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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167)화 (167/504)

167화. 재고하다 (2)

이번 회시의 주임 시험관은 내각대학사(*内阁大学士: 청대 내각의 수반(首班), 내각 총리)이자 대리사경(*大理寺卿: 전국의 3대 사법장관 중의 하나 정3품직)인 백엽(白烨)이 맡았는데, 그의 부친은 대학자 백치원으로, 뼛속 깊은 황제의 신봉자였다. 

주임 시험관들의 명단이 발표된 후 고청운 외 수험생들은 백엽의 저서를 찾아다니며 주로 그가 어떻게 사건을 판결해 왔는지를 찾아내기 바빴다. 결국 그의 주요 직책이 대리사경이니, 형사 사건의 심리를 장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백엽은 여태껏 책을 낸 적이 없었다.

그랬다, 이번에도 그들은 또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파악할 수 없으면 그냥 파악을 안 하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율법 책을 다시 한번 복습하는 방법 말고는 남은 것이 없었다. 

고청운은 방인소에게도 그에 대해 물어봤는데, 방인소가 밝힌 백엽에 관한 인상은 오직 ‘군자로서 품행이 단정하고, 온화하고 다정한 것이 옥과 같은 사내였다.’ 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잘 알지 못한다는 말과 같아서, 결국 둘 사이의 접점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지름길로 갈 방법은 없으니, 고청운은 오직 착실하게 자신의 실력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청운아, 네 차례다.”

방자명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는 바람에 고청운의 회상이 끝이 났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방인례는 경성에 시험 치러 오지 않았다. 아예 응시를 포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시험을 기다리는 것인지 몰랐지만, 그는 방인례가 그리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렇게 여러 해를 버텨오며 많은 시간을 이 시험에 쏟아오지 않았는가. 

고청운은 시험에서 결과를 내보지 않고 어떻게 기꺼이 맘을 접을 수 있겠는가 싶었다. 방인소 혹은 누구라도 방인례를 어느 좋은 지역의 현령으로 넣어주지 않는 이상, 그는 계속해서 시험을 치를 것이 분명했다. 

시험장에 입장하려면 예전처럼 몸수색을 거쳐야 했는데, 돌연 고청운은 이번 검사가 매우 엄격해졌다고 느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작년 강남의 어느 성에서 시험을 거행했을 적에 발생했던 부정행위 사건이 생각났다. 

‘어쩐지 지금 회시 시험장 몸수색이 이렇게까지 엄격하더라니.’ 

홑겹이 아닌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그의 머리 위에 쓴 모자조차 홑겹이 아니면 안 되었다.

이번 시험에서도 역시 시험장에 들어가려면 정문과 중문을 거쳐 들어가야 하였는데, 두 문 모두 병사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몸수색을 진행하고 있는 걸 보니 3년 전보다 두 배나 늘어난 정원이 투입된 것 같았다. 병사들이 어찌나 자세히 검사하였는지, 고청운은 거의 발가벗다시피 하여 수색을 당했다. 심지어 그들은 입이나 콧속 그리고 머리카락마저 헤치면서 검사를 진행하였다.

시험장 바구니에 담긴 물건은 더더욱 여러 차례 반복하여 검사를 받았는데, 분명히 그의 숯은 규정된 크기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그것들을 다 쪼개버릴 요량인 듯 검사를 단행했다. 또 물을 담는 조롱박의 경우엔 물을 죄다 쏟아내고 하나하나 다 더듬어 검사했다. 

그렇게 모든 물건들에 어떠한 부정행위를 암시하는 물건들이 껴 들어가 있지 않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들은 그를 두 번째 문인 중문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중문에서도 검사는 여전히 세밀하게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대문에서의 검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부정행위의 산물이 두 번째 중문검사에서 발각되면 대문검사를 진행한 병사들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조정의 엄명이 내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대문 앞에서의 첫 번째 검사 때만큼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검사를 마치자, 고청운은 이미 너무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고 이빨도 서로 딱딱 맞부딪쳤다. 볼 것도 없이 얼굴은 새파래졌고, 입술에는 보랏빛이 돌고 있을 것이었다.

* * *

가까스로 쭈뼛쭈뼛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호실에 도착한 고청운이 첫 번째로 행한 일은 예년같이 먼지를 닦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그는 바로 화로에 불부터 피웠는데, 숯에서 열이 발산되기 시작하자 마침내 온기가 전해졌다. 만약 이성이 아직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화로를 품에 안아버렸을 것이었다.

‘휴, 이제야 좀 살겠네!’ 

숯불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 고청운은 숯을 몸에 붙일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웠다. 온기가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찬 숨이 빠져나갔다.

고청운은 몸이 좀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져온 물건을 일일이 정리했다. 그다음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우울하네. 이번에도 저번 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재수가 없잖아. 어떻게 매번 자시에 입장하느냔 말이다.’ 

자시는 새벽 2시밖에 안 된 시간으로, 지금은 하루 중 가장 추울 때였다. 이래서는 정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아서라, 우선은 풍로에 불을 좀 올리고 생강탕부터 한 그릇 끓여 먹어야겠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고청운은 숯과 풍로만 있으니 그런대로 견딜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득 이전에 봄나들이를 가거나, 다른 거인들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모두들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풍로를 사용하는 것에 있어 나름 체득한 각자의 심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심심했던 한 친구는 숯불에는 어떻게 불을 지피고, 풍로를 어떻게 해야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야 숯을 절약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몇천 자에 이르는 시로 그 내용을 적었는데, 나중에는 이 시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 누구든지 공부를 해서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노동을 조금도 하지 않고 생산 실정도 모른다고 말한다면, 반드시 아니라고 따져 들어야 할 것이었다. 향시나 회시를 거치는 것만으로도 이 거인들은 모두 거의 숯 굽는 데 능숙한 이들로 거듭났으니, 스스로 배불리 먹을 만한 음식을 해내는 것 정도는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작은 호실 안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생강탕을 마시고 나서 침상을 둘러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숯 화로를 침상 발치에 가져다 놨다. 

