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45)화 (145/504)

145화. 출산

다음 날, 조문헌을 불러내 고청운, 방자명, 하겸죽 등 네 사람이 함께 송별 전 식사 자리를 가졌다. 

고청운은 시험을 치른 이후 처음으로 조문헌을 만났는데, 10년 전 처음 만났을 적 모습으로 돌아간 듯 창백한 얼굴에, 옷이 몸에 휑하게 걸쳐져 있었고, 가느다란 두 눈에는 예전만큼의 생기가 없어 기운이 없어 보였다.

세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전에 같이 병이 났을 때 모두 친한 사람이나 하인을 보내 문병하고, 나중에 병이 나아 직접 가 보려고 할 때는 아직 병이 덜 나았다고 하는 조문헌의 편지를 받고서 그의 병세를 악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병문안을 가지 않았었다. 

만약 그들이 간다면, 그는 옷과 머리 따위를 정리한다고 신경 쓰느라 또 손님을 맞이하느라 회복에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사람을 보내 약재를 전해주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는데, 이후로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날 동안 아직도 호전되지 않은 줄은 몰랐었다. 

조문헌은 이들의 의문의 눈초리를 눈치챈 듯 해명했다.

“사실상 몸은 거의 괜찮아졌지만, 그냥 정신적으로 힘이 없을 뿐일세.”

하겸죽은 원망하는 척을 좀 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오라고 안 했을 텐데, 다 내 탓일세. 그냥 잘 회복하도록 두었어야 하였는데.”

“자네가 안 불렀다면 내 기분이 나빴을 게야.”

조문헌은 그를 한 번 흘겨보았다.

고청운은 이 모습을 보며 10년 전 그들이 알고 지내던 모습, 함께 책을 읽던 날 등이 떠올라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는구나.’ 

시간은 지금 그들의 모습으로 빚어냈는데, 더욱 친밀하게도 혹은 점점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그날 오후, 고청운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권유가 아닌 자발적으로 술을 마셨다. 다행히 그는 이성적으로 술을 마셨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술에 취했을 뻔했다.

식사를 마친 다음 날, 하겸죽과 하씨 아저씨는 행낭을 메고 경성을 떠났다. 아마도 3년 뒤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하겸죽은 떠났지만, 그래도 생활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 * *

간미의 출산 시기가 다가오자 고청운의 마음이 초조해졌고, 아직 표현하지 못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아이가 사내아이일까? 아니면 여자아이일까? 또 얼마나 귀여울까? 그 아이는 크면 어떻게 될까? 나 스스로는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나?’

“부군, 또 실없이 웃고 계시는군요?”

간미는 매우 불만스럽게 그를 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만 책을 읽다 말고 멍해져 있었는데, 간미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마저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음, 태교는 계속되어야 하지.’

지금 집에서는 모든 준비를 갖추어 두었다. 산실, 산파, 아기 기저귀나 옷 같은 것은 모두 하나하나 준비를 마쳤고, 이제 아이만 나오면 되었다. 

매일 간미와 함께 아이의 출생을 기다리는 것 말고도, 고청운은 교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육택의 말을 들어보니, 그의 아들은 올해 겨우 5살이고, 겁이 많고 주눅이 들어, 고청운이 아이가 가진 특성과 자질에 따라 맞춤 교육을 해줬으면 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고청운은 남의 집 아이를 잘못 가르쳐 앞길을 그르치지 않도록 육택 앞에서도 체면이 서게 잘 진행해야 하였다. 

육택의 인품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분명 월급을 줄 것이고, 그 월급이 적지는 않을 것이었다. 남의 돈을 받으면 그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니, 고청운은 온갖 교습안을 써 보고 전생에 보고 들었던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관련하여 말 한마디라도 더 기억하려고 애쓰며 묘안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 밖에도 그는 <모험기>를 마저 집필하는 것에도 일정 시간을 할애했다. 들어보니, 그의 화본의 매출액이 요즘 들어 조금 나아졌다는 것 같았다.

* * *

5월 10일, 고청운은 밖에서 사장정을 만났는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그나마 필사본들이 제때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방택으로 돌아왔으나, 평소에는 조용하던 방택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하인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를 보자 하인이 간미가 막 산실에 들어갔다고 고했다.

고청운은 깜짝 놀라 뒤뜰로 뛰어들어 가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할머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3일 뒤에 태어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오늘 아침 떠날 때만 해도 미아는 잘 있었는데요!”

그는 그녀가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연 씨는 마당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청운이 제때에 돌아온 것을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원래가 예정일에 정확하게 맞추는 법이 없단다! 우선은 좀 진정하거라. 이 녀석 여기에 가만히 있어야한다. 들어가서 귀찮게 굴지 말고!”

고청운은 산실 밖에 서 있다가 천천히 안에서 간미의 울음소리가 전해 들려오자, 자신의 다리가 삶은 국수마냥 흐물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곧 바닥에 그냥 엎어지고 말았다. 

“할머님, 미아는 얼마나 오래 걸려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걸까요?”

고청운은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들어간 지 아직 반 시진도 안 되었구나. 시간이 아직 이르다.”

연 씨조차도 안색이 매우 다급해 자신이 들어가 도와줄까 말까 궁리했지만, 또 자신이 방해가 될까 걱정되었다.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산파로 잘 모셨으니 괜찮을 테지요.”

