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72)화 (172/504)

172화. 사장정의 속마음

고계산은 한탄하다 말고 버럭 화를 냈다.

“울기는 왜 우시오? 방정맞기는! 지금 울면 불길하오. 이런 게 다 전자에게 영향을 끼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노진씨는 이 말을 듣자마자 얼른 눈물을 뚝 그쳤다. 곧 그녀는 상황을 깨닫고는 정신없이 말했다.

“그래요, 나도 참 정신없지. 하필 이럴 때에 눈물을 흘리다니! 이게 다 당신 탓이에요. 그런 말을 해가지고선!”

그녀는 말을 다 마치고는 아까의 부정한 영향을 없애고 싶어 얼른 또 조상님한테 향을 올리려고 하였다.

“뭐가 내 탓이오? 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것이오. 그리고 이제 겨우 좋은 시절을 보내게 되었는데, 잘 좀 생각해 보시오. 지금의 좋은 시절이 다 누구 덕에 찾아온 건지. 전자가 없었더라면, 지금 당신이 여기서 울고 있을 짬이나 낼 수 있었겠소? 허리를 구부려 모내기를 하고 있지 않았으면 마을 어귀에 가서 쇠똥을 줍고 있었겠지.”

고계산은 수염을 휘날리며 눈을 치켜뜨고 마저 말을 이었다. 

“전자가 진사 시험에 합격한다면, 우리 고씨 집안은 진짜로 가문이 바뀌는 것이오!”

그들 고씨 집안은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농민 집안이었는데, 지금 어렵사리 하나의 문인이 집안에서 태동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이런 시점에서 그들이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매번 마을에서 산책을 할 때, 마을의 다른 노인들이 자신을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걸 떠올린 고계산은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지금 그는 자신이 손자를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 정말 손자가 계속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사돈들처럼 고향에 돌아가 공부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렇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전자의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또 시험 합격이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전자가 귀향하는 것보다 관직을 맡는 것이 나으니, 당연히 전자가 시험에 합격하여 경성에서 관리가 되는 것을 더 지지했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눈을 마주치고 눈웃음을 지었다.

노부부의 최근 정서적 변화는 매우 격심했고, 그때마다 그들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전자만 생각하면 당연히 보고 싶었다. 만약에 부모님이 임계촌에 계시지 않았으면 그들은 진작에 상경하여 같이 살았을 것이었다. 전자도 그 내용을 몇 번이나 편지로 써 보냈는데, 그는 집안사람들이 상경하겠다고 하면 즉시 집을 사서 모든 사람을 부양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상경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그저 전자가 진사 시험에 어서 빨리 합격하여 얼른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직 더 누리실 수 있는 큰 복이 있을 겁니다. 내년이면 평평이가 시험을 끝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집안에 수재가 하나 더 늘게 될 테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테지요.” 

고대하가 부랴부랴 위로했다. 고청평은 올해 16살인데, 서당의 스승은 아직 배움이 조금 부족하니 내년에 시험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었다. 

소진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평이가 공부를 잘하니 내년에는 수재에 붙을 수 있고 말고요.”

작은집의 부부 두 사람은 아들의 학업을 매우 중시하여, 늘 명절이고 기념일이고 일이 있건 없건 서당의 스승님을 찾아갔는데, 스승님 역시 아주 열심히 가르쳐 줘서 수재 시험 합격은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소진씨는 모두가 분가하였으니, 작은집 자제들이 수재, 거인에 합격했으면 하고 바랐다. 단지 작은집은 가정형편이 어려웠는데, 지금 큰집인 그들은 사정이 넉넉해서 돈을 직접 빌려줄 수가 있었다. 

고계산과 노진씨는 듣더니 웃음을 지었다.

자손 대대로 장래가 유망해 보이니, 이는 노부부의 인생에서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 * *

멀리 경성에 있는 고청운은 고향집에서 어떤 논쟁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자기만 할 모양인지 계속 자다가 그제야 유유히 깨어났다.

막 깨어났을 때 그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뭔가 품속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순식간에 정신이 든 그는 갑자기 혼미했던 잠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급히 눈을 뜨고 보니 소석이 기대어 곤히 자고 있었다.

