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방자명의 집
과연, 잠시 후 방인소의 목소리에 의심이 묻어 있었다.
“네가 뒤쪽에 쓴 이 글의 내용은…… 해권?”
“스승님, 저와 같은 관점을 가진 글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고청운이 고개를 들고 바삐 물었다.
방인소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역대 왕조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대륙 국가를 지향하였다. 비록 춘추전국 시대에는 해상 수송과 해양을 이용한 적도 있었다만 명맥이 끊겼다가 전 왕조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사람을 바다 먼 곳으로 출항시켜 보내기 시작하였지. 그러나 결과적으로 비용만 너무 많이 들고 합당한 보상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들 바다를 활용하려는 마음을 접게 되었단다.”
고청운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전 왕조라 함은 원명시대(元明时期)인데, 그들이 지금 존재하는 평행시공간과 비교하면, 원명시대는 청나라 초기 정도가 아닌가? 단지 이곳에서는 정권을 장악한 민족이 한족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사실 너 말고도 바다를 중시했던 사람이 한 명이 더 있었단다. 전 왕조의 개국 황제, 화태조(华太祖)이시다. 당시 화태조는 바다 너머에는 많은 국가들이 존재한다고 하며 해군의 발전을 위해 큰 힘을 기울이셨지만, 해군에만 은자를 투입하려고 하니 나라 발전을 위해 은자를 사용해야 하는 곳이 너무 많아 잠시 계획을 보류했었다.
그 후 그가 승하하자, 후세의 황제는 이를 마저 계승하지 않았지. 그러다 전 왕조의 태희제(太熙帝) 때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을 출항시켰는데, 그때 당시에는 모두가 항해를 준비해 타국으로 배를 보내는 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고 여겨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단다. 게다가 바다 밖에는 화국(华国)과 필적할 만한 다른 국가들을 발견하지도 못했었기 때문에 해군 보유까지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
방인소가 책론을 다시 한번 읽으며 말했다.
“항해가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아주 분명히 잘 써 놨구나.”
고청운은 관련 역사를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귀담아들으며 중간에 말참견하지 않고 있었다.
“좋아, 너의 서예도 발전이 있었구나. 네 글씨체만 보더라도 채점관들의 호의를 이끄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방인소가 수염을 매만지며 찬사를 보냈다.
전시는 황제가 친히 주관하는 시험이라, 채점관만이 존재하고 주임 시험관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글의 내용도 중요하지요.”
고청운은 주저하며 말했다.
“저는 제가 3등급인 3갑에 속할까 봐 정말 겁이 납니다.”
처음 8등을 차지했던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는데, 전시의 순위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험의 결과로 평생의 관직과 소속이 정해질 것이었다.
자신의 글씨체에 대해서는 육택으로부터 습자본을 선물 받은 이래로, 매일 끊임없이 글씨를 연습해 왔기에 걱정이 없었다. 아둔한 편도 아니라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한 고청운은 다른 이들과 학문에 대한 교류를 해 오면서 해서체에 대한 모종의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문인들끼리의 모임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시를 읊는 동안 마지막에 글로 옮겨 적는 일을 책임졌었는데, 이는 그의 글씨체가 여러 사람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전생에서는 자신이 이런 아름다운 글씨체를 가질 수 있게 될 줄 몰랐는데, 이 정도면 전생에서는 스스로를 서예의 대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노부 생각에는 네 관점도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확실히, 그 누구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법이니 말이야.”
오히려 걱정이 없었던 방인소는 몸을 일으켜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안심하거라. 너의 이 글씨체와 답안 초반의 문장들, 거기에 네가 회시에서 얻은 석차까지 더해지면 네 전시 석차가 3갑에 머물 리는 없을 것이다. 만약 3갑에 떨어지게 된다면 회시에서 네게 8등이라는 석차를 부여해준 시험관들의 따귀를 날리는 셈일 거다. 이 여덟 명의 채점관 중에 두 명이 너희들 회시에서 시험관으로 있던 사람들이더구나.
