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뜻밖의 문제
제2장의 시험은 책론, 잡문과 시부 문항이었다. 모두 매우 실질적인 문제들이었는데, 그중 두 문제의 책론 문항은 많은 방면의 지식을 동원해야 하는 문제였다. 산술, 율법, 천문학 등의 지식을 포함하고 있는 종합적인 문제로서, 응시생들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시험하였다.
숯이 있고 또 몸에 걸칠 수 있는 옷이 많아진 덕분에 제1장 시험 때보다 훨씬 따뜻했기에, 고청운은 손이 좀 굳어 있는 것 빼고는 정신이 아주 또렷하다고 생각되었다. 자기가 쓴 답안도 그런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써야 할 걸 다 써 내려간 그는 또 한 번 세세히 검토해보고 나니, 스스로 이미 자기 기량을 잘 발휘했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중 책론 한 문항은 예전에 그와 방인소가 토론해 본 적이 있던 내용이었다. 이후에 그는 또 서면으로 책론 답안을 따로 작성하여 방인소에게 보이기까지 했었기에, 지금 이 문제를 보자마자 속으로 너무 기뻐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비록 그때와는 조금 달랐지만, 자신이 작성했었던 내용을 조금만 수정하면 그대로 답안으로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시험장에서 써 내려가는 문장은 평소처럼 정성을 다해 고친 글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는데, 시험장에서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글의 수준이 아주 높긴 힘들고 논제에 맞추어 겨우 답변을 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이 다음에 스승님을 족집게 스승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네.’
결국 방인소가 고청운에게 한 문제를 짚어준 거나 다름없었다.
한순간에 고청운의 방인소에 대한 탄복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러나 고청운은 마지막 책론 문제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매한가지였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웃한 한 응시생이 질겁하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이 문제를 보고 있지 않았었을 수도 있었다.
책론 문항의 제목은 ‘진나라의 무평오는 독단적으로 시련을 극복하였고, 부견벌은 진나라가 독단으로 임해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제환은 전문적으로 관직의 임무를 수행해 패권을 장악하고, 연쾌는 아들로서의 임무만 수행하여 실패하였다. 이 같은 일에 어떠한 의견이 있는지 서술하라.’ 였다.
고청운은 이 문제를 한 글자씩 읽어도 보고 다시 또 반복하여 생각하며, 자신이 맞게 이해한 것인지 몇 번이고 재확인하였다.
이번 문제는 편한 말로 직역하면,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장단점을 서술하라’ 라는 것이었다.
‘권력을 독점하는 것, 전권(全權) 말인가? 이 문제는 지금 황제 폐하를 전제로 하라는 게 아닌가?’
고청운은 이전에 읽어왔던 관보의 내용과 가끔 방인소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상기했다.
황제는 이미 등극한 지 6년이 넘었는데, 3년 전에 태자를 책봉하려 할 때 당시 일부 대신들의 반대로 인해 책봉에 관한 칙령을 하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제기된 책봉 건에 대해서는 신하들이 반대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황제는 좌승상 경 대인과 호흡이 아주 잘 맞는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회견을 할 때 보면, 둘은 마음이 맞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하여간 그는 잘 아는 바가 없었으나, 방인소의 말을 들어봐도 좌승상은 거의 반대하는 법이 없이 황제의 말에 매우 순종적이었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갑자기 이런 문제를 마주하게 되니 한동안 이 문제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엊그제 가죽옷 사건만 해도, 조정의 신하들이 황제의 의견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어렵사리 황제의 칙령이 순조롭게 아래로 하달된 경우가 아니었던가.
이것은 독재 정치가 출현할 조짐이었다! 그렇다면 주임 시험관이 이런 문제를 제출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고청운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주임 시험관이 왜 이런 문제를 냈는지 의도가 파악되지 않았던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황제의 심복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거짓일 수는 없지 않은가? 불가능한 일이지! 이 조정이라는 곳에서 황제를 제외하고 누가 가장 큰 그늘이 되어 줄 수 있겠는가? 가장 큰 후원자가 바로 지금의 실세일 텐데.’
