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축국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 춘절이 다 지나고 정월 대보름도 후딱 지나갔다. 경성의 정월 대보름은 의심의 여지없이 매우 떠들썩했다.
고청운과 간미는 아이를 집에 두고 밖으로 나가 한 바퀴 돌며 명절 분위기를 느끼면서 탕원(汤圆) 한 그릇을 먹었으나, 집에 있는 소석이 그리워져서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골목에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황제가 정월 대보름에 나타났다는데, 백성들의 말이 아주 그럴 듯했다. 이 시대에는 힘을 장악한 조정의 관원이라도 함부로 황제에 대한 말을 하지 못했고, 조정에서의 학자에 대한 단속도 심해, 현학 등 지방에서만 당대 조정에 대한 언론 발표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밖에서 해서는 안 되고 마음대로 비방을 하거나 편집을 해서도 아니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풍토가 느슨해져서 경성에서는 비정규 신문이 나오기도 하였다.
일반 서민들은 오히려 당대 정치에 대해 손가락질할 수 있었는데, 특히 황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 이번 저잣거리 뜬소문들만 해도 여러 가지 판본이 나돌 정도였다.
고청운은 그 소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폐하께서 대관절 명절에 황궁에서 뛰쳐나와 뭘 하신다는 말인가?’
다만 사장정의 도착으로 인해, 저잣거리 소문이란 게 때론 그냥 막 생성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야? 우연히 폐하를 만났다고?”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사장정은 다소 기운이 빠져 한마디 툭 던지고는 더 이상 말을 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원고만 재촉했다.
눈썹을 치켜세운 고청운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조급해하지 말고 나중에 적절한 기회에 사장정에게 말을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고청운의 화본이 경성의 시민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시간은 바야흐로 5월에 접어들었다.
이날 고청운은 육훤을 데리고 남쪽 지역의 한 서당에 놀러 갔다. 이곳은 면적이 꽤 큰 서당이었는데, 지역 노인들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미 십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3명의 거인과 3명의 수재가 여기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방자명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매일 이곳에 와서 수업을 하였는데, 오전이나 오후의 시간만 수업을 진행했다. 가르치는 학생들은 모두 집에 자산이 꽤 있는 유지들의 자제들이기 때문에 월급이 적지 않았다.
고청운이 이곳에 육훤을 데리고 온 이유는 이곳 아이들과 축국(*蹴鞠: 공차기놀이)을 하기 위해서였다.
후부에서 아이는 육훤 혼자였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놀이 동무가 7, 8명이나 되었지만 모두 시종의 아들이라 그를 따라다니며 달래기만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다른 댁의 또래 친구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자, 소보야. 좀 있다 직접 저기 친구들이랑 축국을 할 거야. 집에서 하던 거, 규칙 기억해?”
공터 밖에서 고청운이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육훤은 깔끔한 남색 옷차림에 품에 축국에 쓰이는 공을 안고 있었는데, 작은 얼굴엔 엄숙함이 가득했고 그의 붉은 입술은 하얀 치아를 더 돋보이게 하였다.
“공은 손을 사용하지 말고 저 공문에 넣어야 한다는 건 아는데…….”
그가 작은 손으로 빈 공간의 허름한 골대인 공문을 가리켰다.
“좋아! 기억하고 있으면 되었다! 그럼 준비하자꾸나. 네가 홍색조인 걸 기억하렴.”
고청운은 어깨를 두드려주며 허리에 붉은 천을 묶어줬다.
육훤은 공을 내려놓고 고청운을 따라 몸을 풀면서 손과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아이와 학부모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소곤소곤 얘기를 주고받았다. 대부분 7~8세의 나이인 아이들은 부근의 몇몇 서당의 학생들로 평소에 축국을 하려고 모여서 놀았는데, 다른 서당들은 이곳만큼 넓은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육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고청운을 올려다보았지만, 스승님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자 차츰 안정을 찾았다.
‘남들이야 우리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워밍업’이라고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푸는 건데…….’
