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당신이 최고예요
“세상에, 이 문제는 확실히 네가 푼 답이 맞다!”
풀이가 반쯤 진행되었을 때, 서재에서 방자명이 놀라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청운이 상쾌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날 제가 방 형이랑 여기서 천문학 문제를 논의했지 않습니까. 방 형은 문제를 다 풀고는 그냥 가버렸는데, 전 나중에 심심해서 그때 풀었던 개기일식 문제에 흥미가 있던 터라 틈틈이 계산을 더 해보았죠. 막상 이 문제가 시험에 나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에요.”
작년 흠천감에서는 올해 1월에 개기일식이 있을 거라고 했으나, 결국 경성 지역에선 아예 관측을 할 수 없었다. 아마 개기일식은 다른 지방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황제는 크게 기뻐하였는데, 신하들도 하나같이 황제가 ‘덕행이 출중하시어 이런 하늘의 행사가 열렸다’며 아첨을 해댔고, 흠천감에는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런 주기는 잘못 계산해도 그저 한바탕 놀라면 그만이지만, 이런 주기를 계산해내지 못하는 것은 큰 죄가 되었는데 말이다.
“시험관들도 정말이지……. 우리에게 다음 해 일식과 월식의 구체적인 시기, 그리고 지난 분기의 수성이 일몰이나 일출 때 노출되는 시점과 시각을 추산하게 시키다니. 이런 문제는 너무 편파적이지 않나. 이런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푼다는 말이야? 이런 학문을 전공한 적도 없는데.”
방자명이 분개하여 종알거렸다. 그는 자신의 학문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에 뜻밖에도 이런 문제가 출제되어 발목이 잡힐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모름지기 회시라는 것은 워낙 뛰어난 인재가 넘쳐서 한 문제만 틀져도 순위가 많이 뒤로 밀리게 되는 시험이었다.
그는 마침내 고청운의 석차가 왜 이렇게 높았는지 알게 되었다. 고청운은 정해진 답안이 있는 문제들을 다 맞췄는데, 그 외 나머지 문제들은 다 시험관의 의중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들이었다.
이 문제들이 아마도 그들의 석차 간격을 벌려 놓았을 것이었다.
“회시에 이런 문제들이 나올 줄 내가 알았겠어요. 소석이가 계속해서 저에게 개기일식이 무엇인지를 물어대다 보니, 일식의 주기라는 것에 대해 계산을 해 보게 되었어요.”
고청운은 소석 이야기만 꺼내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그저 그를 데리고 개기일식을 보여줄 생각에 계산을 해 본 것이었다.
꼬맹이는 한 살 반 때 그와 함께 바깥나들이를 한 번 하고 나서는, 곧바로 밖에 나가 산책이나 물건 사는 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어 곧잘 사람이 많은 곳을 노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한 뒤엔 방인소나 고청운을 졸라 반드시 밖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방인소는 그와 방자명에 대해서는 엄격하여 매섭게 굴었지만, 소석에 한해서는 물처럼 부드러워져서 매일매일 소석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이런 날들이 많아지자, 소석은 밖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기억하고, 돌아오면 바로 그들에게 들려주면서 언어 능력이 크게 성장했다.
소석을 언급하자 방자명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얼굴을 한참 못 본 것 같으니 가서 소석이를 좀 보고 와야겠네.”
그는 곧 자신의 아이를 만나게 될 것이라 부성애가 좀 넘쳐나는 상태였는데, 아직 자기 아이를 안아보지 못하여 소석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후원으로 걸어가면서 웃으며 말했다.
“전에 저희가 찾아갔을 때, 형씨가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거 기억나요? 아이를 빨리 가지고 싶지 않다더니.”
방자명 부부는 사이가 아주 좋아서 자주 경성 부근의 현성들의 유명한 여행지를 다니며 여행을 하곤 했는데, 고청운 생각에 만약 그가 시험 준비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애초에 아이를 빨리 가지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하하, 내가 처음에는 원하지 않긴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이미 아이가 생길 것을 알아서 그런가 너무 기대가 되네.”
방자명은 웃으면서 고청운의 놀림을 신경 쓰지 않았다.
* * *
그날 저녁, 가족들은 모두 기쁨에 젖어 있었다. 축하를 마친 방인소는 이미 약간 취해서야 저녁 식사를 끝냈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방자명 부부는 식사를 마친 후 바로 귀가 준비를 하였다.
저녁때 고청운은 족욕을 하며 간미와 방씨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방 형이 진사에 급제했으니, 이후 방씨 가문이 임산현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되었소. 두고 보시오, 예전의 방씨 가문이 현에서의 기대주였다면 지금은 그 영향력이 임양부까지 미칠 테니 말이오. 필경 한 집안에서 진사가 둘씩이나 나오는 건 흔하지 않고, 특히 2대 연속으로는 더욱 드문 일이지. 암.”
고청운이 말했다.
이제 방인소는 나이가 많아졌기에, 나중에 사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만약 이후 공명을 취득한 후계가 없었을 경우 천천히 몰락을 향해 갔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어찌어찌해서 방인례까지 거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저 가문에 관리가 한 명 있었던 적이 있는 향신 집안에 그쳤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대대로 관리가 있는 관료 집안, 학자 가문이 된 것이었다.
방씨 가문이 전도유망해진 것이었기에 간미도 당연히 기뻐했다. 자신의 친정 일이 아닌가.
“당신이 더 유망하시지요.”
