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91)화 (191/504)

191화. 합격 소식

오래 지나지 않아 5월 10일이 되자, 고청운의 조시 성적이 드디어 발표되었다. 그는 1등급의 성적을 받게 되었는데, 방자명, 담자례, 종민도 1등급이었다. 이 네 명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서길사가 될 것이었다. 

이번 진사들 중에 회시 1갑의 세 명을 제외하고 총 10명의 진사만이 서길사가 될 수 있는 것을 보면, 서길사가 되는 시험이 그렇게 쉬운 시험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서길사는 한림원에서는 품계가 없는 관리로, 한림원 내에서 3년간 공부한 뒤 산관고시를 거쳐 비로소 품계가 있는 한림관이 되었다.

고청운 외 3명이 서길사가 되었으니 한림원에서 휴가를 내주어 귀향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였기에, 장원학사도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고청운은 수중의 문서를 보고 있었다. 이 공문서 덕에 무료로 조정의 관선(官船)을 탈 수 있었는데, 이건 진사가 귀향해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야 할 때 한 차례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정되어 있었기에, 이후에는 앞으로 어디로 가든 경비로 돈이 들어갈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관원이 되어 탑승하게 될 경우에는 그의 가족들에게는 뱃삯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가족들은 월성에서 경성까지 가야 했는데, 만약 내륙의 운하를 통과해 간다면 중간에 지나쳐야 하는 관문이 너무 많았고 또 관문에서 통행료를 받았기에, 매번 적은 액수지만 쌓이면 꽤 클 것이라 비용을 적게 들일 수 있으면 적게 들이는 것이 좋았다. 

이 사실은 고청운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얻은 정보로, 하 왕조 때는 문인에 대한 대우가 확실히 전 왕조보다 좋지 않았다. 전 왕조의 문인의 공명이 거인이었다면, 통행세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탑승하고 있는 배의 통행세도 받지 않았을 것이었다. 매번 거인이 상경하여 시험을 치르면 항상 선주가 기쁘게 거인을 탑승시켰고, 관문비도 면제되었었다.

심지어 상경을 할 때 자신이 사는 지역의 부청에 신청하여 경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본 왕조에서는 정말 상경할 돈이 없을 경우에만 경비를 신청할 수 있었다. 단지 일련의 절차와 수속을 거쳐야 하고, 게다가 체면에도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거인들은 정말 돈이 부족하지 않는 한 거의 신청하지 않았다.

공문서를 입수한 후, 고청운은 바로 집으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그는 이번에 많은 사람을 데려가지 않고, 자신 외에 소석, 고삼원 그리고 두 명의 작은 시종, 즉 여종인 곡우와 방씨 집안의 키 크고 덩치 좋은 머슴 한 명을 데려가기로 하였다. 

원래 고청운은 혜향과 그 남편 작은 방 씨를 대동하려고 했었다. 어쨌든 작은 방 씨는 방 집사의 손자로, 일처리가 매우 깔끔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혜향도 이때 마침 회임 중이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가게 하기가 어려웠다.

“부군, 사람들을 좀 더 데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간미 생각에는 이번에 데려가는 인원이 너무 적다고 생각되었다.

“어찌 되었던, 여종이 한 두 명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배에서 식사 준비 같은 것은 누가 해 주겠습니까?”

고청운은 외려 개의치 않으며 손사래를 쳤다. 

“여종이 많으면 귀찮은데, 요리하는 데 뭐가 어렵겠소? 데리고 가는 이들은 할 줄을 모를 테니, 요리는 내가 하면 되지요.”

그는 시험장에서도 요리를 할 수 있었는데, 심지어 배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적어도 시험장보다는 배가 요리하기가 편리할 것이었다. 또한 오경계(*五更鸡: 훠궈)가 있었으니, 오동유를 좀 많이 쓰면 문제없었다. 

간미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당연히 그의 요리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소석이 아버지가 만든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의심이 됐을 뿐이었다. 소석은 계속 응석받이로 컸고, 집에서도 제일 좋은 음식만을 먹였으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좋은 것만 생기면 눈 빠지게 소석에게 주곤 했던 것이었다. 

