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80)화 (180/504)

180화. 책론 (3)

궁문 밖에 멀지 않은 곳에 마차 몇 대가 서 있는데, 그중 한 대는 방택에서 온 것이었다.

“숙부, 나오셨습니까.”

고삼원은 문을 지키는 군사를 힐끗 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빨리 돌아가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안으로 들어가 시험장 바구니를 내려놓은 뒤 푹신한 방석 위로 반쯤 드러누웠다.

고삼원이 뒤따라 휘장을 뚫고 들어왔다. 그는 이쪽 길을 잘 몰라서 문제를 일으킬까 봐 방택의 다른 마부에게 차를 모는 것을 부탁했다.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해가 금방이라도 질 것 같아요. 제가 밖에서 먼저 나온 사람을 많이 보다 보니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고삼원은 뜨거운 물 한 잔을 따라 그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물은 나중에 마시고, 우선은 빨리 집에 가자꾸나.”

하루 종일 불편하게 있었더니 이젠 물도 마시기 싫었다.

고삼원은 아무 말도 없이 물을 쏟아붓고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시험은 어떻게 보셨어요?”

‘빨리 시험장에서 나올수록 시험을 잘 본 것이 아니던가? 도대체 시험을 어떻게 치르신 것일까? 원래 숙부는 시험에 자신이 있었을 텐데.’ 

고삼원은 먼저 나온 나리들을 보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별 탈 없을 거다.”

고청운은 고삼원을 반쯤 울리고 나서야 대답했다. 

그는 궁문을 나서면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자신이 제시한 해권 관점이 시대에 너무 앞서 나간 것 같았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해권에 대한 관념이 없었던 것이다. 권신들이나 황제가 아예 중시하지 않게 된다면 시험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타임 슬립 전에는 이런 군사 행정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이 다만 수동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정보를 많든 적든 받아들이는 정도였는데, 그래도 그중의 해권론만은 약간 주의를 기울였던 내용이었기에 자신의 이해를 곁들여 해권의 개념과 의견을 적으면서 국가가 바다를 중시하게 만들어 자신의 나라가 평행시공 너머의 국가 같은 굴욕을 겪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자기가 쓴 글은 지금 이 시대에서는 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도 같았다. 차라리 그가 나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점이 왔을 때 비장의 무기로 쓰는 게 나을 뻔했다.

‘실책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고청운은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시험장에서 어떻게 자신의 문장을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글의 내용은 참신하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고청운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고삼원이 그 모습을 보아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아마도 그가 이번 시험을 망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고삼원의 추측일 뿐이지만, 그를 매우 불편하게 했던 이 생각은 그저 그의 기우였다.

이때 시험장에서 제출한 문장 내용을 내심 후회하고 있던 고청운은 모르고 있었지만, 3백여 년 후 그의 이 책론은 후대 사학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두들 그가 해권을 일률적으로 다루었다고 입을 모았던 것이다. 모두 그가 새로운 해권에 대한 사상을 정립했다며, 당시 세계와 후대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론적 가치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이론은 훗날 하 왕조의 해군 발전과 해상 확장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나중에 고청운은 자신이 펴낸 책에 이 책론을 담았다. 그는 당시의 문장을 책 반 권에 해당하는 양으로 확장하여 수록했는데, 훗날 학생들이 꼭 통째로 외우고 이해해야 할 글이 되어서 수많은 수험생들의 애증을 갖게 하는 문장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그의 후세 사람들을 몹시 괴롭게 하였다. 후대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일기를 가지고 있었고, 이 책론이 작성된 원인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하여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는 탓에 시험 때 독해 시 처음에는 관련 문제에 있어 대부분 감점을 받았는데,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이해한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답인데 왜 이 내용은 또 정답과는 다른 거야. 선생님, 선조의 말씀은 이렇게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애석하게도 그들이 이렇게 말해 봐야 소용없는 것이었다.