그는 잠을 비교적 깊게 자는 편인데, 설마 그렇다고 발을 화로에 들여놓지는 않겠지? 그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침상에서 웅크려 자기 시작했다. 그러나 따뜻함을 쫓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지라 결국 그의 발은 어느새 숯 화로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삽시간에 데어 버렸다.

‘제길! 만일 더 깊게 잠들었다면 내 발을 구워 버릴 뻔했잖아?’ 

고청운은 할 수 없이 땅바닥을 둘러보았는데, 3년 만에 다시 만난 호실 구석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다. 지네,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일단 바닥이 차가웠으니 침상보를 바닥에 깔고 자야겠다는 생각은 단념해야 했다. 

‘그래, 안전이 제일이지. 화로를 침상 밑에 두는 것이 비교적 안전했어.’

고청운이 이렇게 위치를 옮겨 보니, 어휴, 너무나도 추웠다. 그는 얼마 더 자다가 더 추워진 것 같을 때 얼른 일어나 숯불을 더 피우고 다시 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일어난 그는 온몸이 시큰시큰했다. 아파서 깨어난 것이다 보니 정신이 완전하게 깨지 않았다. 이날 밤 모두는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매우 불안한 상태에서 잠을 잤으며, 뼈 사이에 한 줄기 냉기가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을 것이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지 않았고 또 숯불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어떻게 해도 고청운은 온몸이 불편할 뿐이었다.

아침 식사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다. 이렇게나 추운 날씨니 역시 두 장의 전병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 풍로가 있어 다행이었다. 

‘쯧, 조정의 배려가 고마울 따름이군.’

고청운은 마치 자신이 학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청에서 아주 조금만 배려해 줘도 참 잘해 준다는 생각이 드는데, 설마 내가 세뇌라도 당한 건가?’

곧이어 시험지가 도착했고, 그는 그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첫날 시험 친 것은 사서에 나오는 경의 문제로, 그는 답안지 제출 마감 시간 전에 문제를 다 풀었다. 못 풀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는데, 자신의 학업에 발전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번 문제가 지난번보다 쉬웠는지, 어쨌든 자기 생각에는 꽤 순조롭게 문제를 풀었다. 

추위 때문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더 빨리 문제를 끝마쳤을 테지만, 답을 쓰다 말고 손이 얼어서 잘 움직이지 않게 되었기에 빨리 끝마칠 수 없었다.

고청운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화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입고 있는 옷이 얇아, 아무리 추위를 가시게 하려고 해도 어차피 추운 것은 매한가지일 거라고 말이다. 이번 시험의 가장 큰 난관의 돌파구는 사실 추위를 막는 것 외에 속도를 봐야 했다! 그랬다. 생각하는 속도, 그리고 문제를 푸는 속도 말이다! 

이번 시험에서 그들은 머리를 잘 굴려서 답을 빨리 생각해낼 수 있도록 한 후, 정식 시험지에 최종 정답으로 써낼 문장을 반듯하게 베끼고, 글씨도 반드시 가능한 한 가장 잘 써야 했다. 게다가 날씨 때문에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구르고 손을 비벼야 했는데, 발 가장자리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 숯도 더 넣어줘야 했다. 

또한, 시험 문제의 양마저도 방대하니, 모두들 시험을 보다 말고 늘 한눈을 팔 수밖에 없었는데, 고청운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음을 느꼈다.

어떤 사람들은 추우면 추울수록 더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사고하는 속도 역시 빨라졌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반대였는데, 이런 사람들은 한번 추워지면 동면을 하는 것처럼 머리가 얼음장처럼 얼어붙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따뜻한 곳을 찾을 생각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가 보아하니, 이번에 북쪽과 남쪽에서 채용하는 정원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북쪽 사람들은 추위에 더 내성이 있을 것이고 남쪽 사람은 학벌이 좋았다. 특히 소주 지역 출신의 담자례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데, 학자 가문 출신에 대학자의 제자인 데다가, 소주성의 해원이 아닌가……. 그가 가진 일련의 직함들은 정말 감탄을 자아냈다.

소주는 송나라 이래로 진사는 물론 장원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하여 ‘장원굴’이라고도 불려왔다. 다들 이번 시험을 보기 전부터 담자례가 분명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상위권으로, 또는 1등으로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소주의 문학이 정말 수준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담자례 자체의 실력도 충분하기는 했던 것이다.

‘그놈이 개처럼 얼어 죽기를 기도라도 해야 하는 걸까?’ 

고청운은 은연중에 생각해 보았다가 즉시 이 가치 없는 생각들을 던져버렸다. 

‘사고가 영민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맑게 유지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 것이지, 남의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 다른 사람들은 날 통제하거나 어떤 영향을 줄 수 없으니, 내 스스로가 언행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고청운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방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잡념들을 없애기 위해 금강경과 심경을 외우면서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뒤이어 고청운은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 옆 호실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대추주 한 모금을 마시고 잠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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