‘배를 타면 보통 생선을 먹어야 할 텐데, 그 비린내를 잘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아들이 돗자리 위에 앉아서 그 작은 얼굴로 열심히 종이에 쓰인 글씨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며칠 후 고생할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간미의 속사정을 몰랐던 고청운은 그저 이때 기분이 매우 좋은 나머지 바로 큰 소리로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막상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려고 해도 전생에 가요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이 안 나자, 요즘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대기만 하였다. 

‘음, 그러면 퉁소를 불고 칠현금을 타러 가볼까.’

* * *

3일 후 5월 13일, 월성으로 가는 관선이 있어 고청운과 방자명은 이 배에 올랐다. 이번에는 간미보다 회임 개월 수가 적은 하 씨가 따라왔는데, 지금까지 방씨 집안의 본가에 단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방자명 또한 처갓집에 다녀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한 번은 돌아가 봐야 했다. 

이에 방자명은 큰 적수를 대동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밖에 그들이 탄 배에는 또 다른 동진사 진 씨도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배에는 대부분 신임 진사들이 타고 있었고, 그들의 고향은 배가 월성으로 가는 도중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때 왜구의 해적만 없다면, 역시 육지보다 안전하고 또 편리하고 빠르게 고향에 도착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소석을 안은 채 언덕 위의 방인소 외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이때 소석은 흥분하여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 정말 큰 배예요. 이건 배예요!”

“임양부 사투리를 쓰거라.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도 너랑 말을 안 할 게야.”

고청운은 소석이 집안사람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게 하려고, 고향방문이 가능해진 것을 알게 되고 난 후 계속해서 소석에게 임양부 사투리를 배우게 하였다. 고대하와 고계산은 수준급은 아니었지만 듣기 좋은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나 노진씨와 소진씨만은 잘 알아듣지 못해 힘들었기에, 아이에게 임양부 사투리를 배우도록 하는 게 좋았던 것이다.

그는 방인소와 간미 등도 함께 교육에 참여시켰는데, 고향 말을 할 줄 아는 하인을 포함하여 아이에게 임양부 사투리로 소통하게 요구하였다. 이렇듯 고청운은 좋은 언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역시 어린아이의 언어 습득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아니, 겨우 십여 일 밖에 안 되었는데, 제대로 된 표준어 말고는 구사할 줄 몰랐던 소석이 이제는 임양부 방언을 조금 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빠, 배, 큰 배!”

소석은 고청운의 의견을 잘 수용해 주었다. 그는 이번에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또 할아버지, 할머니를 뵐 수 있다니 정말 즐거웠다. 매번 편지를 아버지가 읽어 줄 때마다 안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틀림없이 자신을 매우 귀여워할 것이었다. 

옆에 있던 방자명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고청운에게 탄복하며 소석과 사투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간혹 표준어가 섞이면 더 열띤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소석은 흥분 상태를 지나고 나서 경성에 있는 가족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두 번이나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직 곁에서 천천히 자신을 달래는 모습을 보고는 더 울지 않고, 손가락을 꼽으며 3개월이 며칠인지 세기 시작했는데 겨우 20까지밖에 셀 수 없었다.

이때의 소석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고청운이 주는 마지막 부드러움과 종용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다음 여정은 어린 소석에게 잊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인상이 깊었던 것이거나 혹은 아이의 기억력이 좋아서인지 어릴 적 기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 * *

고청운은 아직도 배에 타고 있었다. 그가 방상괘명한 소식은 전구대전 거행 후 조정의 쾌속 전보를 통해서 그가 고향에 도착하는 예정 시간보다 십여 일 앞서 그의 고향으로 보내질 것이었다. 

이날 유 통판(*通判: 관직명)은 평소대로 열심히 공무를 보고 있었다. 이 몇 년 동안 양부(陽府)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특히 부두를 개통한 후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현지 백성들의 민풍이 순박하여 사고를 쳐서 관아에 오르는 일도 적었기 때문에, 그는 그래도 한가한 편이었다. 

