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83)화 (183/504)

183화. 황제의 질문

군신들은 영안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말투가 이렇게까지 단호하시니 군신 되는 자들이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신이 다시 일어나 반대했다.

“폐하, 고청운의 답안은 9등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다른 공사들에겐 불공평합니다.”

좌부도어사(左副都御史)의 발언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문벌 귀족 출신 관료와 무관들은 모두 흥이 난 모양새였다. 무진사(武进士)를 제외하면 진사 시험과는 관련이 없던 그들은 진사 시험 때마다 그저 곁에 서 있다가 소란이나 구경하고는 하였다. 

그 대신은 뭇사람의 주목에 놀랐다. 그는 단지 습관적으로 한 번 반대하려고 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사실 황제가 그렇게 고청운을 감싸는 것도 눈에 거슬리기는 하였다.

“하 어사는 들으시오. 방금 승상조차 이 10부의 답안 모두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경은 그 말을 또 반대하는구나.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럼 경이 고청운의 답안이 어디가 나쁘다는 것인지 한 번 말해 보지 그러느냐?”

영안제는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말했는데, 그의 말투는 온화하기까지 하였다. 

어떤 일들은 중도에서 중지하고 손을 뗄 수 없는 법이었다. 하 어사는 비록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방금까지 내용은 귀담아듣고 있었기에 바로 대답하였다.

“신은 해권론이 좋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너무 막 언급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천조국입니다. 어느 오랑캐들 따위가 세운 나라들이 감히 우리나라의 맞수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중화사상의 확고한 지지자였다. 

예부상서가 그를 흘겨보면서 생각했다. 

‘흥, 내 말을 주워 쓰다니.’

“하 대인, 이미 100년이나 지났습니다. 이젠 바다 밖의 세상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지 아는 자가 없는데, 대인은 어찌 고청운의 의견이 틀렸다고 단정하실 수 있으신지요?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만.”

백엽은 그가 아주 눈꼴사나웠다. 백엽은 그간 자신의 아주 작은 실수에도 예부상서에게 몇 번이나 물린 적이 있던 터라 그가 하는 것은 뭐든 눈에 거슬렸다. 

‘특히 고청운이라는 이 수험생은 내가 회시에서 끌어온 인재로 전시의 10명에도 선발한 사람이라고. 흥, 간밤에 내가 폐하께 시험지를 보내드렸을 때, 폐하께서는 답안지 10부를 친히 다 읽어 보시고 그중 몇 사람이 쓴 초고를 구해 오라고 하시고는 그 모두를 하나하나 다 읽으셨지.

폐하께서는 늘 신임 진사들을 중요히 여기시기야 하셨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 고청운에겐 유독 관심을 두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안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명하였다.

“기왕 의혹이 있다 하니, 10위 안에 선발된 자들을 들어오라 하라.”

이에 밖에서 기다리던 고청운 외의 사람들은 안쪽에서 전하는 읍소를 들었다.

“공번충, 초유…… 고청운…… 대전 안으로 들라 하신다!”

한 마디 한 마디씩 밖으로 하명이 전해졌고, 모두들 이를 아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호명된 사람들은 무슨 연유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이 10명의 공사는 확정된 10위 안의 인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다들 서둘러 옷을 정비하고 태감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올라 붉은 칠을 한 대궐의 섬돌을 지나 태화전으로 들어섰다.

고청운 외 10명은 으리으리한 태화전에 들어가 절을 한 뒤 곧바로 중앙에 대열했다. 그들 좌우에는 대례복을 입은 왕공대신 문무백관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향하자, 고청운은 일종의 중압감을 느꼈다. 그는 예전에는 기세라고 하는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그런 것을 경험할 일도 드물었고, 그저 방인소의 일신에서 풍기는 위압적이지 않은 점잖은 기질 정도만 겪어봤을 뿐이었다. 이후 그는 육택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 무엇이 기세고 살기인지를 그나마 조금 겪어볼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직위가 높고, 권력도 대단하며, 오른 자리에서만 해도 묻어나오는 기세가 있었다. 하나하나가 다 기백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특히 자신을 주목하고 있자, 고청운은 실질적인 압력을 느꼈다.

마치 전시 시험장에서 황제가 자신이 시험지를 옮겨 적고 있었을 때 곁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을 때와 아주 흡사한 중압감이었다. 전생에 한낱 소인이었던 그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에 피가 몰리면서 다리가 풀리려는 것을 느꼈다.

‘진정하자, 진정해, 절대 어전에서 실수를 범할 수는 없다!’

거의 20년 동안 공부에 정진한 가닥이 있어 그는 빠르게 진정하는 데 성공하였고, 겨우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이때 황제는 이미 공번충, 초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모두 일상적인 범주의 질문들이었다.

“누가 고청운인가?”

영안제의 흥미 어린 질문에 고청운은 숨을 죽이고 앞으로 나서서 소리쳐 아뢰었다.

“고청운이 폐하를 뵙습니다!”

“너의 표준어는 아주 괜찮은 편이로구나. 짐은 3년 전 월성의 한 신임 진사와 직접 대화를 한 일이 있었는데, 사투리 때문에 아주 힘겹게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영안제는 고청운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자태가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하며, 눈이 밝고 표정과 태도가 매우 침착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젊은이들에게 보이는 일탈적인 면모도 보이지 않는 것이 속으로 은근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신은 4년 가까이 경성에 거주해 왔기에 기존의 말투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모두 그랬다. 고향에서는 모두 사투리를 쓰는데, 그들처럼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경성의 표준어가 필요한 사람만이 일부러 표준어를 따로 익혔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나 다른 대신들과 의사소통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

고청운은 영안제가 말하는 3년 전의 그 사투리가 심했던 형씨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장수원과 같이 급제한 자였는데, 듣자 하니 전시가 있던 날 황제의 눈에 들어 황제가 그를 불러 몇 마디 나누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자는 경성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도 심한 지방 사투리를 썼기에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 황제의 기분을 크게 상하게 하였다고 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 형씨는 놀라고 또 후회스러워서 끝내 큰 병을 얻어 서길사(*庶吉士: 중국 명나라 때의 벼슬 중 하나로, 진사에 합격한 사람 가운데 문학이나 서예 방면에서 우수한 사람을 골라 임명함)에 합격하지 못했고, 지금은 어느 현 지방에서 현령직을 맡고 있었다.