지금의 고청운은 미래의 일이 보이지도 않고 또 알지도 못했다. 그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처럼 자신의 노력과 일정한 운에 기대어 남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는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 * *

집에 돌아온 그는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고민은 넣어두고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고청운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정원에서 작은 벌레를 가지고 노는 어린 소석을 보면서, 아이에 대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 자신이 장원 급제하지 못하면, 장원감을 하나 키워야 했던 것이다.

고청운은 무책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 돌아오셨어요?”

소석은 누가 그의 앞에 그늘을 만드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는데, 들자마자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보여 작은 얼굴 한가득 큰 웃음을 머금었다.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소석이는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말을 마친 아이는 곧바로 아버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는데, 이 작은 얼굴이 마치 한 송이 꽃과도 같았다.

고청운은 자기 얼굴에 묻은 침을 더듬어 보고는 다시 소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희고 보드라운 볼이 발그스름해져 있었고, 까맣고 또렷또렷한 큰 눈망울에 붉은 입술과 흰 치아를 가진 작은 얼굴로 웃으니 너무 귀여웠다. 게다가 잘 먹여서 통통해진 몸뚱이까지 더해지니 실로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이런 소석이 어른들을 따라 길을 나섰을 때면, 모두들 그와 놀아주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

소석이 궁금해하며 손을 뻗어 그의 귀를 만지작거렸는데, 입을 쫑긋거리는 것이 뽀뽀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고청운이 그의 침세례를 막다가 소리쳤다.

“자꾸 툭하면 덤벼들어서 뽀뽀를 하려고 하다니, 어디서 배워온 습관인지 모르겠구나.”

게다가 꼬맹이가 방금까지 손으로 개미와 귀뚜라미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또 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

“어?” 

소석은 큰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의 말을 듣기는 들었으나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는 하지 못한 듯, 그저 아버지가 자신이 뽀뽀하러 오지 못하게 제지하자 기분이 좀 언짢아져서 볼이 더 발그스름하게 부어올랐다.

아이의 그 어리숙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청운은 마음이 또다시 약해졌다. 

‘그래, 네게 한 달은 더 자유를 주마.’ 

올해 5월이 되면 소석은 이제 만 3살이 되었는데, 경성의 세시풍속으로 따지면 이미 4살이 된 것이었다. 아이들의 교육에 비교적 예민한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미 <삼자경>이나 <유학경림(*幼学琼林: 글방에서 사용한 계몽서의 일종)>을 읽게 하고 있지만, 고청운은 아직은 소석이 너무 어리다고 생각되어서 그저 놀이의 방식으로 당시(唐诗)와 산술 구결(*口诀: 외우기 쉽도록 요점만을 정리하여 만든 어구. 구구단이나 불가, 도가 등 비술을 전수하는 용어)을 암송하도록 가르쳐 주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고청운은 요즘 시험 보는 일로 너무 바빴었기 때문에, 소석을 가르치는 일들은 모두 간미와 방인소가 도맡고 있었다. 

고청운이 아이를 안아 올리며 부드럽게 물었다.

“어머니는 어디 가셨니? 오늘은 왜 혼자 정원에서 놀고 있었지?”

‘그럴 수도 있지.’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던 곡우는 그에게 순간 무시당했다.

집에는 소석만큼 어린아이들이 없었다. 소석은 일반적으로 오후나 저녁, 방인소와 외출을 할 때에나 또래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보통 방인소 동료의 아이들이나 거리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누구의 아이인지 같은 건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아이들이 어울리게 하였고, 그저 아이들을 잘 지켜보면서 아무거나 집어 먹지 못하게 보고 있기만 하였다.

소석이 그의 목을 껴안고 보드랍게 말했다.

“엄마는 주무시고 계셔요.”

고청운이 잠시 아연해졌다. 하지만, 의원에게 청해 진맥해 보았을 때 의원이 이게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해 줘서 마음을 놓은 상태였다. 

