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동의하지 않는다
사장정은 고청운의 말을 듣자마자 고청운을 향해 손바닥을 흔들며, 화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바깥세상 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줄 알았더니, 이 소식을 알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이거 뭐 물어볼 게 있는가? 어차피 아버지가 때린 게 처음도 아니고!”
고청운은 더 이상 웃기가 민망하여 말했다.
“연극은 그냥 연극일 뿐, 극을 공연하려거든 너무 많은 대중 앞에서 노래는 하지 말게. 자네가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그 사람들이 필시 자네를 귀찮게 할 게야.”
사장정은 말을 듣자마자, 수려한 얼굴이 매우 일그러져 분노하여 말했다.
“남의 아픈 곳을 들추다니, 젠장. 내가 이쪽 취미가 있어서 예전 집에서도 자주 이렇게 노래하고는 했었지만,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고. 경성에 이렇게 변태들이 많이 살고 있었을 줄이야.”
고청운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넓은 소매로 입을 가렸고, 이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또 그에게 한 잔 가득 따라 준 후 비로소 운을 뗐다.
“그 사람들을 변태라고 할 것 없네, 이건 남색에 관한 문제일 뿐인 걸. 사람들이 보기에 자네는 생긴 것도 그렇고 또 혼인도 아직 하지 않았으니, 직접 누군가 소문을 내고 다니지 않았더라도 자네가 사내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
최근 들어 남색을 찾는 일이 일반적으로 모두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었다. 간간히 소문이 폭로되기도 하였으나, 아무도 남의 아내가 여인을 처로 맞이했다고 하면 진짜로 여기지 않았다. 다만 고대에는 황제가 사내를 좋아하기도 했기에 변태적인 행위라고 감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색이란 것은 낯선 일이기는 하였다.
만약 남색을 즐긴다고 하여 혼인하지 않은 채 다른 사내와 한 집에 함께 지낸다고 하면, 그 집안의 사내는 다 남들의 입방아에 시달릴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도 결국은 '불효 중 제일은 대를 잇지 않는 것' 이라는 사상 때문이었는데, 제를 지내 줄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사장정은 다른 사내가 들러붙는 것이 당연히 기분 나빴을 것이다.
“이 몸이 좋아하는 건 부드럽고 향기로운 여인이지, 딱딱하고 구린내 나는 장정들이 아닐세!”
사장정의 얼굴에 혐오가 가득한 채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는 혼인 생각이 있지만, 이 몸이 가진 거라고는 어머니께서 시집오실 적에 챙겨 오신 혼수밖에 없네. 심지어 그마저도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지. 이 몸과 명목상 어머니를 부양하고 키우는 데 사용했다는 그 뻔뻔한 말로 우리를 속이고 있는데, 꾹 참으며 내색하지 않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냥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일찍 본가로 돌아온 덕에 아직 초주검 상태이나마 이 송죽서재가 남아 있던 것이지.”
고청운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송죽서재는 입지가 좋고 면적이 넓었는데, 안에 소장하고 있는 책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가치가 대략 은자 1천~2천 냥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웬일로 그 집안사람들이 그에게 남겨주나 했더니 이 약간의 가치는 백부에게 있어서 아주 적은 것이었다. 게다가 사장정과 그의 아버지가 아무리 지금 다투고 어색한 사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부자지간인지라 백부에서 내칠 만한 선은 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사장정은 지금도 백부의 비호를 받으며 경성에서 잘 지내고 있는 편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청운의 책도 그렇게까지 잘 팔려 나가진 못했으리라. 해적판도 아주 적었는데, 해적판이란 것이 한 번 발견되면 입게 되는 타격이 꽤 컸을 것이었다.
품속에 있는 은자 200냥짜리 은표를 생각해보던 고청운은 겨우 7개월 남짓 한 시간동안 이렇게 큰돈을 벌다니 정말로 뜻밖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받은 돈도 있으니, 오늘은 더 이상 사장정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버님께서는 언제 자네 혼사를 마련해 주시려는 겐가? 춘절을 쇠면 자네도 19살이 되지 않은가? 나이가 적지 않아서 까딱 20살이 넘으면 사람들이 늙었다고 싫어할지도 모르네.”
고청운은 얼른 물었다. 사장정은 백부의 둘째 도련님이긴 했지만, ‘흉성’이라는 악명을 함께 떨치고 있기에 좋은 결혼 상대는 못 되었다.
물론 백부 집안의 마님이 혼담을 넣지 않은 데에는 다른 이유일 테지만 말이다.
