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66)화 (166/504)

166화. 재고하다 (1)

경성으로 돌아와 고청운의 공부 성과를 봐주던 방인소는 매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최근 몇 개월간 그는 고청운의 공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고청운에게 스스로 책을 읽게 하고 어떤 가르침도 주지 않았으며 수업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그와 가끔씩 현 조정의 뜨거운 쟁점에 대해서 토론할 뿐이었다. 

고청운이 토론했던 내용을 토대로 책론의 형식으로 답을 써서 방인소에게 보여주면, 방인소는 그에게 고칠 점을 알려 주었다.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 있던 방인소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곧 웃음을 거두며 근심 어린 모습으로 말했다. 

“옛말에 크게 더우면 그해의 추위도 크게 찾아온다고 했거늘,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만, 만약 올겨울이 너무 추워지면 내년 3월 초의 봄에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을 테니 그때 가서 고생이 클 것 같구나.”

고청운은 일순 멍해졌다. 

‘방금 막 무더위가 지났는데.’

아무리 크게 더운 만큼 크게 추울 거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확실히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그는 일찍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고청운은 시험 볼 때 입어야만 하는 그 홑겹의 옷들을 떠올리자 갑자기 크게 우울해졌다. 추위를 일찍 예견하고 말고가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자신의 체력과 신체조건으로 짊어져야 할 문제인 것을…….

그럼에도 그는 단지 내년의 봄에는 추위가 가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 * *

애석하게도 그해 수험생들의 운은 좋지 않았다. 시험장 입구에 줄을 섰을 때, 휘휘 부는 찬바람에 고청운은 솜옷의 깃을 꽉 움켜잡았다.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찬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와중에 고청운을 포함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의 기분은 날씨가 매우 추워 몹시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벌써 3월 초아흐레나 되었음에도 여전히 이른 봄추위가 살을 에는 듯했던 것이었다. 

사실 엊그저께까지만 해도 날씨가 매우 좋았었다. 봄 날씨는 화창하고 따뜻했기에, 당시 모두들 마음이 매우 가벼워져 한 무리의 거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교외로 나가 답청(*踏青: 봄날 청명절을 전후하여 교외로 나가 산책하며 즐기는 것)하였다. 

사실 말이 답청이지, 실은 절에 점괘를 뽑으러 가는 것이었다. 이 무렵에는 거리 곳곳에서 점을 봐주는 노점 장사가 특히 잘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꽤 영험하다고 알려진 도사나 중들은 개업만 하면 3년은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런 것을 보러 다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수험생들은 물론, 가족들도 극성이어서 정월부터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이번 시험은 그와 방자명 모두 참가하기로 하였다. 간미와 하 씨는 매일같이 마차를 타고 절이 위치한 산기슭까지 간 뒤 다시 걸어서 절까지 올라가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예불을 올렸는데, 선향을 하고 등불을 밝히는 데 들어간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연 씨도 소석을 돌보지 않는 날에는 직접 가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문창제군(*文昌帝君: 학문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괴성(*魁星: 문장(文章)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특히 복건성(福建省)에서 온 수험생들 중에는 시험을 보기 전에 개구리나 거북이를 사 와서 방사하는 방식으로 괴성에게 제례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시험 이틀 전에는 반드시 공자님께 제례를 지냈다. 

고청운은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집에만 오래 머물러 있는 것 같아,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기분 전환을 하기로 하였다. 비록 제례를 지내는 것은 모두 일종의 심리적 위안일 뿐이지,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꼭 잘되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자신은 하지 않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제례를 지내고 있는 것을 본다면 마음 한편이 좀 찝찝할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만일 자신이 제례를 지내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원래 시험에 합격할 것이 낙방하기라도 할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다.

고청운은 전례대로 제사를 지내고 나자 마침내 주변을 둘러볼 마음이 생겼고, 그제야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와 개나리가 피어났을 뿐만 아니라 길가의 보리밭에도 여린 풀이 가득 자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포근한 날씨에 모두들 기뻐하면서 한껏 고조된 기분을 시로 대신해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결국 며칠 못 가서 사라지게 되었다. 3월 초칠일전만 해도 분명히 날씨가 매우 따뜻하였건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이 매섭게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어 북풍이 불어오자, 겨울이 다시 화려하게 도래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는 놀랍게도 눈송이까지 내렸다! 