그런데 이 문제엔 은근히 황제가 너무 권력을 독점하여 상권이 서로 침해받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송나라 이래로 황제와 사대부가 천하를 함께 다스리자는 구호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는데, 문신들은 모두 황제가 그저 옷소매를 늘어뜨린 채 되는대로 그들을 내버려 두도록 평화롭고 겸허하게 천하를 다스리기를 원했다. 천하는 사대부들이 발전시키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송나라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초월한 자인 황제는 또다시 등극할 것이고, 중국 왕조는 여전히 책을 읽는 학자를 의지하여 천하를 다스릴 것이었다. 그러한 풍조는 지금까지 만연해왔다. 책을 읽는 학자의 지위는 줄곧 매우 높아, 하나하나가 모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몸을 닦고 집을 안정시킨 후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함)’라는 원대한 이상을 실현해 오고 있었는데, 특히나 지금과 같은 평화의 시대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여기서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한 번 해보자면, 만약 이러한 시대에 독재 정치를 하는 황제가 나타나게 된다면 중앙 집권적 권력은 모두 그의 손에 달렸으므로, 황제로 하여금 생과 사가 결정지어지게 될 것이었다.
고청운은 문득 평행시공에 놓인 또 다른 청나라 왕조에서, ‘노예(*奴才: 노비, 명청시대 무신들 혹은 만주족이 황제에게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라고 칭해지던 관리들이 덜덜 떨던 모습이 생각났다.
‘제길!’
가까스로 관료가 되었는데 아직도 말끝마다 노예라고 자칭하며 걸핏하면 무릎을 꿇어야 하다니, 온 천하가 다 그 사람의 집노예가 될 터였다.
이 시대의 관리들은 황제의 앞에서 걸핏하면 무릎을 꿇지는 않았는데, 조정에 들 수 있는 대신들의 경우는 심지어 서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이것을 좌식 논쟁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조정에서는 관리들을 예우하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다 보니 너무 멀리 가 버렸구나!’
고청운은 얼른 생각을 되돌려,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문제는 아마 독단적인 정치가 행해지는 시국에 대한 의견과 고찰을 묻는 의도일 거야. 음, 아마 그럴 거야. 그렇다면 나는 어떤 풀이를 해서 답안을 내놓아야 할까? 황제의 전제를 지지하여 권력을 더욱 중앙으로 집권시켜야 하나? 아니면 신하의 권력과 함께 균형을 이루는 것을 지지해야 하나?’
고청운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는 주임 시험관인 백엽이 황제의 심복이라고 생각하니 망설여지기는 하였지만, 엉덩이가 머리를 좌지우지하게 한다고 믿었다. 이 말은 자기가 앉을 수 있는 위치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바뀐다는 것으로, 사람은 자신이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따라 이익을 쫓아 선택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사대부, 황제 사이의 근본적인 이익이 충돌하게 되면, 백엽은 사대부가 서 있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컸다. 황제의 정책이 대다수 관료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면, 아무리 황제의 심복이라 해도 황제의 의견에 반대해 온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이 문제만은 다른 시험관이 낸 문제인 걸까? 백 대인이 반대 의견이 아니라면 어쩌지?’
지금 그의 신분으로는 황제와 군신의 군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의견을 내는 것이 비교적 좋았다. 무엇이든지 황제가 말하는 대로만 이행해야 한다면 안정감이라는 것이 너무 없었던 것이다.
‘그래, 엉덩이가 머리를 좌우하잖아.’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떤 답안을 내놓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명의로 된 면세의 혜택을 받고 있는 200묘의 전답을 생각해 보자, 진사에 합격하고 나면 면세의 혜택을 받는 전답은 1,000묘에 이른다. 만약에 이 혜택들이 취소되고, 급료로 받고 있던 일체의 은자와 곡식들까지 끊긴다면……. 비록 세금을 내기 시작하고 급료를 받지 않는다면 이건 국가에 이롭기야 하겠지만, 내 이익에 관련되어서는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딴 공이……. 이런, 생각이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지금은 시험장에 있으므로, 그는 우선 점수에 중점을 두어 주임 시험관의 의도에 맞도록 답안을 작성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고청운은 이 문항이 황제의 의중일 수도 혹은 더 큰 가능성으로 사대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백엽의 의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백엽의 황제에 대한 탐색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랬다, 자고로 시험이란 어떤 문제든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궁리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답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만약 그가 황제를 선택한다면 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었는데, 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결국 답안지를 첨삭하는 것은 관리이지 황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중에 그를 바라보는 관료들의 시선이 따가울 수 있다는 후유증이 따라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대신들의 권익에 치중된 답변을 써낸다면, 이제 겨우 46세가 된 황제 쪽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고청운은 문득 동풍(혁명세력)이 서풍(반동세력)을 압도하지 않으면 서풍이 동풍을 압도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은 진보세력이 반동세력을 압도하지 않으면 반동세력이 진보세력을 무너뜨린다는, 두 세력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음을 뜻했다.