“일단 기다려 봐야지. 난 서두르지 않네. 대장부가 되어 어찌 처를 얻지 못한 것으로 고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잘 주시하고 있게, 내 언젠가는 온화하고 아름다운 것이 딱 꽃 같은 부인을 얻게 될 터이니.”
사장정은 기분이 늘 빨리 끓어올랐다가 또 빨리 가라앉았기에, 걱정 역시 빨리 떨쳐 버리고는 곧 의기양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삼가 말씀드리는데, 작가님, 시간이 있으면 서둘러 화본이나 좀 더 써 주시지요. 가능한 많이 집필해 주었으면 하지만, 물론 정 안 되겠다면 적어도 반드시 매달 5만 자를 부탁하네. 이보다 더 줄여 줄 수는 없다네. 두고 보게, 내년엔 우리한테 더 많은 돈이 생길 테니!”
그는 이미 월양군의 하 씨네 서점과 연계하여 고청운의 또 다른 화본 두 권을 경성에 내다 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침황량(一枕黃粱)’의 명성을 끌어 올리겠다는 것인데, 현재 인쇄를 서두르는 중이라 정월 대보름 즈음에 정식 출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알고 보니 사장정이 원고를 독촉하러 온 것임을 알고, 고청운은 더는 재미가 없어졌다. 마침 지금 춘절도 가까워져, 모두들 바쁠 때였다. 이에 사장정도 군말 없이 곧 헤어졌다.
그가 떠난 후, 고청운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자를 헤아려 보고는 지금이 작은 집을 살 적기라고 결정하였다.
* * *
“뭐? 집을 사고 싶다고? 안 돼, 노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녁 식사 때, 고청운과 간미가 상의를 거쳐 저택 구입에 관한 뜻을 내비치자 방인소는 바로 반대를 표하였다.
그의 기세가 모처럼 격하여 모두들 멍해졌다.
“외할아버지!”
간미는 가볍게 소리치며 의심스러운 듯이 그를 보았는데,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방인소는 마른기침 소리를 한 번 냈을 뿐, 막상 내막을 설명해주지 않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 먹을 때는 말하는 거 아니다. 우선 식사부터 하자.”
집주인이 이렇게 말하는데, 방법이 없어 모두들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방택의 주인집 식솔로는 5명밖에 없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아직 젖을 먹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네 사람이 모두 한 밥상에서 식사를 하였다. 방인소는 이렇게 하는 편이 서로에게 더 식욕을 준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밥상 앞에서는 방인소도 간혹 말을 몇 마디씩 하던 터라, 분위기가 매우 가벼웠고, 오늘처럼 이렇게 식사 시간 분위기가 가라앉은 적은 결단코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고청운은 자신이 던진 화두 때문인 것 같아 조금 민망했다.
연 씨는 언짢은 듯 울적하게 곰탕 한 그릇을 마시고 또 음식을 몇 술 뜨다 말고는 이내 수저를 내려놓았고, 말을 하려다가 다시 또 그만뒀다.
“외할머니, 오늘 식사가 입맛에 안 맞으신가요?”
간미가 재빨리 작은 소리로 물으며 탁자를 보았는데, 가족 구성원이 각자 좋아하는 음식들로 잘 차려져 있었다.
‘평소에도 이 정도의 식사 준비를 하였는데.’
간미는 속으로 은근히 답답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살게 되면서 집사를 도왔는데, 특히 소석이 태어난 후 외할머니가 소석 곁에 머무르시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산후조리를 끝낸 그녀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집안일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택 내에는 주인집 식솔은 적지만, 하인을 더해보면 모두 10명 남짓 되었다. 방인소는 교제를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어서 집에 손님들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었는데, 기본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밖에 안 되는 모임도 보통은 밖에 있는 주점에서 만나 먹고 마셨다.
집안에 식구가 적으면 경사도 별로 없었다. 소석의 세삼 의식을 치른 이틀을 제외하고, 다른 때는 연회를 열어 다른 사람을 초청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그렇다보니 집사도 일이 많이 편했다.
연 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까 식사 전에 간식을 몇 개 먹었더니, 저녁은 많이 먹질 못하겠구나.”
간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녀는 자신의 그릇에 담겨있는 오향족발탕이 갑자기 느끼하게 느껴져서 잠시 생각해보다 그릇 속의 족발을 집어 옆에 있는 고청운의 그릇에 옮겨 주었다.
