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어린아이 (2)
“아빠, 아……빠!”
소석이 갑자기 흥분하여 작은 입을 내밀고는 고청운의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했다.
“자, 소석이는 아비가 세수하고 나서 뽀뽀해 주거라. 지금 아비 얼굴은 더럽다.”
금방 돌아와 아직 세수를 하지 않았던 고청운은 손으로 그의 열정을 가로 막았다. 설령 소석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였다.
역시 소석의 흥분은 가라앉고, 고청운의 품에 안겨 허허실실 웃었다.
“부군, 소석이가 이렇게 작아도 어른 눈치를 볼 줄 아네요. 우리가 옷을 갈아입힐 때는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손발을 마구 움직이는데 말이에요. 그냥 순순히 안 맞춰주더라고요. 당신이 옷을 갈아입힐 때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주는지 몰랐어요."
간미가 말했다.
“그건 내가 때렸었기 때문이오.”
고청운은 혜향이 옮겨 온 걸상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늘 그 녀석을 봐주기만 해서는 안 되오.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해 줘야지.”
“아직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어요?”
간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부군이 아들에 대해 진지하게 이치를 따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모르오? 오래되면 알게 되어 있소. 어리다고 다 봐줘서만은 안 된다오. 도리를 따지다보면 언젠가 알아듣게 될 것이오.”
고청운의 반박에 품에 안긴 소석이 구시렁대며 눕지 않으려 했고, 이내 일어서더니 고청운의 무릎에서 뛰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성실히 본분을 지키는 유모를 보고 말했다.
“이제는 젖을 끊어야 하지 않소?"
간미는 젖을 6개월밖에 먹이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젖유모를 통해 먹였다.
그래서 고청운은 6개월 후부터 소석에게 이유식을 주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액체 음식을 먹이거나 쌀가루, 과일 간 것 등을 먹였다. 그가 조금 더 커지면 푹 삶아 흐물흐물해진 밥, 국수, 그리고 잘게 썬 과일, 야채 등을 먹일 예정이었다.
젖이 유일한 식량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석은 활발하고 활동적이었다. 젖은 이미 그 아이의 식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최근 고청운은 소석이 이유식을 많이 먹고 있다고 깨닫고, 이제 젖을 끊어야 할 때가 왔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이가 나기 시작해 물 수도 있었다.
소석이 6개월에 깨물기 시작하자, 고청운은 간미에게 젖을 더 주지 말자고 결정했다.
“부군, 조금만 더 먹일 수는 없나요?”
간미는 남의 집 아이는 모두 2~3살까지 젖을 먹이니 아쉬워했다.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오?”
고청운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렇게 오래까지 먹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젖이 얼마나 많은 영양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들, 이유식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다.
젖유모는 그 집에 귀속된 하인이 아니었다. 집의 하인들은 이 기간 동안에 출산한 사람이 없어서, 밖에서 젖유모 한 분에게 부탁하여 소석의 돌때까지만 봐 달라고 고용 계약을 맺었는데, 지금이 약속한 지 만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간미는 아이가 젖유모에게 가지는 애착을 생각하니 어리둥절해졌다. 비록 그들이 밖에서 젖유모를 초청했던 것은 나중에 기존 유모가 아이가 젖에 의존하는 힘을 믿고 집안에서 세력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말이다.
지금 와 있는 이 젖유모는 정직하고 기색이 평범했으며 집으로 들어와 지내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기 집에 돌아가는 시간 빼고는 다 꼼꼼하고 아들을 잘 챙겨왔다.
‘아니, 젖유모도 자기 아이가 있으니 돌아가서 만나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은자를 좀 더 보상해주면 될 거야. 조만간 이별을 고해야겠다.’
* * *
과연 이날 저녁으로 간미와 연 씨는 상의를 마친 후 이튿날 바로 젖유모와의 고용 관계를 청산했고, 약속된 품삯 외에도 보상을 좀 더 얹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젖유모와는 차마 떨어지기가 싫었으나 간미는 그래도 마음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젖을 끊게 된 소석은 이후 며칠간 떼를 쓰며 어른 넷의 생활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다.
“청운아, 아니면 좀 더 기다려 주는 것은 어떠하냐? 먼저 젖유모를 다시 불러오는 건?”
방인소는 엉엉 우는 소석을 안고 달래고 갖은 수단을 다 써서 겨우 울음을 그치게 하였는데, 소석이 눈만 빨갛게 되어 목메는 모습이 퍽 불쌍해 보였다.
연 씨는 벌써 마음이 아파서 다급해진 표정이었다.