물론 답안 뒷부분의 관점에 대해서는 너는 일단 모두 원만히 근거를 갖추어 네 관점을 정비했다. 그런데 더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느냐? 다른 사람들의 관점은 너보다 훨씬 급진적인 것이 많을 것이다. 네 손에 들려있는 답안 모음집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게야.”
고청운은 스승님의 말을 듣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확실히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답안 모음집 안에는 가지각색의 논점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는데, 내용들 대부분의 말솜씨가 매우 뛰어났고, 간혹 겉보기에 불가능하거나 실행하기 어려운 것도 보였지만 피 끓는 듯 가능함을 역설해 놓았다.
“그럼 스승님,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청운은 시름을 덜고 걱정거리를 하나 덜고 나니, 자리를 뜨고 싶어졌다. 그는 점심때 낮잠을 못 자서 지금 너무나도 졸렸는데, 방인소가 늦게 돌아온 것만 아니면 진작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을 것이었다.
“가 보거라, 어서.”
방인소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내일 자명에게 답안지를 들고 건너오라고 해라. 자포자기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 말이야.”
방자명이 쓴 답안지가 하늘을 거스를 만큼 뛰어나면 또 모를까, 그의 회시 석차로는 1등급인 1갑에 들기란 어려웠다.
“네, 스승님.”
고청운이 바삐 대답하곤 방인소가 자신과 같이 후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그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한번 스승님에게 권유하듯 말했다.
“스승님, 염려치 마세요. 오늘 술에 취해서 돌아오신 것도 아니고, 방금은 또 해장탕까지 드셨으니, 할머님께서 뭐라고 안 하실 거예요.”
연 씨는 방인소가 술을 마시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이미 나이가 많으니 술이 아닌 몸조리를 잘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번 방인소가 술을 마시면 노부부는 티격태격했다.
“녀석이, 가 보거라, 빨리 가! 이 녀석이 잔뼈 좀 굵어졌다고 감히 스승님을 놀려? 빨리 돌아가거라. 이 노부가 수양을 거친 몸만 아니었다면, 네 녀석은 손바닥이 남아나질 않았을 게야.”
방인소는 얼굴이 붉어졌는데, 이젠 부끄러웠던 것이 화로 바뀌고 있었다.
고청운은 웃음을 참으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밤새 집안은 아무 일 없이 고요했다.
* * *
다음 날 아침, 방인소는 공무를 보러 출근을 했고, 고청운은 소석을 끌어안은 채 방자명의 집으로 향했다. 막 집에 들어서자 곧바로 지기(知棋)가 맞이해 주었는데, 그는 일전에는 방자명의 심부름꾼이었으나 지금은 그 집의 작은 집사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임산현에서부터 일찍이 알고 지냈기에 익숙한 사이였다.
고청운이 물었다.
“방 형은 집에 있는가? 스승님께서 보자고 하시네.”
보통 시험이 다 끝나면 특별히 무슨 일이 있지 않는 한 방자명이 먼저 방택에 출두하여 고청운과 마찬가지로 답안을 적어 방인소에게 보여주면서 의견을 묻고는 했었다.
그런데 어제는 방자명이 방문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그가 시험을 치고 너무 늦게 돌아와서 오늘 오후에 다시 방문을 하려고 했나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어제 고청운보다 더 늦게 답안을 제출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기의 표정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지금 지기가 날 반기는 듯한 모습은 뭐지?’
“도련님은 당연히 집에 계십니다. 다만 어제 궁에서 돌아온 후로 기분이 별로 안 좋으셔서 오늘 아침에도 말수가 적었습니다. 청운 도련님께서 오셨으니 정말 잘 되었지 뭡니까!”
지기는 그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고청운은 답답했다.
‘방 형도 시험을 망친 건가? 그런데 이런 시험문제는 잘 나오던 문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망치기도 쉽지 않은데……. 한 무더기의 상투적인 말들과 시험 규칙에 부합되는 말들을 번지르르하게 써넣으면 합격점은 되었을 테지. 특히 방 형은 문체가 뛰어나 보통 사람보다 이쪽으로는 더 실력이 좋지 않은가.’
