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93)화 (193/504)

193화. 간절히 기다리다

고계산은 얼굴이 갑자기 상기되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잠시 시간이 지나고서야 얼굴을 닦고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 이장, 예까지 와서 소식을 알리느라 고생했소. 수고 많으셨네.”

사람들은 위기가 지나가자 비로소 이장이 가지고 온 소식을 떠올렸는데, 또 한 번 이 희소식을 듣자 삽시간에 모두 흥분하여 고계산을 빼곡히 둘러싸고는 혹여 자신의 인사를 고계산이 놓칠세라 앞다투어 축하의 말을 전했다. 

고계산은 입이 귀밑까지 찢어질 듯 웃고 있었고, 눈썹 모양마저 기쁨에 찬 모양새였다. 

이장은 그의 건강이 걱정되어, 그에게 뜨거운 물부터 마시게 해 놓고서 다시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 아직 이 소식을 모르시지요? 지금 집에 다들 와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고계산은 말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맞소! 전자의 부모한테도 소식을 알려야지.”

그랬다, 그리고 그들 집에 있는 그의 마누라 역시 그동안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저 전자의 성적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제 되었다. 전자가 진사에 합격했으니 이건 정말 대단한 경사가 아닐 수 없구나!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향을 올려야겠다. 이번에는 선조들께서도 힘을 많이 써 주셨을 게야. 모두 조상들의 가호다!’ 

뒤이어 이장이 손을 흔들자 날라리, 징, 북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는 마침 마을 사람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징과 북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시골에서는 1년 내내 놀 거리가 별로 없었고, 농사일이 바쁠 때는 심지어 물 한 모금 마실 짬도 내기가 힘들었다. 매일매일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오직 태양이 제일 맹렬한 시간인 점심시간에나 겨우 여유 있게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마침 이런 시간대에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자, 이들은 모두 집에서 수저를 든 채 신기한 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고계산과 이장이 함께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들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고, 뒤의 고적대(*鼓乐队: 가로피리와 큰북, 작은북으로 구성된 행진 또는 의식용 취주악대)가 열심히 악기를 불고 연주하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을 어귀의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마을 사람들이 잇달아 물었다.

고계산 주변에 있던 고씨 가문의 식솔들이 가슴을 펴고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청운이가 진사에 합격했어요! 관리 나으리가 되었대요!”

고적대의 연주 소리가 마치 큰 바위가 물에 던져진 듯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모두들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덩달아 신나서 점심밥도 안 먹고 대열의 뒤에서 쑥덕거리자, 이내 경사에 걸맞은 시끌벅적함이 되살아났다. 

이때 노진씨는 집의 정원 앞 큰 뱅골보리수 아래에서 마을 아낙네들과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읍에서 점괘가 신통한 곳이 어딘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다리를 쳐가면서 크게 박장대소하고 있을 때에, 마을의 소년 하나가 웃으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할머니, 할머니, 청운이 형이 진사에 합격했대요. 이장님이 지금 소식을 전하러 오셨어요.”

노진씨는 아까부터 자신의 심장박동이 왠지 모르게 빨라져서 이야기에 별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자 머리가 텅 빈 듯 잠시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할머니가 소년에게 물었다.

“얘야, 정말 청운이가 진사에 합격했다는 게야?”

“당연하죠, 이장님께서 곧 오실 거예요!”

그 소년이 자못 의기양양하게 턱을 쳐들었다. 

노진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을 붙잡고 한 번 더 물었는데, 그때 마을 어귀에서 갈수록 크게 징과 북소리를 들려오자 그제야 마음속으로 이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체면만 아니면 그녀는 진작에 보희를 맞이하러 뛰어나갔을 텐데, 지금은 그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가의 눈물을 닦느라 바빴다.

“조상님이 보우하셨구나. 조상님이 보우하신 게야.”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외었다.

이때 재빠른 사람 하나가 고대하 부부에게도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래서 이장이 고씨 집안에 다다랐을 때 이미 모든 사람이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고대하는 흥분을 참아가며 집사 왕순에게 잔칫값을 뿌리게 시켰고, 이장 등의 사람들에게는 차를 대접했다.

