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명절 선물 (1)
“그래, 그들이 돌아간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시면 경성의 특산물을 좀 사서 우리 집에 좀 전해 달라고 부탁드려야겠소. 물론 가시는 길에 서신도 좀 부탁해야겠고 말이오.”
고청운은 소석이 막 태어났을 때 서신을 한 번 부친 적이 있었다. 지금 돌아가는 편에 서신을 부탁하게 되면 비용을 좀 절약할 수 있을 것이었다.
“좋아요, 제가 가서 전할게요.”
간미는 미소를 지었고, 소석이 젖을 조금 토한 것을 보고 면 손수건으로 살살 문질러 주었다.
“맞다. 큰누이와 작은누이네도 하나씩, 그리고 작은집에도 하나만 같이 챙겨주면 좋겠소.”
방인례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자, 고청운은 향수에 젖어 사념에 빠져들었다.
‘지금 집은 어떤 모습이려나?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은 좀 괜찮으시려나?’
그는 지금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다 품에 안긴 오동통한 아들을 보자, 후부의 일이 함께 생각나며 이 사념을 좀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우리 고향에 한 번 돌아갔다 옵시다. 바닷가도 걷고 바람 따라 물 따라 한 달 정도면 집에 도착하는 거린데, 아이가 이만큼 큰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도 한 번은 보셔야지 않소. 미아, 나중에 소석이 그림 한 장을 그려줄 수 있겠소? 그러고 나서 아이 손과 발에 먹을 찍어 종이에 몇 개 찍어서 함께 보내주시오. 그럼 우리 부모님께서 분명 매우 좋아하실 게요.”
고청운이 의견을 냈다.
“좋아요, 제가 조금 있다가 바로 그림을 그릴게요. 소석이도 돌아가서 족보에 이름을 올려 주어야지요.”
간미도 동의했다. 고청운은 간미와 달리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이제 막 입문단계에 들어선 터라 그녀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 * *
한편, 고대하는 막 주점에 가서 절인 달걀 배달을 마쳤다. 비록 지금은 절인 달걀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집에서 벌어들이는 다른 수입에 비하면 적은 편이긴 하였지만, 집안에 계시는 두 노인이 한사코 계속 하시겠다고 하셔서 달걀 맛도 점차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는 우마차를 몰고 아들 집에 가서 집세를 받으려고 하였다. 아들이 상경한 후부터 3중 정원의 저택은 비어 있었는데, 그들 가족은 모두 시골에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현성에 와서 사는 일은 없을 것이라 저택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앞의 두 정원에 속한 집은 세를 내주었고, 제일 마지막 정원에 딸린 집은 물건만 남겨 놓고 그가 매번 현성으로 올 때마다 먼지를 닦아주고 발길 닿는 대로 구석구석 정비했다.
그러다 길을 걷던 행인으로부터, 방씨 거인 가족이 경성에서 돌아왔는데 짐이 많아서 부두의 품팔이꾼들이 한몫 벌게 되었다며 역시 거인의 집안은 다르다며 돈이 있는 집안이라고 감탄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방 거인이 돌아왔다고?’
고대하는 크게 기뻐했다.
‘그렇다면 전자가 분명 방 거인에게 부탁하여 서신을 전했겠구나!’
고대하는 지난 편지에서 언급된 오동통한 손자 생각에 온몸에 기운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두말하지 않고 곧장 방씨 집안이 있는 곳을 향해 우마차를 몰았다.
* * *
고대하는 본래 이미 절반은 다 도착한 것과 다름없었으나, 잠시 자세히 생각 해 보고는 별안간 우마차를 오른쪽으로 돌려 아들의 저택에 먼저 도착했다. 왜냐하면 방 거인이 방금 돌아왔으니 분명 매우 바쁘고 정신이 없어 자신을 맞아줄 정신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집 정원에 가서 다른 일을 처리하고 시골로 돌아갈 때가 돼서 방씨 집안에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고대하는 먼저 저택 현관에 가서 문을 두드린 뒤 임대한 집에 살고 있는 상인과 몇 마디의 말을 나누고 집세를 거두고는, 후원으로 돌아 들어가 뒷문을 통해 세 번째 정원으로 들어갔다.
꽃나무가 우거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대하의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뽐내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여기의 꽃나무들은 매우 잘 자라서 시든 것도 드물었는데, 이것은 모두 그가 며칠 간격으로 찾아와서 돌본 성과였다.
이곳은 본래 한 쌍의 중년 부부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며느리인 간미가 데리고 온 하인들로, 아들 부부가 상경할 때 그들에게 집에 남겨두어 주로 사돈을 도와 며느리의 혼수 살림을 챙기게 하였는데, 이 부분은 지금 사돈이 관리하고 있었기에 고대하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앞의 두 정원의 집이 세가 나가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 두 하인은 자동으로 마을로 돌아와 그들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고대하는 어쩐지 좀 거북했다. 그들 집에는 부엌에서 일을 하는 여종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한데, 또 무슨 하인이 더 필요하다는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습관이 되었고, 적어도 사람이 많이 달린 논밭 경작의 관리도 잘하는 등 여전히 상대방에게서 관리인에 대한 지식을 많이 배우기도 하였다. 현재 그 왕순(王顺)이란 사람은 이미 그들 집의 집사가 되었으며, 그의 부인도 따라서 집안 잡일을 함께 돕고 있었다.
원래 절인 계란 보내주고 사례를 받거나 집세를 받는 것 모두 다 고대하가 할 필요는 없고 왕순을 시키면 될 일이었으나, 고대하는 늘 시골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느꼈고, 아들이 살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와서 청소하고 싶어 했다.
