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장원 (2)
경성에서 방씨 집안 장원까지는 모두들 거의 한 시진을 걸어서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멀리 울긋불긋하게 물든 산을 볼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는 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고, 한 줄로 늘어선 물레방아가 언덕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단 두 대만이 작동하고 있을 뿐, 다른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때, 물레방아의 날개가 돌면서 ‘우르르’ 하는 소리를 냈다.
멀지 않은 곳에는 겨울 보리가 심어져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방가의 장원은 마을에서 거리가 좀 있어서, 매우 조용해 마을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고청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공기가 매우 신선하다고 느꼈다. 또 주변사람들이 모두 친절해서 마치 임계촌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장원의 소작농이나 관리자는 일찍이 사람을 대동하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고청운은 정원의 배나무 몇 그루 나무에 배가 가득 달려 있는 걸 보았다. 소석은 이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져서 고개를 들고 검지로 크게 흔들며 배를 쳐다보았는데, 그 모습이 귀여웠다.
장원에서는 기분도 상쾌하게 좋고 공기도 신선하기도 하여, 고청운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인근 야산으로 등산을 갔다. 언덕이 매우 작았지만, 그는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고 마냥 시골로 온 것만 같아서 기분이 전환되었다.
등산하던 고청운은 이곳에서 다른 관리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그는 예부의 좌시랑 담 대인으로, 정3품 관리였다.
소개가 끝나고 나서 고청운은 옆집이 담 대인네 장원임을 알고는 이 또한 참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그때 방자명이 고청운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담 대인의 뒤에 있는 소년은 담자례(谭子礼)고, 두 사람은 숙질 관계일세.”
담 대인의 뒤에는 과연 18, 9세 소년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빼어난 얼굴에 검날 같은 눈썹과 별이 박힌 듯한 눈동자를 가진 얼굴로, 흰옷을 입고 부채를 들고는 날렵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소년의 기개가 돋보였다.
담자례와 방자명의 잘생김은 같은 부류의 것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람을 끌어당길 만한 준수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의 여종들이 무의식적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담자례는 고청운보다 2살 아래의 인물로, 고청운과 같은 해에 합격하여 소주(苏州) 지역의 해원이 되었다. 다만 소성(苏省)의 해원 수와 그들 월양군의 해원 배출 인원수는 서로 달랐는데, 그곳은 문학의 정수가 집결되어 절정에 이르고 있어 매번 합격하는 진사의 수가 전국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담자례는 시험을 치르지 않았는데, 나이가 너무 어려 집에서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고 하였다. 담씨 세가는 소주 현지의 저명한 학자 집안이니, 고청운은 다음 해 2월에 시험에서 그가 반드시 참가할 것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장원급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었다.
본 왕조에서는 아직 연속으로 세 번이나 해원을 거머쥔 인물이 배출되지 않았는데, 이는 모든 해원 출신들의 소망이었다. 간혹 고청운도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물론 생각만 할 뿐이었다.
고청운은 담씨 가문과 정용후부가 혼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전해 들었다. 그 대상이 담자례의 누이인 듯했는데, 들어보니 그녀는 효를 실천하며 꽃다운 시절을 보낸 덕행으로 명성이 높은 여성이었다.
방인소와 담 시랑은 몇 마디를 나눈 뒤, 고청운과 방자명을 불러와 서로 소개시켜 주었다. 그 다음에는 사내들이 한 무리, 여인들이 한 무리를 이루고 함께 하게 되었다. 그중 고청운, 방자명과 담자례는 뒤따르는 시종들이 있어 윗사람의 물건을 들어줄 필요는 없었기에 바로 맨 뒤로 처져 있었다.
원래 고청운은 그들 셋이 이야깃거리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 같지는 않았다. 담자례가 그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는 게 재미없는 것 같았던 것이다. 방자명은 계속해서 화제를 꺼냈고, 고청운도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말을 금처럼 아끼고 있는 듯했다.
학자들 간의 대화란, 보통은 어느 해에 합격한 거인인지를 묻는 걸로 시작했다.
고청운이 공손하게 말했다.
“자례는 정말 대단한 인재야. 겨우 15살에 해원을 쟁취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드문 일인데 말이야.”
그는 친근감을 표하기 위해 상대방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이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기는 하였다. 고청운도 월양군에서는 나이가 제일 어린 해원이었는데, 뜻밖에도 하늘 밖에 사람이 있다고, 담자례가 자기보다 훨씬 더 대단한 걸 알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11살에 수재를 거머쥐고 15살로 거인이 되다니. 같은 해원 출신이라지만 두 사람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있었다.
담자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득의만면했으나, 되레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다음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시험을 쳐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낙방하게 되면 손에서 책을 놓고 쉬려고 합니다.”
“자례의 재능으로 보면, 다음 시험에서는 필히 합격할 거야.”
항간에서 그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던 방자명은 그가 확실히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또 큰 학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합격할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그를 몇 마디 더 칭찬하는 걸 개의치 않았다.
담자례는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웃었고, 당연한 일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청운과 방자명은 얼굴만 서로 쳐다볼 뿐 할 말이 더는 없었다. 더 기다려 봤으나 담자례는 더 이상 말할 뜻이 없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속으로 은근히 웃음이 났다.
관례로 따지자면 담자례도 마땅히 그들 두 사람을 치켜세워줘야 했다. 학문을 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은밀히 이러한 법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마디 좋은 말을 하면, 상대도 겉치레로 좋은 말을 한마디 해야 했다. 그런데 다 같은 공명을 얻고 있는 마당에, 상대가 관례대로 따라 주지 않을 줄이야.