소진씨는 이미 거리낌 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모두들 그녀가 매우 기뻐서 흘리는 눈물임을 알기에 그녀 주위를 서성일 뿐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소진씨는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한참 동안 오열하다 겨우 말을 꺼냈다. 

“전자가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니,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오겠군요.”

마을 사람들은 놀라고도 또 매우 기뻐하였다. 이것은 그간 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큰 경사였다. 고청운이 돌아온다면 더욱 좋을 것이었다!

“언제 축하 연회를 열지 꼭 말해주세요. 도우러 올게요.”

“그러니까요, 경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건 우리 마을의 큰 경사이니, 반드시 대대적으로 특별하게 진행해야 해야죠!"

“또 연극단도 불러야죠.”

고청운이 진사 시험에 합격한 소식은 이내 임계촌의 모든 집에 바람을 불러일으켜 조용하던 임계촌의 집집마다 폭죽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모두들 마치 춘절처럼 시끌벅적해지자 즐거워했다.

* * *

이장 등을 보내고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귀가를 권하고 나자, 집 안에는 고백산과 고계산 두 집의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다.

모두들 조상에게 향을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앉아서 일을 의논할 시간이 생겼다.

몇 사람은 또 계속해서 기쁨을 토로하고 있었는데, 말할수록 흥분이 배가 되었다.

“맞다, 전자가 며칠 안으로 돌아올 게다. 바닷길로 올 테니 아주 빨리 도착하겠구나.”

고백산이 먼저 입을 열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전자가 오고 나면 마을 잔치를 열어야 하니, 온 마을이 다 와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사람들을 초대하거라. 또 진과 현에도 분명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너희는 나중에 허둥지둥하지 않으려면 요 며칠간 미리 닭과 오리 그리고 생선이나 고기 등도 미리 주문해 두거라.”

그는 지금 몹시 흥분해서 머리가 아직 어질어질했다. 

‘집안에서 뜻밖에도 진사가 배출되다니! 어쩌면 이렇게 복이 많을까!’ 

지금 조상의 묘에서 상서로운 푸른 연기가 뿜어 나올 정도는 되어야 있을 수 있는 큰 복이 강림한 것이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한 명의 나이든 동생 출신으로서, ‘진사’ 이 두 글자가 주는 무게를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아무리 꿈꿔도 닿을 수 없었던 경지인데, 전자가 해낸 것이었다. 20년 전에 동생에게 애를 써가며 전자에게 공부를 시키라고 권했던 일은 이제 그의 일생에 있어 가장 잘한 일이 되었다.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된 것이었다. 죽어서도 조상님을 뵐 낯이 생긴 셈이었다!

“형님, 알겠습니다.”

고계산의 입은 줄곧 다물어지지 않았다. 방금 하 의원이 그를 진맥해 주기로는 잠시 흥분해서 기절한 것일 뿐, 다들 적절히 대처해 주어 큰 문제는 없다고 하였다. 

노진씨도 어지럼증을 호소할 정도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고청명이 껴들어 말했다. 

“제가 보기에 조금 있으면 곧 축하 선물을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그들을 접대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청운이의 진사 패방은 어디에 세우실 예정이신가요? 청운이가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텐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희가 일을 미리 잘 준비해야지요.”

그는 수재에 합격한 후부터 성품이 침착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집에서 이미 혼자 처신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평소에는 현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현학에서 고청운이 진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맞다, 그 말이 맞구나.”

현의 유지들 사이에서는 소식이 매우 빨리 도는 것을 알았던 고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왕순에게 한마디 더 당부했다. 

“왕 집사, 주방에 계신 분들과 합세하여 집 안부터 한 번 다시 청소해 주게.”

방금 이렇게 큰 무리가 그들의 집에 축하를 하고 돌아갔으니, 틀림없이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왕순은 기뻐서 큰 소리로 대답하고, 발걸음도 경쾌하게 안방에서 나갔다. 주인이 출세하니 하인들에게도 더 큰 희망이 보였다. 특히 이제 며느님도 함께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진사 패방은…….”

고계산은 흥분한 나머지 입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어디에 세우는 것이 좋을지 풍수 선생을 불러보자꾸나.”

모두가 동의했다.

