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49)화 (149/504)

149화. 육훤(陆煊)

육택은 처음에는 별 말이 없다가 고청운이 자신이 계획한 대강의 교안을 설명하자, 이내 눈을 부라리며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때, 육택의 아들 육훤(陆煊)이 왔고, 고청운은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수수한 남청색의 옷을 입고 있는 육훤은 체격은 좀 둥근 게 약간 통통한 편이었고, 머리를 양쪽으로 빗어 묶었기에 꼭 두 개의 작은 뿔이 머리 꼭대기에 자라있는 형상처럼 보였다. 입술은 붉고 이는 흰데, 확실히 매우 준수한 외모로 60~70% 정도는 육택을 닮은 것 같기도 하였다. 

그의 검고 큰 눈을 바라본 고청운은 요즘 들어 부성애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지라 그를 꼭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버지.”

육훤이 느릿느릿 걸어와서는 작은 두 손을 몸에 바짝 갖다 붙인 뒤, 쭈뼛쭈뼛 고청운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목례 한 번, 눈인사 한 번 인사를 건네다가 결국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아기 특유의 소리가 강해 목소리가 좀 모호했다!

“멀리서 뭐 하고 있느냐? 이리 더 오거라. 자, 이분은 이 아버지가 너를 위해 모셔온 선생님이다. 네게 공부와 글자를 가르쳐 주실 게야.”

아들의 느릿느릿한 모습에 육택의 짙은 눈썹은 벌써 높이 치켜세워졌고, 금방 부드러워졌던 표정도 다시 굳었다.

육훤은 고개를 숙인 채 고청운을 다시 한번 쳐다보고는 우물우물 육택 앞으로 걸어갔다.

‘자폐만 아니면 된 거지!’ 

고청운은 한숨 돌리고 얼굴에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아이의 반응을 보니 그래도 정상범주였다. 

하지만, 곧 다시 체면을 깎이는 일이 있었다. 육택이 육훤을 옆으로 불러 인사를 시켰지만, 육훤은 고개로만 까딱 인사를 할 뿐 인사말도 건네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던 것이다.

육택은 몇 마디 달래 보았지만 결국 방도가 없어 고청운을 한 번 바라보고는 아이를 품에 안고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러느냐? 기분이 안 좋은 게야? 누가 널 건드렸느냐? 아비한테 말해 보거라, 아비가 가서 혼을 내줄 테니.”

육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목에 작은 머리를 파묻고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왜 말이 없느냐? 아버지랑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지금 선생님도 오셨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니. 말해 보아라, 뭐가 하고 싶은 게냐?”

육택은 화가 좀 났다. 

고청운이 급히 말을 붙였다. 

“우리 도련님은 낯을 가리시는 군요?”

전생에서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은 5살 때 사람이든 개든 모두 귀찮게 쫒아 다녔으니, 육훤의 이 정도 낯가림은 심한 것이었다. 

육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가 한두 살 때는 서로 장난도 많이 쳤는데, 이후 오랜 시간 외지에 떨어져 있다가 돌아오니 이미 이렇게 변해 있었소. 사람들과 말을 하기 싫어하더군. 특히 잘 모르는 사람들이랑 있을 바에는 아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오. 나무 아래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아이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말을 하지 않고, 조급하게 캐물으면 울기 시작하오. 

얼마 전에 이 아이를 문중의 학당으로 보냈는데, 철이 없고 또 건방진 그쪽 아이들이 아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겠소? 아이가 울면서 돌아와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하더군.”

오랜만에 육택이 긴 문장으로 말하자 고청운은 감탄했다.

“으아아아아앙…….”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육택의 품에 안겨 있던 육훤이 마치 아버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으로 들은 듯 예고 없이 울면서 육택을 내리치며 말했다.

“우우, 유모를 불러줘요, 저는 유모를 원해요……. 아버지, 아버지, 유모 좀 불러와 주세요.”

순간 육택의 이마에 불끈거리는 힘줄이 솟아났다. 그가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네 유모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여기 없어. 이미 여러 번 얘기 하지 않았느냐. 더 울면 맞을 줄 알아라!”

육훤은 잠시 멈칫하더니 울음소리가 작아졌고, 이내 목이 멘 작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공부 안 해요.”

“공부를 안 해? 공부를 안 하는 아이가 어디 있더냐?”

육택의 미간이 더 찡그려졌다. 

“내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공부하기로 약속했는데 또 번복하다니, 사람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게 아니다.”

이 말까지 듣고 고청운은 머리가 아득해졌다. 

고청운은 유모와 관련하여 분명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묻지는 않고 말했다. 

“대인, 용무가 바쁘실 텐데 먼저 가서 일을 보시지요. 제가 도련님과 여기에 머무르겠으니, 먼저 일을 보러 다녀오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달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고청운이 제안했다.

육택도 오달의 안색을 보고는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그는 아들 일에 정말 손쓸 도리가 없었다. 육훤이 아직 어려서 도리를 말해도 이해가 안 될 것이고, 듣지도 않으며 조금만 의견이 갈려도 울어버리는데, 온몸이 말랑말랑하니 감히 때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는 생각이 들면 또 어디 때릴 곳도 없어 보였다. 

“그럼, 먼저 아이와 어울려봐 주시겠소? 가능하다면 여기서 이 아이와 글공부를 하시면 되오. 저는 그럼 뒷일을 잘 부탁드리고 가겠소.”

아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육택은 아들의 울음을 대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쟁터에 나가 적을 죽이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았다.

“자, 소보(小宝)야, 우리 소보랑 선생님이랑 여기서 글을 배울 거다. 이 아비가 잠시 볼일을 보고 돌아올 때 맛있는 것을 사 오마.”