“스승님, 저는…… 저는…….”
몸을 다 풀고 난 육훤이 축국공을 품에 안은 채 장난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자, 가서 같이 놀자. 저 친구들의 공은 놀다가 다 망가졌나보네. 지금은 네 공을 사용하면 되겠구나.”
고청운은 쪼그려 앉아 그를 격려하며 다시 말했다.
“내 생각에는 집에서도 해 본 적이 있으니, 네가 아주 공을 잘 찰 것 같구나.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재밌게 놀거라.”
그랬다. 후부 안의 연무장은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점거하고 매일매일 축국 연습을 했었다.
이때, 방자명이 8살쯤 된 아이를 데리고 와 서로 소개시킨 뒤 육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호(杨浩)야, 육훤이를 기억해 두었다가 이따가 시합에서 같이 어울려 놀거라.”
보통 8살 아이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양호라는 아이는 가슴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스승님, 안심하세요, 제가 어린 동생을 잘 돌볼게요.”
“가보거라, 어서 큰형이랑 같이 가렴.”
고청운이 육훤을 떠밀었다.
육훤은 양호를 보고 고청운을 번갈아 보다가 몇 걸음 더 따라간 뒤, 다시 뛰어 돌아와 희고 보드라운 작은 얼굴을 들고는 큰 눈으로 고청운을 바라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스승님, 여기 계속 계실 거죠?”
“그래, 난 계속 여기서 널 지켜보고 있을 거다.”
고청운이 웃었다. 육훤과 공부를 한 지 거의 1년 지나고 있었다. 육훤은 이전과 비교해 성격이 정말 밝아졌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를 데리고 와서 다른 아이들과 놀게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방자명은 걷기 시작하면서 22명의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축국의 규칙을 설명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을 알렸다.
고청운은 계속 육훤에게 집중했는데, 처음엔 어색해보였지만 양호가 데리고 나오자 곧바로 같은 조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뒤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이윽고 축국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서로 치고받으며 뛰어다녔다.
육훤은 처음에 공이 닿을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중간에 한 아이와 실수로 부딪혀 넘어지자 합죽거리며 울려고도 하였는데, 다른 아이들이 공을 뺏으러 달려가니 덩달아 급히 일어섰다.
다른 선생님들이 심판을 서자, 방자명이 짬을 내어 고청운에게 달려갔다.
“글읽기를 가르치러 간 게 아니었나. 아이는 왜 데리고 나왔지? 이 귀한 후부댁의 작은 공자님을 네가 감히?”
방자명은 두 손으로 가슴을 끌어안고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고청운이 장내를 응시하며 말했다.
“나리께 의향을 묻고 데리고 나왔죠. 아이는 결국 또래들과 놀아줘야 즐거운 법인데, 그 집의 아이들은 저 아이에게 너무 공손하기만 해서 무엇이든 따르기만 하더군요. 그런 건 아이에게 좋지 않아요.”
“육훤이는 키가 꽤 큰데도 불구하고 몸이 상당히 좋아 보이던데? 다른 아이들과 부딪히면 다른 아이들이 넘어지기 일쑤야.”
방자명은 보고 있다가 갑자기 한마디 했다.
어린 선수들은 주로 육훤보다 1~2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키는 거의 육훤과 비슷했다.
“그건 당연하죠!”
……라고 말하는 고청운은 못내 자랑스러웠다. 1년 동안 그는 매일 일찍 후부에 가서 육훤과 달리기, 권술 연습, 활쏘기 등의 아침 훈련을 한 후 수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아침부터 땀이 뻘뻘 흐를 정도로 연습을 진행해왔는데, 가끔씩 육택이 그들과 함께 하기도 하였다.
실은 고청운도 이 덕분에 이득을 본 게 있었다. 육택에게 권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비록 적을 죽이는 데 쓰는 것이라 그는 한평생 쓸 일이 없을 테지만, 이런 권법은 평소에 그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서둘러 붙잡아야 했다. 그래서 고청운은 열심히 배우고 돌아와서는 스스로 열심히 연습해나갔다.
