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마을을 돌다
“아빠?”
계속 잎사귀를 잡으려던 소석은 고청운에 의해 방해를 받는데도 짜증도 내지 않고 그저 벙글벙글 웃기만 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서더니 똑바로 고청운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와 눈을 마주친 고청운은 생각해보더니 소석을 얼른 바닥에 내려놓고는 바지를 벗겨주고 오줌을 누라고 달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소석이 제때 오줌을 누는 것을 보며 한숨을 돌렸다. 하마터면 자신의 몸에 오줌을 쌌을 뻔했지 뭔가. 다행히 그는 소석의 작은 행동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고청운이 그의 작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음에도 오줌을 싸고 싶으면 반드시 아버지에게 말해줘야 한다. 안 그럼 요 작은 엉덩이를 때릴 것이야.”
소석이 ‘꺅꺅’ 웃어댔다.
옆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방자명이 한참 말이 없다가 문득 한마디 했다.
“너, 아이 보는 동작이 정말 능숙하구나.”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손주는 안아줘도 아들은 안아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사상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어린아이를 달래는 일은 아내와 하인들이나 할 일이고, 바깥일만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청운에게는 소석이 자신의 핏줄의 연장선에 있는 아이였고, 이 시공간에서의 소속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 * *
산 정상에서 모두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봤다. 멀리 보이는 단풍잎은 마치 불타는 듯했고, 산 아래에는 논밭길이 나 있어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 고청운처럼 그림에 막 입문한 사람들에게도 풍경을 그려내고 싶은 충동을 주었다.
이곳의 세시풍속은 문인이고 일반 백성이고를 논하지 않고 모두가 높은 산에 올라 소풍을 하고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즐겼다. 일부 부유한 집에서는 장막, 상과 의자, 고기구이 용품, 마차, 악기 등을 모두 챙겨와 높은 곳에 혹은 비탈길에 올라 장막을 설치해서 상과 의자를 놓고 양고기를 구워 먹거나 양고기 샤브샤브를 만끽했다. 또한, 노래도 듣고, 춤도 구경하는 등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많았다.
그들 두 집안은 모두 간소하게 중양떡을 가지고 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물도 마시며 떡을 먹었는데, 방인소와 담 시랑은 시를 읊고 대작하는 흥을 내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답가를 하면, 중간중간 고청운 등 세 사람이 합창을 하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시로 맞대응하는 것에 대해 이미 능숙한 경지에 올라있었는데, 만들어낸 시문이 비록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정곡을 찔렀다.
그들 중에서 그는 담자례에게 특히 주목했다. 그의 시는 확실히 천부적인 데가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과거 시험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었고 거기에 용모까지 뛰어난 것을 보니, 고청운은 정말이지 하늘이 너무 이 사람을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 그의 옆에 있는 방자명도 포함이었다.
해가 점점 뜨거워져, 산 정상에는 이미 그늘진 곳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양 집에는 모두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있어 햇볕을 오래 쬐고 있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들 떡만 먹고 산을 내려가 산기슭 즈음에 다다르자 각자 갈라지기로 하였다.
내려오는 중간중간 방인소는 담 시랑과 계속해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고청운 쪽의 젊은이들은 그저 잠잠했다. 서로가 의견이 맞지 않아 말을 할 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 * *
장원으로 돌아간 그들은 점심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장원의 관리자가 모처럼 주인이 찾아온 터라 정성 들여 상차림을 준비해 주었던 것이다.
토종닭탕, 고기두부 다짐, 표고버섯 닭볶음, 오리고기, 등 반찬들이 정교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입맛에 잘 맞았다. 게다가 오늘 일찍 경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소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단지 간식 몇 조각으로 허기만 달래고 등산하러 달려갔으니 당연히 식욕이 왕성했다.
* * *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소석은 연 씨에게 안겨서 낮잠을 청하였고, 고청운과 방자명은 바깥 큰길에 나가 나무 그늘 밑을 찾아 한담을 나눴다.
먼저 나온 주제는 당연히 담자례였다.
“그 아이는 저에 대해 많은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오늘의 교류를 생각해보던 고청운은 본래 알고 지낼 친구가 한 명 더 생길 줄 알고 기대했으나, 쌍방의 기 싸움으로 일이 번지자 매우 우울했다. 이번 일은 그에게 확실하게 불쾌감을 나타낸 사람을 처음 본 사건이었다.
이전에는 사람들 간의 불화야 기껏해야 서로 상종하지 않고 넘어갈 뿐, 적의를 대놓고 드러내 보이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자화자찬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록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수는 없어도 그의 사람 됨됨이나 행세하는 것에 있어 적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와 함께 지내는 것에 문제가 없어 왔던 것이다.
그래왔던 그가 갑자기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니, 당연히 좀 답답했고 또 이해할 수 없었다.
방자명 역시 매우 울적했는데, 특히 담자례가 화본을 폄하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는 자신을 비롯해 화본을 보는 사람들을 싸잡아 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그저 젊은 뭇 사내들이 화본을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에 그런 화제를 꺼낸 것뿐이었다.
“그는 지난달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장원루(状元楼)에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고 해. 시를 짓고 그림에도 솜씨가 뛰어나 대번에 유명해져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떠받들고 있다고 하더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형과 함께 글짓기 첨삭을 했었는데, 다행히 매형이 한림원에 들어와 요즘에는 건강관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 뭔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날은 시 경연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어.”
