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55)화 (155/504)

155화. 집을 사다

과연 고청운의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맞은편 방인소의 얼굴이 눈에 띄게 보기 좋아지면서 밥 먹는 모습조차 달라졌고, 유달리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고청운은 속으로 은근히 한숨을 내쉬었다. 두 노인은 자기에게 아주 잘 대해 주었다. 그들은 정말 자신을 손주 혹은 아들처럼 대해주었지만, 고청운은 어떻게 해도 방 씨가 아닌 고씨 집안사람이었기에 언젠가 집을 사야했다. 그는 더 나아가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이 오실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들이 경성에 오신다면, 그들은 또 어디로 모신다는 말인가? 그의 집이 없으면 그들은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스승님 내외도 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님은 단지 그 하나만을 제자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모두 ‘일일위사일생위부(*一日为师终生为父: 한 번 스승이 되면 평생 아버지와 같이 존경하고 모셔야 한다)’라는 말을 지키고 따랐는데, 특히 스승님에게는 친아들이 없어 나중에 스승님이 늙고 나서 그가 봉양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이건 그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이미 그들은 또 친인척 관계로 맺어지게 되었으니 이 관계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스승님, 나중을 기다려 적당한 때가 되면, 전 2개의 정원이 서로 마주한 곳을 사려고 합니다. 그 중간을 뚫으면, 아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고청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부모님과 스승님 내외가 한 지붕 아래 있는 건 좋지 않을 것이었다.

방인소는 “그래.” 하는 소리를 내었다.

“식사하자꾸나. 먹자, 먹어.”

말은 저렇게 해도 스승님은 입꼬리가 살짝 들려 있었다. 

고청운은 한숨 돌리고 먹던 밥그릇을 들어 올려 마저 먹기 시작했다. 

‘청운이는 모르고 있구나.’ 

연 씨가 몰래 한숨을 쉬더니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이 노인네는 너희들이 이사 나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았지 뭐니. 그래, 추잡한 말은 면전에서 하랬다고, 너희들 이사를 나가더라도 소석이는 두고 나가라. 이 노인네는 하루도 그 아이랑 떨어져 지낼 수 없구나.”

이제야 마침내 방금 전에 분위기가 왜 그렇게까지 이상했는지 알게 된 간미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다가 말했다.

“아유(阿瑜)도 한참 못 봤어요. 우리 소석이 외숙을 닮았는지 모르겠네요.”

그녀의 친남동생 간유(简瑜)는 올해 겨우 3살이 조금 넘었다. 어머니가 보내온 서신에 따르면 그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는데, 너무 장난이 심해서 집안의 화초가 그에게 해를 많이 입고 있다고 하였다. 

“조카는 외숙과 닮지, 닮는 게 정상이지.”

연 씨가 한마디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태어나서 함께 지내지 못한 외손자보다는 눈앞의 작은 소석이 더욱 사랑스러웠다.

그랬다, 아무리 방인소라도 식사 시간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화목하게 ‘잘 먹겠습니다’ 하는 말 정도는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이번 식사 시간에 그들은 간간히 대화를 이어가며 식사를 끝마쳤다. 

* * *

밥을 먹고 나서 서재로 온 방인소는 비로소 고청운에게 구체적인 주택 구입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

고청운이 집을 사고도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세를 주겠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방인소는 집에 세를 놓는 것으로 본전을 찾을 거라면 도대체 언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싶었지만, 지금 그의 계획을 듣고, 그가 부지불식간에 앞뒤 재지도 않고 구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더 개의치 않았다.

“일남방(日南坊), 거긴 좋은 동네지. 으슥하다고는 하지만, 주변에 있을 것은 다 있으니 말이다. 노부가 그쪽 일대를 가봤을 때는 병사와 포졸들도 순찰을 돌고 있어서 비교적 안전했다.”

방인소가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인소가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자 고청운은 웃음이 나 눈이 실눈처럼 변했다. 진작부터 집을 살 생각이 있었던 그는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고 다녔고, 일남방 쪽에 매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과거 시험이 치러지는 시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마차를 타면 15분 정도 걸릴 것이었다.

