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순위 (1)
고청운이 나오는 것을 보자 군중들 사이에서 다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며 모두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참 젊어 보이는군, 아, 이제 스물인가?”
“그의 모습을 보니 그럴 것 같은데? 딱 20대 초반정도?”
분분한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젊은데, 저 사람 같은 나이는 보통 수재 신분일 텐데, 저 사람은 뭘 먹고 자랐기에 어떻게 이 나이에 합격을 했대요?”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새로 합격한 이번 진사는 잘생기고 키도 크네. 참 잘생기기도 했지! 혼인은 했대요? 없으면 예쁜 아낙네 몇 명을 소개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는 아주머님의 목소리가 그의 백모님을 생각나게 하여, 고청운은 고향이 떠올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양 부인, 저 사람은 이미 방 씨의 외손녀분의 사위예요. 아이까지 있고, 아들을 안고 내 노점에서 취두부를 사 간 적도 있지요.”
중년 사내 한 분이 대신 말해 주었다.
“뭐? 새로 합격한 진사 양반이 자네 가게에서 취두부를 먹었어? 당신 어디서 장사하는 분이슈? 우리 아들도 좀 사다 먹여야겠네!”
잠시 후, 대중들의 화제가 점점 빗나가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보희들에게 사례금을 전하고 또 축하 인사를 해 주는 인파를 향해 겹겹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가 아직 한숨도 돌리지 않았는데, 두 번째 보희들이 말을 타고 도착했다. 그들이 떠난 후엔 세 번째 보희들이 몰려왔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다시 몰려 매우 왁자지껄했다.
놋쇠가 깔린 것처럼 빼곡하던 인파가 물러가고 나니, 온 천지에 폭죽의 잔해만 남아 있었다.
이때 방자명 집의 하인이 달려와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양가 모두 기쁨에 겨워 오늘 저녁 방택에서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다.
고청운은 방금 보희들이 전한 전시 시험 일정에 관한 소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실은 방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진사’라고 불렀으나 이는 옳지 않은 명칭으로, 정확하게 지금 그는 ‘공사(贡士)’의 신분이었다.
회시 시험의 합격자를 ‘공사’라고 했는데, 그중 회시 시험의 1등 합격자를 ‘회원(會元)’라고 말했다. 고청운은 이때부터는 공사의 신분이었는데, 전시를 다 치르고 나서 최종합격 등수까지 발표되고 나서야 그를 진사라고 부를 수가 있었다.
본 왕조의 전시는 석차 순위에 따라 3개의 등급으로 나뉘었다. 1등급에는 세 명이 속했는데, 1등의 명칭은 장원(状元), 2등의 명칭은 방안(榜眼), 3등의 명칭은 탐화(探花)라고 부여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석차에 따라 2등급, 3등급으로 진사 안에서도 등급을 나누었으며, 그 다음은 동진사 출신이 그 뒤를 이었다.
전시는 4월 21일에 시작했다. 하루만 시험을 치르면 되었는데, 고청운은 낙방을 염려하지 않았다. 어쨌든 회시에 합격한 이상, 그는 이미 그 이름 번듯한 진사의 신분이 아닌가. 여기서 운이 아주 나쁘거나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된다고 한들 기껏해야 3등급 동진사까지는 할 수 있었다.
시험에서 탈락시키지 않는 이유는 예전에 당나라에서 한 차례 전시 응시자를 탈락시킨 적이 있는데, 이는 후일 다른 나라의 제왕을 찾아가 자신을 탈락시킨 왕에게 참혹한 보복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나라 때부터 응시자는 탈락시킨 적이 없었는데, 호시의 시험을 부정으로 합격한 것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정말 탈락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청운이 지금의 자신의 석차에 더해 전시에서까지 제 기량만 발휘해냈음에도 3등급으로 시험을 마친다면, 앞으로 있을 관직 생활에서는 승진을 꿈도 꿀 수 없을 것이었다. 이미 황제에게 미움을 산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남은 할 일이라고는 그저 황제의 붕어를 기다리며 다음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지 조바심을 내고 지켜보는 것 정도일 것이었다.
잠시 후, 오후가 되어 일찍 귀가한 방인소가 돌아오자마자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고청운은 방인소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본 게 이번이 딱 두 번째였는데, 첫 번째는 바로 소석이 태어났을 때였다.
“좋아, 좋아. 아주 좋구나.”
방인소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높았고, 얼굴에는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 스승님의 체면을 살려 주었구나! 오늘 호부에서 공무를 보는데, 이 노부가 네 덕에 아주 한바탕 멋을 부리고 왔다!”
고청운은 헤벌쭉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오늘 벌써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몰랐지만, 그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매 3년마다 치르던 과거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았다. 곧 고지에 다다를 것이었다.
“스승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저희 집도 ‘일문양진사(*一门两进士: 한 집안에 두 명의 진사를 배출한 것)’가 되는 것이죠?”
고청운과 방자명의 스승님은 모두 진사였다.
고청운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집안 유전인가,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진사와 한 명의 거인을 배출해 내다니.’
방가촌의 평범했던 방씨 집안을 떠올리면, 방인소가 발전을 거듭해 이렇게 많은 인재를 배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방인소 이후 더 이상 수재 하나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계자 양성에 있어서 아마도 방인소는 이후로도 더 도움을 줄 것이었다.
온 방씨 문중의 발전 여부는 모두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고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운에 탄복했다. 방씨 가문에는 방자명 말고는 다른 걸출한 후계자들이 없었는데, 결국에는 이 점이 방인소가 자신을 제자로 선택하게 하여 그의 가르침 전부를 얻게 한 것 같았다.
방인소는 고청운의 말을 듣고 웃기만 하고 말이 없다가, 돌연 얼굴에 잘난 체하는 기색이 돌았다.