멍하니 앉아 있던 그는 손발이 얼어 추위에 몸서리가 쳐지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숯 화로를 보았다. 숯 화로에는 불똥만 남아 있었는데, 숯이 다 타버렸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고청운은 서둘러 숯을 다시 꺼내어 불을 붙이기 시작했고, 좁은 호실 안에서 끊임없이 발을 구르며, 마음속으로는 또 끊임없이 득과 실을 가늠해 보았다.
결국 시간이 너무 늦었음을 발견한 고청운은 답안을 쓸 시간이 부족할까 봐 얼른 앉아서 붓에 먹물에 적신 후 답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생은 바른 도리란 무릇 하늘과 땅이 하루라도 서로를 차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듣고 배워왔습니다. 삶을 돌보고 그릇됨을 척결하는 일은 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에 올바른 도리를 이행하는 자인 재상의 권익은 세상의 주인이자 바른 이치를 행하는 자인 천자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천자께서 재상의 권익을 침해하면 바른 이치가 흔들리게 될 겁니다.
삼성(三省)의 추밀을 조정이라 하는데 천자가 큰 정사를 도모하고, 칙령을 내리시어…….”
논점을 밝히자면, 이 글의 주제는 바로 신하의 권익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권력이 황제에게 돌아간다면 그 대신들은 그저 황제의 꼭두각시가 아니겠는가.
고청운은 책을 읽는 학자 출신이고 시험을 보고 나면 문신이 될 터이니 당연히 사대부 편을 들어야 했다. 이후 황제가 자신에게 갖게 될 감상에 대해서는 우선 제쳐놓고, 일단은 먼저 회시에 급제하고 봐야 했다.
고청운은 이 단락을 다 쓰고 나서 마음을 안정시킨 뒤, 다시 맑은 물을 먹에 갈아 넣고 계속해서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주장을 뒷받침할 예제를 써넣고, 다시 한번 문장을 다듬은 후 예로 든 사례가 적합한지 따져보았다.
고청운이 이 문제에 대한 답안을 다 작성했을 때 시험장은 이미 등불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그는 답안지를 제출하고 난 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땀이 맺히다니!’
고청운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는 이 문제에 쓴 답이 이미 그의 미래 관직 생활을 결정지어 버릴 것만 같아 정신적 고통이 매우 심했다. 인생의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시험장에서까지 이런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주임 시험관이 정말 얄미웠다! 뜻밖에 이런 문제를 내서 이런 사소한 일로 난처하게 만들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제출해 버린 답안지였기에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병사가 공격해 오면 장군이 막고, 물이 밀려오면 흙으로 막으면 되었다. 백방으로 방법을 강구하여 막아내면 그만이었다. 그 어떤 사태에도 대처할 방법이 있었다. 정 방법이 없으면 벼슬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생명에 위협을 줄 만한 일만 발생하지 않으면 되었다.
고청운은 이 책론 문항이 아마도 전체 회시 시험의 관건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가 기본적으로 그의 등수를 확정 지을 것이었다.
만약 이번 시험 결과에서 석차가 낮다면, 그의 답안이 주임 시험관의 의도에 맞지 않았다는 것일 테니, 다른 문제를 아무리 잘 풀었다고 한들 석차가 뒤에 머무를 것이었다. 만약 옳은 답을 한 것이라고 하면, 그의 석차는 앞에 위치할 터였다.
그날 밤 시험이 너무 고되었던 탓인지 아니면 날씨가 추워서인지, 응시생들은 모두 목을 아끼고 말하기를 꺼렸다. 시험장 곳곳은 그저 연기에 그을리고 있었고 간간이 기침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