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73)화 (173/504)

173화. 공사(贡士)

그 후에 고청운은 외출을 할 수 있게 회복되자, 소석을 데리고 방자명의 집에 가서 그를 보기로 했다. 시험이 끝난 후, 방자명은 병으로 쓰러졌는데, 고청운보다 더 심하게 병이 걸려서 지금 여전히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는 오늘에야 그쳤다. 밝은 햇빛을 보던 고청운은 상승하는 바깥 온도를 느끼자 마음이 답답했다.

시험을 칠 때만 해도 날씨가 그 모양이더니, 시험을 다 보고 난 뒤엔 해가 쨍쨍해져서 갑자기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자, 다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슬며시 욕을 해댔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히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이 그러했다.

방자명네 집은 그리 멀지 않아서 가는데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집에 더 있으면 곰팡이가 슬 것 같아 고청운은 고삼원에게 놀러 가자고 졸라댔고, 마차를 타지 않고 소석과 함께 걸어갔다.

소석은 처음에는 혼자 걸을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걷지 못하고 고청운의 허벅지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빠, 아빠, 소석이 좀 안아보세요.”

작은 소석이 큰 눈을 깜박이며, 동그란 작은 몸으로 그의 허벅지를 잡고 위로 올라가려 했다.

고청운은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애교에 넘어가 소석을 어깨에 올려놓았는데, 밖에 사람이 많아 직접 아이를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머리채를 붙잡으면 안 돼.”

고청운이 경고하며 말했다.

소석은 당연히 ‘네.’ 하고 대답하였다. 아이는 단번에 높은 자리에 앉자 기뻐서 참지 못하고 ‘꺅꺅’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특히 다른 집 아이가 땅 위에서 걷는 것을 볼 때마다 거만하게 우쭐거리며 가슴을 폈다. 

그들은 가까스로 방자명의 집에 도착했는데, 그의 집은 뜻밖에도 난리가 나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본 고청운은 하 씨가 마침내 회임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방자명의 반색하는 모습을 본 고청운은 몇 마디 말만 나눈 후, 그가 지금 회시의 시험 문제를 논의할 마음이 없을 것 같아 바로 귀가했다. 

‘쯧쯧, 애당초 누가 아이 늦게 낳고 싶다고 말했었는지. 지금 저 어리숙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 * *

시험 결과를 다시 기다리면서 지낸다는 것은 여간 힘들었다. 또 너무 지긋지긋하기도 하였다.

드디어 4월 15일, 살구꽃이 피고 또 한 번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이 되었다.

경성 전체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이번 회시의 결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온 가족이 일어나자, 소석도 따라서 일어났다.

모두들 안채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록 다들 화제를 찾아가며 이야기를 이어가고는 있었지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집사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째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지?’

고청운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자, 마음이 너무 긴장되어 서재로 돌아가 글씨를 연습하고자 했지만, 사실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합격입니다요! 합격이에요! 사위 나리, 마님! 8등입니다! 8등으로 합격하셨어요!” 

그때, 멀리서 집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고청운의 전신이 흔들렸고, 뒤이어 광적인 희열감이 따라 올라왔다.

‘합격했다!’ 

그는 마침내 진사가 되었다.

‘내가 시험에 합격하다니!’ 

고청운의 귓가에 뭇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지만, 머리가 텅 빈 그는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합격도 합격이지만, 또 이렇게 상위권으로 합격을 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는 이번에 시험을 마치고 나서 자신이 합격할지도 모르겠다고는 예상했었다. 어쨌든 문제도 순조롭게 풀었고, 몸 상태도 난관에 부딪히지는 않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높은 석차로 합격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서재 밖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삼원이었다. 그는 목소리가 더 안 나올 정도로 소리쳐대고 있었다. 

“합격이래요! 합격하신 거예요! 8등! 8등라고요!”

고청운은 먹물을 줄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붓을 연꽃 모양 연지에 놓아두고 넓은 소매를 천천히 접었고, 마른기침 소리를 내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모두 기뻐서 죽을 지경이에요. 빨리 나가보세요.”

고삼원은 생전 처음으로 노크도 하지 않고 방 안으로 뛰어들어 왔는데, 흥분된 얼굴로 거의 손을 쓰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의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던 고청운은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네 용모부터 정돈하고 말해라. 너희는 마차를 타고 간 것이 아니었니?”

“너무 흥분해서 마차 안에서도 너무 기뻐하느라 옷 정리는 전혀 못 했어요.”

고삼원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숙부는 진정하고 계셨네요.”

고청운은 그에게 말할 면목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즉시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여전히 멍해 있었을 것이었다.

고청운이 옷자락을 걷더니 먼저 걸어 나갔다.

“일단 나가야겠구나.”

본채의 안채에 이르자, 집사가 마침 합격자 명단을 보는 과정에 대해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님,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이 늙은 노비가 두 명의 건장한 사내 녀석들을 데리고 겨우 비집고 들어가 보니, 위치한 자리가 딱 중간이었죠.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그냥 들어갔었습니다. 가운데부터 맨 끝까지를 흩어보았는데, 저 뒤에까지 아무리 뒤져도 사위 나리 이름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을 접은 이 노비가 나가려고 했는데, 삼원이가 오른쪽에서 ‘합격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그제야 사위 나리의 순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 집사는 노익장으로 두 번이나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러 친히 가 주셨는데, 첫째는 그가 글을 알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그가 제일 먼저 소식을 알고 싶어 했었기 때문이었다. 나이 탓에 인파를 뚫고 명단 확인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지만, 다행히 두 명의 건장한 머슴들이 감싸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연 씨와 간미는 얼굴 가득 즐거움이 서려 있었다. 두 사람은 고청운이 나오는 것을 보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부군, 축하드려요.”