“스승님, 원칙은요? 앞으로 이 녀석을 작은 패왕으로 키우지 않도록 봐 주시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시면 안 됩니다.”
고청운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처음 방인소는 고청운이 늘 소석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아이를 너무 지나치게 귀여워한다고 나무랐었다. 이때의 사람들은 ‘손자는 안아줘도 자기 아이는 안지 않는다.’고 하는 교육관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청운이 한동안 아이를 지나치게 귀여워하자, 방인소는 소석이 아비인 고청운과 특별히 친하다고 여겨 질투를 하였다.
고청운은 이를 보고 은근슬쩍 속으로 비아냥댔다.
‘소석이에 대한 막무가내 총애로 따지면 스승님이 더하면 더했지 무슨 나를 걸고넘어지시는 거람? 자신이 그렇게 아끼고 관리하는 수염마저 소석이에게 붙잡혀 계시면서.’
간미조차도 그녀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절대로 이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한 적은 없었다고 남몰래 말했었다.
“자, 이 계란장 좀 드세요.”
고청운은 혜향이 가져온 계란장 한 그릇을 보고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이 계란장은 일명 현대의 ‘마요네즈’인 셈이었는데, 노른자를 갈아서 거르고 육수와 전분을 넣어 끓여서 맛있는 향이 코를 찔렀다. 평소 그는 부엌에 청해 채소도 곁들어 달라고 했었지만, 아들이 처량하게 우는 걸 보고는 채소를 빼버리고 소금만 조금 넣어 달라고 하였다. 소석이 한 살 전에 먹는 이유식엔 어떤 조미료도 첨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고청운이 방인소의 품에 안겨 목이 메도록 울고 있는 소석을 향해 소리쳤다.
“자, 소석아 밥 먹자.”
“우유, 내 유모.”
소석은 포도알 같이 큰 눈으로 그를 보더니, 또 얼굴을 획 돌려 버렸다.
“우유, 우유.”
그가 손발을 버둥거렸다.
“먹기 싫으면 말거라. 그냥 배고프게 있어!”
고청운은 이 말을 천천히 몇 번 반복했다.
모두들 찬성하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아이를 훈계할 때 의견을 통일해야 한다고 사전에 약속을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아이가 좀 더 크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면 더욱 그래야 했다. 아버지는 찬성하는데 어머니가 반대하는 둥 이견이 있으면 사석에서 다시 말을 맞춰야 했는데, 소석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것은 교육에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석은 알아들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버둥대던 손발을 멈추더니 얼굴을 방인소의 품에 묻은 채 개구멍바지를 입은 엉덩이를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입으로 무엇을 떠들고 있는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때, 방인소가 갑자기 하하 크게 웃고는 밥상의 음식이 아직 식지 않은 것을 보고 말했다.
“자, 됐다. 우리 먼저 먹자꾸나.”
결국 그들의 작은 소석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순순히 음식을 먹어줬고, 모두들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에 한시름 놓았다.
유모가 돌아갔던 첫날, 소석은 가족들이 잘 달래어서 별로 울지도 않았다. 다음 날부터 가족들은 소석한테 우유를 먹였는데, 아침나절은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지금은 마침내 음식을 먹게 되었다.
집에 젖이 더는 없는 걸 알았는지, 소석은 젖을 끊은 뒤 가끔 울며 반항의 표시를 보였지만,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고도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때 양젖을 먹일 수도 있었지만, 이 시대의 양젖에는 후대처럼 살균처리 기술이 없어서 세균에 더 취약한 영유아에겐 먹이지 못했다. 고청운은 감히 소석의 건강 문제를 놓고 도박을 할 수 없었기에, 잠시 생각만 해보고 소석이 조금만 더 크면 양젖을 먹이기로 하였다.
어쨌든 양젖은 아이에게 아주 좋았던 것이다.
* * *
며칠 후, 집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은 고청운은 얼른 뜯어보았다.
“부군, 안에 소석이의 이름이 들어있나요?”
간미가 급히 물었다. 이전에는 소석이 작아서 규정상 족보에 아명을 올리지도 않고 이름도 아직 짓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이미 돌이 되었고 몸이 줄곧 건강한 것을 식구들도 알고 있기에 분명 이름을 족보에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작년 8월 사촌 형이 수재에 합격한 후로 할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면서 이름 짓는 항렬을 고쳐주셨소. 예전에는 우리 집에서 아무나 글자를 뽑아 항렬로 삼고 이름을 지었었는데, 이제 큰할아버지가 가문이 계속 번창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영전창성, 흥연계승(永传昌盛,兴延继承)’이 여덟 글자를 앞으로 우리 후대에서 항렬로 따르기로 하였다오.”