그렇게 기온은 뚝 떨어지고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다시 추운 겨울과 같은 날씨가 되었다. 

집의 자식이나 조카들이 시험을 봐야 하기에 크게 걱정되었던 조정의 대신들은 안 되겠다 싶어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려 수험생들이 조금만 더 따뜻한 차림으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최소한 가죽옷만이라도 입을 수 있게 해달라며 간곡히 요청을 드렸으나 실현되기란 쉽지 않았다. 

일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지금 그들의 창백해진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 무리의 대신들이 매우 극렬히 반대했는데, 전 왕조에서 지난날 가죽옷과 모포를 옷을 입고 시험장에 들어갔다가 부정행위만 더 심각해졌었다며 옷차림에 제한을 두는 규정을 해제하는 것을 매우 결연히 반대했던 것이다.

본 왕조에서는 4품 이상의 경선 내 관리들이 모두 조정에 참가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4품 이하 혹은 지방의 관리들은 모두 황제의 소환이 있어야지만 조정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방인소의 품계로는 조정에서 일어난 일을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널리 알려졌고, 집에 수험생을 둔 사람들은 몹시 성을 내었다. 

방인소 또한 바로 귀가하여 돌아와서는 수염을 매만지며 눈을 부릅뜨고 분노에 차서 말했다. 

“이렇게 추운 날, 홑옷 몇 벌로 어떻게 추위를 막으라는 건지.”

이 일을 반대했던 자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마저 말을 이었다. 

“정말 남의 집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자기들한테 일이 닥쳐봐야 그제야 발을 동동 구르겠지.”

고청운은 남몰래 웃음을 참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화난 방인소의 모습은 그간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

“스승님, 예전에 시험을 치를 때 가죽옷을 입지 못하게 했었다고 하니, 저희도 똑같이 가죽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건 당연합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걱정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은밀한 보복 심리 때문에 반대하기도 했을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시험 볼 때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왜 너희 후배들 차례가 돼서야 따뜻한 복장으로 시험을 치르게 해 준 거지? 불공평해!’ 라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적은 것을 근심하지 말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는 이 말은 정말로 명언이었다.

“노부가 예전에 시험을 치렀을 때는 이렇게까지 춥지 않았었다. 이번에야말로 20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라 하더구나.”

방인소가 고청운의 견실한 팔뚝을 만지작거리며 당부했다.

“이번에는 도중에 몸이 아프면, 시험을 중지하고 무리하게 버텨서는 아니 된다. 참지 마라,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넌 아직 젊으니 다음에 또 시험을 볼 수 있지 않으냐. 내 예상대로라면 다음 시험 때는 이렇게까지 춥지 않을 게다.”

그의 추측대로라면, 이번 시험에서 제자가 평소대로만 기량을 발휘하면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고, 몇 순위에 드느냐 정도의 문제만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 날씨가 이 모양이라, 예측 불가한 상황이 더 늘어나 버린 셈이었다.

“스승님, 안심하세요. 제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겠습니다.”

고청운은 다른 사람의 당부를 받지 않더라도,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 *

결국엔 회시 시험이 치러지기 전에 조정으로부터의 명이 내려왔다.

‘모든 시험에 응시하는 거인들은 시험장에 입장한 후, 모두 다섯 벌 이하의 옷을 입되, 착용하는 옷과 양말은 모두 홑겹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 깔개나 덮개 등은 일절 휴대 및 반입을 금한다. 

응시자의 시험 도구에 관해서는, 두루마리 뭉치는 안에 넣어두지 말 것이며, 벼루는 너무 두꺼워서는 안 된다. 또한, 필관(筆管)은 투조하여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사용하며, 연적(*硯滴: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놓는 그릇)은 자기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해야 한다. 반입하는 숯의 크기는 2촌을 넘지 아니한다. 

