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71)화 (171/504)

171화. 그리운 손자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다른 호실에서 응시생들이 고함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릴 때, 또 다른 일부 다른 사람들은 고청운과 매한가지로 묵묵히 화로를 보며 시험 답안을 복기해보고 있었다.

시험을 그렇게 많이 치러봤는데도 응시생들의 다양한 정서의 발현은 그의 호기심을 조금도 자극하지 못했다. 별수 없이 볼꼴, 못 볼 꼴을 다 봐왔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고청운도 지금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고청운은 전생에 대한 기억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하 왕조의 농가 출신 거인으로서, 이미 현지의 토착민인 듯 지나가 버린 일은 그저 가슴에 품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감성 탓인지, 그는 전생에 대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대추주 병을 본 그는 원래 술을 마시려고 했는데 코가 너무 막혀서 좀 아픈 느낌까지 들자, 병이 심해질까 봐 감히 엄두를 못 냈다.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나갈 수 있게 된 고청운은 고삼원의 부축을 받으며 급히 사람들을 멀리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모두 기쁨에 넘쳐 있는 모습들이었다.

고청운은 궁금해서 물었다.

“성적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다들 왜 이렇게 기뻐하고 계시나요? 아니면 또 다른 경사가 있습니까?”

“미아가 회임을 했더구나.”

“네?”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미아가 또 회임했어요? 벌써 두 달째라고요?”

‘세상에, 내가 쓰는 피임법이 완전한 게 아니었다니! 그물에서 벗어난 물고기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미아가 회임했다는 말에 고청운이 보인 첫 반응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크게 기뻐했다!

그에게 또 하나의 아이가 생기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그들의 둘째 아이가 찾아왔다!

비록 이 아이의 소식이 의외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사고였다. 어차피 그들은 몇 개월만 더 기다렸다가 바로 준비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생각했었던 것은 만일 혹시나 시험에 급제한다면 같이 고향에 돌아갈 텐데, 간미가 회임했다면 아마 이동에 불편이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기왕 아이가 생겼으니, 기쁘게 기꺼이 아이를 맞이하면 되었다.

“미아…….”

고청운은 그녀의 부드러운 두 손을 잡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생각해보고 어렵게 말을 열었다. 

“당신, 수고했소!”

간미는 그의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녀는 마음이 좀 놓였는데, 남편이 여태껏 별로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계획치 않게 아이를 가지게 되어 그가 언짢아할까 봐 걱정했던 그녀는 지금 그의 반응을 보니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며칠 전에 이미 스스로 회임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 날 아침 어죽의 향을 맡자마자 크게 비린내가 난다고 느껴서 토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회임이 이미 첫 번째가 아니었기에, 바로 자신의 월경주기를 따져 보고는 이미 회임한 날짜가 한 달이 넘었다는 것을 계산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부군을 도와 그의 시험 준비를 하느라 바빴는데 여기에 심리적인 긴장감까지 겹쳐서 줄곧 변화에 주의하지 못했었다. 아이가 생긴 것을 눈치챘을 때는 또 회시 시험 기간 동안 부군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줄곧 꾹 참고 말하지 않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마침 의원을 모셔 자신의 맥을 짚어 달라고 부탁하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회임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은 문득 시험 직전의 일을 떠올렸다. 간미는 날마다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기 위해 산을 갔었던 것이다. 

그가 급히 물었다.

“부인, 일전에 매일매일 등산을 했었는데 몸에 별 이상은 없소?"

마음이 따뜻해진 간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요.”

부군에게 시집간 뒤엔 늘 식사 후에 그가 자신을 끌고 다니며 산책을 했었고, 상경한 뒤에는 매달 절에 다녀서 줄곧 건강했다.

“자, 이제 빨리 의원을 다시 불러서 네 남편 청운이 좀 진맥해달라고 하자꾸나.”

연 씨는 마침내 말할 기회를 찾아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지금 집에 없었는데, 관서에 가서 공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집에 같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여간.” 

그녀는 남몰래 오랫동안 중얼거렸다.

