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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187)화 (187/504)

187화. 영광 (2)

고청운이 집에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자,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기쁨에 겨워 절을 하며 그를 보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고삼원도 흐뭇한 얼굴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총히 후원으로 들어갔다.

연 씨와 간미는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기뻐하며 맞이했다.

간미는 고청운이 관복을 입고 씩씩하게 들어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가 합격했다는 사실에 감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고청운은 얼른 부드럽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이렇게 기쁜 일에도 우는 것이오. 요즘 왜 이렇게 쉽게 울게 되었소?”

사실 그 이유는 고청운도 알 만했다. 간미는 회임 때문에 그동안 사소한 일로도 쉽게 슬퍼하거나 기뻐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오늘 그의 성적 때문에 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신중하고도 소홀함이 없는 거동을 본 간미는 울음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빨리 목욕하러 다녀오세요, 더운물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씻고 나서 소석이도 좀 보러 가세요. 아이가 울다가 지금 막 잠들었어요. 부군, 좋아하시는 동과 갈비탕을 준비해 두었는데, 아니면 먼저 식사를 하시고 씻으러 가시겠어요?”

고청운은 어리둥절해하며,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연 씨를 보고 물었다.

“소석이가 왜 갑자기 울었나요?”

연 씨는 얼굴에 웃음이 더 깊어졌고, 이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까 큰길에서 원래는 생글생글하고 있었는데, 자네가 석류꽃을 받아들고 말을 타고 멀어지지 않았었나. 녀석이 자네 이름을 소리쳐 불렀는데 자네가 듣지 못하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가버렸으니, 소석은 자네가 자신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줄 알고 꽥꽥댔지 뭔가. 녀석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갔다가 생각하면 할수록 더 슬퍼졌는지 결국 혼자 울기 시작했네.”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본 고청운은 아연실색해졌다.

간미의 성화에 고청운은 재빨리 목욕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먼저 소석의 침실로 그를 보러 갔다.

과연 침상에서 누워 있는 소석은 눈꺼풀이 살짝 부어 있었고, 긴 속눈썹은 아직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으며, 조그마한 손가락에 힘을 주어 불끈 쥔 주먹을 가슴에 얹고 있었다. 아이는 발그레한 작은 입을 살짝 벌린 채, 살짝 불룩한 아랫배가 호흡과 함께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고청운은 머리를 숙여 아이의 불그스레한 작은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음, 온몸에서 젖내가 풍기는구나.’ 

요즘 아이는 양젖을 마시고 있었는데, 녀석이 양젖을 매우 좋아하여 몸에서 젖내가 가시질 않았다. 

* * *

소석을 보고 와서 식사를 하던 고청운이 국물 한 그릇을 다 마시고 났을 때, 방인소가 희색이 만면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고청운을 보자 방인소는 기쁨에 넘쳐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 밤은 제대로 한 번 축하를 해 보자꾸나. 술을 마셔야겠다.”

오늘 방인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걸을 때마다 바람이 살랑이고 다리에는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스승님께서 하자는 대로 하겠습니다.”

고청운은 당연히 이견이 없었다.

“스승님, 저는 아직 얼떨떨합니다. 제가 어떻게 전려에 오를 수가 있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번 응시생들은 모두 출중한 인재들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가진 학문으로만 따지면 그가 절대로 4등 안에 들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의 명성은 다른 이들만큼 크지 않았고, 그저 산술 학문과 서예 쪽으로만 약간의 명성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는 오늘부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단박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노부 생각에도 의외였다. 다만 네 녀석의 답에 어느 채점관 혹은 폐하에 눈에 들일 수 있었을 만한 요소가 있었던 듯하구나.”

방인소는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너는 회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었기에 어차피 큰 이변이 없는 한 3갑의 순위에 들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전려가 된 것에 대해서는, 폐하께서는 석차를 중요시 여기신 것 같지 않더구나. 그저 폐하께서 널 기억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이것만은 분명했다. 그의 제자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운수가 트여 황제에게 그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것 같았다. 

방인소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그 중간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방인소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일은 네 좌사(*座师: 과거 시험관. 합격자는 자신을 문생(门生)이라 칭하고, 시험관을 좌사라고 칭하였음) 백 대인께 촌지를 드리는 것을 잊지 말거라. 비록 천자께서 시험관의 문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사회 관습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약속처럼 변하는 것이다. 

백 대인이 너를 지명하여 공사로 올려주셨기에 어찌 되었건 둘 사이에 향화정(*香火情: 부처 앞에서 향을 피우고 서약하는 것)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찾아뵙고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거라. 만약 내일 용무가 있어 만남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이런 일은 네가 먼저 자진해서 찾아뵙고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니라.”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일 백 대인께서는 조정에 드시지 않습니까.”

고청운이 셈을 하여 보니, 내일은 휴일이 아니었다.

“이들 채점관들은 시험 답안지를 검수하느라 폐관하고 있었을 테니, 향후 며칠간은 휴일이 주어질 게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 바로 동의했다. 그러나 촌지를 생각하자, 남들이 자신이 시험관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말할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땐 민감한 시기라, 그가 큰 선물을 보냈어도 백엽은 받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동안에야 회시 성적이 나오기 전이라 구설을 두려워해 백엽에게 연락하지 못했던 것인데, 또다시 전시의 채점관이 백엽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전시마저 끝나고 석차도 확정되었으니 당연히 찾아뵈어도 될 것이었다.

