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57)화 (157/504)

157화. 어린아이 (1)

고청운은 육훤의 등 뒤로 보이는 옷이 다 젖어 있는 걸 보고 얼른 오문과 함께 그의 땀을 닦아 주었다.

오문이 땀을 닦아내주며 말했다.

“고 공자님, 다음엔 유모들도 데리고 나와야겠습니다. 여인들이 사내보다 좀 더 세심하니까요.”

출발할 때부터 본래 여종을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고청운이 동의하지 않아 큰 사내 몇 명만 함께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네, 전 상관없습니다.”

고청운이 육훤을 살피면서 물었다.

“소보야, 어디 아픈 곳은 없니? 지금 목이 말라도 조금 더 기다려야 미지근한 물을 마실 수 있으니 우선은 조금만 더 참거라.”

육훤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는 스승님의 이런 습관을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매번 땀을 많이 흘릴 때마다 바로 물을 마시거나 목욕을 하지 않고 좀 기다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도 덩달아 이 습관이 몸에 배었다.

육훤은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서 그가 친구들과 더 놀게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를 집에 데리고 가야 했던 고청운이 바로 물었다.

“너만 좋다면 다음에도 우리 여기 와서 또 놀자꾸나.”

“진짜요?” 

육훤이 눈을 빛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또 올 수 있어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줬다.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 그의 올바른 성정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음엔 전력이 약한 조에 육훤을 투입하여 마냥 승리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려줄 참이었다. 때론 실패도 맛보아야 했다.

그들은 방자명과 대화를 한 번 나눈 후, 후부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 * *

마차 안에서 고청운은 육훤에게 깨끗한 옷을 갈아입히면서 그제야 그에게 물을 먹였다. 육훤은 방금 축국 경기를 둘러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함께 뛴 어떤 친구가 발목을 잡았다고 불평까지 해 가면서 많은 말을 하였다. 

“그 뚱보 녀석 탓이에요. 살이 너무 쪄서 뛰지 못하고 거기 서서 막기만 했어요.”

육훤은 작은 뚱뚱보의 몸짓에 빗대어 말하는 게 쑥스럽지 않은 듯했다.

아까 열심히 구경하던 고청운도 그 작은 뚱보 녀석이 인상적이었다.

“그럼 그 아이는 그 외에 어떤 다른 일을 해서 너희 조에 도움을 주었을까? 스승님이 알려주었었지?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는 만큼, 나쁜 점뿐만 아니라 좋은 점까지 봐야 한다고 말이야.”

육훤은 깜짝 놀라 머리를 끄덕이며 잠시 눈썹을 찡그리고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생각났어요. 뚱보 녀석이 살이 찐 탓에 한 사람을 쳐서 넘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 덕에 제 옆에 아무도 없게 되어 제가 공을 넣을 수 있었어요!”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보았단다.”

육훤은 좀 미안해져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물을 제자리에 놓고 수줍게 웃더니 뒤이어 또 다른 친구들에 대한 평론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사이사이에 자신이 느낀 고마움을 끼워 넣었다.

고청운은 옆에서 경청하기만 할 뿐, 자신의 사견은 넣지 않은 채 의도적으로 질문만 하였다. 한 사람을 볼 때 상대방의 단점만 볼 것이 아니라 장점도 봐야한다는 것을 육훤에게 가르친 그는 그 후로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그러자 육훤도 이를 의식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눈앞에 있는 이 활발하고 귀여운 어린아이에게 뿌듯함을 금치 못했다.

육훤의 학습 능력은 그래도 아주 좋은 편이었다. 다만 미래를 생각하니, 고청운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직 육택의 부모상 기간이 두 달 이상 남았지만, 이제는 그의 재혼 얘기를 꺼낼 때가 온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육훤에게는 계모가 생기게 될 터였다. 고청운은 그의 계모가 상냥한 사람 대신 마음이 좁은 사람일까 봐 두려웠다. 결국 후부에는 막대한 권력인 작위가 있었는데, 이것은 정말 너무 큰 재산이라 그런 사람이 계모로 들어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택과의 만남을 통해 고청운은 부모상의 기간이 끝나자마자 육훤이 세자 자리를 계승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육훤을 보호하려는 일종의 조취로, 그가 후계자의 위치에 오르면 계모에 대한 걱정도 어느 정도 덜 수 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그냥 이게 다 자신의 기우였으면 하였고, 그저 육훤이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까는 너무 흥분을 했었는지 반시진이 지나 그들이 후부에 돌아왔을 때 육훤은 이미 돌아오는 길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오늘 수업도 이렇게 끝이 났구나.’ 

오문이 육훤을 끌어안고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고청운은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곧바로 후부의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 *

후원의 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정원에서 소석의 목소리가 들려서 고청운은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소석은 이틀 전에 갓 돌을 맞았다. 그들은 조촐한 돌잡이 의식을 치렀는데, 그가 잡은 것이 책이라 모두들 기뻐했다. 이것은 소석이 자라서 총명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며, 아리따운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고, 반드시 3차례 연속으로 장원을 거머쥐게 될 것이라는 미래를 예시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돌잡이라는 것이 아리따운 미래에 대한 축복과 동경의 표현일 뿐, 이게 진짜 아이의 장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매우 기뻤다. 아이는 모방을 할 줄 아니, 아이 주변의 가족들이 책 보는 것을 즐겨하는 걸 많이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틀림없이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소석이 돌잡이 때 책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고청운은 정원의 가림벽을 돌아 곧장 뜰의 자갈 깔린 오솔길을 가로질러 갔다.

“부군, 돌아오셨어요?”

