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77)화 (177/504)

177화. 전시(殿试)

그날 밤, 한 집안의 세 식구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간미는 큰 침상에서 자고, 고청운과 소석은 작은 침상에서 자기로 하였다. 

고청운은 오늘 마음이 울렁대면서 한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지난 20여 년간의 일이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스치듯 지나갔고, 집사가 ‘합격이오.’ 하고 외치는 그 순간에 생각이 멈추었다. 

그는 쓴웃음을 참지 못했다. 원래 그라는 사람은 침착한 사람이 못되었다. 낮에도 억지로 멀쩡한 척 버텼지만, 밤이 깊어 인기척조차 없어지자 왠지 모르게 다시 생각이 났다.

귓가에서는 소석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꼬맹이가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이나 흥분해 있더니, 이제 겨우 잠이 든 모양이었다.

‘진사의 최종 시험이 끝나면 소석이의 교육 문제를 꺼내야겠다.’ 

소석은 곧 만 3살이 되므로, 이제 천천히 책을 읽을 나이가 되었다. 비록 이미 당시 몇 수의 시와 삼자경 몇 구절을 외우고는 있지만, 이런 것으로는 부족했다. 게다가 아이는 나날이 더 장난이 심해져서 잘 관리해야 했다. 절대로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는 사람으로 키워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달콤하게 자고 있는 소석은 자신의 아름다운 유아 시절이 곧 끝날 것임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

4월 15일, 고청운은 공사가 되었다. 그리고 4월 19일, 이 공사들은 또 황궁의 보화전(保和殿)에 가서 다시 한번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이런 시험을 복시(*复试: 2번으로 나눠 치르는 시험의 최종 시험, 현재의 면접)라고 불렀다. 이 시험은 예부(禮部)가 주관했는데, 회시의 시험 답안을 재심사하고 복시에 합격을 하고 나서야 공사들은 황제가 친히 주관하는 전시(殿试)에 응시할 수 있었다.

일명 복시라는 것은 난이도가 그렇게 높은 시험은 아니었다. 모두가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례가 되면 예부상서(礼部尚书) 등 관리들 앞에서 문제를 하나 뽑는데, 향이 하나 타는 시간만큼 준비할 시간을 주어 즉석에서 답안을 구술하는 시험 방식이었다.

문제들은 대부분 어렵지 않았다. 그저 응시생들이 진짜 재능과 학문이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것뿐이었다.

전시는 황제가 회동하여 응시생들의 답안지를 볼 수 있었는데, 만일 전혀 말이 안 되는 문장을 구사하는 공사가 나타나면, 예부와 시험관들은 모두 대 죄에 연루되어야 하였다. 

고청운은 이것이 현대의 면접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면접장에서는 외모와 몸매 등도 자세히 살펴보기 때문에, 비록 본 왕조에서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고 하나 생김새도 번듯해야 할 것이었다. 황제가 놀랄 만큼 너무 못생겨서는 절대 안 되었다. 그들은 관리들이 너무 추한 모양을 하고 있어도 조정의 위엄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합격한 공사는 모두 230명이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오후가 되어서야 복시가 끝이 났다. 그러나 예부의 관리가 이어서 황궁의 예절을 가르쳤기에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관리는 황제를 만나 어떻게 경배를 올려야 하는지, 고관대작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을 가르쳤다. 

고청운은 전생에 봤던 드라마를 떠올렸는데, 드라마 속에서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자세, 절하는 동작, 입으로 외는 황제를 칭송하는 말까지 모두 일치해서 그 근간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싶었다.

모든 예비 관리들은 모두 이 과정을 다 거칠 것이었다. 이런 강습에 고청운은 감명을 받았다. 고대시대에는 전통이 오래된 것일수록 이런 삼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정해진 역할이 있었기에 규칙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고, 한 걸음도 그 경계를 벗어나서는 안 되었다. 

그 한계를 초과한다는 것은 곧 범죄였다. 

예의범절을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학습 능력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잘못 기억할 수가 없었다. 이미 꼼짝 못 할 만큼 지쳐 있었을지언정, 그래도 정신을 차려서 열심히 익혀야 했다.

결국 학습 기회는 지금 한 번뿐, 다음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들이 출궁할 수 있을 때는 이미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모두 배가 고파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모두들 진작부터 다른 공사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며 친분을 쌓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미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황궁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귀족 집안의 자제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황궁에 처음 들어와 본 것인데, 마음이 너무 긴장되어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가 이제 긴장을 풀어도 되자 모두 다 지쳐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다 같이 대충 인사를 하고 저마다 자기 집 마차를 찾아 돌아갔다.

* * *

저녁 식사 때가 되자, 방인소가 황궁의 예법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고청운은 물론 배웠다고 답하였다.

식사 후, 고청운과 간미가 함께 정원을 산책할 때, 방인소는 늘 그랬듯이 소석에게 이끌려 거리를 나섰다. 통금이 9시니, 그렇게 일찍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부군, 황궁은 어떤 곳입니까?”

간미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정오에 드신 황궁에서의 점심 식사는 어땠나요?”

고청운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때 우리는 너무 긴장해 있어서, 눈을 여기저기 돌려보지도 못하고 걸음조차도 한 치를 벗어나 걸을 수가 없었소. 우리는 그저 태화전(太和殿)은 높고 널찍했으며 안에 있는 태감(太監)과 궁녀(宮女)의 기질이 남달라 보인다고 느꼈지요. 

다들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한 글자라도 말을 더 아낄 수 있다면 그래야 하고, 말을 조금이라도 많이 하는 것은 절대 금해야 했다오. 점심 식사요? 고깃국 한 그릇, 찐빵 한 광주리가 각자의 몫으로 나왔지만, 모두들 많이 먹지는 못했지요.”