“다들 노부가 좋은 제자를 두었다고 축하해 주더구나.”
방인소가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며칠 후 시험을 볼 테니 너는 요 며칠 동안 모임이니 하는데 나가지 말고 집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간 문에도 들어서기 전에 문전박대 당하는 수가 있을 게야.”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호응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스승님.”
아마도 그가 모임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데려가 주지 않을 것이었다. 합격을 한 공사들은 일반적으로 집에서 복습을 하기 때문인데, 특히 석차가 뒤처진 사람들은 더욱 이번 전시에서 석차를 앞당기고 싶어 하고 절대 동진사가 되어서는 안 되기에 부단히 노력했다.
시험을 보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회시에 합격해도 좋고 낙방해도 좋다며 말하지만, 막상 회시에 합격하고 공사가 되면 그 누구도 3등급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고청운 역시 자연히 가벼운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다.
“네 이번 석차를 보니, 노부는 의외였단다. 보아하니 그 책론 문항 덕에 네가 주임 시험관의 좋은 점수를 얻어낸 것 같더구나. 물론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석차는 이미 결정지어진 것이다. 이제 전시를 진행할 때에는 폐하께서 10등 이내의 답안지를 보게 되실 것인데, 만약 네가 평소의 기량만 정상적으로 발휘한다면 전시에서도 10등 안에 들 수 있을 게다. 그때 네 이름이 폐하의 눈에 들어가야 네 벼슬길에 도움이 되는 것이야.”
고청운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의 답안을 황제가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점이야 서로 달랐겠지만 생각보다 관점의 차이가 너무 심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어쨌든 간에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러야 할 터였다.
방인소도 이 생각을 했는지 잠시 얼굴빛이 변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만, 네가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진사의 신분만 있다면, 설령 네가 앞으로 관리가 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전국 어느 서원에 가서 가르치든지 폐하께 뚜렷한 혐오감을 표출하지 않는 한 어떤 부학, 주학, 현학도 네가 골라서 갈 수 있으며, 항상 가족을 부양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폐하께서 그렇게 속이 좁지는 않으실 테지.’
방인소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공사들 대부분이 자신의 제자와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폐하께서 어찌 한가로이 시간이 남아서 그들의 과거 답안 같은 것을 주시하고 있을까? 그러지 아니하실 테지. 그럼 이 제자가 앞으로 나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은?’
제자의 화본 집필 능력을 생각하니, 방인소는 역시 자신의 마지막 생각이 쓸데없는 기우였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숙인 채, 좀 민망한 듯 말을 이었다.
“스승님, 제가 풀었던 책론 답안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폐하께서는 마음이 넓으시니 저 같은 사람과 승강이하실 리는 없습니다. 정말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 벼슬길에 나서는 것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이 시대에 문인은 매우 우대를 받는 사람들이라서 대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진사의 공명이 있는 학자는 비교적 윤택하게 살 수 있었고, 아무리 황제라도 마음대로 죽일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줄곧 추구해 온 안정감이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강력한 황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특히 그처럼 타임 슬립한 사람에게는 이 안정감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너도 이제 시험에 합격하여 공사가 되었으니, 집사더러 옆집 황 씨에게 가서 집 매매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고 오라 해야겠구나.”
방인소가 결국 이 말을 꺼내 들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꺼내며 일종의 상실감 같은 것을 느꼈다. 최근 바깥에선 고청운네 일가족 세 식구가 조만간 자신의 집을 구해 나가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자신이 제자의 집에 들어가 기거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그런 것은 또 미담이 되어 퍼질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 비록 유언비어라는 것이 별로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해도, 소문이 오래 돌게 되면 한 사람의 명성을 쉽게 더럽힐 수도 있게 변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있어 체면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설령 그가 정말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고 한들, 고청운을 위해서 그는 사람을 시켜 인근에 집을 구하도록 하고, 최대한 가까이 살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고청운의 부모님은 언제고 상경하실 것이고, 고청운은 집안의 독자이니 어쨌든 부모와 함께 살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집이 있어야만 했다. 특히 고청운은 진사에 합격했기 때문에 더 그러한데, 만약 합격하지 못했더라면 자신의 집에서 얼마고 더 지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시험에 합격한 이상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방인소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진작에 생각을 잘 정리해 두었다. 다만 생각할수록 그 둘 부부가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저택에 소석의 웃음소리까지 들리지 않게 된다면, 너무 외로워져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소석이네와 최대한 가까운 주택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늦게 사는 것보다 일찍 사는 것이 언제나 옳았기에 원래는 정원이 두 개가 있는 집을 사려고 했었는데, 가까이 위치한 정원이 하나만 딸린 집 한 채가 마침 매물로 나와 있었다.
정원 두 개가 있는 집과 관련된 생각은 어쨌든 노부부의 생각일 뿐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이 방택을 팔지, 세를 줄지 같은 것은 아직 생각해 둔 바가 없었다. 만만한 새집을 찾고 있지 못하던 터에, 방인소는 마침 옆집의 황 대인이 사직하여 본적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었고, 살고 있던 그 집도 팔 생각이 있다지 뭔가.
황 대인은 정5품의 관리였는데, 황 대인을 제외하고 벼슬길에 나선 후계가 없어 더는 경성에 살기가 불편해 본가로 돌아갈 궁리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나서, 며칠 전, 고청운이 시험을 치러 간 틈을 타 집사를 시켜 그쪽의 대리인과 접선을 하였다. 하지만, 황 대인은 아직 주저하며 또 다른 구매자와 자신 사이에서 어느 쪽에 매매를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고청운의 성적이 발표되었으니, 황 대인은 틀림없이 빨리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