그래도 육택은 아들에게 아명인 ‘소보’라 다정히 부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뒤이어 육택은 육훤을 품에서 끌어내리고 사람을 대동해서 가버렸고, 방 안에는 고청운과 육훤만이 남게 되었다. 구석에는 아직 하인이 한 명 서 있었고, 문 밖에는 두 명의 젊은 사내가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육훤은 육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삐쭉거리며 입을 벌렸지만, 고청운이 쭈그리고 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감히 울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고청운은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 주더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소보야, 아버지가 나가셔서 아쉽지?”

육훤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고청운은 그의 땅딸막한 몸에 서린 고집스러움을 쳐다보다가 너무 사랑스러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소보야, 너 정말 귀엽구나. 네 아버지가 널 많이 사랑해주셨나 보다. 아버지가 널 진짜 많이 좋아하시지?”

본디 사나운 기세의 육택은 아들만 보면 기세가 꺾이고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고청운은 육택의 얼굴에 난 칼자국이 무섭긴 하다고 생각했기에, 예전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무섭게 여긴다고 여겼었다. 

고청운을 외면하고 있던 육훤이 큰 눈망울로 슬쩍 흘겨보았다.

고청운은 그가 마침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면 바로 수업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부터 해야 할 줄은 몰랐구나.’ 

고청운은 육훤이 방금 독서를 거부하는 것은 아마 일전에 학당에서 공부했을 때 있었던 일이 유쾌하지 못했기에, 심리적으로 더 그랬던 것 같았다. 고청운이 자신의 작은 손을 잡자, 육훤은 손을 뿌리치려 버둥거렸지만 결국 뿌리치지 못하고 입을 오므려 울먹이려 하였다. 

“아직도 울고 싶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여기 안 계신데.”

육훤은 울지 말지 결정을 못 내린 채 고청운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섰다. 

* * *

밖으로 나와 보니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값비싼 화초와 나무들로 가득 하지는 않았지만 구성과 배치가 알맞게 갖추어져 있었다. 마침 때가 5월 하순이라 월계화가 활짝 피어 있어, 눈앞에 보이는 작은 정원은 울긋불긋했고 나비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뭐 하고 놀고 싶어?”

고청운은 웅크리고 앉아 작은 화원을 가리켰다.

육훤은 볼이 불룩 튀어나온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너는 안 놀 테지만, 나는 놀 거야. 나는 풀을 엮어 동물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 잠시만 기다려 보렴.”

고청운이 화단에서 들풀 몇 무더기를 찾아냈다. 다행히 나무 밑에 자란 들풀을 하인들이 깨끗하게 없애지는 않았다.

풀을 뜯어간 고청운은 육훤의 앞에서 재빨리 풀을 엮어 작은 토끼와 메뚜기를 만들었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재주를 익혔던 그는 비록 몇 년 동안 만들어보지 않아 처음에는 다소 서툴렀지만, 점차 기억이 되살아나 잘 만들 수 있었다.

육훤은 몰래 돌아서서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손재간을 바라보며 작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놀라워했다. 

고청운은 몰래 그를 쳐다봤다. 

‘음, 내성적이지도 않고, 날 그다지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잘 지내 볼 수 있을 것 같네.’ 

“소보야, 이 토끼 좀 잡고 있어 줄래? 메뚜기도 좀 만들어야겠다.”

고청운은 그를 마주 보고 작은 손에 모양이 제법 생생한 토끼를 가볍게 얹어주었다.

육훤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토끼를 얹은 작은 손을 움직이지 않은 채, 토끼와 고청운을 번갈아 바라봤다.

고청운이 풀을 엮으며 물었다.

“소보는 토끼를 본 적 있니?”

육훤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거 봐, 이건 작은 메뚜기야. 소보야, 너는 어느 쪽이 더 좋니?”

고청운은 만들기를 마친 후에 두 마리를 다시 가져가 손에 들고는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육훤은 그를 한 번 보고 작은 손으로 토끼를 찍었다.

“그럼 말해 주렴, 네 이름은 뭐야? 대답해 주면 이걸 너에게 줄게.”

고청운은 미소를 지었다.

육훤은 입을 약간 오므린 채 문 앞의 두 사내를 한 번 쳐다보고, 또 구석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작은 머슴을 또 보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육훤이고요, 우리 아버지는 저를 소보라고 불러요.”

고청운은 한숨을 돌렸다, 아이가 자신과 말을 트기만 하면 그와 천천히 가까워질 방법이 있었다. 고청운은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책을 읽어 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다만 어떤 환경 요인이 육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육훤이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런 모습으로 자라게 되었는지, 고청운은 그 집안의 외부인인지라 어디 물어 볼 곳이 없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착하네. 자, 이건 네게 주는 거야. 맘에 드니?”

고청운은 손에 들고 있던 들풀을 엮어 만든 작은 토끼와 메뚜기를 건넸다.

육훤은 새까맣고 큰 눈을 들어 그를 한 번 쳐다보고, 분홍빛의 작은 입을 오물거리다가 작은 손을 내밀어 재빨리 받아 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혼자 놀면서 다시는 고청운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그 모습을 보고도 마음에 두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다시 물었다. 

“소보야, 올해 너 몇 살이니? 말해 줄 수 있어?”

육훤은 대답하지 않고, 그 작은 몸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 

“그럼 아버님의 연세는 알고 있니?”

고청운이 그가 가는 방향을 따라가며 또 물었다. 

“설마 너도 모르는 거야?”

“저는 다섯 살이에요.”

육훤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버지는 스무, 스물다섯 살이세요.”

“대단해! 소보는 정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구나!”

고청운이 빠르게 칭찬했다. 

순간 육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큰 눈으로 그를 한 번 또 한 번 몰래몰래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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