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세삼(洗三) (2)
아직 담소를 나누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사에게 정용후부에서 사람을 보내 삼례의 선물을 보내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놀란 고청운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겨를도 없이 먼저 지인들에게 실례의 말을 하고 급히 나섰다.
고청운은 지난번에 육택의 뒤에 서 있던 사내 오달(吴达)이 선물을 직접 들고 온 것을 발견하고 두 사람은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계속 남아 식사라도 하고 가시라며 권했지만, 오달은 급히 거절하며 후부에 일이 있어서 선물만 전해드리고 가겠다며 선물을 놓고 온 길을 되돌아갔다.
고청운은 후부에서 선물을 보내 준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가 정식으로 오늘 행사를 알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직 후부 도련님과 정식으로 사제 간의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은 놀라 서둘러 이게 무슨 상황인지 캐물었다.
“청운아, 네가 정용후부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아는 게야?”
조문헌은 깜짝 놀랐다.
고청운은 당연히 육택을 도왔다는 말을 하지 않고 둘러댔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용후부에서 그 집 공자의 글공부를 부탁해 왔습니다.”
그는 보아가 아직 세자로 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공자라고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장수원이 눈을 빛내며 웃으면서 말했다.
“잘된 일이구나.”
조문헌은 이유를 캐기 바빴다.
방자명은 일찌감치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급히 화제를 돌려 말했다.
“분명 청운이가 언제고 귀인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아본 게지. 아이, 이 녀석은 정말 이쪽으로는 운이 타고났다니까. 어렸을 적부터 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어.”
이 말이 나오자마자, 고청운은 불복하면서 말했다.
“운이라고 말하셨어요? 운은 장 형이 가장 좋은 거 아닙니까?”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화제는 자연스레 장수원에게로 돌려졌고, 그에게 은밀하게 아첨하며 마무리되었다. 진사와 거인의 차이는 여전히 매우 컸는데, 그 사람은 곧 조정의 명관이 될 예정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백수일 뿐이었던 것이다.
* * *
한편, 뒷마당에서는 많은 여자 식솔들이 산모를 본 후, 바로 아이를 보러 달려갔다. 방 안에는 임 씨만이 남아 있었다.
“미아 동생, 지금 너무 좋겠어. 삶이 참 아리땁고 원만하겠구나. 아들까지 낳았으니 이제 걱정할 일은 없겠어.”
임 씨는 부러워하며 배를 어루만졌다. 사실 그녀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미아가 부군을 혼자만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군이 여러 꽃을 꺾고 다니지 않고, 아내가 회임한 동안에도 따로 계집을 들이지 않았으며, 곁에 두는 두 계집종이 아직 처녀 신분이지 않은가. 지금 또 아들을 낳아 부군에 대한 공로가 크니, 이후로는 그 어떤 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친정 가족 곁에서 살면서 심지어 아이도 친정에서 낳지 않았지 않은가. 외가에서도 그녀를 내치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이 다 그들에게 완벽하게 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이때 간미가 일어나 병풍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웃음을 담아 이야기했다.
“아기를 제대로 잘 키우고 가르쳐야지요. 임 언니, 서두를 것 없어요. 아직 젊으니, 몸도 멀쩡하시잖아요. 기회는 계속 있을 거예요. 지금은 너무 긴장하셔서 그래요.”
지금 조문헌은 진사에 합격하지 못해 국자감에서 공부를 계속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너보다 몇 살 더 많은 줄 아니?”
임 씨는 집에 있는 그 첩만 생각하면 눈이 침침해지는 것 같았다.
그 말에 간미가 그녀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 * *
얼마 안 있어 정오가 되었고, 모두가 ‘세삼 국수’를 먹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세삼식이 시작되었다.
세삼식은 점심 식사 후에 거행했는데, 간미의 아이를 받아준 산파가 사회를 보았다.