그 말에 간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급히 옆방에서 불을 쬐고 있는 의원을 불러와서 진찰을 보게 하였다. 

의원은 고청운을 진찰해 준 후 처방전 하나만 남기고 그들에게 약을 지어 먹이라고 당부하고는 심부름꾼을 데리고 급히 서둘러 떠났다. 그에게는 아직 봐야 할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의원이 고청운이 가벼운 풍한에 들었을 뿐이라 했기에, 연 씨와 간미는 마음을 놓았다. 곧이어 연 씨가 처방전대로 약을 달였다.

고청운은 시험을 치르는 며칠 동안 목욕을 하지 않았고, 얼마 전에 몸을 조금 닦았을 뿐이었다. 이제 겨우 시험이 끝났으니, 그는 너무나 피곤할망정 꼭 목욕을 해야 죽을 먹고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미는 말로는 그를 이길 수가 없어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잔소리는 하였다. 

“풍한이 들어서도 꼭 굳이 목욕을 해야 하다니 정말 알 수가 없네요.”

“입춘(立春)이더러 옷 좀 갖다 달라고 해 주면 되오. 당신은 회임하였으니 일을 손에서 좀 놓으시오.” 

고청운이 그녀를 말리면서 말했다. 

“소석이는 아직도 자오?”

입춘은 그들이 뚜쟁이를 통해 사온 여종이었다. 얼마 전 이들은 모두 10대 초반의 여종 두 명을 사 왔는데, 다른 한 명의 이름은 곡우(谷雨)였다. 또 12살 된 사내종 한 명인 소만(小满)이도 있었다. 

나라가 이렇게 크다 보니 매년 어떤 곳들은 수재나 가뭄 등으로 인해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늘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뚜쟁이들의 수중에 고작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랑 사내아이들이 들어가 노예로 팔리곤 하였다.

그전에 있던 간미의 여종 영향은 더 이상 이 집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본래 경성 아래에 어느 현 출신의 사람인데, 이제 혼기가 차서 마침 그녀의 부모가 찾아와, 노비계약금도 다 필요 없으니 속량(*赎身: 노비·기생 등이 돈이나 다른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를 얻는 것)을 해 주면 집으로 데려가 혼인을 시키겠다고 부탁했던 것이다.

혜향은 고아로 가족이 없었기에 방 집사의 작은 손자와 성혼을 시켜주었다. 지금 그녀는 신분이 승격되어 집사 부인이 되었고, 특별히 두 여종을 가르쳤다.

“어린아이는 원래 잠이 많잖아요. 어젯밤에도 당신을 보겠다고 난리를 쳐서 겨우 재웠어요.”

간미가 또 말했다.

“그리고 제 배는 아직 안 불러 왔어요. 또 몸도 얼마나 좋은데요. 처음 회임하는 것도 아닌데, 옷 찾는 거 하나쯤이야 뭐가 어렵겠어요?”

고청운은 그제야 더 입을 열지 않았다.

목욕한 뒤 죽 먹고 약을 먹은 고청운은 더 이상 온몸의 피로를 참지 못하고, 바로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 * *

월성 임양부 임산현 임계촌.

고계산은 밤새 잠을 못 자고 일찌감치 일어났다.

그의 동작은 비록 매우 작았지만, 늙어서 가뜩이나 얕은 잠에 빠져 있던 노진씨는 이내 잠에서 깨어났다.

노진씨는 하품을 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물었다.

“영감, 지금 시간이 어느 때입니까. 당신은 이제 직접 모내기를 할 필요도 없는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고계산이 대답했다.

“오늘 아침이 우리 전자가 시험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 날 아니오. 그 대인들이 답안지를 첨삭하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향불을 피우고 우리 전자가 진사에 합격할 수 있도록, 건강할 수 있도록, 비호해달라고 빌어야지.”

노진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따라 일어났다.

노부부가 서로 부축하여 방문을 여니, 지금 막 부엌에서는 부엌일이 한창이었다.

노부부가 안채에 이르니 조종(祖宗)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게 보였다. 두 노인은 위패 앞에서 세 가닥의 향에 불을 붙이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세 번 절을 하고서야 향로에 향을 꽂았다.

