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명절 선물 (2)
방씨 집안의 하인들이 그의 물건을 우마차에 실어주기를 기다린 고대하는 감사를 표한 후, 마당의 뒷문을 잠그고 채찍을 들어 우마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에 고대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품에서 서신을 꺼내 뜯어보았다.
서신은 굉장히 두꺼웠는데, 이번에 인편에 전달해 준 서신은 돈이 들지 않았기에, 아들이 단숨에 십몇 장의 서신을 써내려간 모양이었다. 거의 일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일은 죄다 써놓아서 고대하를 즐겁게 하였다.
아들이 후부에서 후작의 아들의 글공부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안 고대하는 걱정이 꽤 되었다. 그런 권세가들이 아들을 업신여겨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집 도련님이 아들의 말을 잘 듣는지 등이 말이다.
그러고 나서 고대하는 흰 종이에 찍혀 있는 큰손자의 작은 발자국과 작은 손도장을 보고 또 며느리가 그려준 손자 그림까지 보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손으로 재어보니 아이가 참 튼실해 보였다. 이 초상화의 오동통한 아이가 어찌나 이리도 예뻐 보일수가 있는지, 온 동네를 다 뒤져 보아도 자신의 손자보다 예쁜 아이는 한 명이라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고대하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정말 한번 보고 싶구나!’
고대하는 탄식하며, 소가 혼자 가도록 내버려둔 채 자신은 고개를 돌려 두 상자 가득한 물건을 살펴보았다.
이것 모두 아들과 며느리가 보낸 선물로, 그 위에 붙은 명단으로 무슨 물건들이 있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고대하가 집에 돌아오자, 온 집안사람들은 앞다투어 소석의 초상화를 둘러보고, 또 손도장과 발자국을 보며 분분히 그의 신장과 몸무게를 추측해 보았는데, 하나하나가 다 멀찍이 경성에 있는 소석을 향한 애정 어린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소석이 어떻게 생겼을지 기대가 컸다.
“며칠 뒤면 8월 15일 중추절인데, 우리 전자는 언제 돌아오려는지 모르겠구나. 떠난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말이야.”
노진씨는 고청운의 편지까지 보고 나자 손자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 마누라가. 손자가 놀러 간 것도 아니고 진사 시험을 치르러 간 건데, 지금 그 아이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오? 남들은 부러워한다 한들 갖출 수 없는 조건들인데, 발목을 잡으면 안 되지.”
고계산이 눈을 부라리며 수염을 불어댔다.
노진씨는 그를 흘겨보았다.
“내가 언제 발목을 잡았어요? 나는 그저 손주가 보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그냥 말해 보는 것도 하지 말란 거예요?”
고대하는 노부부가 또 싸우려는 게 보이자 급히 가로막고 말을 건넸다.
“아버지, 누가 경성에 볼일이 있어 우리를 도와 편지를 전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요. 며칠 후에 편지를 쓸 테니 무슨 내용을 전하고 싶으신지 생각해 보세요. 전자한테 하고 싶은 말들 없으세요?”
그들은 고청운에게 편지를 써서 보낼 때, 보통 역참을 통해서 보내지는 않았다. 가격을 너무 비쌌기 때문인데, 은 십여 냥이나 내고 편지 하나 달랑 보내느니 차라리 누가 경성에 가는 김에 가져다 달라고 기다리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은자도 훨씬 적게 들고 심지어 무료로 전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뭘 써도 다 괜찮다. 내가 지금 궁리중인 것은 언제 한번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 돈을 좀 보내 줘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전자가 경성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집을 살 수가 있지. 노상 남의 집에서 살기 불편할 터이니 말이다.”
고계산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 말에는 고청운의 어머니인 소진씨도 동의했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다만 우리 집의 은자가 넉넉하지도 않은데 은자를 또 은표로 바꾸어 인편에 부친다는 게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아요. 차라리 다시 3년을 기다려 하 씨가 경성에 시험 보러 갈 때를 노려 부탁해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 보고는 좋은 생각 같아 동의했다.
잠시 후, 고대하는 허리를 굽혀 상자를 열어 선물을 나누기 시작했다.
“자, 전자가 약술을 보내왔네요. 이건 경성에서 가져온 거라 보통 사람은 구경도 못 해 본 술일 테니 한 번 잘 봐둬야겠어요.”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나자, 고계산은 그제야 손자가 방씨네 부탁해서 보내온 선물들이 생각났다.
