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상상하다
“유모를 불러 먹이라고 할까요? 그럽시다, 밤에 일어나기 너무 힘들지 않소.”
예전에 고청운은 한밤에 일어나 아기 젖을 먹이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이전에는 아침엔 간미가 젖을 먹이고, 저녁엔 유모를 통해 젖을 먹이기로 잘 안배해 두었기에 밤에 젖이 차오르면 그냥 짜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젖 짜는 것도 기교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 두 사람은 오랫동안 젖을 완전히 다 짜내려고 고생을 했음에도 깨끗하게 짜내는 것이 어려웠다.
이전에 조금 들어 둔 상식이 있었던 고청운은 밤에 젖을 제대로 짜지 않으면 염증이 생기기 쉬워서 젖을 소진하지 않는 게 간미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결국 아들의 도움으로 해결을 해야 했는데, 대신 이렇게 되면 간미는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를 안고 재울 필요는 없다고 해도 밤마다 고생을 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연 씨가 그녀가 직접 수유하는 것을 반대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간미는 모성애가 넘쳐흘렀기 때문에 그 방법을 수락할 리가 없었다.
과연, 간미는 고청운의 의견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안 돼요, 우리 소석이는 제 모유를 더 좋아해요. 그러니 3개월만 더 지나서 다시 말해 주세요.”
고청운도 그렇게 생각했다.
뒤이어 두 사람은 아들의 외모에 대해 누구를 닮았는가 하는 문제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음, 확실히 당신을 닮았소. 당신이 낳았는데, 당신을 안 닮으면 또 누구를 닮았겠소?”
고청운은 전혀 이견이 없었다. 확실히 지금의 소석은 간미를 더 닮아 아주 어여뻤던 것이다.
간미가 고청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전 소석이 당신을 닮아 멋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고청운이 하하 웃으며 자기 턱을 만지작거렸다.
‘어? 오늘 아침에 면도하는 걸 잊었구나.’
고청운은 매일 아침 운동을 다 끝내고 나면 아들을 보러 오는 걸 하루 첫 일과로 시작했기에 면도도 못했다.
이때 혜향과 영향이 간미의 아침 식사를 들고 들어왔고, 연 씨도 함께 걸어 들어오더니 고청운을 보고 말했다.
“이 녀석, 아침부터 여기로 뛰어왔구나. 어쩐지 아까 안 보이더라니. 이미 다 차려 놓았으니 빨리 가서 아침밥을 먹고 오너라.”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이제 자기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소석아, 아버지 먼저 가보마. 이따가 다시 보러올게.”
고청운이 아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소석은 제 아버지를 외면하고 젖 먹기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아주 힘을 내서 먹고 있는지 이마에 벌써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모습에 고청운은 낙담하고 방을 나섰다.
그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던 간미는 그가 방문을 나서자마자 피식 웃었다.
“외할머니, 부군 좀 보세요. 그이가 저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자기 아들인데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지. 이 사내들이란 게, 아들이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크단다.”
연 씨는 개의치 않고 손수건을 꺼내 소석의 땀을 닦아주더니 웃으며 말했다.
“소석으로 이름을 짓기로 하였느냐? 나쁘지 않구나. 난 청운이가 개똥이 같은 이름을 지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참, 너는 아직 몰랐겠지만, 네가 출산하는 날에도 청운이가 눈물을 쏟아내서 외할아버지가 깜짝 놀랐다고 밤새 얘기를 하시더구나.”
간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 웃음이 깊어진 채 품 안의 아기를 바라보았다.
* * *
고청운은 아침을 먹고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서재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서재에서 책 한 권을 골라 들었다. <자치통감(资治通鉴)> 중의 한 권인 <당기(唐纪)>라는 책으로, <자치통감>은 총 200여권, 300만자로 편찬 되어 있었는데, 그는 지금 막 일련의 권수를 수집해냈다.
고청운은 예전에 동창이나 시험 동기가 보내 준 것, 자신이 베낀 것과 사온 것을 포함하여 각종 수단을 활용해 책을 어렵게 모았는데, 200여권을 모두 모으기까지 적지 않은 노력과 돈이 들었다.
수집을 끝낸 고청운은 얼마 전에 그것들을 한 번 통독하고 이제 정독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당기(唐纪)>는 특히 방인소의 권유에 따라 여러 번을 더 읽어야 했다.
고청운은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진지하게 공부에 돌입했다.
* * *
며칠 후, 집에서는 그를 필요로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나면 분유 값이라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고청운은 나중에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는데도, 또 가업을 이루는데도 돈이 필요하니 일찍 후부를 찾아가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긴 지금도 유모와 고삼원의 월급을 그가 지불하고 있는데, 생활비도 더 들어가니 지출만 있고 수입이 없는 것은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고삼원을 기다렸다가 마차를 타고 후부에 도착한 고청운은 자신이 준비한 교안과 책을 집어 들고는 고삼원에게 먼저 돌아가고 오후에 다시 데리러 와달라고 하였다.
후부의 측문에 다다라 고청운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자, 문간방에서 바로 그를 들여보내 주었다. 보아하니 육택이 미리 분부해 두었는지 정말 신속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고 공자님, 여기서 차를 먼저 마시고 계시는 동안 소인이 가서 아뢰겠습니다.”
젊은 문지기가 그를 맞아들인 후 말을 전하는데, 너무 굽실거리지 않은 태도와 웃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성의가 가득해 보이게 하였다.
“네, 부탁합니다.”
고청운은 문지기가 되려면 반드시 육택의 신임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방인소의 가르침을 따라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어 쥐여 주었다.
