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92)화 (192/504)

192화. 광희(狂喜)

“대인, 지금 당장 방씨 가문과 고씨 가문에 통지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옆에 있던 고문이 조심스레 주의를 주었다.

“그래, 그래. 그 말이 맞다. 빨리 가서 사람을 붙이고 징을 치고 집집마다 구경하게 하라.”

현령은 정신을 차리더니 바로 명령을 내렸는데, 또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직접 보희로 가야 되는 것은 아닌가? 가는 김에 방 대인과 고 대인의 가족도 한번 보고 와야 하는 것이 아닌지…….”

“나리,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고향에 조상님께 제를 올리러 오고 있을 텐데, 그때 가서 축하의 말을 전해주시면 됩니다. 게다가 그들은 도강 부두에 도착하면 틀림없이 먼저 찾아뵈러 올 것입니다.”

‘그래, 고결한 한림원 서길사라는 것은 아직 품계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 아닌가. 게다가 현령이 임산현의 수장인 만큼 이들이 먼저 배알을 하러 오는 것이 절차다.’

현령은 그 설명을 듣자, 뜨거워졌던 두뇌에 열이 식으며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또 되뇌었다. 

“이것은 내가 어떤 대단한 일을 계획하거나 맘먹고 실행한 것이 아닌, 그냥 발 앞에 굴러 떨어져서 행한 일이 큰 행운으로 돌아온 것이로구나. 이게 무슨 운수대통한 일이란 말이냐.”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에는 만약 과거 시험에 강한, 평소에도 인재를 많이 배출해오는 문풍이 강한 현들이 아닌 경우에, 일반적인 다른 현에서는 진사 한 명 내기도 어려웠다. 어떤 현은 심지어 이백 년 동안 단 한 명의 진사를 배출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들 임산현은 방인소가 진사가 된 후 30년이 다 돼서야 고청운과 방자명, 이 두 사람의 진사가 다시 배출되었다.

“나는 과거 시험에서는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왔으나, 보아하니 내 관운은 좋았던 모양이군. 한 가지를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는 잃어야 한다고, 옛 사람들이 나를 속이지는 않았어.”

고문이 급히 나가서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지시하고 있을 때, 현령은 또 자기 집 할아버지가 혼자 중얼거리던 혼잣말을 되뇌었다.

* * *

임계촌.

6월의 날씨는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논에 벼가 울창하게 여물고 있었고, 논에 한창 물을 부어 벼가 익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강기슭에는 세 대의 물레가 바퀴를 굴리고 있었는데, 새하얀 물보라가 첨벙첨벙 소리를 냈다.

마을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때, 모두들 점심을 먹으려고 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돌아왔고, 집안의 음식을 들고 마을의 큰 뱅골보리수 아래에 모여 밥을 먹으면서 오늘의 작황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는 풍요롭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작황이었다. 지금 벼가 낟알을 키우고 있는 것을 보니, 날이 갈수록 풍족해지고 있어 모두들 올해의 수확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확이 가장 많았던 해와 비할 수는 없을 정도지만 괜찮은 편이었다. 

게다가 밭에 있는 옥수수도 한 달만 있으면 다 익으니, 지금 당장은 옥수수가 조금만 더 크게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고계산은 점심을 먹자마자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걸어 나가 담소를 나누며 몸을 좀 움직이려고 하였다. 

이런 행동은 그의 손자가 특별히 편지를 써서 당부했던 것으로, 노인들이 농사일까지는 하기를 바라지 않으니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자주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녀서 건강을 챙기도록 하였다.

노진씨도 역시 밥을 먹을 때마다 동네 아낙네들과 잡담을 하러 나가고는 했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이렇게 다루다니, 예전 같으면 화를 내고 그 말을 들어주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은 달랐다. 

‘손자가 이렇게 출중하니, 그 아이가 하는 말은 모두 옳은 말일 테다. 모두 일리가 있을 것이야. 게다가 손자가 이 노부부를 위하는 마음에서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마을 사람들은 고계산을 마주치면 하나둘씩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버님, 또 놀러 오셨습니까?”

“점심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저희 집에서 좀 만들어 드릴까요? 오늘 강에서 잡은 고기 한 마리가 먹기에 아주 좋습니다.”

“저희 아이가 산에 올라가 토끼를 한 마리 잡았는데, 맛 좀 보시겠어요?”

“…….”

고계산은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일일이 그들의 말에 대답하느라 바빴다.

“밥 먹자마자 동네 구경하러 나온 것이라 댁에 가지는 않겠소. 그리고 집에서 잡은 토끼를 주시면 안 되겠지요. 집에 두고 드십시오.”

사람들은 깔깔 웃어 댔다.

또 잠시 한담이나 나누다가 수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모두의 화제가 고청운의 과거 시험으로 옮겨 갔다. 3월 이래로 이것은 마을의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처음에 무슨 화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든 간에 또는 무엇을 말했든 간에,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 주제로 말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고청운이 진사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덕을 볼 수 있었다. 최소한 마을에 관료가 난 것이니, 밖에 나가 큰소리를 칠 수도 있었다. 견식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진사가 패방을 세울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저급한 불량배나 작은 관리, 심지어 현 도령조차도 그들 마을에 대해 나쁜 일을 감히 행할 수 없었다.

비록 고청운이 거인이었을 때도 이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셈인데, 그때가 진사보다 나을 수는 없었다. 

‘관료 나리라니, 우리 마을 출신의 인재라니.’ 

다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모두들 즐겁고 흥이 극에 달하고는 하였다.

