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60)화 (160/504)

160화. 장원 (1)

9월 9일 중양절(重阳节)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경성 교외에 등산하러 갔다. 이날에는 고청운만 강의를 쉬는 것이 아니라 방인소도 휴일을 맞았다. 

그들은 사전에 이미 방자명 내외와 함께 방씨네가 가지고 있는 성곽 밖 장원에 가서 하루를 지내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이곳은 비록 유명한 산이나 큰 강 같은 건 없는 곳이었지만 작은 산비탈이 있어서 경치를 즐길 수 있을 만한 높은 곳까지는 오를 수 있는 곳이었다. 

경성 근방의 산은 정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릴 테니, 그런 곳에 가서 등산을 한다면 인파에 밀려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초아흐레 아침 일찍 동이 트기도 전에 모두 일어나 방택 전체에 불을 켰다. 한 번 외출을 단행하려면 물건을 많이도 챙겨야 했기에,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번에 그들은 작은 소석 옷만 한가득 챙겼다. 이 녀석이 요즘엔 나쁜 버릇이 생겨서 매번 오줌을 싼 다음에야 어른들에게 알려주곤 했던 것이다. 

어떤 때는 심지어 하루에 여러 개의 바지를 갈아입게 했는데, 고청운이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려 해도 방인소와 연 씨까지 곁에서 호시탐탐 감시를 하며 그를 도망가게 해 주기도 해서 하지 못했다. 

방택에서는 마차 한 대와 전세를 낸 마차 한 대가 더 있어서 집안사람들을 모두 태워갈 수 있었다.

* * *

성문 입구에 도착하자, 방자명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적어서 마차 한 대면 되었다.

방자명의 요청에 따라 고청운은 마차에서 내려 남편들이 한 마차에 올라타게 하고, 부인들만 또 다른 마차에 올라타게 하였다. 

마차에 탄 고청운은 익숙한 듯 서랍을 열고 계화떡 한 조각을 꺼내 먹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굳이 마차를 갈아타야 한 겁니까?”

그는 간미와 얘기하고 싶었다. 무릇 소석과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비록 닭과 오리가 서로 떠드는 모양새였겠지만 말이다.

방자명은 곁눈질로 흘겨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낭자가 요구한 거야. 내가 설마 네 녀석이랑 같이 앉아 가고 싶어 했을까 봐?”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 겁니까? 형 누님이 이제 막 회임하지 않았던가요, 그럼 기뻐해야죠.”

고청운과 방자명은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그가 화가 났는지에 대해서만은 여전히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장수원도 부르려고 했었는데, 마침 방 누님이 회임을 했다고 진단을 받아 못 올 것 같았기에 부르지도 않았다.

“너희 집에 소석이라는 저놈은 통통하고 뽀얗게 생긴 것이 엄청 귀엽게 생겼더구나. 우리 집 부인은 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하루 종일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더군. 우리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이 갖는 시기를 더 늦출 수는 없는 걸까?”

방자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어 말했다.

“나는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것이 매우 좋아. 그래서 잠시 아이를 갖고 싶지 않지. 너희 집 소석이가 집안사람들을 괴롭혔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무조건 천천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방자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던 고청운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주변을 떠올려 봤다. 하 씨와의 친분이 두텁지만, 부모가 모두 곁에 안 계셨으니 아이가 하나 더 생기는 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릴 생각인가요? 어차피 여종이 있으니 아이가 있어도 번거로울 염려가 없고, 하 대인도 경성에 계시니 그들이 항상 도와줄 텐데 말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성혼한 지 1년이 지났잖아요? 이는 ‘성혼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에요.”

고청운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방자명은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중하며 부채를 흔들었다.

고청운도 개의치 않고 비스듬히 누웠다. 경성 주변의 길이 좋았으면 좋으련만, 끝내 충격을 완화해줄 만한 장치가 없는 마차를 타고 가는 게 편치 못했던 그는 차라리 말을 타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후부에 말을 탈 수 있는 곳이 있어 후부에서 승마를 배우게 되었는데, 기회를 얻어 후부의 친위병들과 훈련에 임해서인지 지금은 승마술이 매우 훌륭했다. 고청운은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만 아쉬운 것은 돈이 없어서 말 한 마리 못 키운다는 것이었다. 

