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85)화 (185/504)

185화. 전려(傳臚) (2)

인생에는 4대 경사가 있다고 하였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타향에서 찾아온 옛 지기, 화촉을 올리는 첫날 밤, 그리고 금방(金榜)에 이름을 올릴 때가 바로 이 시대에서 말하는 가장 기쁜 일이었다. 

오늘 일명 ‘독서와 학문만이 고상한 행위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하찮다’고 여기는 시대에서 신임 진사들은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침 그 유명한 ‘과거에 급제하여 득의만면하니, 말굽을 급히 달려 장안의 꽃을 하루 만에 다 돌아보자꾸나.’ 하는 구절의 말을 실현해 볼 때가 되었다. 

장원유가(状元游街)란 황제가 금란전에서 전려된 자들의 이름을 창명하되, 상급지도자가 장원, 방안, 탐화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는 소위 칙명을 진행한 뒤 장원을 선두로 황은에 예를 행하여 감사를 드리고 나서, 장안 좌문의 외부에 붙은 금방을 확인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과정의 하나였다. 금란전에서 장안 좌문까지는 태화문, 오문, 단문(端门), 승천문 그리고 대명문(大明门)을 거쳐 나와야 했다. 

신임 진사들이 중도에 거쳐야 하는 문마다 모두 백성들이 나와 구경을 하는데, 이때 거리 전체가 마치 명절처럼 징과 북을 치는 소리와 날라리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림까지 한데 얽혀 매우 시끌벅적하였다. 

고청운 외 사람들은 석차 순서에 맞추어 말 위에 올라탔다.

말을 탄 진사들 맨 앞줄에는 중무장한 어림군(御林军) 300명이 말을 타고 길을 열었고, 이어 각종 악기를 든 행렬이 바짝 그 뒤를 따른 뒤에야 마지막에 200여 명의 진사 합격자들이 말을 타고 나서는 형태였는데, 조정에서는 매우 세심하게도 말이 놀라서 생기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말에 마부를 배치하여 마부가 말을 끌게 하였다. 

진사에 합격한 모든 합격자들은 모두 말을 타고 행진에 참가할 것이었다. 필경 그 누가 있어 진사로서 말을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순간을 체험해 보고 싶지 않겠는가? 모두들 들떠 있었다.

고청운 외의 합격자들이 출현했을 때, 큰길 양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 이 화려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2층에 있는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행렬을 구경하기도 하였는데, 그 2층의 대다수는 공공연히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시대에 살던 부녀자들, 즉 대갓집 규수들이었다.

조정에서 이렇듯 거리 유세를 한 번 치르는 데에는 적지 않은 은자가 소모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문인을 향한 민중의 공경과 과거 시험에 대한 선망을 끌어내기 위한 하 왕조의 노력의 발로였다. 

고청운은 약간 부자연스럽게 자신의 앞에 걸치고 있던 오색 꽃을 살짝 만지작거리며 새신랑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곁의 탐화 방희림을 보고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탐화랑, 과일에 맞지 않게 조심해야 될 걸세.”

이때 민중들은 앞을 다투어 나와 구경을 하였는데, 평소에는 문밖을 나서지 않던 대갓집 규수마저 당당히 거리로 나설 수 있었다. 

다들 1등을 한 장원랑도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역시 탐화랑이었다. 이는 대대로 재학과 외모를 대표하는 자에게 주어지던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신임 진사에 대한 호감으로 대중들은 꽃, 향낭, 손수건을 던지기도 하였는데,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과일을 던지는 자도 있었다.

썩은 계란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방희림이 되레 쓴웃음을 지었다.

“방안이 나보다 더 잘생겼는 걸. 저기 저 여인들 좀 보시게, 손수건이니 향낭이니 하는 것들을 죄다 그에게 던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 자네에게 던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네.”

고청운이 보니, 과연 그랬다. 장원과 방안은 용모가 매우 뛰어났는데, 장원은 수염을 길러서 보이게 뭇 신임 진사들보다 나이가 들어 보여 그렇다고 치더라도, 방안은 운치가 넘쳐나고 호방한 멋을 알고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초유가 아닌가. 이제 25세인 그는 득의만면한 풍채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네는 그보다 젊지 않은가! 또 미혼이고!”

고청운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때 고청운을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방희림을 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향낭 하나가 번뜩이며 그들에게로 날아왔다.

방희림은 향낭을 손으로 낚아챘고, 얼굴에 일순 기쁨이 서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나도 생긴 게 어디 뒤처지지는 않는다고.”

“아아, 잘못 던졌어! 나는 전려(*傳臚: 2갑의 합격자의 이름을 크게 호명하는 자, 2갑의 1등인 자를 발하기도 함)에게 던진 거라고!”

주점의 옆 건물에서 한 소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청운은 경악에 찬 방희림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대체 누가 이렇게 대담하게 말을 한단 말인가?’

“날 봐요! 여기를 좀 봐줘요!” 

그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또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고청운은 누가 소리친 것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낙담한 방희림에게 말을 건넸다.

“요즘 여인들은 다 이렇게 대담한가?”

고청운의 말을 들은 듯, 앞에 있던 초유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최근 들어 예전보다는 훨씬 대담해졌지. 참, 머리에 꽃을 꽂아야 하는 걸 기억하게.”

고청운과 방희림은 초유의 머리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꽂혀 있는 걸 보고, 다시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어색하기만 하였다.

두 사람이 앞에 있는 장원랑을 보니 그 역시 머리에 꽃을 꽂고 있었고, 뒤에 있는 진사를 돌아보니 그들도 사람들이 던져준 꽃을 받아 대부분 머리에 꽃을 꽂고 있었다.