간미가 말했다. 간미는 융단 위에서 나무 조각으로 탑 쌓기에 열중한 소석을 보며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군, 제 마음에는 그중에서도 당신이 최고예요.”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그래도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이번에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오. 생각해보니 그간 준비했던 과거 시험도 퍽 순조로웠지요. 첫 번째 낙방했어도 두 번째에는 다 급제를 하였으니 말이니.”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세 번, 네 번씩 시험을 준비하고 또 떨어지는 그런 타격도 겪지 않았고, 누적되는 절망을 맛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이유가 여러 가지 요소 덕분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측면도 있었지만, 방인소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었다. 방인소가 가르친 정성이 없었더라면, 그는 몇 번이고 스스로 시험을 치르면서 몇 가지 요령을 파악하는 데에도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쓰다 보면 아마 30~40대가 되어야 겨우 시험에 합격을 했을 텐데, 그것도 그나마 운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나쁜 예는 조문헌, 하겸죽이 바로 그 명확한 예시가 되어 주고 있었다.
“말을 하다 보니 말인데, 스승님의 안목은 정말 뛰어나시오. 하하, 모두 다 과거에 합격하여 거인이 되지 않았소.”
고청운은 비록 방인소가 관직이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안목만은 정말 뛰어나다고 진심으로 탄복했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가끔 고청운을 데리고 모임에 갔는데, 방인소의 몇몇 벗들은 모두 천성이 거리낌이 없었으며,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도 명성이 매우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집안의 자제들이나 제자들조차 아무런 안 좋은 소문이나 행적을 남기고 다니지 않았다.
고청운은 방인소의 관직이 그렇게 높지 않은 이유가 그가 워낙 승진에 대한 욕심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퇴근하여 귀가해서도 모임에 나가는 일이 아주 적은 것을 보면 모르겠는가? 그는 나가서 관계를 맺으러 뛰어다니는 것을 귀찮아했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해서라도 관계를 넓히고 다녔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다. 그와 함께 시험에 합격한 지인들 중에서는 2, 3품의 고관 자리에까지 올라간 자들도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방인소가 아들이 없는 탓에 그렇게 관직 생활에 욕심이 없는 줄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 말이 맞는지는 잘 몰랐다. 하여튼 방인소는 칠현금을 연주하고 바둑을 두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따위의 문인의 고상한 취미에 할애하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특히 바둑을 둘 때는 자주 밖에 나가 바둑 상대를 찾곤 했다. 최근에는 낚시에 빠져 휴무일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강 낚시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안목이 좋다고 해도, 자질도 있어야 하죠.”
간미는 고청운의 맞은편에서 물에 발을 담고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저희 아버지가 자질이 좋지 않았다면 외할아버지께서 어떻게 거둬들이셨을 수가 있었겠어요?”
고청운은 묵묵하니 말이 없었다. 그 말도 맞는 것이, 그때는 전쟁이 한창 일 때였다. 간지원의 자질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방인소가 무슨 근거로 그를 입양하여 친자식처럼 대해 주었을까?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고아를 모아놓고는 모두 집안에서 부려먹기 바빴을 때였는데 말이다.
이렇게 되면 또 그 은덕에 감사해야 했다. 만약 방인소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거지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목숨조차 지키지 못했을 터였다.
고청운은 물이 식은 것을 느끼고는 종을 울리는 끈을 당겨 사람을 들어오게 하여 물을 따라 버렸다.
“소석아, 너무 늦었구나. 이제 잠에 들어야지.”
소석은 아직도 나무토막으로 탑을 쌓고 있었는데, 고청운이 아이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달래듯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소석이 고개를 들어 고청운을 보았다. 한눈에도 귀여운 웃음을 띤 둥글둥글한 얼굴이 참 깜찍하고 귀여운데, 내뱉은 말은 그다지 귀엽지 않았다.
“아빠, 소석이는 더 놀고 싶은걸요.”
아이의 작은 손이 나무토막을 더 꽉 잡았다. 자신이 짓고 있던 집이 이제 반밖에 완성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지금 바로 잘 수 있겠는가? 소석은 지금 전혀 졸리지 않았다.
“안 돼, 시간이 벌써 유시를 넘어섰어. 자, 내일 일어나서 놀아라.”
고청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석을 보았다.
‘아이는 일찍 자야 하는데, 이미 벌써 8시가 넘어버렸잖아. 낮잠도 별로 안 자놓고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늦게까지 놀 수가 있지?’
“아니, 난 싫어요. 나는 조금 더 놀고 싶어요.”
소석이 토실토실 살이 오른 몸을 비틀며 작은 입을 내밀고 말했다.
“아빠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놀지도 못하게 하시고.”
“안 돼! 지금 자야 한다. 내일 다시 놀자꾸나.”
고청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소석이는 아빠를 좋아해요.”
소석이 멍하니 고청운을 보고 있다가 손에 있던 나무토막을 놔두고 갑자기 일어나 고청운의 목을 껴안더니 몇 번이고 뽀뽀를 해댔다. 그러더니 침 범벅을 해서는 옹알대며 말했다.
“이제 소석이 더 놀아도 되죠?”
고청운은 이내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답답해져서는 웃음을 참고 있던 간미에게 물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이오?”
그는 과거 시험 때문에 한동안 아이와 제대로 지내지 못했었다. 특히 앞서 며칠간은 고청운의 회복을 방해할까 봐 소석은 안채의 방인소 내외와 몇 일간 같이 잠을 잤었다.
간미가 서둘러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당연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겠지요.”
고청운은 직접 아이를 안아 올려 정색을 하고 말했다.
“너 자러 안 가면 아비랑 어미만 자러 가 버릴 거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상대해 주지 않을 게야.”
소석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울고불고했다. 그러다가 고청운이 오늘 밤 자신과 함께 자기로 약속하자 그제야 소석은 자러 가는 데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