“임산현에 다녀오겠다고 하지 않았었니?”

방자명도 방석에 비스듬히 누워, 고청운이 서랍에서 자신의 책을 꺼내 흥미진진하게 넘기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안 돌아가려고 합니다. 집을 사고 나서 지금 여비가 부족하거든요.”

고청운은 아직도 100여 냥밖에 남아 있지 않은 수중의 은전을 생각하며 매우 괴로워했다.

계획은 빨리 변하는 것만 못하다고, 원래는 올해 집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여비로 쓸 은자 200냥이 없어 못 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부모를 경성에 오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들어가는 여비를 따지면, 노부부는 분명히 거절할 것이었다. 

“집을 산다고 했을 땐 이사를 갈 줄 알았어.”

방자명이 한마디 했다.

“저는 뻔뻔해서 스승님 댁에서 거저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고청운은 책을 뒤적이기만 할 뿐 제대로 읽지 못했다. 책의 질이 별로라서 종이가 좀 누렇게 변했지만, 원가 조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잠깐만,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본이야.”

그를 줄곧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방자명은 고청운이 책을 건성건성 들추는 모습을 보고 매우 화가 나서 책을 받아와 조심스럽게 잘 놓았다.

고청운은 그를 한 번 보고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안의 내용 중 일어나는 사건을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더 있겠는가? 이것은 고청운 자신이 쓴 모험기였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아직도 이 책을 즐겨 볼 줄 몰랐다.

방자명이 직접 물었다.

“청운아, 너 말이야 이미 유행에 뒤떨어졌구나. 이 화본은 지금 경성에서 아주 불티나게 인기가 있는 책이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고 있다고. 하여간 ‘일침황량’도 글을 잘 써서 딱 내 입맛에 잘 맞았는데 말이야. 내용도 저속하지 않고. 그런데 정작 저자는 어디 사람일까? 월양군에도 그의 저서가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게 경성에도 출간이 되어 있지?”

방자명이 눈썹을 찡그리고 생각에 잠겨있는 걸 보니, 매우 이해가 안 되었던 것 같았다.

고청운은 그에게 그 이유를 말해주고 싶지 않아 하품만 할 뿐이었다.

마차가 머지않아 멈추자, 고청운과 방자명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마부가 차 문밖에서 말하기를, 앞에 소란이 있어 사람들이 못 지나가고 있어서 지금 모두 기다리느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또 어디 두 가족이 싸우나 봐요? 이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니, 안심해요. 누군가 나와서 해결해 주겠죠.”

방자명이 한마디를 하며 마차의 발을 들추어 보니, 그들의 왼쪽에는 보리밭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다른 마차가 있었다. 명확한 표지가 없어, 누구의 집의 마차인지는 식별할 수 없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충돌이 있을 때는 그저 나서지 않고, 구경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는 게 상책이었다. 

확실히 경성에는 사람도 많고 마차도 많아 충돌이 발생하기 쉬웠는데, 그 귀한 집 자제분들이 늘 말썽을 일으켰다. 특히 전 국민이 행사에 참여하는 날에는 갈등이 발생하기 더 쉬웠다. 그들이 일찍 길을 나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성문 입구에서 아주 오래 줄을 서야 나올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고청운과 방자명은 매우 놀랐다. 올라탄 사람이 장수원이었던 것이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 누님은 집에 있고 따라 나오지 않았네. 내가 말을 타고 스승님과 함께 왔는데, 옆을 보니 마침 너희들이 보여서 이야기하러 넘어왔지.”

그가 말을 타고 왔다는 사실에 고청운과 방자명은 크게 놀랐다.

그때, 갑자기 장수원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앞에서 누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지 아는가?”

그의 표정이 자못 신비했다.

“누구예요?”