“서두르세, 우리도 어서 꽂자고.”

방희림이 신이 나서 재촉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좌우를 둘러보다가 마침 옆에 지나가는 주점의 이름을 보고 간미가 머무르기로 예정한 장소가 근처라는 것이 기억났다.

고청운은 간미를 생각하자마자, 마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부군!”

고청운은 순간 깜짝 놀랐다. 

‘아니, 벌써 회임 3개월이라 태아가 안정되었다고는 하는 시기지만, 그래도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다니?’

“아빠, 아빠, 아, 아빠!”

곧 소석의 목소리도 뒤따라왔다.

고청운이 소리를 따라가 보니, 고삼원의 품에 소석이 안겨 있었는데, 이때 아이는 흥분하여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몸이 계속 흔들리면서도 그 작은 손에 눈이 부시도록 붉은 꽃을 꼭 쥐고 있었다.

‘좋아, 내가 꽂아야 할 꽃이 여기 있구나!’

소석과 고삼원은 2층에 있었는데, 고청운이 비록 말을 타고 있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빠! 아빠! 꽃, 꽃…….”

소석은 손에 꽃을 꼭 쥐고 아버지가 있는 방향으로 흔들어 대고 있었는데, 작은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 특히 고청운이 점차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자 더욱 초조해 보였다.

고청운은 창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간미와 연 씨를 보았는데, 고삼원이 있어준 덕분에 그녀들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아빠, 안아, 안아.”

소석의 눈이 번쩍이며 조그마한 몸을 비비 꼬면서 고청운 쪽으로 달려가려고 버둥거렸다.

고청운은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고삼원이 아이를 안전하게 안고 있었다.

“삼원아, 던져줘.”

고청운은 아들이 예까지 꽃을 던질 힘이 없을까 봐 손짓을 하였다.

그러나 이 손짓을 하자마자, 비명과 환호성이 터져 나오면서 손수건, 향낭, 비단으로 만든 꽃과 생화가 한가득 그의 머리 위로 던져졌다. 

‘세상에, 나는 기혼자인데. 갓난애까지 있는 마당에 어떻게 이렇게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고청운은 소석의 바로 옆 창문의 소녀를 한 번 보았다. 그녀는 소석을 보고도 용감하게 자기 머리의 비단꽃을 고청운에게 던졌다.

“아빠!”

아버지가 이러한 물건들에 가려진 것을 본 소석은 눈을 크게 뜨고 외마디 외쳤는데, 입을 삐쭉거리는 것이 막 울려는 것 같았다.

“아빠가 안 보여요.”

고삼원은 웃음을 꾹 참았다. 

고청운이 정말로 곧 지나쳐버릴 것 같자, 뒤에 있던 간미와 연 씨가 품 안에서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있던 소석의 작은 손을 잡으며 급히 말했다.

“소석아, 자 어서, 아버지께 꽃을 던져드리렴.”

소석은 말을 듣자마자 얼른 꽃을 놓았는데, 이것은 사전에 약속한 방법으로, 소석이의 힘이 약해 고청운의 앞까지 꽃을 던져줄 수 없을 것 같아 이렇게 꽃을 전달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일련의 공격들을 이미 받아낸 고청운은 눈으로 계속 소석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의 손에 있던 꽃가지가 던져지는 것을 보고는 몸을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받아냈다.

‘휴! 드디어 받아들었다! 쉽지 않았네!’

고청운이 손에 든 꽃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눈이 부시도록 붉고 아름다운 석류꽃 한 송이였다. 

그는 문득 집 마당에 심어진 석류꽃들이 지금 한창 피어나는 계절이라는 것이 생각났고, 이 꽃이 어디서 났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꽃가지를 관모에 꼼꼼히 꽂은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남성들은 머리에 꽃을 꽂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었는데, 문회 모임 때도 간간히 그랬던 것이다. 특히나 꽃구경할 때 가끔씩 흥이 나서 시를 짓는 김에 꽃을 한 송이 따서 머리에 꽂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를 ‘운치’라고들 하였다.

고청운도 몇 번인가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수용 능력이 크게 강화된 상태였다. 이 정도야 아직 화장 같은 것을 한 것도 아니니, 아직 참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고청운이 왼쪽을 바라보니, 방희림의 머리에도 어느새 화사한 작약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자신의 거동에 양쪽에서 환호성이 터지자 흥분한 듯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

“과연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맞군, 이런 느낌을 느껴보다니. 천하의 모든 문인이 방상괘명, 금방에 이름을 올리기를 추구하는 이유를 알 것 같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랬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이 진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열렬한 호응을 끌어냈는데, 그들이 손만 한번 흔들어도 소동과 환호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 장면은 그가 전생에 만났던 연예인의 등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어쩐지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 길로 이끌리는 이유가 있었다.

무진사도 말을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저 떠들썩하기만 할 뿐, 그들 문진사들만큼의 깊은 인심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하긴 가난한 자는 글을 읽고 가진 자들은 무예를 배운다고, 무진사 시험을 칠 수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모두 집안이 부유한 사람들이라 하층민에 속하는 민중들 입장에서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 

물론 지금 군대는 대우가 매우 좋았기에, 정말 이쪽으로 나가고 싶다면 입대를 할 수도 있었고 적을 물리쳐 승진을 할 수 있었으며, 운이 좋으면 벼슬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 방상괘명이라니!”

고청운은 한마디 중얼거렸다. 그는 이 시대에 없었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이 네 글자에 열광하는 줄 몰랐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후대에서도 여전히 이러할 것이었다. 

그러나 중, 고등학교 입학시험, 수능, 공시……. 각종 시험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합격하기를, 방상괘명 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