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68)화 (168/504)

168화. 재고하다 (3)

다음 날, 고청운은 산술과 시부에 대한 문제를 풀었는데, 비록 산술 문제의 양이 예년보다는 더 많아졌지만 순조롭게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산술 문항이 더 어렵게 나오지 않아서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쉬웠고, 되레 시부 문항에 있어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를 잘 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종난산에 쌓인 눈을 바라보니(望终南山余雪)’의 구절에 대해선 조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날씨가 추운데 거기에 대고 응시자들로 하여금 눈에 대한 시를 쓰게 하다니. 비록 그 추운 설원의 장소에 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떨리고 있는 다리 때문에 시를 짓는 내내 심경이 더 비참해졌다.

이렇게 첫 번째 장의 시험은 순조롭게 지나갔다. 

고청운은 면역력이 좀 더 강해진 것인지 콧물만을 조금 흘리고 있을 뿐, 머리에서는 열도 아직 안 나고 다른 고뿔 증상도 아직 발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몸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군.’ 

아직까지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6일간을 더 고사장에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마지막까지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십수 년 동안 단련한 신체 면역력이 자신의 생각보다 좀 더 좋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번에 그는 대추주 한 병을 다 마시고서야 추위를 물릴 수 있었다. 지난번 시험 때는 9일 동안 대추주 한 병을 다 못 마셨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결론적으로 이번이 저번 시험 때보다는 훨씬 더 추운 것이 확실했다. 특히 어제와 오늘은 정말 한겨울인 것처럼 온도가 떨어졌다.

* * *

3월 11일 아침이 되어 고사장을 나설 때, 고청운은 일부 사람들이 끊임없이 기침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미 풍한이 들어 얼굴색이 붉고 두 눈은 몽롱하여, 걸을 때 병사들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밖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조정에서 오늘 새로운 명을 내렸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올해 회시는 아직 날씨가 추우므로 한시적으로 가죽옷을 임의적으로 착용할 수 있게 한다. 가죽옷은 겉에, 모포로 된 옷은 속에 착용 가능하다. 크고 작은 의자 모두 반입이 허용되지만, 1단짜리 의자로만 허용하며, 이중으로 바닥을 짚는 방식의 의자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른 검색관들이 여전히 전례대로 몸수색을 진행한다.’

‘세상에나, 너무 잘 되었잖아? 드디어 가죽옷을 입을 수 있게 되다니!’

“폐하께서는 영명하십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체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비록 가죽옷은 겉에, 모포로 된 옷은 속에만 착용 가능하다고는 하나 예전의 홑옷밖에 못 입을 때보다야 훨씬 더 따뜻할 것이었다. 

모두 진심으로 황궁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했다. 황제가 자신들을 보살펴 주었다는 생각에 감동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병색이 완연한 거인들을 보고 있자면 어찌하여 황제가 진작 이에 대한 발표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만약 3일만 일찍 발표되었어도 그들이 병이 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지금 이 발표는 도대체 계속 억지로 버티며 시험을 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할 만큼 정말 사람을 괴롭히는 문제가 되었다. 

밖으로 나온 뒤 찬바람을 쐬고 또 한번 발표 때문에 흥분하고 나자, 고청운은 어질어질해져서 곧바로 마차에 올라탔고, 잠이 든 채로 방택으로 향했다.

* * *

고청운이 마차에 곯아떨어져 있는 것을 본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결국 의원이 보고 난 후 고청운의 건강은 괜찮으며 약을 제때 먹으면 큰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나서야, 가족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의원은 그의 몸이 건장하다고 연신 감탄했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면 틀림없이 며칠은 더 약을 먹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간미는 의원의 말을 듣자마자 마침내 마음을 놓고, 밥과 탕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방인소는 서둘러 사람을 보내 방자명의 상태를 알아보게 하였는데, 그의 상태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스승님, 폐하께서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을까요?”

정신을 차린 고청운은 옷을 갈아입고 탕약을 마신 뒤, 두툼한 솜이불 속에 뜨거운 물주머니를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렇다면 목욕은 어떻게 할까? 이렇게 추운데 당연히 안 씻는 거지, 찬 기운이라도 들면 어쩌겠는가?

이미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그는 지금 앞쪽 정원에 기거하고 있었다. 혹여나 감기를 소석에게 옮길까 염려되어서였다. 