하지만 문지기는 그것을 보고는 외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하는 게 아닌가.
“아니 됩니다, 안 돼요. 두 집사님께 소인이 손님의 돈을 받는 것이 알려지면 곤장을 맞습니다요. 이곳의 규칙을 따라야 하니,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돈을 안 받는다고?’
고청운은 진실되게 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고를 받아들여 주머니를 회수했다.
“성함을 어떻게 부르면 됩니까?”
문지기가 싱그레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소인을 소무(小武)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이 정용후부의 집안 규율은 엄격한 것 같았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유지 집의 문지기를 하면 소소한 팁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들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돈을 안 건네는 경우에는 시간을 끌면서 안쪽에 손님이 오신 것을 안 알려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소무가 아뢰러 들어가자, 한 시종이 차를 들고 들어와 차를 따르고는 구석에 멀찍이 말없이 서 있었다.
고청운은 개의치 않고 그곳 배치를 훑어보았다. 그곳은 매우 간소했는데, 몇 개의 책상과 의자만 놓여 있을 뿐 상상했던 휘황찬란한 정경은 아니었다.
잠시 후, 그는 머슴을 따라 복도를 지나 육택을 만나러 가면서 주의 깊게 주위를 관찰해 보았는데, 후부의 가구 배치가 간결하고 소박하며 대범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부모상을 지내는 기간이라, 모두들 옷을 화려하게 입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때는 하늘에 높게 걸린 태양이 땅 위를 밝게 비추고 있는 시간이었다. 길을 따라 줄곧 걸어온 고청운은 정용후부가 여느 대부호들의 큰 집과 마찬가지로 사합원 형식의 저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합원의 모든 구조를 합쳐 한 개의 부지로 보니, 지면적이 꽤 커 보였다. 장식, 배치 등도 일반인과 달리 기품 있는 모습으로, 여기에 정자와 누각을 정교하게 세워 나무들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가 가는 곳은 정원 왼쪽의 뜰에 속해 있었는데, 후원 쪽은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고청운은 육택의 아들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상상만으로는 틀림없이 매우 어여쁜 어린아이일 것 같았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얼굴에 칼자국이 없었을 땐 분명히 인상이 달랐을 테니 아버지를 닮았다면 그도 외모가 뛰어날 거라 생각되었다. 또, 듣기로는 성격이 유약하고 겁이 많으며, 잘 울기도 하고 내성적이어서 처음에 서로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현대에서의 그는 십대 아이들을 가르쳐 봤을 뿐, 5살의 어린아이는 가르쳐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이때까지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고청운과 만난 육택은 역시 몇 마디 나누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육택 뒤에 있던 오달이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을 시켜 아이를 데려오라 했소.”
역시 군인이라 그런지 속전속결의 습관이 밴 듯 했다. 물론 고청운은 이런 것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육택은 고청운이 이전부터 대답을 할 때 ‘대인의 분부를 받듭니다.’라는 말을 통상적으로 쓴 걸 보고, 왜 ‘소생이, 소인이’ 하는 자칭을 붙여 쓰지 않는지 속으로 의아했다.
고청운이 고대에 와서 가장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자칭과 관련된 언어 습관인데, 심지어 남방과 북방도 서로 사용하는 언어 습관이 달랐다. 그러나 보통은 ‘나(我)’ 혹은 ‘오(吾)’라고 자칭했고, 경성에 퍼진 소문으로는 황제도 때때로 ‘자칭’의 표현을 쓰기는 쓴다고 했다.
“아이가 어미를 일찍 여의었소. 나는 당시에 군을 끌고 전쟁터에 나가야 해서 아이를 증조모님께 데리고 가서 키웠는데, 증조모님께서 아이를 마치 여자아이처럼 기르셔서 전혀 사내답지 못하오. 조금 있다 만나보면 알게 될 것이오.”
육택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고청운은 이 집안의 일이 은근히 기억났다.
정용후부는 육택의 부친이 공을 세워 후작이라는 작위에 봉해져 생긴 것이었다. 직전의 정용후 부부가 낳은 아이가 몇 명인지 알 수 없었으나, 결국 살아남은 자는 오직 육택 뿐이라 황성에서 작위가 내려와 육택이 바로 세자로 봉해지게 되었다.
전(前) 정용후는 효자로, 하 왕조가 건국된 후 그의 노모와 유일한 동생을 보살펴왔다. 이는 인지상정이었는데, 특히 그는 작위를 받은 후로 동생과 함께 기거하면서 뭐라도 생기면 한몫씩 나누어 주었다.
고청운도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시 경성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정용후의 미덕에 대해 칭찬했다.
6년 전 육택의 모친이 죽자, 그의 부친은 건강이 나빠져 줄곧 시름시름 앓다가 육택과 사이가 멀어져 버렸는데, 생각지 못하게 싸움에 소질이 있었던 육택은 여러 차례 공을 세우며 곧 종3품인 정원장군(定遠將軍)의 관직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고청운이 육택을 만난 것은 지난해 그가 다시 전장에서 돌아와 장례를 지낼 때였다. 따져 보니, 그들 집안은 이미 일 년 동안이나 부모상을 지내고 있는 셈이었다. 어쩐지 만나자고 청하면 바로 만날 수 있더라니, 그는 관직에서 잠시 떠나 집에 기거하는 중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집에 기거하며 부모상을 지내는 기간임에도 방택을 찾아와 아들을 가르쳐 달라고 청한 걸 보니, 고청운은 육택이 그의 아들을 매우 중히 여기고, 작은 일에는 구속받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