“아이고, 전자가 돌아오면 소석이도 함께 오는 거 아닌가요?”

마침내 정신을 차린 노진씨가 다시 소리를 높였다.

“소석이 마음에 들도록 물건들을 사 와서 방을 잘 꾸며둬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은 계속 일을 의논하면서 고청운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 * *

이 시각, 집에서 증조부모님, 조부님에게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은 소석은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석이는 물고기 먹기 싫어요. 고기랑 계화떡이 먹고 싶어요.”

작은 소석이는 나지막이 그의 아버지에게 건의하며,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는 꼭 아버지가 이제 자기를 조금도 예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외증조할머니와 어머니마저 모두 사라져 버려서 구원을 청할 곳도 없게 되었다.

“그럼 생선은 안 먹어도 되니, 죽과 콩나물을 먹거라.”

고청운이 부드럽게 아이를 위로하며 말했다.

“지금은 배 위에 있기 때문에 물고기만 구할 수가 있단다. 배가 뭍에 닿아야 고기도 사고 다른 물자들도 구할 수 있어.”

“저는 죽도, 콩나물도 먹기 싫어요.”

소석이 입을 삐쭉이더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저는 집에 가고 싶어요. 저는 엄마를 원해요! 저는 외증조할머니, 외증조할아버지가 필요해요.”

“우리는 지금 집에 가고 있는 거야.”

고청운은 음식을 상에 내려놓고 물고기 가시를 꼼꼼히 발라내고 있었는데, 바다 생선이라 가시가 별로 없는데도 조심스레 가시가 없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살만 잘 골라 소석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

오경계만으로는 홍소(*红烧: 고기, 물고기 등에 기름과 설탕을 넣어 살짝 볶고 간장을 넣어 익혀 검붉은색이 되게 하는 중국 요리법의 한 가지) 생선 요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주방에서 만든 것으로 솜씨가 꽤 괜찮았다. 

“그럼 언제쯤 집에 도착해요?”

소석이 왠지 가슴이 철렁해져서 또 물었다.

“아직도 열흘은 더 지나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단다.”

고청운은 무심히 답했다. 

“네가 안 먹으면 이 아비가 다 먹어버릴 거다.”

요 며칠 동안, 고청운은 단지 아이 하나 데리고 있는 것인데 며칠 밤을 세워 계속 공부한 것보다 더 피곤하다고 느꼈다.

꼬맹이는 처음 배에 오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매우 기뻐했지만, 서서히 배의 물자와 환경이 본래 집에 있는 것보다 열악하다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에 고청운은 소석이 밥을 먹으려 하지 않자 달래보았었지만,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포기하고 말았다.

아이는 점점 더 얼굴을 붉혀가며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심지어 시도 때도 없이 한바탕 울어 젖히며 땅바닥에서 뒹굴기까지 했다.

결국 고청운이 모질게 맘먹고 한 끼 굶게 하자 꼬맹이에게 밥 먹이기가 한결 쉬워졌는데, 그래도 소석은 여전히 발작하듯 바닥에 뒹굴었다. 

그리고 지금 또 그랬다.

고청운은 정말 혼자서만 밥을 먹었고, 맞은편에 앉은 작은 소석은 납작해진 자신의 배를 만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전혀 안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랬으면 너를 길거리에서 구걸을 시켰을 게다. 아니면 극단으로 보내버려서 사람들에게 욕먹고 얻어맞게 두었을 게야.”

고청운은 느릿느릿 밥을 먹으며 아이를 주시하였다.

얼떨떨해하던 소석은 며칠 전 그의 아버지와 뭍에 올랐을 때 길가에서 봤던 어린 거지와 어린아이가 생각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가 밥을 와구와구 먹으면서 식탁 위의 음식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보이자, 소석은 몸을 곧게 펴서 음식들을 쳐다보고는 또 아버지를 보면서 망설였다.

고청운은 아이의 볼에 맺혀있는 눈물과 막 출발했을 때보다 홀쭉해진 작은 몸을 보니 다시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하였으나, 이렇게 모질게 마음을 다잡은 이 며칠간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 절대 누그러질 수 없었기에, 그는 결국 마음을 모질게 먹고 아이를 쳐다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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