고청운은 마음속의 의문을 누르고 지기의 안내를 따라 앞쪽 정원에 도착하였는데, 방자명이 마침 대나무로 만든 평상형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눈을 감은 채 쉬고 있었다.
그의 앞에 긴 탁자에는 간식 세 접시와 계피와 찐 밤을 넣은 화과자와 동과를 얇게 반죽 삼아 만든 교자, 그리고 석류 등이 놓여 있는데, 모두 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방 형은 정말 한가롭군요. 이렇게 일찍부터 해를 쬐고 있다니.”
방자명은 일찍이 다른 하인이 그의 도착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청운의 목소리가 들려서야 눈을 뜨고 일어나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저 괴로움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중이야.”
고청운은 일순 멍해졌다가, 그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자 다급히 말했다.
“어제 딱 하루만 시험을 쳤는데 향시나 회시보다 더 힘들 일이 없었습니다만, 방 형은 어찌 이리 상태가 좋아 보이질 않아요?”
방자명은 탄식을 하며 소석과 시선을 마주치고 손을 뻗어 소석을 안아 들었다.
고청운의 품에 안겨 있던 소석은 간식들을 보고는 눈이 빛나며 진작부터 눈이 빠지게 방자명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가 손을 뻗어 안아보자 하는 것을 보고는 두 손을 벌려 마치 제비가 숲속으로 몸을 던지듯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어 방자명에게 매섭게 뽀뽀를 퍼부었다. 게다가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작은 입으로 달콤한 말까지 쏟아내었다.
“외재종조부, 소석이가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이 녀석아, 그저 달콤한 말이나 할 줄 알지. 넌 누구를 만나도 다 똑같은 말을 남발하는구나.”
방자명이 아이의 코를 톡톡 찍으며 말하다 말고, 소석이 계속 탁자 위의 간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고청운에게 물었다.
“이거 먹여도 되나?”
잠시 망설이던 고청운은 소석이 이미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오는 길에 분명히 간식을 먹은 걸 알았음에도 갈망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동과 교자 하나만 먹거라, 안 그러면 배탈이 날 거야.”
소석이 놀라서 작은 손으로 재빨리 작은 배를 움켜쥐고는 볼을 구겼다. 지난번에 소석은 방인소와 외식해서 너무 많이 먹고 돌아와 소화가 잘 안 되었는지 배가 아파져서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소석 자신도 놀랐는데, 이 말을 하니 반응이 있는 것이 아직 그때의 기억이 있는 듯했다.
방자명은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하하.’ 하며 크게 웃었다.
방자명은 소석의 손을 씻기고 난 후 그에게 교자 하나를 찔러 주었는데, 마침 후원에 있던 하 씨가 와서 소석에게 들어오라며 청하였다.
고청운은 사람을 불러 그를 데리고 들어가게 하였다.
“자네는 항상 신중하다니까. 우리 둘 사이에 나누는 말 중에 뭘 남들 눈 조심할 것이 있다고? 심지어 아들이 듣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냐?”
방자명은 젓가락으로 간식 한 점을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는 아까까지만 해도 일말의 입맛이라고는 없었으나, 소석이 음식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니 없던 식욕이 생겼다.
“소석이가 아직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그 녀석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데요. 지난번에 저와 제 처가 방에서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글쎄, 자기 외증조할머니한테 쪼르륵 가서 달려가서 이러쿵저러쿵 들은 이야기를 꺼내 놓지 뭡니까. 웃지도 못 할 노릇이었습니다.”
고청운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은 또 있었는데, 방인소가 매번 소석을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가 소석에게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외증조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물으면 소석은 10분의 5, 6 이상은 다 대답해 준다는 것이었다.
방자명은 또 웃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으니 정말 좋구나, 늘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것 같네.”
“고뇌도 안겨줍니다만.”
고청운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방 형도 조만간이잖아요. 참, 아까는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으셨나요?”
방자명은 고청운이 알아챈 것이 의외는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전시 때문인가요? 답안을 어찌 썼는데 그런가요? 가져와서 좀 보여주세요.”
방자명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하인 하나에게 손짓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