“그래, 둘째네 가족들 것도 있고, 또 큰손녀네와 둘째 손녀네 보낼 것도 있구나. 내일 틈나는 대로 보내 주거라.”
* * *
고하는 다음 날 점심이 되어서야 고청운이 보내 준 선물을 받아보게 되었다. 그녀는 원래 선물을 가져다 준 왕순에게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했는데, 왕순이 고용네 집에도 물건을 전해주러 가야 한다고 하여 그냥 보내주는 수밖에 없었다.
“고하야, 집에서 물건을 보내왔니?”
임요조의 큰누이가 왕순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고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안채로 돌아와서 대답했다.
“제 동생이 경성에서 돌아오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제게 물건을 좀 가져왔네요. 길이 그렇게 먼데 무슨 물건까지 챙겨오라고 부탁했는지 참, 편지 한 통이면 족한데 말이에요. 이런 작은 상자 하나 부탁했다고 물건을 힘들게 갖다 준 사람한테도 빚을 졌지 뭐예요.”
“경성에서 보내왔다고?”
임씨네 큰누이는 비록 세상 물정을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그래도 경성에서 보내온 물건이라니 매우 궁금했다.
고하는 빙긋 웃으며 머리 위의 은비녀를 손으로 세워 들어 작은 상자를 열었는데, 안에는 은으로 만든 장명쇄(*长命锁: 자물쇠 모양으로 만든 목걸이. 어린아이 목에 걸어줘 귀신의 침입을 막고 장수를 빎) 하나와 누공법으로 조각된 은팔찌 두 쌍, 순금 나비 귀걸이 한 쌍, 그리고 최신 비녀 몇 종류와 함께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고하는 편지를 뜯어서 대강의 내용을 읽어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동생도 참, 굳이 올케한테 시켜서 경성에서 제일 유행한다는 비녀를 사오게 시키기나 하고 말이야. 나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리고 이런 장명쇄니 은팔찌들은 또 뭐람. 두 자매에게 주겠다고 샀다는데,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아기가 무슨 은붙이를 낀다고.
이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혼자 남아서 진사 시험 준비 하는 데 좀 보태지. 3년만 지나면 다시 시험을 쳐야 할 텐데 말이야. 아니면 소석이에게나 좀 물려주던가, 우리 소석이도 벌써 3개월이나 되었을 텐데!”
혼인을 한 지 4년이 넘었는데 고하는 딸만 둘을 낳았을 뿐, 아직 셋째가 없었다. 그녀는 3명의 시누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시부모님도 급해서 하루 종일 한 명이라도 빨리 더 낳으라고 성화였는데, 그의 남편만은 별말이 없었다. 남편이 이런 데 다른 사람들이 뭘 그리 안달인지. 그녀가 불임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동네 아낙네들이 은근히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생각하면, 고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 사람들은 밥만 배불리 먹고 막상 하는 일이 없으니 하루 온종일 그녀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시집와서 일도 하지 않고 밭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부러워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고하는 문득 어린 시절의 일이 생각났다. 만약에 남동생이 그때 살아남지 못했더라면, 어머니와 자매들의 운명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야 좋은 사람이지만, 아들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종국에 다른 귀결을 맞이하게 만드는 그런 문제였다.
그녀의 친정은 지금 꽤 입김이 있었다. 기댈 만한 곳이 있는 집이 된 것이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그녀에게 4년이나 사내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들려오는 소문만 무성하니, 늘 상냥하던 시부모들조차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그들은 내가 아이를 못 낳는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둘째 아이는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나이인데, 큰언니 말을 들어보니 아이를 너무 자주 낳으면 몸에 무리가 간다고, 해산하고 1년은 지난 다음에 아이를 다시 가져야 비교적 좋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 몇 개월 동안 3명의 시누이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들락날락거리며 늘 까다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만약 약간의 처신의 기술이라도 없었다면, 아마 고하는 그녀들의 기세에 눌려 죽었을 것이었다.
고하는 큰언니가 부러웠다. 아이가 둘 다 사내아이라서 이런 고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 선물들을 본 임씨네 큰누이는 얼굴에 부러움이 가득한 채, 이번에 집에 돌아가서는 어머니에게 올케가 아기를 느긋하게 갖는 일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올케가 이렇게 누이에게 잘해 주는 거인 남동생을 뒀으니, 내가 정나미 떨어지게 굴어서는 안 되겠지, 암. 아들을 낳는 일은 좀 더 기다려도 돼. 어차피 동생과 올케는 어리니 말이야.’