‘미아가 지금 회임 중이라 특히 요즘 들어서 잠이 쏟아지는 모양이구나.’ 

고청운은 여종 곡우를 시켜 소석을 데리고 가 손과 얼굴을 씻기게 한 뒤, 자신도 개인위생을 정비했다. 

평상복까지 갈아입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간 고청운은 간미가 잠을 푹 자고 있는 것을 보고 혜향에게 물었고, 그녀의 잠든 시간이 이미 충분히 길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깨워 밤의 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였다.

“부군?”

간미는 혼미한 듯 눈을 뜨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반응했다.

“전시는 다 끝내고 오신 거예요?”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부축했다.

“시험은 끝났지요. 혹 몸이 어디 불편한 곳이 있소?”

간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졸릴 뿐이에요, 아시다시피 임산부가 다 그렇지요. 부군, 시험이 다 끝났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외할머니께서는 융산사(隆山寺)에 예불 드리러 가셨어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침상에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잠시 한담을 나눴다. 

* * *

그 뒤, 고청운은 옆방에 있는 서재에 가서 자신이 쓴 책론을 묵필하였다. 방인소는 아직 귀가하지 않았는데, 집사의 말을 들으니 오늘 밤에는 연회에 초청되셔서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자신의 책론 답안을 모두 다 쓰고 나서 몇 번 훑어보고 나니, 갑자기 자기가 봐도 글을 잘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마차에서만 해도 자기가 문장을 형편없이 썼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뒤에 언급된 해권이라는 관념도 처음엔 너무 시대를 앞선 느낌이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딱 지금 정국과 맞아떨어지는 주장인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누가 자신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답안을 작성할 수 있겠는가. 

정말 모순되는 상황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방 형은 시험을 어떻게 봤으려나?’

* * *

술시(戌时)가 막 되었을 때, 방인소가 돌아왔다. 그는 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청운더러 아까 전시에서 답변한 책론 답안을 앞쪽 정원에 있는 자신의 서재로 가져와 보여 달라고 하였다.

“스승님,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내일 퇴근하고 오셔서 다시 보심이 어떠신지요?”

고청운은 그의 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권했다.

“녀석아, 잘 봐라. 이게 어디 술에 취한 모습이더냐?”

방인소가 고청운을 노려보았다. 

“단지 오랜 벗을 만나서 편하게 술을 마셨을 뿐이지, 노부는 절대 취한 게 아니다.”

고청운은 그의 눈을 다시 들여다보았는데, 확실히 정신은 아직 맑아 보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서재에 해장탕 반 그릇을 같이 가져다 놓고, 손에 들고 있던 답안을 건네 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방인소가 자리에 앉아서 자세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서재 안은 고요했다.

고청운은 촛불 하나에 불을 더 붙여 빛이 좀 더 밝게 비추도록 하였다.

“좋구나!”

방인소는 책상을 한 번 내리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앞에 있는 이 단락은 아주 잘 썼구나. 농업을 장려하고 교육을 부흥시키자니. 그래, 글은 이렇게 써야지. 이해관계를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잘 썼구나.”

촛불마저 박수를 치듯 흔들거렸다.

고청운은 그의 맞은편에서 지난번 진사들이 전시에서 작성한 책론 문제 답안 모음집을 뒤지고 있었다. 이는 예부에서 출판한 것으로, 매번 아주 잘 팔렸다. 하지만, 이 책은 단 1만 5천부만 찍어냈기 때문에, 출판 원가가 비교적 높아서 가격도 덩달아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성에 있는 거인들 외에도 어떤 부호들은 이를 수집까지 하였고, 이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가정에 수험생들이 있거나, 또는 과거에서 더 좋은 점수를 취득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돈만 생기면 달려가서 구입했다.

이때 고청운은 방인소의 칭찬을 들었으나 그가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 모든 글은 뒤의 내용까지 다 봐야 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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