고청운은 멍하니 소석을 바라보았다. 소석은 둥그스름한 머리에 볼이 발그스름한 채 작은 입을 약간 벌리고 있었고, 입에서는 어렴풋이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때 아이는 눈을 감고 쿨쿨 자고 있었는데, 매우 미련스럽게도 그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고청운은 머리를 숙이고 아이의 정수리에 한 차례 입을 맞추었다. 그는 특유의 우유 냄새를 맡게 되자, 마음이 벅차오르며 강렬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니 이미 오후가 되었지만, 봄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며칠째 계속 내리고 있는 봄비가 사람을 번거롭게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속이 후련하게 느껴졌다.

바깥에 있던 여종이 그의 거동에 놀라 잠시 자리를 떠났고, 얼마 되지 않아 간미가 들어왔다. 

“소석이가 어떻게 들어와서 나랑 같이 자고 있었소?”

고청운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소석을 보면서 물었다. 

“차라리 풍한이 다 가신 다음에 같이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고청운이 원망했다.

“소석이는 2살 때부터 같은 방을 쓰지 않고 옆방에서 잤잖아요. 처음에는 함께 있으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 실패했는데, 기회를 잡고는 곧 당신 이불 속으로 파고들더군요. 

소석이 오늘 아침에 깨어난 후 앞마당에 와서 당신을 보러 가겠다고 계속 들볶아서 겨우 말렸는데, 점심나절이 되자마자 몰래 당신 방으로 뛰어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여기 와서는 스스로 작은 솜옷을 벗어버리고 바로 당신 옆에서 자면서 바짝 달라붙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놔뒀지요.”

간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지난 사정을 말해 주었다.

고청운은 소석의 성질을 잘 알았다. 이 꼬맹이는 항상 범을 산 밖으로 내보내는 계책을 써왔는데, 분명 하인들을 따돌려 뿌리치고 방으로 달려왔을 것이었다. 소석에게는 이런 계략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청운은 이 어린아이가 뜻밖에도 점심때까지 꾹 참고 있다가 왔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예뻐 보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는 소석의 행동 하나하나를 ‘똑똑하다, 잘한다’ 하면서 딱 이 정도의 어린아이의 재간을 보는 것이 좋았다. 

* * *

고청운의 풍한은 원래부터 심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신체 조건이 비교적 좋았으니, 며칠 동안 잘 먹고 약도 잘 먹자 씻은 듯이 풍한이 나았다.

성적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그는 자신이 쓴 답안을 외워 적어서 방인소에게 보여 주었다.

어떤 문제들은 딱 봐도 그가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었지만, 어떤 문제는 주임 시험관의 뜻을 봐야만 했다.

특히 그 전권(全權)과 관련된 문제를 본 방인소는 그의 의견에 아주 찬성한다고 하였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방인소는 이번 시험에서 전반적으로 그가 기량을 발휘하였다고 여겼다. 만약 그 문제가 주임 시험관의 의도와 부합하기만 한다면 회시에 합격할 것이고, 반대라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그와 생각이 거의 비슷했다.

성적을 기다리는 동안, 고청운은 독서는 잠시 제쳐두고, 모험기의 결말을 다 써냈다. 연재한 지 2년여가 되어, 모두 백만 자를 넘게 집필하였으니, 그야말로 장편이라 칭할 만했다. 그는 이제 모든 상상력을 죄다 동원하여 소재를 소진하고, 마침내 끝을 낼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진사에 합격한다면 또 다른 인생의 단계로 넘어가야 했기에 적응을 위해 글을 쓸 시간은 없을 것이었다. 시간이 있으면 또 쓸 수 있으니, 당분간은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되레 집에 찾아온 사장정이 그보다 더 아쉬워했다. 

“자네 글은 더 안 쓰는가? 이 글은 지금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네. 화본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 ‘일침황량’이라는 큰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이 이름은 매년 200냥이 넘는 이윤을 남겨주는 이름이야.”

