내 손주!”
노진씨는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하늘 아래에 서서 노안으로 눈이 침침해져 손자의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큰손자를 마주하자, 한눈에 그것이 자기 손주임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주의 머리를 자기 품에 꼭 껴안고 울부짖었다.
“우리 착한 손주, 드디어 돌아왔구나! 할미는 너를 다신 못 보는 줄만 알았다.”
고청운은 할머니의 뜨거운 눈물이 목덜미에 뚝뚝 떨어져 흐르는 것이 느껴지자, 마음이 한동안 괴로웠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눈앞에 있는 친지들은 모두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그리울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다시 돌아와 보니 못 참을 만큼 그들이 그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는 길 내내 고향으로부터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기쁘면서도 뭔가 조마조마했다.
소진씨는 그저 옆에 서서 계속해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고계산은 매우 격동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이성적으로 손자를 챙기며 말했다.
“이 여편네가 빨리 전자를 일으키지 않고 뭐하는 것이오? 아직 바닥에 소석이도 덩그러니 서 있고, 소석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노진씨와 소진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고청운을 끌어당겼다.
“아이고, 이런, 이 할미가 잘못했구나. 이리 오랫동안 꿇고 있게 하다니.”
노진씨가 자신을 탓하며 다시 물었다.
“무릎이 아프진 않더냐?”
그녀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난 고청운은 굳은살이 두툼한 그녀의 손을 잡고 머리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땅이 평평해서 조금도 아프지 않았어요.”
그는 옆에 서 있는 고계산과 고대하를 외쳐 불렀다.
“할아버지, 아버지!”
고계산은 ‘그래.’ 하고 대답을 하고는 손을 다 떨며 웅얼웅얼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돌아왔으니 되었다. 돌아왔으니, 이제 괜찮아.”
고대하도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살이 빠졌구나, 홀쭉해졌어!”
그는 말을 마치자 머리를 숙이고 운 티를 내지 않으려 눈물 자국을 가리려 눈가를 쓱쓱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