고청운과 방자명이 호기심에 물었다. 누군가가 알아서 소식을 제공하겠다고 하니, 그들도 당연히 듣고 싶어졌다.

“영평백부의 둘째 아들 사장정일세. 이름은 들어들 봤지? 불같은 사람이고, 생긴 거는……. 음, 아주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 인상이지. 또 그의 명의로 있는 송죽서재에서 최근 재미있는 화본이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몰래 보고 있지 않은가.”

장수원은 두 사람이 모를까 봐 세세히 설명해주느라 바빴다.

“그분이었군요. 예전에 주점에서 멀찍이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인상 깊었었죠.”

방자명이 문득 놀랐다. 

반면, 고청운은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눈앞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이 신비스러운 소문을 논하고 있다니. 역시 풍문은 남녀를 막론하고 인류 공통의 취미인 것 같았다.

오죽하면 중국인들이 구경을 잘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고청운이 사장정이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는 말에 급히 물었다.

“그와 충돌한 건 어느 집 자제라던가요?”

그는 문득 방자명에게도 자신이 사장정을 알게 된 일을 말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다, 진즉에 누가 나와서 주재하고 있으니 굳이 저기 껴들 필요는 없겠네요.”

장수원은 부채를 펴고 흔들다가 부채로 입을 가리고 속닥였다.

“안락(安乐) 공주라네!”

고청운과 방자명은 깜짝 놀랐다. 안락공주는 황제의 유일한 적공주로, 올해가 열여섯인가, 열일곱 살인가 되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고청운이 다시 또 물었다.

“방금 스승님께서 나를 앞으로 보내셨지. 나는 전시를 치르느라 폐하를 한 번 뵌 적이 있지 않은가. 공주께서는 조용하고 치장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때 멀리서 본 적이 있었지.”

고청운은 안락공주가 황제와 꼭 닮았다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떠올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의 황제는 2대 황제이니 유전적으로 아직 뛰어나진 않을 거라 외모가 일반 행인과 진배없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하게 닮은 공주라니……. 모두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본 왕조는 공주의 남편이 권력을 잡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기에, 벼슬에 있어서도 승진을 할 여지가 없었다. 하여 공주는 일반적으로 전설 속의 장원들 같은 사람들과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 필경 십여 년 동안 어렵사리 공부해서 이제 겨우 합격자 명단에 오른 학자들도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공주와는 맺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따라서 본 왕조의 공주들은 보통 귀족 집안의 자제에게 시집을 가거나 벼슬길에 오를 뜻이 없는 선비들과 맺어져 왔다. 

영평백은 초품 3등급의 작위를 가진 집안으로, 사장정은 적자였다. 신분상으로나마 겨우 공주와 어울릴까 말까 한 정도였다. 개중에도 뛰어난 국공이나 후부 공자들은 반드시 벼슬길에 들어서려고 할 것이고, 관직을 맡을 수 없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냥 부잣집 도련님들로 정말 어떻게 해도 실력을 갖출 수가 없는 사람들일 것이었다. 

본 왕조의 공주는 봉분을 받지 못하여 매년 종인부(宗人府)에서 봉록을 받아야 했는데, 그 권세 역시 당나라 때의 공주들과 매우 비슷하였다.

사장정의 미모를 생각해보던 고청운은 안락공주가 사장정을 마음에 들어 한 게 진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고청운은 정월 대보름이 지나 갑자기 못생겨진 사장정의 얼굴빛을 떠올리면서, 사장정이 그때 그의 불쾌했던 원인을 제쳐두고 만약 이 혼사를 성사시킬 수 있다면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 평생 먹고 마시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고청운은 다음에 만나면 꼭 당사자에게 소감을 물어봐야겠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충돌이 해결된 듯하자, 장수원은 얼른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가 출발할 때 고청운이 창문으로 내다보니, 마침 사장정이 말을 타고 돌아서고 있었는데 얼굴은 무표정했다.

고청운이 그간 만나온 사장정은 늘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사뭇 진지한 모습이 보여 어색했다.

두 사람 사이는 마차로 거리가 떨어져 있어 고청운도 인사를 건네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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