고대하는 우마차의 소를 계수나무 밑에 매고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는, 부엌에서 물통과 행주를 꺼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며칠 간격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잘 닦아야 했던 것이다.
다른 방들은 모두 자물쇠로 잠그고 가구는 모두 방수포로 덮어두었는데, 이렇게 하면 매번 일일이 닦을 필요 없이 객실 한 칸만 청소를 해도 되었다.
이 방은 그가 가끔 묵는 곳이었다. 때로는 현성에 와서 일을 볼 때 큰비가 오거나 해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현청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기에, 이 방에는 갈아입을 옷가지도 한 벌 남겨 두었다.
방을 깨끗이 닦은 후, 고대하는 바로 풀을 뽑기 시작하였다. 이때가 바로 8월인데, 초목이 매우 무성하게 자라 분명히 며칠 전에 뽑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또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그는 뽑아 놓은 들풀을 소에게 먹일 수 있게 하였다.
모든 물건을 다 정리하고 소에게 물까지 다 먹이고 나자, 고대하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야 할 일이 있어 바빠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수중의 일들을 막 털고 나자 아들의 편지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는 편지에 무슨 내용이 있을지 자꾸 상상이 되고, 마음이 졸여져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늘빛을 보던 그는 지금쯤 방씨 집에 건너가면 방씨 사람들이 짐정리를 마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었다. 해까지 곧 지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대하는 해질녘을 뒤로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방씨 집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소는 정원에서 쉬게 두고 혼자 걸어서 다녀오면 되었다.
* * *
이윽고 고대하가 방씨네 대문 앞에 섰다. 문지기는 고대하의 얼굴을 알아보고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몸을 굽히고 웃으며 말했다.
“고씨 나리, 오셨습니까.”
고대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역시 웃으며 말했다.
“댁의 나리를 찾아 왔습니다.”
“예예, 먼저 안에 대청으로 드셔서 기다리시지요. 소인이 바로 아뢰겠습니다.”
문지기는 말을 마치곤 바로 몸을 돌려 뒤에 있던 머슴 한 명에게 손짓하였다.
“소육(小六)아, 너 어서 들어가 고씨 나리께서 오셨다고 아뢰거라.”
소육은 머리를 끄덕이고 고대하를 한 번 보았다가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대하가 문지기를 따라 대청에서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인례가 곧 나왔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며 인사말을 주고받았는데, 예전에 한두 번 만났을 뿐인지라 딱히 나눌 말이 없었다. 방인례는 지난 3년 동안 임산현의 날씨와 곡식 작황 등에 대해 물었고, 이런 평범한 소재마저 다 써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고대하에게 방문 이유를 물었다.
고대하는 사실 진작부터 이런 번거로운 이야기들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시골 농민이 아니었다. 꼭 해야 할 사교적인 행사가 있다면, 반드시 참여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들의 신분과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그의 위상 역시 덩달아 높아졌기에, 요즘은 현의 유지들의 가정에서 무슨 경사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집에 초대장을 보내곤 하였다. 아들은 집에 없고, 전자의 엄마는 가고 싶어 하질 않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갈 것까지는 아니었는데, 사양에 사양을 거듭해도 어쩔 수 없이 그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몇 번의 경험을 해보니, 고대하도 어떻게 사람을 응대해야 하는지 감이 왔다. 전에 사람들을 따라 배웠던 내용을 구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전체 연회 시간을 버텨 내기만 하면 되었다. 만약에 조심하지 못해서 실수를 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놀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방인례 쪽에서도 은근슬쩍 감탄했다. 예전에 그들이 가끔 부두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당시의 고대하는 평범한 시골 마을 사람일 뿐이었는데,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일거수일투족이 약간씩 변모하여 모양새가 잡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사람들의 ‘은연중에 감화한다. 품덕을 수양하면 변모한다.’ 등의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맞습니다. 확실히 귀댁에 보내는 중추절 선물을 받아두었습니다. 기다리시지요, 노부가 처에게 일러 가져온 짐에서 추려내라고 시키겠습니다. 안 그래도 내일 사람을 보내 댁에 전해드리려고 막 논의하고 있던 참입니다.”
방인례는 싱긋 웃으며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하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은 절을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방인례는 고대하에게 물건을 어떻게 댁에 가져갈 것인지, 사람을 보내서 전해 드리는 것이 나은지 등을 물었다.
고대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일전에 살던 저택에 우마차를 두고 왔습니다. 만약 물건이 많지 않으면 저 혼자 가져가면 됩니다. 물건이 너무 많다면 사람을 불러 저택 마당까지만 좀 옮기는 것을 도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던 고대하는 체면은 젖혀 두고 다시 물었다.
“다만 우리 아들이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키는 좀 더 컸나요? 너무 마르지는 않았습니까?”
방인례는 입가를 실룩실룩하더니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아드님의 건강은 매우 좋습니다. 키가 컸는지까지는 크게 주의해서 보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음, 예전보다 더 마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한테도 이런 문제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집 아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고대하는 상황을 들어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다만 실망을 표현하기엔 미안하고, 또 무엇을 더 물어볼지 모르겠어서 눈치껏 작별을 고했다.
‘에이, 이 방 거인은 하겸죽처럼 세심하지는 않구나. 하겸죽은 전자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하나같이 정확하고 명료하게 묘사해 주었었는데 말이야. 필경 관계가 그와 같지 않음이렷다.’
고대하는 몰래 혼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