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79)화 (179/504)

179화. 책론 (2)

식사 시간이 되자,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대기하며 조심스럽게 두루마리와 원고지를 옮겼고, 얼마 후 태감과 병사들이 찐빵과 맑은 물을 가져왔다. 

다만 모두들 시험 걱정에 입맛이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대충 다 먹어 치우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을 둘러싸고 자신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한몫했다.

고청운은 이번에야말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할 마음이 생겼는데, 황궁의 찐빵은 밖의 찐빵들과는 달리 식감이 매우 부드러웠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계란이 들어가 있어 먹기도 전부터 계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흥흥, 다른 건 몰라도 계란 냄새만은 절대로 틀리지 않지. 그런데 너무 갑갑하군. 모처럼 어렵게 황궁에 두 번이나 들어왔는데, 두 번 모두 찐빵이나 먹다니 말이야.’

지난번에는 그나마 고깃국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뜨거운 물 한 그릇밖에 안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물이 있다 한들 그들은 감히 많이 마시지 못했는데, 역시 화장실에 자주 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시의 규율에 따르면, 그들은 편의상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다만 화장실을 갔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전 과정을 누가 지켜봐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상상해 보라, 당신이 바지를 벗든, 혹은 무슨 볼일을 보든 누가 곁에서 부정행위와 관련은 없는지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다면……. 사람들은 이런 귀찮음을 피하고자 그냥 아예 참고 있는 걸 택했다. 

‘그래서 은행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하셨구나.’ 

이는 실제로 방인소 등의 사람들이 공유해준 경험담이었다.

이번에 그와 방자명이 시험에 합격하고 공사가 되자, 장수원도 찾아와 그들에게 경험을 공유해주었는데, 그중 유용했던 것은 바로 아침에 집에서 반드시 은행을 먹고 출발하는 것을 잊지 말고, 황궁에서 편리를 위해 되도록 물을 적게 마시라는 것이었다.

평소에 물을 자주 마시는 고청운에게는 오늘 같은 특별한 날 하루 정도는 물은 조금만 마셔도 아무 문제 없이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고청운이 다른 사람들을 보니, 빨리 먹거나 아주 천천히 먹는 자들도 있었으며 자신만큼이나 여유로운 자들도 있었다. 사실 이 시험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었으니,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심리적인 자질이 매우 강한 사람들일 것이었다. 필경 과거 시험의 환경적인 조건이 시험의 운을 좌지우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그 악조건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지금은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는 궁궐에서, 즉 환경적으로도 바람도 통하고 신선한 공기도 통하는 이 장소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으니, 저번과 비교했을 때 차라리 일종의 향락을 누리는 것과도 같았다.

물론 주변에 키 큰 사내들이 호시탐탐 쳐다보고 있었기에 아주 쉽게 해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지만 말이다.

고청운은 환관들이 식기들을 치워 나가자 다른 사람들을 한 번 쳐다보고 글을 계속 써 내려갔다.

‘나 참, 조금만 천천히 걷다가 시험에 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잖아.’ 

고청운은 사실 시간이 부족할까 봐 그저 시험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대략적으로 세어보니 글자 수가 2천 자를 심각하게 뛰어넘었는데, 고청운은 고집을 피워 조금도 삭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문장이 잘 써진 것 같고, 또한 모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문제를 몇 번이고 훑어보아도 답변하는 글자 수는 2천 자 정도로 정해져 있었는데, 그가 쓴 문장은 이미 4, 5천 자에 달했다. 

이런 것은 책을 집필했던 때의 후유증 같은 것일까? 거침없이 이렇게 많은 글자를 썼는데, 아직은 예비 초고 단계여서 그런지 속도가 매우 빨랐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 고청운은 글을 간결하게 다듬고, 문장의 이치와 도리를 정리하며, 간추리고, 다시 다듬어서 문제에서 요구했던 글자 수까지 완성한 뒤 급히 최종 답안을 옮겨 쓰기 시작하였다.

‘국가에 있어 정치의 안정 도모는 가르침을 우선으로 하는데, 무릇 가르침이라는 것은 적당한 사람을 얻는 데에 그 중요성이 존재합니다.’ 

이어 그는 붓을 들자마자 먼저 농업을 부흥케 하는 학교의 중요성을 논했다.

‘농업에 종사를 하는 것은 양민이 하는 것이니,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교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의식주를 근본으로 삼고 감화의 근원이 되니, 군자라 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을 위함이 제일 급선무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에 공자의 논리를 빌어 말하자면, ‘부유한 자라고 해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가 논했던 왕정에서도 균전제(*均田制: 수, 당시대에 실시한 토지제도로, 토지를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 백성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이념)와 학교의 부흥을 역설했었으니 제가 어찌 근거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인재를 양성하여 필요한 인재를 얻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옛말에도 정치란 무릇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고청운이 열심히 답안을 옮겨 쓰고 있던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조용한 시험장에서 이렇게 큰 발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황제뿐이었기에, 고청운은 황제가 왔다는 것을 알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고 모두들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고청운도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정말 아무리 수양을 거듭했어도 소리까지 듣고도 훔쳐보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참기 힘든 사람의 본성인지라, 너무 안 그러고 사는 척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눈여겨보니, 진짜로 황제가 한 무리의 중신을 대동하고 시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청운은 황제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지금 이 세상에 오직 그 사람만이 명황색의 용포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뒤에 있는 그 신하들은 새빨간 관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랏빛의 관복을 입고 있었는데, 본 왕조에서는 관복을 1품에서 2품은 보라색, 3품에서 4품은 붉은색, 5품에서 7품은 청색, 8품에서 9품은 녹색으로 관복을 규정하고 있었다.