그 마을에 관료 나리들이 나면, 잘만 하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와 다리를 만들고, 우물을 파고 수차를 설치하기도 하는데……. 이런 혜택이 다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대다수 지식인들이 본고향의 농사일에 관대한 편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평판에도 좋았는데, 그들이 난 고향은 먹고 살기에 흉하지 않게 발전이 되어 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고 씨 가문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했다. 매일 집에 찾아가 소식을 묻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은 또 고청운의 고시 결과에 대해 물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오지 않다니. 합격했더라면 경성에서 이곳까지 한 달 남짓 걸려 소식이 도착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어떤 사람이 날짜를 셈을 해 보고는 말했다. 

고계산은 그 말에 내심 우려하면서 말했다.

“급할 것 없지, 급하지 않네. 게다가 만일 이번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소식이 없는 것이 정상이지. 우리 전자는 아직 젊어서 많은 시간을 시험 준비에 쓸 수 있으니, 시험을 또 볼 수 있잖은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그를 위로하였다. 하나하나가 이번에 반드시 합격할 것이다, 이번에 낙방하더라도 다음에는 반드시 붙을 것이다 등등의 위로였다. 

매일 듣는 말이 비슷했지만, 고계산은 속으로 기뻐서 무슨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을 어귀에서 징과 북소리가 점점 들려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점점 그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모두들 궁금해서 얼른 일어나서 손차양을 만들어 먼 곳을 바라봤는데, 과연 한 무리의 시커먼 사람들이 그들 마을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누구죠?”

“징을 치고 북을 울리는 것이 아무래도 보희들이 온 것 같은데요. 저기들 보세요. 앞에 보이는 사람이 눈에 익은데 도대체 누구죠?”

“저 사람들 그럼…….”

다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고씨 가문의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예전에 전자가 거인에 합격했을 때 봤던 광경 같지 않아요?”

뭇사람들이 듣고서 흠칫했다.

고계산을 보니 두 손을 꼭 잡은 채 다가오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대열의 누군가가 이쪽에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보더니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맨 앞의 한 사람은 그들보다 더 빨리 몇 걸음 걸어왔는데, 곧바로 고계산을 보더니 얼굴에 큰 웃음을 짓고 말했다. 

“고 대인,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댁의 손주님께서 진사에 합격하셨습니다.”

이장(里正)인 하 씨가 첫 번째로 입을 열었다. 하 이장은 두 번이나 보희 역할로 와서 희소식을 전했었기에 고계산과 서로 매우 잘 알고 있는 서먹서먹하지 않은 사이였다.

“뭐요?”

고계산은 어디서 난 힘인지, 쏜살같이 하 이장의 면전으로 다가가 떨리는 소리로 다시 물었다. 

“지금 우리 집 손자, 전자가 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였소?”

“예, 맞습니다. 심지어 2갑의 전려라니, 바로 하 왕조를 통틀어 4위로 합격한 겁니다! 대단한 일이에요, 축하드립니다. 할아버지, 댁에 문학의 신, 문곡성이 강림한 겁니다!”

하 이장은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전자, 우리 전자가…….”

고계산은 기쁨에 겨워 하 이장의 손을 붙잡고, 무슨 말을 하려다 숨을 내쉬지 못하더니 그대로 눈을 감고는 바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람들은 아직 이 소식에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계산이 쓰러지자 크게 놀랐다. 

“큰일 났어요! 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어요!”

누군가 곧장 소리쳤다. 

이장은 놀라서 얼이 빠진 상태로 자기가 무슨 말실수를 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다른 사람을 시켜 일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좀 흩어져 봐라, 우르르 몰려오지 말거라. 그리고 너, 서둘러 이 분을 땅에 내려놓아라. 머리는 낮게, 다리는 높게 눕혀 드려야 한다. 조심해서.”

그는 신속하게 진정하기 시작했고, 발이 빠른 젊은이 둘을 시켜 말했다. 

“너는 가까운 데 계시는 의원님을 찾아 모시고, 또 너는 성내의 하 의원님을 찾아 모셔 와라.”

몇 마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황을 제어하고 있던 이장조차 길바닥에 누워있는 어르신을 보니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마 너무 기쁘셔서 잠시 기절하신 듯한데, 누가 오셔서 한 번 어르신을 꼬집어보시겠습니까?”

역시 이장은 식견이 넓은 사람인지라, 정신을 가다듬은 후 재빨리 바로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전에 이렇게 너무 기쁜 나머지 쓰러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방금은 어르신이 너무 갑작스럽게 쓰러지시는 바람에 겁을 먹어서 제대로 반응하지를 못했다. 이장의 지시를 들은 자는 얼른 웅크리고 앉아 고계산의 인중을 꼬집어보고, 또 그의 옷깃과 허리띠를 풀어주었다.

이장의 뒤쪽에 있던 사람도 보아하니 이쪽에 무슨 일이 생긴 듯하자, 앞장서던 사람이 다급히 뒤쪽의 대열로 하여금 북 치는 것을 멈추게 하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역시 사단이 난 듯 이장이 마을 사람을 시켜 따뜻한 물 한 잔 따라오게 하고 있었다.

다행히 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고계산이 깨어났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보다가 이장을 보고는 급히 이장의 손을 잡더니 물었다. 

“우리 집 전자가, 지금 우리 손주가 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 것이오?”

그가 물은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그를 살펴본 이장은 그가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을 보고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에 자신이 통보한 일로 어르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혹여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쳤을지 내심 불안했었다. 

‘음, 결정했다. 앞으로는 기쁜 소식이라도 말을 전할 때는 반드시 말하는 방식을 조심히 해야지. 사람들에게 너무 큰 자극을 주지 않도록 해야겠어.’

“그렇습니다. 할아버님의 손자가 진사 시험에 급제했습니다.”

이장은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여 말했다.

“큰 경사가 났습니다.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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