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75)화 (175/504)

175화. 순위 (2)

“만약 황 대인이 나에게 집을 팔기만 한다면, 우리는 가까이 곳에 살 수 있을 게다. 그때 중간 벽에 문을 설치하면 지금보다 뭐 몇 걸음 더 행차해야 하는 것뿐이지, 지금과 같이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방인소의 말을 들은 고청운은 매우 기뻤다. 이는 그가 생각해두었던 방법 중에서도 제일 맘에 들었던 방식으로, 쌍방에 모두 이로운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황 대인의 집 정원 구성은 방택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곳은 대로변에 좀 더 가까워서 늘 마차가 지나다니기에 시끄러울 수야 있지만, 더 비교를 하자면 지리적 위치도 좋고, 원래 살던 익숙한 환경을 향유할 수 있었기에 역시 매입하는 것이 옳았다. 

사실 동일한 방(坊) 구역 내에 또 다른 집도 매물로 나와 있었는데, 고청운은 방택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싫었기에 그 집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들이 찾으려는 것은 연결된 두 개의 정원이었다. 정 안 되면 좋은 지역을 찾아 토지 두 뙈기를 사서 원하는 형식의 집을 새로 지으려는 생각도 했었으니 말이다. 

‘이제 되었다.’ 

그들은 황 대인의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이 마을을 넘어서면 마을 같은 게 많이 없어서 누군가 이사 나가기를 기다려야만 겨우 매입을 할 수 있었다. 기존에 살던 사람이 이사 나가는 것을 언제까지고 기다려야 하는데, 마냥 기다리고 있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지어 이사를 나가서 매물로 나오는 집이 방택 옆이라니 정말 제격이었다.

고청운과 방인소는 자신들의 행운에 탄복하였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삼원이 밖에서 사설 신문을 사서 돌아왔다.

고청운은 지체없이 받아보았다. 그는 사실 일찍부터 다른 사람의 합격 순위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모두들 다 그의 성적을 반복해서 묻기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식은 말해 주지 않았기에 고삼원을 밖으로 내보내 신문을 사 오게 하였다.

회시 같은 큰 사건에 대해서는 경성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소식도 빨리빨리 전해졌다.

그가 들고 있던 경화소보(华京小報)를 펼쳤다. 이 소보라고 불리는 사설 신문은 조정의 관보와 비슷하나 민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것을 신문이라고 여겼는데, 실제로 이는 후대의 신문과 매우 흡사했다. 소보의 윗부분에는 조정 정책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고, 간판만 바꿔 달고 있는 일부 관료나 귀족 자제들에 대한 가십도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름을 가려 간판을 바꿔 달아도 사람들은 소보 속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고, 백성들은 그저 구경만 할 뿐이었다. 

경성에는 발행되고 있는 소보가 몇 부 있었는데, 그중 경화소보가 가장 유명했고, 특히 위쪽에 실린 내용은 비교적 믿을 만했다. 다들 경화소보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경화소보의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고청운과 사장정은 한때 소보에 등장하던 단골손님이었는데, 사장정은 말할 것도 없고 고청운은 ‘일침황량’이라는 필명 때문이었다. <출해모험기> 책의 인기가 제일 절정에 올랐을 때, 소보에서는 일침황량이 누구인지 추측하며 토론을 벌였었다.

다행히 그의 실명이 잘 가려져 있어 운 좋게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실은 사장정이 힘써 보호해 준 덕택일 수도 있었다. 

회시 합격자 석차가 언급된 부분을 찾기에 급급했던 고청운은 역시 익숙한 그들의 이름과 석차가 쓰여 있는 곳을 곧바로 찾아냈다. 

그는 먼저 대충 훑어보고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의 순위를 찾아보았다. 

담자례는 4위, 조문헌은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았다. 

담자례의 석차를 본 고청운은 지금 느끼는 이 느낌이 무슨 감정인지 몰랐다. 그는 지금까지 아직 아무도 3연속 장원의 쾌거를 이룩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3연속 장원을 하려면 실력과 운 중에서 무엇 하나 부족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4위라.’ 

고청운은 한숨을 쉬며 소주 출신 학자에 대한 위대함에 감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담자례는 아직 이렇게나 어린데 심지어 올해같이 이렇게 추웠던 환경에서조차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니 확실히 명불허전이었고, 그가 자부할 만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보의 명단을 계속 살펴보니, 그들의 석차 외에도 몇 마디의 논평이 함께 실려 있었다. 고청운은 상위 10위 안에 드는 사람들의 내용을 집중해서 읽어보았다. 

‘회원 초유(楚瑜), 이부 좌시랑의 직계장손으로, 풍류를 좆는 방종한 자임에도 천부적인 자질이 뛰어나 3살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다고 한다. 6살에 이미 시를 지을 수 있었다는데 향시에서는 아원(*亚元: 향시에서의 수석인 해원의 바로 아래, 차석 급제자)을 거머쥐었고, 나이는 아직 25살인데도 이번 회시에서 장원을 거머쥐었다. 

2위 종민(钟闵), 산동의 학자 집안 출신으로, 총명하고 학문이 뛰어나다는데 아직 경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체적인 상황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나이는 35세이다.

3위 공번충(孔繁忠), 산동 공씨 가문의 방계 출신인데, 겸손하고 총명하며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나이는 31세이다. 

4위 담자례(谭子礼), 소주의 담씨 가문 출신으로, 천부적인 자질이 뛰어난 인재이다. 나이는 21세로 합격한 모든 공사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미혼.

5위 방희림(庞喜林), 상성(湘省) 담주부(谭州府) 농가 출신으로 소싯적 가정형편이 곤궁했으나,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 능력이 있어 대학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나이는 23세이다. 미혼.

