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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144)화 (144/504)

144화. 헤어짐은 아쉽다

두 사람은 급히 고청운의 서재로 갔다. 이때 선물은 이미 사랑방으로부터 옮겨져 있었고, 간미가 사람을 시켜 서재에서 막 살펴보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고청운과 방인소가 분주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외할아버지! 부군!”

그녀가 불렀다.

“미아, 스승님과 이 책들을 보러 온 것이라오.”

간미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에, 고청운은 당연히 그날 밤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말하지 않았다.

그 말에 간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외할아버지가 흥이 나서 상자를 뒤엎는 걸 보고는 재촉하며 말했다.

“점심 먹을 시간 다 되었으니, 그럼 빨리들 보세요. 아이 참, 육 나리는 남아서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오늘 음식이 아쉽게 되었어요. 주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주셨는데.”

“괜찮소, 그가 안 먹으면 내가 먹으면 되오.”

고청운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쪼그리고 앉아 같이 상자를 뒤척였다. 

그는 연거푸 몇 권을 보고, 뒤적이고를 반복했다. 몇 권은 사서오경과 관련된 것인데, 한 번 훑어보니 위에 평어와 주해가 쓰여 있었고, 글씨체도 아주 번듯한 것이 풍격이 아주 독특했다.

고청운이 궁금한 마음에 마음 내키는 대로 한 페이지를 펼쳐 자세히 읽어 본 결과, 경에 대한 이해가 아주 정확한 사람이 해석한 것으로, 방인소가 강의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인 듯했다. 다시 또 한 페이지를 젖힌 고청운은 순간 ‘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절을 원래 이렇게도 이해할 수가 있었구나?’

고청운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자신이 또 배웠다고 느꼈다.

이때 그가 방인소를 보았는데, 그의 표정이 사뭇 엄숙했다. 

“스승님, 쪼그리고 앉아 있기 힘드니 옮겨 앉아서 보실래요?”

고청운은 바삐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방인소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의자에 앉았지만, 시선은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청운은 먼저 책상 위의 물건을 한쪽으로 옮기고, 두 상자의 책을 모두 넓은 책상 위로 쌓아 올렸다. 

그제야 방인소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한 권씩 차례로 책을 보더니 말했다.

“이 책들은…… 어떤 것들은 꽤 가치 있고, 심지어 이 중 몇 권은 전 왕조나 송나라 때를 통틀어서도 아주 진귀한 책으로써, 네가 모두 봐도 될 만한 책들이다. 네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게야. 책들 중에서도 이 두 권은 전 왕조의 유교에 정통한 대가가 주석을 달아 놓으신 것 같은데…….”

그는 말을 다 끝낸 후에 바로 두 권을 골라냈다.

고청운은 책 제목이 <상서(尚书)>와 <좌전(左传)>이라는 걸 알아봤는데, 방금 그가 뒤적이던 책이 ‘좌전’이었다.

“잘 알았습니다. 반드시 열심히 보겠습니다.”

고청운은 보물을 얻은 것과 같았다.

“다른 책들도 보거라. 이 한두 권은 절대 가치가 낮지 않아 보이는구나. 이런 책들은 절대 팔아치워서는 안 된다. 그래, 노부가 보기에 정용후부의 사람들이 모두 무인들이라 이 책들의 진가를 알지는 못했던 듯하구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렇게 큰 가치를 지닌 책을 덥석 받아 이익을 취할 수는 없으니, 이 두 권은 필사해서 원본은 반드시 그분들께 돌려드려야 한다.”