다행히 그녀는 어머니에게만 속닥였었지, 올케 앞에서 공공연하게 말한 적은 없어서 아직 만회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 나머지 두 여동생은? 이번에 가서 실수하는 일 없도록 단단히 주의시키면 되었다.
멀리 경성에 있던 고청운은 그의 중추절 명절 선물 덕분에 고하가 위기를 모면했을 줄은 몰랐다. 이번 고하에게 보낸 선물은 간미가 골랐고, 자신은 고연에게 보낼 선물을 직접 골라 주었다.
간미는 이를 보고 자칫 의외라고 생각해, 그 이유를 물었다.
고청운은 물론 어린 시절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소심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만의 이미지라는 것이 있잖은가? 하여 그는 그냥 되는대로 핑계를 대고 어물쩍 넘어갔다.
* * *
시간은 하루하루 흘렀다. 중추절이 지나 연말이 되자, 사장정이 느닷없이 집으로 찾아와 수익금을 배분하였다.
수중의 은표 액수를 본 고청운은 깜짝 놀라, 득의양양한 사장정을 한 번 보고 물었다.
“설마 자네의 이윤까지 나에게 다 나눠준 건 아니겠지?”
차를 마시고 있던 사장정은 자칫 입안의 찻물을 쏟을 뻔했지만, 얼른 삼켜 넘기고 공중에 들썩이던 다리를 내린 뒤 그를 가리키며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는가? 나는 손해를 보는 사람이 아닐세, 내가 4대 6이라고 말했으면 그대로 4대 6인거지.”
고청운은 하하 웃으면서 그를 한참이나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확실히 그렇군, 내가 생각이 지나쳤네. 자네는 확실히 그럴 사람이 아니지.”
사장정은 고청운이 자신을 구해줬기 때문에 이런 비율의 이익 분배에 동의한 것이지, 만약 한낱 낯선 사람과의 거래였다면 그런 비율로 거래를 성사 시킬 리가 없었다.
고청운은 자신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으니, 동업자에게 속는다 한들 속은 지도 모를 것이었다. 만약 밝혀낸다고 해도 한차례 다툼만 했을 것이었다. 필경 이익 앞에서만은 모든 사람들이 다 신용할 만한 것은 아니기에, 조금의 수작이라도 부리면 그를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이러한 허풍을 떠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임산현에 있을 때처럼 마냥 원고를 은자로 바로 거래하는 경우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글쎄.”
사장정은 붉은 옷을 걸치고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특히 지금은 날씨가 추워 목젖 부근이 옷에 가려져 있었다.
목젖은 옷깃에 가려지니 붉은 입술에 흰 치아가 더욱 도드라졌고 요염한 눈매와 더해져, 마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여인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듣자하니 어젯밤에 망루에 올라가서 노래하다가 아버님께 걸려서 도망다니며 두들겨 맞았다면서?”
고청운이 은표를 품에 넣으며, 흥미진진하게 입을 열었다.
사장정은 상경하고 나서 여인 같은 외모와 솔직한 입 때문에 늘 그의 아버지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었다. 그것 말고도 최근에는 또 연극을 좋아해 늘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요즘에는 별의 별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다 있었는데, 우승상이라는 사람은 일이 있든 없든 남들과 내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고, 황제의 경우엔 암행 감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사장정이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경성은 걸출한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그와 같은 취미를 가진 귀족 자제가 몇 명이 더 있었지만, 사장정 같은 외모까지 지니지는 못했다! 그의 촉촉하면서도 요염한 눈매는 사람의 마음을 녹작지근하게 만들곤 하였다.
처음엔 모두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미모의 여성이 연기한 정단(*正旦: 극 중 여주인공)인가 하였다. 그들 중 그를 잊지 못한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자제가 사람을 시켜 경성에서 큰 소란을 일으키며 그녀를 찾으려고 하였는데, 결국 찾아낸 것이 바로 사장정이었다!
당시 그 도련님의 표정은 상상만 해봐도 어쨌을지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는 피를 토하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을 것이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사장정은 더 유명해졌고, 이후 그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빠르게 퍼져나갔다.
고청운은 자주 고삼원을 시켜 경성의 소문들을 수집하게 하였기에 당연히 이 소식도 빠르게 접해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