고청운은 산파가 산실 외청 정면에 분향소를 설치하여 벽하원군(*碧霞元君: 도가에서 여자 신선에 대한 존칭) 등 13명의 신상에 예를 올리는 것을 보았다. 향로에는 쌀을 가득 담고 향을 꽂는 데 썼고, 밀랍 꼬챙이에 양유 한 쌍의 빨간 초를 꽂았으며, 그 밑에는 노란 돈, 원보, 등 모든 신에게 바치는 돈이나 곡식을 배치했다.
간미의 침실 토항(*土炕: 침상 아래 불을 때는 중국식 난방) 위에는 또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고 재앙을 막아준다는 부부 형상의 신물과 함께 기름떡 세 그릇을 제물로 공헌해 두었다.
모든 의식은 매우 번거로워서, 이것이 다 끝난 후에야 앞마당의 안채에서 의식을 마저 거행해야 하였다.
회나무와 쑥으로 끓인 물, 구리 대야, 의례용품은 모두 상에 놓여 있었다. 오늘은 마침 해가 있어 고청운이 산파와 의논을 한 결과, 바깥 온도가 가장 높을 때 세삼을 할 계획이며, 탕도 따뜻해서 그의 아들이 추울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이를 대야에 넣기 전에, 방인소가 앞장서서 대야에 따뜻한 물을 한 국자 넣어 주었다. 금괴와 은괴도 넣어 주었는데, 이는 ‘첨분(添盆)’이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덧붙이니 산파의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이때, 마침내 아이를 안아들고 나왔는데, 겨우 3일밖에 지나지 않은 아이의 피부가 좀 매끄러워 보여서 어딘지 모르게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가 구리 대야에서 몸부림치고 울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아기가 건강하다고 할 정도로 웃었지만, 고청운은 마음이 아팠다.
‘아들아, 조금만 참으면 곧 좋아질 것이다.’
고청운은 속으로 은근히 격려를 보냈다.
고청운은 씻겨준 후에 다시 새빨간 강보에 싸인 아들을 서둘러 안고 방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의식이 끝나자, 고청운은 여러 손님을 배웅하고 서둘러 산실로 돌아갔다. 아들은 후후거리며 숨을 내쉬고 잘 자고 있었다. 살펴보니 어디 불편한곳이 없어 보여서 그는 그제야 안심했다.
그 모습을 본 연 씨가 웃었다.
“마음 놓거라, 아이는 다 괜찮으니.”
이어 연 씨가 고청운이 의식을 치르는 동안 마음이 아파 동동거렸던 모습을 다시 한번 묘사하자, 간미는 너무 웃어서 상처가 다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청운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갓 태어난 아이가 너무 매력적이라고만 생각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그의 마음에 사무쳤다.
* * *
의식이 끝난 후, 고청운은 이렇다 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당최 아이를 안아볼 차례가 오지 않았다. 아이를 먹이는 일에는 더구나 그가 필요 없었기에, 고청운은 매일 그를 보러 가는 것 말고는 아이 이름을 짓는데 모든 정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방인소는 더 이상 이름을 짓지 않는다 해놓고서는 이따금씩 그를 거들어 하나만 더 짓겠다고 하였다.
* * *
고청운은 며칠을 심사숙고하여 드디어 아명을 생각해냈다.
“동글이, 단단이, 철단이, 흑단이, 소석, 꼬마 원숭이……. 아기 엄마의 공로가 제일 컸으니 당신이 이름 하나를 골라 보시오.”
고청운이 간미에게 말했다.
간미는 머리에 천을 동여맨 채 침상에 반쯤 누워 있었는데, 얼굴은 여전히 동글동글했으며 반점 몇 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아이를 낳기 전보다 조금 살이 쪄 있었다.
지금 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와 조금 거니는 것은 가능했지만, 아직 산후조리 중이었기에 바람을 쐬거나 창문을 열거나 할 수는 없어서 말 못 할 고충이 있었다. 방에만 있는 것이 여간 갑갑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꼬마 원숭이? 그건 안 되죠. 다 듣기 싫은 이름들인데, 굳이 하나를 고른다면…….”