드디어 고청명이 수재에 합격했다. 고청운은 이를 알았을 당시 너무 기뻤는데, 가족 중에 마침내 두 번째로 공명(*功名: 과거의 칭호나 관직의 등급)이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번에 합격하지 못한 조옥당은 끝내 고집을 꺾고 현학에 가서 공부하기를 원했다. 이전에는 현학에 가도록 주선하려 해도 여전히 집에서 공부하기를 고집했는데 말이다.
“우리 아들은 ‘영’자를 사용할 항렬인데, 아버지께서 사람을 찾아가 돈을 주고 지은 이름이 바로 ‘고영량(顾永良)’이라고 하오.”
그의 아버지는 편지에 다른 이름을 원하면 그 이름을 사용해도 된다는 말을 적어두셨으나, 어찌 어른의 마음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변이 없는 한 소석의 이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었다.
“고영량…….”
간미가 몇 번 읽고 말했다.
“괜찮네요. 앞으로 우리 소석이의 본명은 이것이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드디어 둘째 사촌 형이 장가를 간다고 하오.”
고청운은 서신을 끝까지 읽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22세가 되어서야 혼인하다니 정말 대단하구려.”
앞서 고청량은 하씨 집안의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장부를 담당하는 점원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가 장가든 곳은 임양부의 한 상인의 딸이었다.
고청운은 고청량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이 아내가 될 사람이 그가 무심코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집요하게 구혼하여 큰 힘을 들여서 겨우 장가간 것이었다.
“우리는 혼인 피로연에 갈 수 없으니 정말 아쉽소.”
고청운은 한숨을 쉬었다. 가기에는 길이 너무 멀었다.
* * *
그날 저녁, 융단 위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던 고청운의 등에는 소석이 엎드려 매달려 있었다. 소석은 고청운이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기뻐서 그에게 매달렸고, 계속 깔깔대면서 작은 손으로 이따금씩 아버지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고청운은 등에 떨어진 침을 느끼며 아연실색했지만, 다행히 아직 목욕을 하기 전이라 안도했다.
한편, 간미는 촛불 아래서 장부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마침 방세를 받는 날이었다.
“부군, 이번 달에는 집을 모두 세를 줘서 세 달치 집세를 미리 받았어요. 총 은자 32냥이에요.”
간미는 말하면서도 주판을 튕겨서 이달 그들의 수입과 지출을 곧 계산해냈다.
춘절을 쇨 때, 고청운은 일남방에 한 묘의 땅을 샀는데, 지난달에 이미 집은 다 지어졌다. 기본적으로는 사합원의 구조에 따르되, 단지 안방이니 곁방이니 하는 방들은 모두 벽으로 따로 떨어져 있게 하였고, 안쪽은 집 하나에 방 하나, 거실이 하나, 혹은 방 두 개에 거실이 하나 딸린 형태로 만들었으며 어떤 집에는 주방을 더 짓기도 하였다.
모두 열 채의 집을 지어서 열 가구가 동시에 임대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각자의 사생활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로 집을 지으려니 거의 3백 냥에 가까운 은자가 들었다.
경성의 하수도는 잘 정비되어서 정원 중앙에는 우물을 파서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정원에는 작은 화단도 몇 개 만들어 놓았다. 고청운은 여기에 계수나무와 화초 몇 떨기를 심었다.
이것은 수익성 주택으로 그들이 이곳에 살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주변 환경이 좋고 안전하고 또 깨끗해서, 집이 막 지어지자마자 고청운은 고삼원을 보내 관리하도록 하였고, 이달에 이미 전부 임대를 마쳤다.
“좋아. 몇 년 지나면 본전을 찾겠군.”
고청운이 숨을 헐떡이며 한마디 했다. 지금 수중엔 백여 냥만 남아 있으니, 땅을 더 사고 싶어도 사면 안 되었다. 우선은 만일에 대비해 돈을 좀 남겨 두는 게 좋았다.
기복이 심해 보이는 고청운을 바라보던 간미가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강건하고 늘씬한 몸매를 드러낸 채 이마에 땀이 맺혀 있는 부군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부군, 우리 둘째는 언제 다시 갖는 건가요?”
그녀는 소석을 낳은 후로 고청운이 다시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여 조급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뻗을 뻔했고, 곧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답답하기만 했다.
‘등에 매달린 저 작은 아이로도 이미 무거운데, 또 하나 더 늘리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