다들 많이 먹었다가 변소를 자주 가야 할까 봐 그것조차 겁이 났었다. 

점심 식사 말이 나와서 말인데, 고청운은 기억을 더듬어 봐도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맛이 괜찮았던 것 같으나 분위기가 너무 긴장돼서, 천천히 맛볼 수도 없었고 먹을 엄두도 못 냈다. 

황궁에 태감과 궁녀들이 많이 드나들었지만, 주변이 조용하고 다들 소곤소곤한 목소리로 말을 했고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고청운은 그런 곳에서 살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수명이 단축될 것 같았다. 

다음 며칠간은 긴장한 상태로 복습하느라, 고청운은 계속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독서에 매진했다. 

* * *

4월 21일, 마침내 전시 날이 되었다. 

전시는 과거 시험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마지막 단계의 시험이었고, 시험 장소는 복시를 치른 보화전에서 거행되었다. 이 전시에서 출제되는 문제는 책론 문항 한 가지로만 제한되어 있었으며, 시험 시간은 딱 하루를 사용하되 오후가 되면 시험지를 제출해야 했다. 

고청운은 황궁에서 화장실에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침에는 물도 많이 마시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파, 마늘 등 향이 강한 음식도 먹지 않았으며, 아침 식사도 평소의 10분의 7 정도만 먹었고, 소변을 억제해 주는 효능이 있는 은행까지 섭취하였다. 

그가 방인소와 집을 나설 때, 연 씨와 간미가 그들의 뒤에서 계속 바라보고 서 있었는데, 고청운은 그동안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황궁 앞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은 헤어졌는데, 방인소의 직장이 속한 6부는 황궁 내에 업무 장소가 자리 잡고 있지 않았기에 헤어져야 했던 것이다.

“청운아, 맘 놓고 시험에 임하도록 하여라. 제일 못한 경우에도 어차피 동진사라도 될 수 있다. 별거 아니다.”

방인소는 그를 위로한 후에 비로소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고청운은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긴장한 편은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조금 더 긴장이 되었다. 

이때 이미 황궁 밖에는 공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들 서로가 익숙한 듯한데 뭉쳐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찍이 도착해 있는 걸 보니, 감히 시간에 맞추어 올 수가 없었음이라. 

고청운은 특별히 방희림을 주의해서 보았다. 그도 이때 이미 도착해 있었다. 방희림은 용모가 평범했는데, 머리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큰 편이었다. 키도 중간 정도이며 몸매도 적당해 보이나, 전체적으로 매우 원기 왕성해 보였다. 그들과 통일된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유독 사람이 우아하고 대범해 보이는 것이 풍문에서 듣던 옹졸해 보이는 구석은 없어 보였다. 

하긴, 학자의 기질을 품은 사람은 단순한 책벌레만 아니면 책을 읽어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질도 좋았다. 일반 사람들과 섞여 있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 기질이 빼어났다. 

마침내 입장 시간이 되었다. 환관의 안내로 시작되어 공사들은 출석, 재계, 찬배, 절 등의 예를 거친 뒤 자신에게 지정된 책상을 찾아가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고청운은 무릎을 꿇고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칠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이렇게 빨리 한 나라의 통치자인 고대의 황제를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저 올려다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일어나거라.”

그때 황제의 낮고 무거운 음성이 들렸다. 고청운은 황제라는 후광 때문인지 그 목소리의 등장만으로도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이제 일어나서 시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황제는 다시 조정에 가야 했고 조정의 용무를 다 본 후에 여기에 다시 올 것이었다.

국가 대사에 비하면, 이들의 전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특히나 단 하루 시험을 치르는 현장에 황제가 하루 종일 여기에만 앉아 있는 것 또한 안 될 일이긴 하였다.

230명의 공사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는데, 책상 또한 현대의 책상과 유사한 모습으로 시험장 가운데 한 줄만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남겨 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황제의 금군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감히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시험지가 드디어 발표되었고, 고청운은 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 문제밖에 되지 않았지만 글자 수가 200여 자에 달했고, 답은 2,000자 정도 내용의 책론을 쓰게 하였다.

고청운은 재빨리 제목을 읽어보았다. 

문제의 내용을 본 고청운은 마음이 조여 왔다. 이 문제는 조상님께서 나라를 다스리시던 전통을 이어받아 이 나라를 다스린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나라를 완전히 강성하게 만들지 못했는데 어인 연유로 이 국가가 아직 태평성대에 이르지 못했는지 다른 치국책은 없는지를 묻는 문제였다. 

고청운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문제는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이들 공사들이 마음대로 한 무더기의 치국책을 논하면서 수준 있는 글을 써서 내야 하고, 과장되지 않게 말하지 않는 것은 비교적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새로운 내용을 언급하고 과거의 문제들도 사례로 삼으면서 동시에 두각을 나타내어 자신의 재능을 전부 드러내 보일 것인가?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 이렇게 광범위한데, 어디에 중점을 두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나? 

그는 이전에도 전시에 기출 되었던 문제들을 접해 본 적 있었지만, 그동안의 문제들은 모두 어느 한 방면의 것에 대해 논하거나 어떤 한 가지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들뿐이었다.

고청운은 먹을 갈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속으로 은근히 구상을 해 보기 시작했다. 

‘정치, 문화, 경제 방면으로 모두 다 접근이 가능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나도 알고 조정 대신들도 알고 황제도 알고 있는 것일 거야. 과연 이런 접근으로 그들을 능가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새로운 의견이 없으면 안 돼! 그리고 문장으로만 승부한다고? 그건 너무 어려운 방법이야.’

고청운은 고개를 들고 무심코 앞 사람을 쳐다보았으나 누구도 붓을 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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