장원루는 장원을 배출하는 주점이라고 해서 경성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졌는데, 공부하는 학자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라고 하였다. 안쪽은 매우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고, 뒤를 봐주는 배경도 든든하다고 하였다. 거기에 더해 가격대도 중간 정도밖에 하지 않아서 학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장수원은 경성에 온 후부터 바로 그곳의 단골손님이 되었는데, 이미 진사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간 지금도 휴무일에는 장원루에 가서 가끔 거인들과 수재들에게 조언을 주기도 하여 인기 있는 인사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저를 고깝게 보았을까요? 장 형 때문일까요?”
고청운은 아주 답답했다.
‘설마 장 형과의 사이를 그가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그가 장 형과 무엇에 연루되어 있나?’
“아닌 것 같은데. 속이 그렇게까지는 좁지 않을 거야. 다른 이유가 있겠지.”
방자명 또한 매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어차피 그는 자신이 애정하는 화본을 무시한 담자례에게 이미 어떤 호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화본만의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고.’
매일 공부하거나 글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가끔 화본을 보며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보고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했었어. 그냥 뜬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과연 소문대로였군.”
방자명이 한마디 거들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후부에서 들은 소문을 떠올렸다.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육택의 후처감으로 담자례의 누이가 거의 확정되었다. 그는 육훤과의 관계가 걸려있으니 돌아가서 수소문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청운과 방자명은 다른 이야기들을 더 나누었는데, 설령 담자례와 접점이 있을 만한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더는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이미 그런 사람을 하도 많이 봐와서 이미 특출 날 것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최근에 <대학>에 대해 해석한 책을 접했는데, 책에서 논하는 바를 보니 새로운 사상이 접목되어 있었어. 내가 그 책을 다 보고 나면 빌려 줄 테니 꼭 봐.”
방자명은 이제 공부와 관련된 화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흥미가 동한 고청운이 급히 물었다.
“누가 쓴 책인가요?”
“본 왕조의 대학자인 백치원(白致远), 백 대인이야.”
백치원은 본 왕조의 유명인으로 이미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을 하는 사람인데, 태자(太子)의 글 스승으로 지내면서 오늘날 황제를 가르친 사람이 되어 관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분이시구나. 그럼 열심히 읽어봐야죠.”
두 달 전 고청운은 국자감에서 그가 가르쳤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데, 꽤 수준급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질문한 몇 가지 궁금증도 직접 답을 해 주었는데, 고청운은 지금 그분이 책을 내셨다고 하니 반드시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 너무 좋으면 사서 소장도 할 것이었다.
당초 백 대인이 국자감에서 강의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모두들 흥미가 동하여 앞다투어 강의를 들으러 가고 싶어 했었다. 그나마 고청운과 방자명은 방인소와의 연줄 덕에 강의를 들어볼 기회가 주어졌었는데, 강의를 들은 건 과연 헛되지 않은 선택이었다.
문득 국자감에서 만난 조문헌이 떠오른 고청운은 눈꺼풀을 낮게 내리깔고, 나지막이 방자명에게 물었다.
“요즘 조 사형과 연락하시나요?”
“아니.”
방자명은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방자명과 조문헌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그에게 주동적으로 조 사형과 연락하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웬일인지 소석의 세삼 의식 때 만나고 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냉담해졌다. 분명 둘 사이에 어떤 불쾌한 일이 발생한 적 없는데도 말이다.
이전에 고청운은 조문헌이 국자감에서의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고, 여유시간도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나서 두 달 전 국자감에서 만나니, 모두가 정말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지 뭔가…….
이후 조문헌네 집에 일부러 초대장을 보내서 모임에 나오게 하려고도 해 봤지만, 사실인지는 몰라도 조문헌은 시간이 없다며 몇 번이고 거절했다. 고청운은 그가 자신을 피하려 한 것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사이가 멀어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만 두자. 이런 일은 더 생각하지 말자.’
고청운은 주변을 좀 걸으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방자명은 이런 것들을 둘러보는 것을 싫어해서, 혼자서 다시 정원으로 걸어 돌아갔다.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 대다수가 방씨 가문의 밭을 소작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고청운은 임의로 몇몇의 마을 사람들에게 임대에 관한 정황을 물어보았다.
이곳은 경성에 인접하여,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그들이 살던 임계촌보다 조금 더 나은 편이었다. 촌민들은 도시 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아 농한기를 이용해 자주 상경하여 일자리를 찾았는데, 그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약간 어색해하기만 할 뿐이었다.
* * *
마을을 한 바퀴 다 돌아보고 다시 정원으로 돌아왔을 때, 소석이 이미 낮잠에서 깨어나 있었기에, 고청운은 잠시 소석과 놀아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방인소가 그런 그에게 두 개의 책론 문제를 던져 주며, 내일 오후 바로 답안을 써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 자리에 없던 방자명까지 답안을 같이 제출하라고 전하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고청운은 방자명을 찾아 그 문제를 전해 주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놀러 나와서도 공부를 해야 하다니. 이미 우리에게 과제를 내주신지도 꽤 오래 되었으면서 갑자기 왜?’
고청운만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방인소가 소석을 뺏길까 봐 염려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고청운은 역시 소석의 매력이 대단하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