고청운은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고대의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집안 내의 여자들의 암투로 인해 위험에 노출되기가 쉬웠고, 회임 후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웠으며, 혹은 보신이 너무 지나쳐 태아의 영양과다로 인해 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간미는 회임 후 이 방면의 문제에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체력도 잘 키웠는데, 올해 이미 20살이 되어 그녀의 신체도 성장이 잘 이루어졌기에 지금은 아이를 낳는 것이 너무 이른 편은 아니었다. 

집안 내의 암투 같은 경우에는 그의 경우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 영향이라는 여종이 그를 한 번 떠보기는 하였으나, 고청운이 무시했거나 혹은 경고를 한 적이 있기에 이제는 포기한 듯 외려 그를 피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젠 간미가 순산할 일만 남았다!

고청운은 두 손을 모으고 순산 기원을 읊조리며 문밖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산실은 그들의 침실이 아닌 사랑방에 준비해 두었다. 그들이 기거하는 방의 옆방이었다. 

“작은 마님, 지금은 소리를 너무 지르면 안 돼요. 힘을 빼지 않도록 해요.”

금방 또 고함소리를 지르던 간미는 이미 입에 뭔가를 물었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청운은 힘겹게 자신의 두 다리를 움직여 몇 걸음 그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지만 간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산파의 ‘내쉬어요, 들이마셔요!’ 라는 외침만 들릴 뿐이었다. 그가 귀를 나무문에 대고 안쪽의 동정을 자세히 들어보니, 비로소 희미하게 간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작은 마님. 입구가 아직 충분히 열리지 않았어요. 일어서서 좀 더 걸으셔야 해요. 누워만 있으면 안 됩니다.”

안에서 또 산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일찍이 산파를 만나 약속을 잡고 물건을 건네준 적이 있어서 산파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간미의 발자국 소리가 전해 들려왔다.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하니, 고청운은 속이 타들어 갔다. 그의 머릿속엔 끊임없이 일전에 들어왔던 출산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생각났는데, 지금 왜 난산으로 인한 안 좋은 이야기들만 생각이 나는 것인지……. 그때는 그냥 듣고 넘겼던 것이 지금은 그런 이야기들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생각할수록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있었다.

‘그 많은 여인들이 이렇게 큰 고생을 하였구나!’ 

바로 얼마 전에 사전 조사를 했던 정용후부도 그러했다. 육택의 아내는 난산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난 뒤 몸이 좋지 않아져 몸에 찬기가 들어 별세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도…….

두려움이 한 손을 뻗어 그의 마음을 꽉 움켜쥐고 있는 듯 고청운의 마음은 끊임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청운아, 빨리 이쪽으로 오거라! 이따가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하는데 네가 거기에서 방해가 되잖느냐.”

갑자기 연 씨의 목소리가 우렛소리와 같이 울리자, 상념에 잠겼던 고청운은 정신이 들었다.

“할머님…….”

고청운이 그녀 쪽으로 발을 옮기며 작은 소리로 여쭈었다.

“우리 미아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렇죠?”

“당연하지!”

연 씨가 딱 잘라 말했다.

* * *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간미가 드디어 출산을 시작했다. 주방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서 한 대야씩 집 안으로 가져다 놓았고, 이윽고 또 한 대야씩 핏물을 담은 대야를 밖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 핏물을 본 고청운은 자신은 피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나 지금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중간에 연 씨가 앉으라고 해도 앉지 않고 그냥 서 있었는데, 그러는 편이 속이 편했던 것이다. 혜향이 저녁 식사를 하시라고 부르는 바람에 그는 태양이 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는 이미 방인소도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서 그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난 밥 생각이 없구나.” 

방인소와 연 씨 모두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고청운이 급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스승님, 할머님, 먼저 식사하러 다녀오시지요. 저는 지금 입맛이 없어서 밥을 못 넘길 듯합니다.”

연 씨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 녀석아, 오후 내내 물도 마시지 않고 서 있었잖으냐. 첫아이를 출산하는 것이니 그렇게 빨리 낳진 않을 것이야. 먼저 식사를 하고 와서 다시 기다리렴.”

허나 고청운은 귓가에 간간히 간미의 비명소리가 맴돌아 결국 밥을 먹지를 못했다. 먹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그는 목이 말라 겨우 물 몇 모금만을 마셨을 뿐이었다.

* * *

어둠이 내려, 집 안에서는 촛불을 켰다. 바깥에는 등롱을 걸어놓아서 온 마당이 환했다. 오늘밤 방씨 집안사람들은 모두 잠들지 못할 것이었다. 

이때, 간미가 끝내 고함을 질렀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더욱 처참했다.

“아! 부군, 아파요! 할머니, 너무 아파요!”

사람들이 간미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산실 쪽을 돌아보았다. 고청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로 산실로 뛰어들려 하였는데, 마침 나와 있던 유모 이 씨가 말렸다.

“아이고, 작은 나리! 사내가 산실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불길해요! 산모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청운은 산실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창문 밖으로 뛰어가 외쳤다.

“미아, 내 말이 들리오? 잘 버텨야 하오, 꼭 버텨야 해! 이 아이를 낳으면 더는 낳지 맙시다, 조금만 더 힘내줘요!”

고청운의 고함 소리가 들렸는지, 안에 있던 간미가 더욱 심하게 울었다.

“이 녀석아, 여기서 더 난리치면 안 된다!”

연 씨는 고청운을 끌어내리더니, 정작 자신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산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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