고청운은 그쪽에 땅을 하나 더 사서 자신이 직접 집을 짓고 싶었다. 일반적인 사합원의 형식이 아닌 연대식의 거실 하나에 방 하나가 딸린, 혹은 방 두 개에 거실이 하나 딸린 그런 집 말이다. 방의 면적은 작아지겠지만 최대 한 주방을 추가로 더 두고, 정원에는 우물을 하나 팔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우물이 하나는 있어야 물을 사용하기가 편리할 테니 말이다. 

한 묘짜리 면적의 땅에는 십여 칸의 방을 지을 수가 있었는데, 합치면 7~8개의 현대식 주거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방이 좀 좁아서 그렇지 가격은 쌀 것이고 세입자를 찾는 것은 수월할 테고, 분명 단독 주택을 임차하는 것보다는 더 큰 수입이 될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에 의하면, 현성에서의 그 3중 정원 저택은 앞의 2개의 정원이 있는 부분을 세를 주었는데 세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였다. 임대료는 겨우 1년에 은자 열댓 냥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라면, 그는 침상을 위아래로 2층을 만들거나 침상 밑을 서랍처럼 만들어서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면 될 것이었다. 어쨌든 어떤 모양의 집을 짓게 될지, 고청운은 의욕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런데 은자는 다 어디서 난 게냐?”

방인소는 갑자기 제자가 집을 사려고 많은 돈을 내놓은 것이 궁금해져 슬쩍 물었다. 

그는 고청운이 후부 쪽에서 얼마를 받고 있는지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비록 몇 십 냥의 은자라도 경성에서는 몇 칸짜리 방이나 아주 작은 정원 딸린 주택을 살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곳은 모두 지리적으로 좋지 않거나 별로 안전하지 않은 지역들뿐이었다. 고청운이 사고 싶어 하는 일남방 지역은 땅만 사는 데도 1묘에 100냥 정도의 은자를 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곳이었다.

주택 건설이나 가구 장만에 들어가는 비용까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적어도 은자 2, 300냥은 들 텐데?’

청운의 행적을 그는 거의 빠짐없이 알고 있었지만, 후부에서 받는 돈 이외에 돈을 버는 것은 보지 못했었다.

고청운은 스승님의 질문에 깜짝 놀라, 그만 헤헤 하고 웃으며 눈썹을 문지르다가 넌지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보는 안목이 그리 좋으신데, 이미 다 알고 계신 것 아니십니까?”

방인소가 그를 힐끗 노려보고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대뜸 물었다.

“혹시 네가 쓴 화본을 말하는 것이냐?”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줄곧 스승님이 화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반응을 시험해보고 싶었기에 고의적으로 숨기지 않고 있었다. 스승님도 간혹 그의 서재에 들어가 책을 보기도 하였으니 유심히 봤다면 분명 아는 바가 있었을 텐데, 그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던 걸 보면 스승으로서 묵인해 준 것 같았다. 

“요즘 모험기인가 하는 제목의 화본이 있다는데, 그게 네가 쓴 책이지?”

방인소도 자기가 맞힐 줄은 몰랐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안색을 긴장된 모습으로 살폈다. 

‘스승님께서는 내가 화본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시려나?’

“노부가 추측해 본 것이다. 낱말을 선택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폼이 네 필체와 똑 닮았더구나.”

방인소는 일어나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알지만 않으면 되었다. 네가 진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기에 지금 사실이 밝혀지면 좋지 않은 말이 돌게야.”

“예, 그러겠습니다. 저를 도와 책을 출간해 준 사람은 스승님도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는 저를 위해 충분히 비밀을 지켜줄 만한 사람입니다.” 

고청운이 다급히 해명했다.

방인소는 나중에 고청운이 진사 시험에 합격만 하면 그가 무엇을 쓰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필경 많은 문인들이 작은 취미나 기호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고상하지 못한 기호들도 존재하고 있었기에, 고청운처럼 화본을 쓰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스승님께서 내가 집필한 것이라는 걸 알아채시다니, 설마 읽어 보신 걸까?’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고청운은 스승님이 자신이 쓴 화본을 읽어 봤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에 수치심이 일었다.