고청운은 말을 할 때 고개를 들고 답을 해야 했는데, 황제를 제대로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황제의 모습 정도는 바라볼 수 있었다.

올해가 영안 7년이니, 계산해 보면 영안제는 지금 47살일 텐데 마흔 초반쯤 되어 보였다. 그는 몸이 마르거나 뚱뚱하지 않고 딱 적당한 체형에 관리가 잘된 몸을 가지고 있었고, 네모진 얼굴형에 수염이 없었으며, 콧대가 매우 곧았고, 두 눈은 빛나고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는 준수하다고 할 수는 없는 얼굴이었으나 사람들을 압도하는 기세를 온몸에서 뿜어내고 있어 매우 늠름하고도 위엄이 있었다. 

이어 황제가 고청운에게 평소 독서 외에 취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고청운은 일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화본을 집필한다고 말씀을 올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칠현금을 타고 바둑을 두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따위의 문인의 고상한 취미를 즐긴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활쏘기 연습을 좋아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자신이 잘하는 것이기는 하였다.

이 시대의 문인들은 책벌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확실히 문무를 겸비하고 있었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보고는 황제가 그 말을 믿는 것인지 아닌지, 자신의 답변에 만족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앞의 몇몇도 다 그러했는데, 황제가 누구를 괄목상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청운이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몇 마디뿐이었고, 이제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의 차례가 되었다. 황제가 한 바퀴를 도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띈 사람은 담자례였는데, 황제가 그 자리에서 시 한 수를 짓게 했던 것이다.

담자례는 두뇌 회전이 민첩하고 평소에 축적된 경험도 있던 터라 재빨리 시 한 수를 지어냈고, 황제는 평론을 몇 마디 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좋구나’ 하고 칭찬하였다.

고청운은 담자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그의 속마음이 이해가 갔는데, 그들 몇몇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방희림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조금 큰 그의 머리를 보고 황제가 흥미로워하며 물었다.

“어릴 때부터 머리가 다른 사람보다 컸느냐.”

지엄하신 황제가 그런 질문을 할 줄 예상하지 못했던 방희림은 대학자의 제자답게 어리둥절했지만 재빨리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예, 그러하였습니다.”

“머리가 큰 사람이 똑똑하다고 하던데……. 짐은 네가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다. 오늘 한가한 틈을 타서 과연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지 몰랐던 견문을 넓히고 싶구나.”

황제는 말하면서 손뼉을 치기까지 하였다.

“폐하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방희림은 긴장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저 침착한 모습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대화를 듣고 매우 흥미를 느꼈는데, 필경 이런 능력을 지닌 자는 매우 드물고 진귀한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모두들 책에서나 혹은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런 능력을 지닌 이를 마주치기란 쉽지 않았다. 한 번 보면 잊지 않는다는 능력이 무슨 무를 써는 것 같은 간단한 일은 아니잖는가. 

황제는 태감에게 시중에서 보기 드문 책 몇 권을 가져오라 하여 방희림에게 짧은 시간 안에 몇 장을 골라 보게 하더니, 다시 신하 한 명을 뽑아 글귀의 앞 구절을 읽게 하였고 방희림이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을 읽도록 하였다. 

방희림은 여러 권을 연속으로 골라내 같은 방법으로 서책 안에 있던 구절을 읊게 시켰는데도 곧잘 대답했고, 심지어 거꾸로 답하라고 해도 답을 할 정도였다.

양옆에 앉아 있던 대신들은 경탄의 표정을 지으며 귀엣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그들도 놀라웠던 것 같았다.

고청운은 평온한 표정의 방희림을 보며 감탄했는데, 이런 능력을 자신도 갖고 싶어졌다.

옆에 있던 초유와 무심코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잠시 멍해 있다가 약속이나 한 듯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느냐?”

황제가 호기심에 물었다.

“폐하, 제가 가진 한 번 보면 잊지 않는다고들 말씀하시는 그 능력은 실제로는 진정한 능력이 아닙니다. 그저 단기간에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 좀 많을 뿐이지, 일단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특별히 암기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저도 천천히 잊어버립니다.”

방희림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영안제는 자리에 서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용모도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전에는 머리가 좀 큰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외려 똑똑함의 상징으로 보였다.

황제는 또한 그의 곁에 있던 담자례를 보았다. 젊고 준수한 외모에, 서슬이 푸른 재기가 빛나고 기세가 당당했다.

모든 신하들이 곧 조용해졌고, 모두들 그 두 사람 중에서 탐화가 선택될 것이라 직감했다. 두 사람은 나이 차도 몇 살 되지 않았는데, 한 사람은 명문세가, 다른 하나는 누추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둘 다 대학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어서 과연 황제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아무도 몰랐다.

담자례와 방희림도 뭔가를 의식한 듯 몸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고청운 외의 사람들도 어찌 될지 모르기는 매한가지였으나, 10명 중 담자례와 방희림이 황제 앞에서 눈도장을 찍은 셈이라 그저 남몰래 부러워하며 조심히 그들을 힐끔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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