사실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도 있었다. 고청운의 화본이 유명해지고 나니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가 약간의 은자를 써서 관청 사람들에게 불법 복제를 단속한다면, 그들은 더욱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생각보다는 더 적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이미 훌륭했다. 적어도 고청운에게는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그리고 육훤을 더 안 가르치게 되었을 때 후부에서 그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은자 100냥이 넘는 큰돈도 주었다. 

이로써 그의 수중에는 지금 모두 500냥의 은자가 모여 있었다. 많든 적든 이 은전은 그에게 있어서만은 이미 큰돈이었다.

“지금 시중에 내 작풍을 따라한 작품이 많지 않은가? 어떤 설정은 내 것과 비슷하던데, 모두들 이젠 예전처럼 자네를 쫓아다니며 언제 책이 나오냐고 묻지는 않을 게야. 화본이 유명해지면 그에 맞는 글을 쓰는 사람이 생기고, 그들이 쓴 글 중 나보다 더 나은 것도 있네. 나는 단지 가장 먼저 연재하였기 때문에 열렬한 독자들을 먼저 확보한 덕에 돈을 계속 벌 수 있었을 뿐이야.”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정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처음에 그는 다른 사람이 고청운의 작풍을 따라 하는 것에 매우 화가 났지만, 마음속으로 이는 불가피한 것이며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고청운이 화본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 뒤를 쫓아다니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사장정의 마음은 저절로 허탈해졌다.

이 화본 덕에 사장정은 경성에서 유명한 유지의 2대 도련님들이 어울리는 사교집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들 무리는 사장정을 신봉했었다.

“맞아, 자네랑 공주와의 혼사는 정해진 건가? 확정이 된 거지?”

고청운은 문득 그 일이 생각나 급히 물었다. 

사장정과 안락공주는 2년 전 자주 분쟁이 있어 보였고, 이후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다만 물 가까이 있는 누대에서 달빛을 먼저 받는다고, 가까이 있는 것이 먼저 이득을 본다지 않는가. 그는 이 둘이 서로 연락을 하고 있는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공주 얘기라서 물어보기가 민망했을 뿐이었다.

고청운이 이 말을 하자, 사장정은 얼굴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몰래 고청운에게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

“이변이 없는 한 다음 달에 폐하께서 성지를 내리신다네. 하하, 우리 아버지는 이미 소식을 들으셨어. 요 며칠 그는 우리 어머니의 혼수를 내게 넘겨주실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넘겨주셨지. 이미 써버리고 없어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아버지가 그래, 거칠어 보여도 세심하신 면이 있으시지.”

“그건 좋은데.”

고청운은 그들 부자간의 관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라 한마디 하려는 걸 참는 수밖에 없었다. 영평백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이 시대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라서 사장정도 원망할 수 없을 테고, 아버지의 과실도 아니니 그저 참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내가 혼사가 정해지자마자 공주의 거처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아버지도 나를 신경 쓰시지 못하셨네.”

사장정은 하하 웃으며 아주 즐거워했다.

고청운은 문득 사장정이 일전에 공주가 황제를 닮았다고 불평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에게는 그 점이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는데, 나중에 그로 인해 집안 기강이 문란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사장정이 공주를 존중하면 상관은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공주가 폐하를 닮았다고 했는데, 그 신혼의 밤에 사장정은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하하, 안 돼. 생각만 해도 뇌에 구멍이 날 것 같군. 더는 상상하지 말자. 그렇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사장정과 공주를 대면하지 못할지도 몰라.’

하여튼 사장정은 고청운이 글을 쓰지 않는 것을 아쉬웠지만, 고청운의 결정이 번복되지 않을 것을 알고 더는 권하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한 번 더 쓰겠지.’ 

사정정은 언제든지 기다릴 것이었다.

“이 필명으로 화본을 한 편 더 쓰면, 자네가 관리가 되고나서 받는 녹봉보다도 더 수입이 클 것이네. 그래서 내가 계속 화본을 계속 집필하라고 하는 게야. 자네는 확실히 이쪽으로 천부적이니 말이야.”

이것은 사장정의 속마음일 뿐이었다. 당연히 고청운의 신분으론 관리가 되는 것이 더 지내기 좋을 것이기에, 사장정은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알았네.”

고청운은 이런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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