고청운은 지금 방인소의 삽시간에 싸늘해진 태도를 보고 고민하고 있었다. 두뇌 회전이 매우 빨랐던 그는 방인소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번뜩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방금 그 노함이 무슨 연유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하고 생각하던 중, 눈앞 그릇에 담겨 있는 족발 두 덩이가 보였다.
고청운은 곁눈으로 간미를 힐끗 보았다.
간미는 생긋 웃고는 눈을 깜박이며 간절한 눈초리를 보냈다.
‘이 오향족발탕은 보혈과 젖이 돌게 하는데 그만이라 주방에서 특별히 미아에게 준비해 끓여 먹던 것인데, 지금 사내인 나보고 먹으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딱 이번 한 번뿐이오. 다음은 없소.”
고청운은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작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는 저녁에는 늘 절제하여 너무 많이 먹지 않게 신경 썼기에, 고기를 많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주로 채소 위주로 먹는 편이라 고기를 한 두 점만 먹던지 어쩔 때에는 고기를 아예 안 먹을 때도 있었다.
“알겠어요. 요즘 들어 매일 먹느라, 모두들 족발에 질린 것 같아요.”
간미는 그가 고기를 먹어 치우는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가 더 커졌다.
“크흠! 어흠!”
맞은편의 방인소가 몇 차례 기침을 했다. 그의 시선이 무심코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청운과 간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연 씨가 드디어 입을 열어 말했다.
“청운아, 진짜 집을 살 게냐?”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인소를 한 번 쳐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할머님. 지금 수중에 남는 돈이 좀 있어서 이 틈에 빨리 집을 구할 생각이에요. 지금 바로 이사 나가지 않더라도 먼저 세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경성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 텐데, 그때엔 좋은 위치에 지어진 좋은 집들은 앞으로 가격이 더 치솟을 거예요. 몇 년 있다가 사는 게 여의치 않아질 수도 있지요. 지금 돈이 좀 생긴 김에 집을 빨리 사두는 것이 자칫 모아둔 돈을 다른데 날리는 일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말은 진짜였다. 그는 저잣거리를 나서면 적당한 물건이 보일 때마다 늘 사서 돌아왔는데, 저번에는 그의 얼굴을 따서 만든 인형이라던가, 수제 나무 조각, 흙 인형, 종이 공예 등의 수공예품을 사왔던 것이다. 그는 이것들을 아주 좋아한 나머지, 너무 많이 사서 이미 집에 놓을 곳도 없었다. 이는 비록 돈은 얼마 들지 않았지만 낭비이기도 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지출은 바로 책이었다. 좋은 책을 한 권만 마주 해도 사고 싶었던 그는 글자가 적은 책일 땐 빌려와서 한 권을 직접 베끼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문방사우 종류가 있었는데, 좋은 문진만 봐도 돈을 더 쓰고 싶어지는 등 쉽게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은 그가 한 상점에서 한 서생이 부랴부랴 안고 들어와 팔고 나간 오래된 칠현금 하나를 보았는데, 그 칠현금의 아름다운 외관에 뜻밖에도 매화 문장이 아리땁게 서려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아리따운 칠현금은 줄곧 만나기 어려운 물건이라, 그는 앞으로 나아가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한 번 시험 삼아 연주해 보기도 하였는데, 칠현금 소리가 맑고 음색이 짙었으며 투명한 제 소리를 잃지 않았다.
당시 그는 사들이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였다. 비록 그의 칠현금 솜씨는 특별히 좋은 것이 아니었지만, 간미가 연주를 잘하니 소장 가치와 사용 가치가 매우 높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면 좀 싸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여 고청운이 가격을 물어봤더니 이 칠현금 가격이 100냥이 훌쩍 넘었다. 그는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만 생각을 접고, 눈을 말갛게 뜬 채 가게에서 칠현금이 진열되는 것을 보고 있었더랬다.
그러니까 지금 이럴 때일수록 아직 돈이 있을 때 빨리 집을 사서 부동산을 확보해야 했다. 땅을 장만하는 것은 비교적 어려워서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면 좋은 가격에 살 수 없었다. 특히 좋은 밭은 당최 사기가 힘들었는데, 경성 부근의 좋은 논밭은 모두 세력가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어찌 자기 차례가 오기나 하겠는가? 방인소도 경성에 20여 년간 거주하면서 한 필지로 이어진 100묘 이상의 밭과 10묘의 경사지를 살 수 있었을 뿐이었다.
방인소는 그곳에 작은 농막을 짓고는, 평소에는 곡식과 채소, 과실을 심고 닭과 오리를 길러 자기 집에 공급하고 남은 것은 팔아치웠기에, 매일 나가서 반찬거리를 살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