8위 고청운(高靑雲), 월성 임양부 농가 출신으로 소싯적 가정형편이 곤궁했으나, 천부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하여 현재는 호부낭중 방인소의 외손녀 사위이다. 나이는 23세이다.’

고청운은 20등 이후로는 더 내용을 보지 않았다. 소보에는 합격자들의 특징만 조목조목 나열해 놓았을 뿐이었는데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는데, 등수가 높은 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20에서 40세 사이로, 50여 세 이상 60세의 나이에 근접한 사람들은 거의 합격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설령 명단에 포함되어 있더라고 등수가 뒤쪽이었다. 

이것은 진사들의 저령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고청운은 이 현상에 대해 수긍이 갔다. 젊은 사람들을 합격시킬 이유는 무수히 많을 것인데, 따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젊은 사람이 아무래도 더 낫지 않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석차가 앞쪽에 있는 사람들을 본 고청운은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실력이 비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중에 특히나 방희림이라는 자는 뜻밖에도 전설 속에나 존재한다던 일명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자’라지 않은가.

‘한 번 보면 잊지 않는다? 이런 능력을 지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외우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줄까?’ 

이는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문인들의 꿈이었다! 그러다 그는 이 세상에 이런 능력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할까 싶기도 했다. 

‘정말 아무거나 봐도 잊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정보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지는 않을까? 만약 진짜 그렇다면 좀 괴로울 것 같은데 말이야.’ 

고청운은 아주 궁금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 본 것을 절대적으로 다 잊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만 기억력이 남들보다 대단히 뛰어난 정도겠지. 그러나 그래도 이런 능력만으로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고청운은 이 방희림이라는 자에 대해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고향도 서로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출신도 서로 비슷하여,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고청운은 시험 전에 외출을 극히 적게 하여 그와 사귈 수 있게 될 기회를 놓쳐 그를 만나 본 적이 아직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고청운은 빙긋 웃으며 줄곧 자신의 뒤에서 따라다니고 있는 고삼원을 향해 말했다. 

“며칠 후에 또 소보가 발간될 것 같은데, 이것보다 더 상세한 내용들이 실려 있을 것 같구나. 그때 한 부 더 사다 주겠니?”

오늘은 간행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실린 소식들이라 내용이 좀 조잡했다. 이에 며칠 후 발간될 소보의 후속 보도 내용은 틀림없이 더욱 자세히 실려 있을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슨 유명한 관련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다 알려질 터였다.

3년 전 회시 때도 그랬었다. 고청운은 그때도 이 소보를 구독했었기에 이쪽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고삼원이 우렁차게 네, 하고 대답하고도 다시 물었다. 

“숙부, 그러면 고향에는 언제 돌아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십니까?”

“전시까지 치르고 어느 직무에 부임하게 될지 알게 되면 그때나 갈 수 있을 듯하구나. 대략 6~7월경이 될 거야. 왜? 네가 집에 가보고 싶은 것이로구나?”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고삼원은 입을 실쭉거리며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뭐가 보고 싶겠어요? 저는 그냥 기뻐서 그런 것이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는 아니에요. 저는 임계촌이 그리울 뿐이에요.”

고삼원이 주인공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마을로 돌아가 옛날 같이 지내던 벗들이 자신에게 질투 어린 부러운 눈빛을 보낼 것이 생각하니, 마음이 개운해지면서 더는 고향 가는 일을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고향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분명히 네게 장가와 관련해서 말씀을 하실 거야.” 

고청운은 고삼원이 이미 18살이 되었으니, 확실히 장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를 가야 적합한 상대를 찾아줄 수 있을까? 집에는 하녀들뿐이었다. 방씨 가문에도 어여쁘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 몇이나 있었지만, 그녀들은 모두 하녀였고, 이미 노비 문서를 작성한 사람들이었다. 

고삼원은 평민이라서 노비와 혼인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고, 하녀에게 노비 문서를 사하여 주고 결혼을 시킨다는 것도 무리가 있어, 같은 평민 신분을 찾아 혼인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 

“아이고, 그런 소리 마세요. 저는 급하지 않아요.”

고삼원이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고청운은 빙긋 웃으면서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 * *

오후에도 꾸역꾸역 계속해서 축하를 전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때 방자명 부부도 마침내 방문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모두 매우 기뻐하며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하 씨는 후원으로 가고, 고청운은 방자명과 함께 서재로 옮겼다.

“우리 백부님은?”

방자명이 의자 하나를 골라 앉더니 물었다.

“오후에 다시 호부에 가셨어요.”

“나보다 석차가 그렇게나 높다니, 어서 말해 봐. 자, 우리 서로 답안을 맞춰보자고, 난 인정 못 하겠단 말이야.”

방자명은 고청운의 석차가 자신보다 앞에 놓였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예전엔 시험을 치를 때마다 자신이 더 성적이 좋았었으니 말이다. 물론 회시에서도 그러리라고는 장담은 못 했는데, 필경 회시는 주임 시험관의 의중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전 왕조에서 과거 시험에 대한 개혁이 단행된 이래로 점수의 비중이라는 것이 새로 생겨나서 본 왕조에서는 산술, 율법 등의 과목을 추가하였다. 이 과목의 문제들은 정답이 거의 정해져 있어서 점수를 쉽게 산출해 낼 수 있었기에 이전에 합격 여부를 시험관들의 마음에만 맡겨야 할 때보다야 훨씬 사정이 나아졌다. 

“맞으면 맞은 거지, 제가 방 형을 무서워할 줄 알고요?”

고청운이 곁눈질로 흘겨봤는데 그가 못마땅해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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