이상 휴대를 허하는 품목으로는 바구니, 작은 걸상, 음식물, 붓, 벼루, 풍로, 숯 등의 품목을 포함한다. 특별히 시험장 바구니의 경우, 과거에 시험장에서 주로 사용해 오던 북방식 버드나무 광주리는 손잡이가 넓어 간계를 감추기 용이하기에, 금번의 시험부터는 대나무 혹은 버드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남방 지역의 제작 방식에 따른 규격만을 따른 바닥을 포함한 각 면이 모두 정교하게 규격에 부합하는 제품을 사용하여 수색에 용이하도록 한다. 기타 언급되지 않은 물품들은 모두 시험장 밖에 두고 입장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엄히 죄를 다스린다.’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휴대가 가능한 물품에 관한 규정이 매우 세세하게 안내되어 있었는데, 특히나 시험 도구에 관한 것들이 상세히 규정지어져 있었다. 

예를 들면, 두루마리 뭉치는 안에 넣지 말고, 벼루는 너무 두꺼워서는 아니 되며, 필관은 구멍을 뚫어야 하였다. 또한, 연적은 자기를 사용한 제품만 가능하며 숯은 2촌의 크기만 가능하고, 바구니 역시 규격을 통일하기 시작한 것 등등 아주 상세한 내용들이 이목을 끌었다. 

어쨌건 추위 탓인지 풍로와 숯은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풍로는 찻물을 끓일 때 사용하는 화로로, 생김새가 정(*鼎: 발이 셋 있고 귀가 둘 달린 솥의 모양새이며, 음식을 익히는 데 쓰이는 솥)과 같아 귀가 세 개 있었고, 난로 안에는 공간이 있어 숯불을 넣을 수 있었으며, 난로 몸체 밑에는 통풍용 구멍 세 개가 있었다. 

풍로의 맨 위에는 세 개의 받침대가 있었는데, 이는 찻물을 끓이는 거치대로 사용했다. 난로 바닥에는 구멍을 뚫려 있어 날리는 재가 빠져나갈 수가 있었고, 그 아래 철제 받침대는 숯과 다 탄 재를 받치는 데 썼다.

뜨거운 물을 끓여 먹을 수 있는 풍로가 있으니, 만약 병이 나더라도 약을 달이는 데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수월해진 것 같네. 찬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니, 음, 시험을 더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규정이 막 발표되자마자 경성에는 곧 회시 규정에 맞는 시험장 바구니가 불티나게 팔렸는데, 그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고청운은 장사꾼들의 정보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때마침 서둘러 시험장 바구니가 출시될 수 있었을까? 정말 이런 발표가 나게 한 데에 어느 가게 사장님이 황제의 친척 어르신이라도 되어 배후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될 정도였다. 

비록 숯을 소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날씨와 기온 때문에 응시생들은 다시 삽시간에 우울해졌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경성 도처의 절에서는 향불을 피우며 기원하는 것이 다시 또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다들 날씨가 빨리 따뜻해지기를 빌기 시작하였다. 

엊그저께와 마찬가지인 기온은 바라지도 않으니 차라리 3년 전과 같기라도, 제발 예년 같은 표준 기온으로라도 돌아오기를 빌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는 쓸모가 없었다.

‘어쩔 수 없구나.’ 

고청운은 시험 전에 기분 전환을 천천히 유도하고 마음을 차분히 유지하며 시험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험 전날 오후,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외출은 당연히 더욱 삼가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는 대개 침상에 누워 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시험장에 입장 가능한 시간이 자시(子时), 즉 한밤중에 지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오후에는 소석에게조차 고청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꼬맹이도 문득 무거운 집안 분위기를 느꼈는지, 줄곧 조용히 칠교판을 가지고 놀며 뛰거나 큰 소리로 떠들어대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난 고청운은 연 씨가 소석을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는 정말 놀랐다. 어린놈이 사람 눈치를 볼 줄 몰랐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영특하다니, 기분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들의 근심 걱정 없는 웃음소리가 귀에 들려오자, 그는 기분이 또다시 절로 좋아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