방인소가 그의 침상 앞에 걸터앉았다.

“어제 날이 추운데 폐하께서 어화원(*御花园: 황제가 노니는 화원)에 가셔서 매화를 감상하시다가 바람이 드셔서 용체에 가벼운 증상이 있었다는구나. 오늘 아침 일찍 기침을 몇 번 하시더니 바로 명령을 내리셨다. 이 일은 너희가 알면 안 되니, 소문을 밖으로 퍼뜨리지 말거라.”

궁중에서 특별히 정보를 봉쇄하지 않는 한, 신하들은 황제의 일부 언행을 듣고 재빨리 알아채서 황제의 마음을 헤아려 조언을 하곤 했다. 

특히 이번에는 황제가 딱히 숨기지 않은 상황이라, 쉽게 조언할 수 있었다.

물론 누가 가죽옷을 겉에 입고 모포로 된 옷은 안쪽에 입을 수 있게 하라고 조언해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하면 확실히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황제가 바람이 들어 고뿔의 전조증상이 있다는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상쾌해졌다!

몸소 체험한 경험은 참된 지식을 낳는다고 하지 않던가. 생각해보라, 황제는 그렇게 옷을 많이 입고도 어화원에 서서 감기에 들었는데, 응시생들은 그 호실 속의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겠냐는 말이다.

물론 그저 살아남기가 척박했다는 것이고, 고통이 그만큼 생생했다는 설명을 하려는 것뿐이었다.

사흘 밤잠을 설치면서 가까스로 버틴 고청운은 방인소와 몇 마디를 나눈 뒤 소석의 안부를 물었고, 소석이 자기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 말고는 모두 다 좋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만 쿨쿨 잠이 들었다.

너무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잠은 곧바로 저녁까지 이어졌다. 그는 점심 때 간미가 깨워서 고기죽 한 그릇을 먹고 약을 한 번 먹은 후 계속해서 잠만 잤고, 저녁때가 되어서 이번에도 간미가 깨워줘서 저녁밥을 먹었다.

약의 효능인지 잠을 충분히 잔 덕분인지, 고청운은 자신의 정신이 아주 맑고 몸에 별다른 불편한 증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먼저 소석과 문을 사이에 두고 몇 마디를 나눴는데, 소석 옆에서는 연 씨가 아이를 보고 있었다. 

“아빠, 요 며칠 어디에 가셨어요?”

소석이 아이 특유의 목소리와 말투로 물었다. 그는 글자를 정확하게 잘 사용했다.

“아비는 시험 보러 다녀왔지.”

고청운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하다가, 아이가 밖에서 추위에 떨까 봐 서둘러 후원으로 돌아가게 했다.

“부군, 우선 와서 걸쳐보세요. 이 가죽옷이면 될까요?”

간미는 그가 다시 잠들기 시작할까 봐 급히 말했다. 

“이제 시내에서 가죽옷이란 가죽옷은 모두 털리고 없어요. 우리는 예년에 다 솜옷을 입었었기에 집에 가죽옷이 없었거든요. 이것도 겨우 괜찮은 가죽옷 한 벌을 확보한 거예요.”

고청운은 가죽옷을 입어보았는데, 의외로 옷이 조금 컸다.

“보름 전에 재본 치수에 맞추어 주문한 건데, 뜻밖에도 부군께서 살이 빠지셨군요. 겨우 보름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나!”

간미는 눈이 약간 붉어지며 말했다.

“정말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네요.”

“우수한 사람들 위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소.”

고청운은 초연해진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가죽옷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겉에 천으로 마감이 되어있지 않아 바람이 좀 새고 따뜻함이 덜했다.

하지만, 홑옷보다야 훨씬 나아 만족할 수 있었다.

* * *

제2장의 시험 날, 결국 입장할 때 몸수색에서 누군가 부정한 쪽지를 찾아냈다!

쪽지를 소지했던 노년의 거인은 이미 얼굴이 납빛이 되어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쪽지를 보니, 종이 위에는 모든 글자가 3mm도 안 되는 크기의 해서체로 쓰여 있었는데, ‘작은 쌀처럼 가늘고 획은 침으로 쓴 듯하다.’ 라고 일컬어지는 바로 그 전설의 휴대체인 듯했다.