그는 바쁜 것이 습관이 되어 매일 관가에 도착하여 퇴근을 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다른 관리들과는 달리 아침에 가서 출근 도장을 찍고 별일 없으면 바로 자리를 떠났다.

지방 관청의 경우, 공무 시간이 항상 경성에서 요구하는 것보다는 저조한 편이었다.

 “대인, 군성에서 급한 전보가 왔습니다.”

그의 수하가 공문 한 통을 들고 왔다.

유 통판은 보는 즉시 바로 알아차렸다. 

‘과거에 관련된 보희 소식이 온 것일 텐데, 과연 올해 임양부에서 진사에 합격한 인재가 나왔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즉시 신이 나서 뜯어보았다.

‘맙소사, 큰일을 쳤구나. 작디작은 임산현에서 진사 2명을 배출하다니! 게다가 둘 다 2갑 출신인데, 그중 한 명은 또 전려까지 거머쥔 자라고?’

유 통판은 심장이 너무 급히 뛰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바로 질투 때문이었다!

그는 임산현의 거인 출신 현령이 자신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공로가 저절로 굴러 들어오다니 말이다! 

‘내가 당초 임산현 현령으로 부임되어 있었을 때는 어찌하여 진사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

비록 시험에서 직접적인 영향이나 도움을 주지는 않았겠지만, 직할 관할 내에서 진사가 배출될 수 있다는 것은 지역의 문풍이 좋고 민중의 교화가 잘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유 통판은 생각할수록 우울해졌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역시 임양부 사람들이 아닌가. 그는 합격자 이름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어, 왜 이렇게 눈에 익은 것 같지?’

자세히 생각해 보던 그는 곧 그들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어쨌든 고청운과 방자명의 이름은 이 관원들 중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었는데, 주로 그들의 나이가 매우 젊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고청운은 더욱더 그러했는데, 본 왕조의 건립 이래 모든 월성을 통틀어 제일 나이가 젊은 거인 합격자가 그였던 것이다!

십여 년 전의 그 자그마한 어린아이가 생각나자, 유 통판은 감개무량해졌다. 

‘몇 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때의 그 어린아이가 커서 단번에 진사가 된 것도 모자라 고결한 한림원 서길사까지 되다니.’ 

그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은 정6품의 통판직 위에서 그저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앞으로 전도가 유망한 고청운은 경성에 남아 관직을 하겠구나 싶었다. 

그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가지 않고 사람을 불러들였다. 

“어서 빨리, 가서 지부를 찾아오너라. 임산현에서 도화진으로 소식을 전해야겠다.”

이렇게 합격 소식은 층층이 전해 내려가고 있었다. 임양부에서 임산현으로, 다시 임산현에서 도화진으로 이어졌다.

* * *

임산현의 현령은 소식을 전해 듣고 정말 크게 기뻐하였다. 

“신이시여! 방씨 가문이 일을 냈구나! 문중에 진사가 한 명 더 생기다니! 그리고 고씨 가문까지. 그 조그만 임계촌에서 진사가 나오다니 그곳의 풍수가 그리 좋단 말인가.”

현령은 너무 놀란 나머지 기쁨에 쩔쩔매며 혼자서 쫑알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인척간이지 않은가! 그럼 이제 방씨와 고씨가 임산현의 실세로구나. 그들이 모두 외지에서 관리를 부임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현령직을 수임하기도 어려웠을지 모르겠군. 머리에 큰 부처님들 몇 분을 더 모시고 일을 하진 못했을 테니 말이야.”

현령은 자기 집도 선비 집안이고 관리의 집안임을 상기했다. 예전에 그의 집안에서도 진사가 한 명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만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겨우 거인 시험에 합격자가 나온 것 외에는 다시는 진사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전의 인맥에 기대어 이곳에 와서 현령직을 맡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처럼 젊은 나이에 진사에 합격한 자들이 또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하나같이 내 신경을 건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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