그래서 두 사람은 조금 눈을 흘겼다.
‘그래, 학업은 뒤로 하고 우리 경성 이야기나 좀 해보자.’
하지만, 담자례는 여전히 대화의 의지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가 경성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성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며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번에 상경할 덕에 배에서 내려 소주를 며칠간 유람했었던 고청운은 담자례가 소주 출신인 것을 알고는 말했다.
“자례, 소주성의 송서계어가 참 맛있었더군. 소주를 지날 때가 마침 계어가 살이 올랐을 때인데, 정말 먹을 복이 있던 여행이었지.”
담자례는 드디어 뭔가 정신을 차린 것인지 고청운을 보고 대답했다.
“고 형이 우리 소주성에 다녀가신 줄은 몰랐습니다.”
“경성에 오는 길에 들르게 되었지. 소주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도시가 정말 너무 커서 아내와 말을 타고 꽃구경만 다녔을 뿐이라, 그 경치를 완전히 음미할 수 없어서 참 아쉬웠네! 그래서 다음에 또 시간 날 때 놀러 갈 생각이라네.”
고청운은 그곳의 음식이 참 아쉬웠는데, 특히 자라탕이 그리웠다.
“확실히 소주성의 어디라 한들 며칠 만에 다 돌아볼 수 있는 곳은 없지요.”
담자례는 부채를 펴놓고 흔들며 사뭇 자부심에 찬 모습으로 고청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긴 무슨 시골 촌구석도, 작은 지역도 아니니까요.”
고청운은 순간 멍해졌다.
방자명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자례는 화본이라는 것을 보는가?”
“화본? 화본이요? 그런 것들은 으레 저속하고 고상하지 못한 것들이잖아요. 소생은 본디 학문만을 추구하시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그런 상종도 못할 것을 보고 계시는 줄은 몰랐군요.”
담자례는 눈살 찌푸리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쪽을 응시했다.
꼭 너희들과는 친구하기 싫다는 모양새였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이 참을 수 없이 찌푸리고 방자명을 한 번 보았다.
방자명의 준수한 얼굴도 어두워져 있었는데 눈에서는 한 줄기 노여움까지 번득였다.
“모든 존재에는 다 그만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법.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화본을 즐겨 읽는 데는 또 그 존재의 이유가 있겠지.”
고청운은 딱딱하게 한마디를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반 마디 말도 많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에게 아부할 의무가 없었던 두 사람은 그저 담자례와 말없이 마주보고 있다가 마저 가던 길을 재촉하면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가는 길에 보이는 산비탈의 들국화만 감상할 뿐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대열의 끄트머리에서 따라가고 있어서, 그들의 침묵을 다른 이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산도 언덕에 불과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은 끝이 났다. 도중에 다른 마을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가고 있던 곳은 더 높은 다른 산이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만큼 광주리를 메고 산으로 가 임산물을 채취하러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것이다.
* * *
그들은 산 정상부에 도착하자마자 문득 높은 가을 하늘과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을바람이 가볍게 불어 산을 오를 때의 더위는 날아가 버리고, 모두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청운은 걸어가서 소석을 안아들었다.
하 왕조에서는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재해를 피하고 산수유를 몸에 소지하여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며, 국화주를 마셔서 질병을 물리치고 멀리 헤엄쳐 가서 몸을 단련하는 세시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사람들의 팔에는 산수유가 꽂혀있는 천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는데, 소석이 너무 궁금했는지 계속해서 천 주머니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여 고청운은 아예 주머니를 허리춤에 묶어 주었다.
천 주머니에서 관심을 거둔 소석은 그제야 주위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없었다.
산 정상의 경치는 아주 좋았다. 꼭대기에는 큰 면적은 아니었지만 평탄한 곳도 있어 쉬기 안성맞춤이었다.
가는 길 내내 오르기 좋은 언덕들도 있었는데, 산비탈은 노랗거나 푸르른 색의 풀들이 우거져 있었으며, 키 작은 관목들이 그 곁을 따랐고 활짝 핀 들국화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래도 혹시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몰라 고청운이 둘러보았으나, 한눈에 봐도 노인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안성맞춤인 것이 방인소가 이곳을 나들이 장소로 선택할 만했다.
“자, 소석아, 아버지랑 공부할까? 이게 산사나무란다.”
고청운은 크지 않은 나무를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산사열매가 몇 알 맺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먹기 싫어했다.
“산사나무.”
소석은 이런 말 연습에 아주 열중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며 느리게 한마디 따라하였다.
고청운은 이마를 맞대고, 어르며 말했다.
“소석아, 아버지는 왜 네가 점점 더 말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소석은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것만 좋아할 뿐, 말 배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
소석이 꺅꺅대며 웃었다. 작은 손을 내밀어 고청운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미소 지은 하얀 얼굴이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아, 고청운은 근엄하게 굴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부러워진 방자명이 소석의 정수리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놈을 보니 나도 빨리 아버지가 되고 싶구나.”
“그럼 빨리 하나 낳으면 되죠, 방 형은 나이도 많지 않잖아요. 아이를 갖지 않으면 둘 다 스트레스를 받게 될 텐데, 전 방 형이 어머님으로부터 독촉 서신을 아직 받지 않았다는 걸 못 믿겠습니다.”
고청운이 나뭇잎을 잡으려는 소석의 작은 손을 펼쳐보았다.
고대의 시간을 살면서 아이를 늦게 갖고 싶어 한다고? 그랬다간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찾아와 불임을 고쳐주겠다고 성화를 부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