서둘러 시선을 거둬들이기 전, 무심코 왼쪽을 노려보니 회원인 초유와 담자례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다.

고청운은 자못 부끄러워졌다. 보아하니 자신은 아직 시험에 전심전력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 글을 옮겨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적다가 말고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실제로 눈앞에 밝은 노란색의 옷자락이 나타났다.

가슴이 덜컹한 고청운은 하마터면 손이 떨릴 뻔했으나, 다행히 의식적으로 손에 쥔 붓을 빠르게 벼루에 다시 넣고 먹을 묻히며 강제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글을 계속 써 내려갔다.

‘아주 좋아. 손 떨림 없이 다시 안정적으로 글씨를 써 내려갈 수 있어.’

고청운이 알고 있기로는 전시는 사실 서예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았다. 만약 필체가 좋지 못하다면 아무리 논제를 잘 제시했다고 해도 감점 사유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답안지를 호명(*糊名: 과거 응시자의 시험지에 쓴 성명을 풀칠하여 봉함) 처리하고, 사본을 추가로 만들지 않은 채 원본 시험지에 8명의 채점관이 점수를 매긴다고 하였다. 

한참을 머무르고 있던 것 같은 황제가 드디어 그의 곁을 지나가 그 앞의 수험생을 보러 갔다.

고청운은 사람들이 몰래몰래 황제의 행적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엔 놀란 사람도 있었고, 다리를 떨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재수 없어 너무 놀란 나머지 글씨를 잘못 쓴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조심치 못해 글을 잘못 썼으니 답안지를 물리고 다시 써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겁에 질린 사람도 있었고, 되레 침착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고청운은 비교적 격앙되었는데, 필경 황제와 그렇게 가까이 있어 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그의 관직 생활이 순탄치 않다면, 이것은 아마 그의 일생 중 황제와 가장 가까이 있어 본 일이 될 것이었다.

비겁하거나 주눅 들어 산 것도 아니고 세상 구경을 못 해 본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지도자를, 그것도 특히 봉건시대의 황제를 정말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그는 전생에서도 평민이라 할 법한 인생을 살아온지라 가슴이 들썩였다. 

다행히도 여러 해 동안 수양을 해 왔기에, 고청운은 이 설렘을 겨우 버티고 서서 자신을 빠르게 진정시킬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책론을 잘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만 행하여도, 우리나라는 역대 성인과 훌륭한 선대의 황제들의 뒤를 이어 이십여 년은 천하가 태평하고, 주변의 사해가 평온하게 성장하여 먹고 입는 것이 여유로울 것이며, 부친이 자비로우면 자식 된 자도 효를 다 하는지라 이 또한 교화 안에 들어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무릇 융성한 정치의 효과란 옛 성현들의 시절을 모방하여…….’ 

마지막 단락의 내용은 아무래도 관례에 따라 오늘날의 황제에게 아첨을 좀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올바른 정치였다.

고청운은 마지막 글자를 다 쓰고 나서야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답안지를 내고 자리를 떠난 것을 발견하였다. 이번 시험에서는 답안을 미리 제출할 수 있었다. 그가 자세히 둘러보니 3분의 1이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황제는 이따금씩 졸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줄곧 그들 앞에 똑바로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기왕이면 머리를 숙이고 글을 써야 했다.

다른 대신들은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그가 은근히 탄복한 것은, 황제가 그들을 매우 중시하여 이곳에 한 시진을 앉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정말로 황제가 직접 주관한 셈이었다. 어쩐지 급제 후에 응시생들은 시험관에게 사문이라고 칭하지 않고 단독으로 문하생으로 자칭하는 것도 금했는데, 모든 급제자들은 이제부터 모두 천자의 문하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답안지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봤다. 조심할 곳은 이미 언급을 삼가했고, 문장 구조는 합리적이었으며, 글자 수도 요건에 맞게 2,000자가 조금 넘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정도면 가히 완벽하다.’ 

그는 완전히 자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한 것 같았다. 

모든 답안지의 먹물이 다 마를 때까지 그는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과반수의 사람들이 모두 답안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떠나 있었다. 특히 10위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진작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시험 종료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의 속도가 이렇게 느렸다니, 아까 수정할 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던 듯했다. 글자 수를 줄이면서도 중점은 살려야 하느라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았다. 

고청운은 초고를 자세히 한 번 훑어보니 잘못되었거나 써서는 안 되는 금기 문자의 사용은 발견하지 못했기에, 그제야 자기의 붓, 먹, 종이, 벼루를 치우고, 물건들을 가지런히 시험장 바구니에 넣고는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답안지를 제출하겠다고 알렸다.

태감이 자기 앞에서 시험지를 호명하자, 고청운은 그제야 시험장 바구니를 챙겨 들었고, 감히 앞에 있는 황제를 볼 수 없어 태감의 안내에 따라 보화전에서 급히 물러나 그대로 궁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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