아침 훈련에 있어서 무엇보다 고청운을 기쁘게 한 것은 활쏘기를 할 때였는데, 힘이야 육택보다 약하여 활을 당기는 강도는 떨어졌지만 자신의 기량이 육택보다 낫다는 점이 그를 기쁘게 하였다. 그는 십여 년간 활쏘기를 익혔으니 벌써 그만큼 단련되어 온 반면, 육택은 검과 창술을 배우느라 활쏘기는 그냥 곁들어 배운 정도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잘 차네.”
방자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가르친 거예요. 부학에 있을 때부터 제 기량이 좀 좋았었죠.”
고청운은 자랑스러웠다. 다만 그가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매일 집에서 축국을 하는 육훤이 다른 아이들보다 기량과 숙련도가 더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들이 그저 떼로 몰려다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 속에도 나름의 기본은 존재하고 있었다.
모두들 축국의 규정을 잘 지키고 있었다.
고청운은 집중력을 발휘해 계속해서 지켜보았는데, 오문을 비롯한 아이들은 서로 모여 육훤이 공을 끌고나가게 되면 환호했고, 특히 육훤이 공을 넣었을 때는 더 큰 환호를 보냈다.
“잘 싸웠다! 육훤이 최고, 홍색조 이겨라!”
“필승!”
고청운의 옆에 있던 몇 명의 사내들이 자신의 작은 공자가 이렇게 힘내서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소리를 질러댔다.
응원 소리를 들은 것인지 육훤은 틈틈이 이쪽을 쳐다봤다. 그는 작은 얼굴이 운동으로 인해 발그스름해졌고, 눈은 초롱초롱한 상태인 걸로 봐서 매우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 몇 사람의 목소리는 매우 우렁찼기에, 장외에서 다른 학부모들의 주의를 끌었다.
다른 학부모도 그에 질세라 금세 ‘필승’이라거나 자기 아이 이름을 외쳐대기 시작했는데, 옷차림새만 아니었다면 고청운은 현대의 경기장으로 돌아온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었다.
축국 한 판에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흥이 극에 달했는지, 중간에 작은 마찰로 하마터면 충돌도 있을 뻔하면서 양 조의 아이들 중 몇 명은 함께 싸우기도 하였다. 다행히 심판을 한 선생님의 경험이 풍부한 덕에 곧 떨어지라는 큰 소리의 꾸짖음이 들렸고, 시합은 계속 정상 진행되었다.
깜짝 놀란 고청운은 방자명을 한 번 보았다.
하지만, 방자명은 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건 매우 정상적인 일이야. 애들은 항상 이렇게 놀아, 괜찮아.”
그 말에 고청운도 마음을 놓았다. 아이들은 통상 그런 것 같았다. 다만 이곳의 아이들은 다들 글공부를 하느라, 자신의 어렸을 적처럼 고향에서 보던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는 말 한마디가 맞지 않아도 서로 치고받고 싸웠는데 말이다.
* * *
육훤이 있던 홍색조의 승리로 경기는 끝이 났다. 아이들은 매우 흥분되어 보였다. 육훤은 같은 조에 있던 몇 명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 후에 비로소 작은 걸음으로 돌아왔다.
“스승님, 보셨어요?”
육훤의 얼굴은 불그스름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는데, 그 표정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뭐를 봐?”
고청운이 일부러 물었다.
“그냥, 그냥 제가 공 차는 거 못 보신 거예요?”
육훤이 손가락 두 개를 펴서 흔들었다.
“스승님, 제가 공을 두 번씩이나 넣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이겼어요.”
웃음을 참던 고청운은 이 아이의 불룩 튀어나온 두 볼이 너무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 봤어, 우린 계속해서 네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고 있었단다. 정말 공을 잘 차더구나!”
고청운은 차마 그를 계속해서 놀리지 못하고, 얼른 그를 크게 칭찬해 주었다.
그러자 육훤의 큰 눈이 웃느라 반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실눈 모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