고청운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안 좋았다. 

‘저 사람의 공명은 이미 높은 편이어서 보통 먹고 살기에는 걱정이 없을 정도일 텐데, 시험을 치려고 하니 위험을 무릅쓰면서 지름길을 가려고 한 것 같구나.’

본 왕조에서는 회시의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매우 엄격하게 진행하였는데, 본 왕조의 규범 의례에 따라 부정행위를 저지른 자는 벌금형을 받게 되었다. 죄가 무거운 자는 칼을 3개월 동안 몸에 씌우고 100대의 곤장을 맞아야 했으며, 공명을 박탈당하고 결국 변방으로 유배되어 군대에 충원되었다. 지금과 같이 과거 시험과 관련된 쪽지를 준비한 사람이 발견되면 3대가 연루되었다.

저 쪽지들을 보면서 고청운은 또 한 무리의 사람들 머리가 땅에 떨어질 거라는 걸 알았다.

지금 이 상황은 황제의 보살핌으로 이제 막 추위에서 조금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가죽옷을 입고 들어 올 수 있게 해준 황제의 뺨을 때린 격이었던 것이다. 

찬바람이 불어오자, 고청운은 온몸이 더 추워졌다.

고청운과 방자명은 서로 마주 보았는데 얼굴들이 무표정했다.

줄을 서던 군중들은 곧 침묵을 지켰다. 떠드는 소리가 사라졌고, 모두들 말없이 노령의 거인이 두 명의 병사들에 의해 끌려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다들 이런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그간 많이 봐왔다. 현에서 시험해 본 후 지금 회시를 보기까지, 항상 지름길을 바라고 요행수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이때, 한 관리가 안에서 나오더니 한 바퀴 돌며, 지금 준비해온 부정한 쪽지를 버리기엔 아직 늦지 않았다며 엄중히 경고하였다.

관리가 다시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자, 군중들은 곧바로 웅성댔다. 모두들 슬그머니 아까의 노년의 거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벌써 50여 세가 넘었대. 이번 시험에서 안 되면 희망이 없었다나 봐…….”

“이판사판으로 행동하다니, 쌤통이다!”

“정말 부정행위를 하다니, 우리 같이 성실하게 준비해온 사람에게 불공평하지 않은가.”

“연루될 가족들이 불쌍하다.”

“도둑 따라 고기를 먹으려면 같이 얻어맞을 각오도 해야 하는 법이지. 그러니까 우리 뒤에는 언제나 가족들이 지키고 서 있으니 조심하고 또 신중해야 해. 그렇다고 부정행위를 해서야 쓰나, 그냥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이 낫지.”

모두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줄을 떠나 있다가 잠시 후에 돌아왔다.

귀 기울여 몇 마디 듣던 고청운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 형, 이번에 부정행위를 한 사람들 때문에 제3장 시험에 입장할 때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조정에서 우리에게 가죽옷을 허락하지 않게 되려나요?”

방자명이 머리를 흔들며 윙크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이 넓으셔서 가죽옷을 다시 허락하지 않으실 리가 없지.”

두 사람은 서로 웃어 보였다.

지금 황제가 하달한 명이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지자, 공부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모두들 인덕이 후하고 영명하시며, 훌륭한 황제라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몇 사람이 더 부정행위를 하다가 걸렸다고 해도 황제의 명성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었다. 역시나 부정행위를 한 수험생에게만 비난이 쏟아졌고, 황제의 칙령은 당연히 회수되지 않았다.

“뜨거운 물 좀 마셔보세요.”

이때 고삼원이 마침 마차 안에서 뜨거운 물을 떠 와, 방자명과 고청운에게 한 잔씩 건네주었다.

“조금 전에 제가 저기서 누가 가죽옷을 갈아입는 걸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발을 갈아 신었어요. 왜들 저러는 겁니까?”

고청운은 물을 다 마시고 나서 물음에 답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거 아니다.”

당연히 자신의 고명한 수단을 믿었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겁에 질려서 얼른 마차나 수레에 올라타 범죄의 흔적을 없애려 하는 것을 본 것이렷다.

고삼원은 알 듯 모를 듯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고청운의 차례가 돌아왔다. 사람들이 입장할 때 가죽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이번 검색은 지난번보다 더 심했고 걸리는 시간도 좀 더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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