때마침 의자에 앉아 있었던 간미가 첫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부군이 걸치고 나갔던 옷이 또 바뀐 것을 보고, 그가 후부에서 목욕했다는 것을 알았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해가 아직 지지 않았는데, 왜 나와 있었소?”

‘물론 햇볕에 그을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간미는 일어서서 고청운을 보았다. 웃음 지으며 키가 큰 체구에 날렵한 몸으로 살구꽃나무 아래 똑바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그녀는 왠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쑥스러운 듯 눈을 내리깔고 소리를 내고 있는 소석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젠 얌전히 집에 있으려 하지도 않아요. 어떻게 달래도 안 되니, 밖에 나와 있는 수밖에요.”

“압……빠!”

고청운이 막 소석쪽을 돌아보던 그때,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아빠!”

원래 돗자리에 앉아 있었다가 지금 바로 엎드린 소석은 아버지인 줄 알아보고 눈을 빛내며, 짧은 다리를 움직여대면서 날렵하게 기어서 재빨리 고청운에게 다가왔다.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던 고청운은 재빨리 몇 걸음 걸어가 돗자리의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앉더니 그의 전진을 막았다.

“아?” 

앞에서 누가 길을 막자 소석은 기어가는 것을 멈추고 의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보이니 금세 크게 웃으며 여섯 개의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모습에 고청운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의 아들은 정말 귀엽게 생겼다. 뽀얗고 통통한 편인데다, 팔뚝도 다리도 실했으며 단발머리는 숱이 많고 이목구비도 그와 똑 닮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만삭둥이라서 병치레도 거의 없이 건강했다. 

그들은 소석을 아주 정성스럽게 키웠다. 그가 태어났을 때 모두들 간미를 닮았다고 말했었고, 고청운도 그렇게 느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중에는 점점 그를 닮아가더니 지금은 이미 7~80% 정도가 그와 비슷했는데, 고청운보다 이목구비가 더 수려했다. 정말 이 아이는 너무 예쁜 아기였다.

자신과 비슷한 작은 얼굴을 보고, 고청운은 마음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그는 이 아이가 자신을 보고 웃어주기만 하면, 항상 아이를 총애하고 어떤 요구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응석받이를 키워낼까 두려웠다. 그래서 고청운은 그런 식으로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하면 아이의 장래에 대해 좋지 않은 걸 알고, 소석이 점점 커지면서 통제를 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다스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게 키워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집에서는 간미와 연 씨가 그 아이를 총애하는 것에 너무 습관이 되어 있어 요즘 갈수록 아이의 행동이 횡포해져, 고청운은 어쩔 수 없이 엄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이 아이에게 엄격한 요구를 들이대니 좀 무서워 하긴 했지만, 소석은 여전히 아버지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보자, 소석은 또 큰소리로 소리치고는 입을 벌리고 웃었는데 작은 얼굴이 꽃과 같이 보였다. 다만 침이 흐르고 있는 꽃이었다.

“소석아, 오늘은 얌전하게 굴었느냐?”

고개를 숙이고 아이를 살펴본 고청운은 개구멍바지를 입은 아이가 혈색이 좋고 몸에 땀이 별로 나지 않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착해!”

소석은 습관이 되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 겨우 돌이라 간단한 몇 자를 말할 줄 알았는데, ‘아빠, 엄마, 외할아버지, 할머니’는 부를 줄 알아도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등의 단어는 아직 말하지 못했다. 그저 단순한 글자나 중첩된 말들만 곧잘 할 뿐이었다.

언어 방면에서 소석은 어떤 재능도 두드러지게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정상이었다. 대신 신체적인 재능이 유독 돋보였는데, 기거나 걷거나 하는 것이 보통의 유아보다 조금 빨랐다. 지금은 겨우 한 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조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종아리가 단단했다. 

다만 고청운은 전생에서 뼈의 발육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어린아이가 너무 일찍 걸음마를 배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어렴풋이 들었었기에, 마땅히 자연에 순응하며 무엇보다 기어가게 하는 것이 지능의 발육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바로 일어서서 몇 걸음 걷고, 물건을 붙잡고 서 있을 수 있었는데, 걷고 싶지 않고 기고 싶어 할 때는 고청운도 강요하지 않고 그저 기도록 두었다. 

소석은 기어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했는데, 다리가 매우 빨라서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기어서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걷는 건 휘청휘청하니, 현재로써는 여전히 기는 것을 좋아했다.

연 씨는 이때부터 매우 우울해했는데, 소석이 길 줄 알게 된 후부터 융단이 깔린 방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 그녀조차도 그 아이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번쩍하는 찰나에 소석은 바로 멀리까지 기어 사라져 버렸는데, 다행히 여종과 유모가 보고 있어서 지금까지 큰 사고는 난 적이 없었다.

“안아!”

소석이 침을 튀기며 팔을 뻗었다.

“또 침 흘리지!”

고청운은 간미가 건네준 부드러운 손수건을 받아 젖은 턱을 살짝 닦아주고, 목에 걸린 침 받침을 풀어 주었다.

한쪽에 있던 유모가 이 모습을 보고 재빨리 침 받침을 받더니 새것으로 건네주었다.

고청운은 소석에게 침 받침을 둘러 주고는 그제야 껴안고 뽀뽀를 하였다.

“그래, 오늘은 착하구나.”

이전에는 고청운이 어떤 옷을 갈아입히더라도 소석이 계속해서 움직여댔었다. 고청운은 예전에는 그런 아이를 쫓아다녔다가 나중에는 엉덩이를 한 번 때렸는데, 영리한 아이는 이제 침 받침을 바꿔주는데도 조용히 앉아 있게 되었다. 이럴 때는 또 마땅히 칭찬을 해줘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