간미는 싱글벙글 웃으며 세상모르고 쌕쌕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들을 보고는, 목소리를 더 낮추어 말했다.
“‘소석(小石)’을 고르겠어요.”
“그래요, 어차피 아명은 얼마 부르지도 못하잖소. 정식 이름은 고향집에서 항렬을 따져서 정해줄 거요. 다만 우리 집은 유서 깊은 집안이 아니라서 사촌 형제들의 돌림자도 그냥 임의대로 한 글자 골라서 지은 것이라오.”
고청운은 이 일에 이견이 없었다. 어쨌든 그의 집안은 그의 대부터 일으켜진 집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갓난아기의 정식 아명으로는 조약돌이란 의미를 지닌 ‘소석’이 당첨이 되었다.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쿨쿨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본 고청운은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적어도 그의 아들은 그의 숙부들이 사용했던 개똥이나 똥강아지 같은 것으로는 불리지 않아도 되었다.
“부군, 창문 좀 열어주실래요?”
간미가 눈을 깜빡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답답한 것 같아서요.”
고청운은 손가락을 뻗었다가 이내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 돼요. 감히 그럴 수 없소. 할머님께서 아시면 나를 꾸짖으실 텐데, 스승님이라고 해도 이 일을 도와주진 못하실 거요.”
이전에 그도 실내의 공기가 너무 탁한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느껴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연 씨으로부터 점심때 한 번 잠시 열어둘 수 있게 허락을 구했었다. 하지만, 연 씨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간미가 아이를 낳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연 씨가 갈수록 자신을 더 편하게 대해서 둘의 관계는 전보다 더 친밀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그녀가 자신에게 잔소리를 더 자주 했다.
반면, 스승님의 태도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아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말 달랐다. 그와 간미만이 아니라 아이까지 있으니 느낌이 예전과는 달랐다.
“아이, 잠시만 열게 해 주세요, 창문 안 열어주실 거면 우리 소석이를 보러 오지도 마세요.”
간미가 협박을 하며 말했다.
고청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척하며 말했다.
“그럼, 안 보면 된다오. 내가 당신을 보러 오면 될 테니. 소석 녀석이 뭐가 중요하오? 당신 없이는 그녀석도 없는 것을.”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천천히 빨갛게 달아오른 간미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꼬며 애꿎은 이불만 만지작거렸다.
고청운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제 피차 부부 사이인데,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매우 눈치 있게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묻지 않았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며칠만 기다리시오. 몸이 좀 괜찮아질 때까지만. 그때는 창문 여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도 할머님께서 허락하실 거요.”
“네.” 하고 간미가 가볍게 대답했다.
분위기가 막 좋을 때 소석은 잠에서 깨어나, 울지도 않고 새까만 눈만 빤히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울고 싶으냐? 배고프진 않고?”
한참 아이를 관찰하던 고청운은 끝내 입을 크게 벌리고 울려는 모습이 보이는 찰나에 다급히 얼싸안았다.
간미는 급히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닦고 아이를 받아 젖을 먹이려고 하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고청운이 있으면 부끄러워서 나가달라고 부탁했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고청운은 아들이 잘 먹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녀석이 태어났을 적엔 겨우 6근이었는데 말이오. 이제 겨우 8일밖에 안 지났는데도 살이 많이 올랐군. 처음에는 아직 피부가 빨갛더니, 점점 하얘지는 게 정말 어여쁘오!”
고청운은 다들 신생아가 못생겼다고 말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처음 보니 자신의 눈에는 아들이 너무 어여쁘기만 할 뿐 전혀 못생겨 보이지 않았다.
지금 소석이 젖 먹고 있는 모양을 보니, 고청운의 눈에 아이가 매우 영리할 것 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