‘답답하다, 너무 어색해! 이게 바로 숨겨둔 신분을 들킨 대가인 건가.’ 

비록 그는 고의적으로 숨겨오고 있었지만, 돈을 써야 하는 상확이 닥치니 막상 돈에 대한 내력을 밝혀야 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서는 밝히는 수밖에 없었다. 

“자, 어서 가서 볼일을 보거라, 노부는 소석을 보러 가야겠다. 방금 우리 아가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오늘 이 할애비를 만나지 못해 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방인소는 매우 의기양양하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뒷짐을 지고 천천히 서재를 나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고청운은 이제 석 달 남짓한 소석은 낯을 아직 가릴 줄 몰라서 누가 안아줘도 벙글벙글 웃는데, 과연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여튼 주택 구입과 관련된 오해가 해결되었으니, 고청운은 내일부터 바로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다만 오전에는 후부에 가서 수업을 해야 하니, 그는 고삼원을 시켜 방씨 집안의 바깥일을 도맡아 하는 둘째 집사와 함께 그가 언급했던 장소에 가서 필지를 보고 오라고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격과 지면을 먼저 좀 살피고, 최종적 결정만 그가 하면 될 것이었다.

직접 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 고청운은 친히 나서지 않아도 되었는데, 일의 경중을 따져 크고 작은 일로 나누어 처리하기만 하면 확실하게 일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자신의 서재로 돌아온 고청운은 해가 아직 지지 않았을 때 서둘러 책을 읽어야 해서 독서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70살의 나이에 퇴직하였다.’ 라는 구절을 읽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겼다.

스승님은 올해 55살이라 춘절이 지나면 56살이 되는데, 비록 조정에서는 70세가 되어야 벼슬에서 퇴직하는 것이라고 명문화하고 있었지만, 본인의 건강이나 기력 여부에 앞당겨 퇴직을 신청할 수도 있었다.

스승님의 건강은 현재 겉보기엔 아주 좋아서 70세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관청의 일이라는 것이 단정해서 말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자칫 잘못하면 퇴직을 앞당겨야 할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라는 것 또한 예측이 어려운 분야였기에 늘 의외의 일이 생길까봐 걱정을 해야 했다.

스승님도 그에게 이런 주제로 말한 적이 있었다. 비록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말이다. 고청운은 자신이 다음 회시에서 바로 합격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그렇게 해야만 스승님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만약 합격이 늦어져서 스승님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자신을 돕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었다. 관가(官家)의 ‘사람이 사라지면 인정도 사라진다.’ 라는 관례는 이미 너무 유명하지 않은가.

그때 ‘꺅꺅’ 하는 아들의 웃음소리가 고청운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는 달려가 아이와 놀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서재 문을 살짝 닫은 뒤 돌아와 책을 뒤적였다.

오래지 않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는데, 짐작컨대 아들이 자기를 시끄럽게 할까 봐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 같았다.

책을 다 읽은 뒤 고청운은 류공권의 습자본에 맞추어 글씨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반년 동안 그의 서예 실력은 한 단계 더 발전되어 있었는데, 지난번 소석을 보러 온 방자명이 지금 자신의 글씨를 보고 돈을 받고 팔 수 있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방자명의 평가를 떠올린 고청운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천천히 시간이 조금씩 지나 서재가 어두워지고 나자, 고청운은 부싯돌로 촛불을 켰다. 촛불 아래 그의 그림자는 더 길게 늘어났고, 얼굴에 비친 빛이 그의 얼굴을 유난히 부드럽게 보이게 하였다.

밤에 그는 야간작업은 거의 하지 않고, 그저 오늘의 일을 일기장에 정리한 후 그날의 공부를 끝냈다. 

그가 침실로 돌아오자, 과연 아들은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간혹 눈을 좀 뜨고 있기도 하였는데, 흰 피부에 포동포동한 볼만 빨갛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귀여웠다.

고청운은 아이가 눈을 감고 있으니 놀지는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다가 아기가 빠르게 잠에 빠져들자, 그제야 웅크리고 앉아 잠든 그의 작은 얼굴을 자세히 보았고 기분이 좋아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