일어나는 간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그때 다들 주인공을 보러 왔는지 모두 몰려와서 잇달아 축하의 말을 전했는데, 간미부터 연 씨까지 또 집사부터 모든 여종들에 이르기까지, 뭇 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 오만과 흥분이 넘쳐 있었다.

중문에 들어서도 역시 머슴들의 획일적인 축하의 말이 들려왔다. 

일순간 방택 전체가 기쁨에 겨워했다. 

“좋군요. 큰 경사니, 집사! 이번 달 월급은 한 사람당 석 달씩을 더 상으로 주거라!”

연 씨가 웃으며 분부하였다.

하인들은 그 말을 듣고는 재빨리 절을 하였다. 얼굴의 미소가 더 커져 있었는데, 실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이득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바탕 흥청거리던 집사가 분주히 상금을 준비하는 동안, 고청운은 안채에서 하인들도 물러나게 한 후 자신의 관심사를 캐물었다.

“방 형은요? 몇 등이에요? 방금 집사님한테 합격이라는 말은 들은 것 같은데요.”

고청운은 어리둥절해 있는 소석을 품에 안고 있었는데, 온 가족이 성적을 기다리느라 덩달아 일찍 일어난 소석은 줄곧 연 씨의 품에 기대 졸다가 지금 뭇 환호성 소리에 깬 듯했다. 

꼬마는 어리벙벙해서 여기저기 따라다녔다. 방인소는 손자는 안아줘도 아들은 안아주는 게 아니라고 누차 말했지만, 고청운은 소석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또다시 끌어안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만 같았던 것이다.

‘누가 우리 아들을 이렇게 총명하고 깜찍하며 생기 넘치는 아이로 낳은 거야, 정말.’

“그도 합격했다. 42등이라고 하는구나.”

연 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녀석 정도면 2등급에 들어야 될 성적일 텐데, 원래는 그 아이가 너보다 성적이 앞설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네가 이렇게 분발하여 뜻밖에도 10등 안에 합격할 줄 몰랐어. 당시 네 스승님은 170여명이 진사 합격자를 배출한 시험에 합격하였는데, 단 한 명 차이로 3등급으로 합격해서 동진사가 되셨지. 그때 당시 얼마나 진땀을 흘리셨는지.”

연 씨의 폭로를 들은 고청운은 그저 웃어 보였다. 그는 처음에 스승님이 어느 해의 진사인지만 알았을 뿐, 석차가 어떤지 전혀 묻지 않고 있었다. 또 묻기도 어려웠다. 그는 나중에 국자감에 청강을 갔을 때 수업이 끝나고 국자감 부근의 공자묘에 가서 합격자 명단을 적은 비석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방인소의 등수를 알게 되었다. 

“이번엔 네가 이렇게 앞 순위로 시험에 합격하게 되다니, 이제 곧 전시를 봐야겠구나. 기다리거라, 내가 먼저 집사에게 가서 사례금을 준비해 두었는지 확인해 보마. 이따가 곧 보희들이 소식을 알리어 올 텐데, 잔칫값도 좀 뿌려야겠다.”

연 씨가 이렇게 말하고는 곧장 나갔다. 

방 안에는 이제 고청운의 가족 세 식구만 남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간미는 쥐죽은 듯 조용하게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아, 울지 마시오. 이것 봐요, 소석이도 당신이 우니까 놀라지 않았소.”

고청운은 소석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간미는 너무 기뻤다. 부군의 이 몇 년 동안의 고생이 마침내 보답을 받았다는 생각에 그녀는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려 참을 수 없었다.

“시부모님께서 지금 이곳에 계셨다면 더 좋아해 주셨을 텐데요.”

이때 소석은 놀라서 멍해져 있었다. 다들 울고 웃고 떠드니, 아이는 어리둥절해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평소의 재치를 발휘할 수가 없자, 소석은 고청운을 꼭 붙잡고 오므린 작은 입은 곧 울려는 것 같았다. 

간미는 그 상황을 보고는 즉시 울음을 그쳤고, 흐느끼다 말고 작은 소석의 손을 끌어당겨 꼭꼭 쓰다듬었다.

한바탕 상황 판단을 거쳐, 소석은 드디어 기쁨에 겨워 우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고, 이날의 경험은 아이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한참 지나서야 문밖에 북소리가 들리더니 ‘귀댁 고청운 님께서 병술년 4월 15일 회시에 8등으로 합격하셨습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하는 축하의 말과 함께 장단을 높여 흥겨운 소리가 멀리멀리 전해졌다.

“당신과 소석이는 문 앞에서 밖을 구경하는 게 어떻소. 밖에 나오지 마시오. 지금 밖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

고청운은 간미의 몸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회임한 지 겨우 두 달 남짓 된 것이 아슬아슬할 때라 조심해야 했다.

또 소석은 너무 작고, 밖은 사람들로 붐벼서 아이를 놀라게 할 것이었다.

간미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재촉하였다.

“부군, 빨리 나가보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고청운은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방택의 문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관리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평민들도 많이 있었다. 

여기를 지나는 주위 이웃과 남의 집 아랫사람들로 뒤섞인 시커먼 한 무리가 집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많은 어린이들이 뿌려지는 잔칫값을 받기 위해 서로 떠밀며 날뛰고 있었다.

체면 불고하고 어른들도 돈을 주워 담으려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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