그들이 방금 향을 올리는 일을 마치고 나자 고대하와 소진씨도 왔는데, 그 둘 다 용무는 매한가지였다.

그들이 향을 피우고 나서야, 모두가 겨우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잘 지내는데, 전자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요 며칠 동이 틀 때도 얇은 솜옷 하나면 괜찮은데, 제가 듣기로는 경성 쪽은 아직 아주 춥다고 하더라고요. 저번 시험 때는 우리 전자가 고뿔까지 걸렸었는데…….”

소진씨는 입을 열자마자 걱정이 태산이었다.

요 9일간의 시험에 있어 그녀는 줄곧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매일 밤 뒤척거리며 속만 끓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들의 합격을 비는 동안, 그녀는 아들의 평안과 건강을 빌어왔다.

“이제 3월이니 경성이 꼭 추운 것만은 아닐 것이오. 보시오, 머지않아 전자가 서신을 보내올 것이니.”

고대하도 걱정이 되었지만, 아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고청운은 두 달마다 한 번씩 그에게 서신을 보내왔다. 그들은 표국을 통해서나 혹은 역참을 통과하는 지인을 통해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때가 맞을 때는 인편에 부탁하여 물건을 함께 더 부탁해 전하기도 하였다.

“전자의 몸은 문제없을 게야. 건강하니 반드시 별 탈 없을 거다.”

노진씨는 소진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불길한 입을 놀리지 말거라.”

소진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조상님이 우리를 돌봐 주실 테니, 우리 전자는 진사에 합격할 거야.”

노진씨는 손자를 몹시 그리워했다. 작년엔 손자가 안 돌아온다는 걸 알고 실망했는데, 손자가 올해 진사에 합격하면 어김없이 돌아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게 될 거라며 다시 기대하고 있었다. 

“반드시 할 수 있소. 분명히 합격할 것이오.”

고계산은 주방에서 가져다주는 진한 차로 양치질을 하고 나서 긍정적으로 말했다. 

* * *

음력 3월 9일 아침, 고씨 집안에서는 사당을 열어 조상님께 제사를 지냈다. 고씨 집안의 사내들이 모두 와서 제사를 지냈는데, 현성에 사는 둘째 집 일가족조차도 모두 불러들여 제사를 거행하였다.

‘조상님께서 보우해 주실 테니 전자는 반드시 시험에 합격할 거야. 우리 전자가 얼마나 총명한데, 만약 낙방한다면……. 아, 퉤! 아직 합격할 때가 되지 않은 것뿐이지. 그래도 다음 시험에서는 확실히 합격할 거야.’

이때 정원에서 샥샥샥 하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것은 진 집사의 부인인 진 부인이 일어나서 정원을 청소하는 소리였다.

“오늘 모내기를 해야 하지 않느냐?”

고계산이 고대하에게 물었다.

고대하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고계산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속으로만 한숨을 쉬더니 불평했다.

“아휴, 이제 우리 고씨 집안 가문은 먹고 입는 건 걱정이 없으니, 변화를 주어 사회적 지위를 높여야 하는 게 아니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를 부러워하더구나. 이 늙은이는 늙어빠졌어도 사람들에게 춘부장님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런 우리 집안에도 고민은 있는데, 봐라, 둘째네도 모두 현성에 가서 살고 있어서 두 아이 모두 현 안의 서당에서 공부하느라, 열흘 보름 만에 겨우 한 번 돌아오지 않느냐. 또 우리 전자는 경성이란 그 아득히 먼 곳에 있으니,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만나기 어렵지 뭐냐. 증손자마저 벌써 3살인데 아직 한 번을 못 봤으니, 조상님들께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노진씨는 듣고 있다 말고 ‘아이고’ 하는 소리를 내더니 엉엉 울면서 말했다.

“우리 전자는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게냐? 설마 내가 죽어도 안 돌아와 보는 것은 아니겠지?”

요즘 입맛이 좀 안 좋아지더니, 사람은 늙으면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모두 놀라서 급히 노부인을 둘러싸고, 입을 모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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