* * *

식사 때가 되어 잠에서 깨어난 소석은 고청운을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뚱하게 만들었다.

“아빠, 저를 무시했지요. 소석이를 무시했어…….” 

그는 작은 얼굴로 고청운을 규탄하고 있었다. 

“이제 소석이가 필요 없어요?”

“아버지가 우리 소석이 소리를 못 들었구나.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았더냐. 사람들 소리가 너무 커서 아버지가 네 소리를 못 들었단다. 미안하구나, 이 아버지가 잘못했다.”

고청운이 그를 품에 안더니 진하게 그의 볼에 뽀뽀를 하였다. 

“아버지는 당연히 우리 소석이가 있어야 해. 잘 보렴, 네가 건네준 꽃도 이렇게 잘 간직하고 있었는걸.”

소석은 상황과는 다르게 속으로 내심 기뻐했다. 

고청운은 아이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점심때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걸 보니, 역시 기억력이 좋은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소석이가 아빠를 용서해 줄게요.”

소석이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동생이 태어나도 아빠는 이 소석이를 제일 좋아해 줘야 해요.”

최근에 간미는 소석을 안아줄 수가 없게 되자, 분명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석도 곧 자기에게 동생이 생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그의 어린 친구들은 집에 모두 남동생이나 여동생들이 있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 이런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니.’

고청운은 소석의 얼굴에 다시 뽀뽀를 하며 말했다.

“소석이가 항상 이렇게 얌전하게 말을 잘 들으면, 이 아비는 분명 너를 제일 좋아할 거다.”

그는 말을 마치고 소석에게 작은 선물을 건넸다. 아주 정교한 제일 작은 사이즈의 붓이었는데, 어린아이들이 글씨를 연습하기 좋게 제작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며칠 전에 거리에서 사온 것이었다.

소석은 기뻐서 붓을 들고 뒤적거리며 살펴보았다. 특히 그는 나중에 자신도 커서 아버지처럼 붓으로 글을 쓸 거고, 답을 맞추면 칭찬을 받을 거라고 하였다. 

아무튼 소석은 아버지의 칭찬을 들을 때면 으레 좋아했던 것이다. 

고청운은 소석이 그 어린 얼굴로 굳센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장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자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소석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확고한 다짐을 지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저녁 식사 때가 되자 방자명 부부가 도착했다. 아마도 부부간의 갈등이 해결되었는지,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화목해 보였다.

고청운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둘을 관찰했는데, 지난번에 두 사람의 사이가 꽤 틀어져 있었기에 이렇게 빨리 화해할 줄은 몰랐다.

저녁 식사 때는 모두들 기쁨에 젖어 있었다. 다만 5일 후 조시 시험이 한 번 더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고청운과 방자명은 술을 더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방인소만 혼자 따르고 마시며 술을 마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이 어찌나 났는지, 그나마 연 씨가 제지해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크게 취할 뻔했다.

* * *

다음 날 오전, 고청운은 방자명과 함께 백 대인 댁으로 찾아가 배알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몇 동기들이 앞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백엽이 만나줄지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방문첩을 전달하고 나서 그저 문간방에 대기하였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고청운은 바로 불려 들어갔다.

그 안에서 고청운이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쨌든 고청운은 이미 방인소의 제자였기 때문에 자신을 스승으로 모실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엽은 그의 석차를 고려해서 시간을 써가며 접견을 허락하여 준 것 같았다.  

고청운은 지금 마음이 꽤 복잡한 상태였다. 백엽이 해준 몇 마디를 곱씹다 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던 것이다.

‘과연, 이번 전시에서 제2갑의 1등을 거머쥐게 된 것은 육 장군의 덕을 본 것이었구나.’ 

자신이 생각해 봐도 그 짐작이 일리가 있는 것이, 황제의 심복인 육택이 황제에게 자신과 관련된 일을 말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것이 진짜라고 해도 사실 고청운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줄곧 시험을 보아오면서 중도에 너무 많은 수험생을 만났었는데, 그들 중에는 매우 많은 이들이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이 나빠서 항상 낙제하고는 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보기엔 진사에 합격할 수 있는 이들 모두가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 * *

백엽의 집에서 돌아온 고청운은 조문헌이 보내온 편지 한 통을 전달받았다.

고청운은 그가 편지를 보내온 것이 매우 이상했는데, 이미 오랫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정이 점점 식었던 탓에, 둘은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낯선 사람 취급했고, 본의 아니게 만났을 때는 그저 담담하게 웃기만 하였다.

결국 어렸을 적 벗들과 결별하는 과정이란 모두 이와 같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조문헌과 10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십여 년을 지내오며 이미 정이 들었기에 마음이 힘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편지를 받게 되다니, 고청운은 꽤 안절부절못하였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적은 걸까?’

고청운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황급히 편지를 뜯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어 내려갔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마침내 손에 쥔 편지를 내려놓았고, 시선이 불현듯 벽에 걸려있는 칠현금에 닿자 참지 못하고 바로 칠현금을 벽에서 떼어내 서재의 적당한 곳을 찾아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오른손으로 칠현금의 현을 치고, 왼손으로 현을 눌러 음을 잡았다.

삽시간에 <추풍사(秋风词)>라는 곡의 음율이 이 한적한 공간에 천천히 흘러나왔다.

연주를 마치자 고청운은 마음속의 울분이 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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