방인소는 이렇게 말하며 또 두 권을 골라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여 책을 받아들고 자세히 보니, 그중 한 권은 역시 필사본이었다. 전 왕조 초기의 유명한 군신이 쓴 책으로, 그 사람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 아주 짙은 먹물의 흔적을 남기고 가신 분이었다. 송나라의 왕안석(王安石)의 지위와 대등한 위인이었는데, 그런 사람의 친필 원고라니. 이 책은 정말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또 다른 한 권은 당나라 서예의 대가 류공권(柳公权)의 습자본인 <금강경(金刚经)>이었다! 류공권은 당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서예가로, 그의 서체는 필획이 아주 강건하고 조금의 빈틈이 없는 꼼꼼한 품격을 지녔다. 그의 글씨 특색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가늘지만 힘 있는 서체로, 힘 있고 아름다운 해서체를 구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으며 획이 매우 견실하고도 정교하다’는 찬사를 받는 서체였다. 

‘지금 그의 습자본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았구나.’ 

“스승님, 제가 이 습자본을 어떻게 돌려 드릴 수 있겠습니까?”

고청운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보고 또 보며, 육택이 정말 사람을 잘 헤아리는구나 싶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자신의 서체가 진보할 여지가 많지 않아 은연중에 궁리하고 있었는데, 그런 시기에 이런 진귀한 서첩을 입수하게 되다니! 그는 이 습자본을 보고 잘 모사해 보면, 분명 수확이 있으리라 믿었다.

“나중에 그 집안 자제에게 다시 돌려주지 않을 생각이더냐?”

방인소는 무쇠가 강철로 연성되지 않았음을, 그가 아직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고청운은 헤헤 웃으며 상황을 이해했다.

‘이 서첩은 일단 내가 몇 년 간 보관해 두다가, 때가 되면 다시 그에게 돌려주면 될 거야.’

두루 살펴보니 두 상자의 책은 모두 합쳐 32권이나 되었는데, 일부 책은 잘못 보존되어 벌레가 구멍을 몇 개나 뚫어놔 두 사람을 안타깝게 하였다.

“후부의 거친 사내들이란, 이렇게 귀한 서적을 챙겼으면 잘 보관을 했었어야지. 노부가 듣기로는 후부의 노부인이 촌부 출신이라던데, 안목이 없어 이리되었구나.”

방인소는 좀먹은 책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고청운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마음속으로 방인소의 말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후부의 안채 정황을 잘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나중에 후부와 자주 왕래하게 될 테니, 그의 집안 사정을 상세히 알고 자칫 잘못해서 미움을 사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던 것이다. 육택이 비록 후작의 작위를 계승했지만, 그 집안에는 아직 웃어른들도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 부군, 점심을 드셔야지요.”

문밖에서 간미의 부드러운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고청운도 식사를 권했다.

“스승님, 좀 있다 사모님께서 직접 오시지 않게 빨리 가시지요.”

방인소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급히 책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노부가 식사부터 하고 나서 몇 권 좀 빌려가서 읽으려 하는데.”

“물론이지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고청운은 당연히 동의했다.

서재에서 나오자, 간미가 마침 활짝 핀 살구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살구꽃나무의 아리따운 자태만 해도 여러 깊이의 아리따운 색채가 어우러져 매우 절경이었는데, 그 꽃나무 아래 있는 간미의 흰 피부가 빛나면서 어우러지니, 고청운의 눈에는 그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였다.

고청운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간미에게 달려가듯 다가섰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혜향이 대기하고 있자 한마디 하였다. 

“혜향더러 와서 부르라고 하면 되지, 왜 이렇게 직접 오셨소.”

간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길이 먼 것도 아니고, 의원님이 저더러 좀 더 많이 걸으라고 하신 것도 있고 해서요.”

고청운은 더 말하지 않고, 간미를 부축해 회랑의 현관을 따라 식당으로 걸어갔다.

방인소는 앞서 걸어가다가도 가끔씩 그들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 고청운은 하겸죽이 자신을 찾아 작별을 고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사형, 벌써 내려가시려고요?”

고청운은 못내 섭섭했다.

“이미 너무 오래 나와 있었네.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어.”

하겸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중에 회시를 치르러 올 때는 꼭 한 달 전에 와 있어야겠군. 이번처럼 촉박하게 오지는 말아야지.”

그는 스스로를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춘절을 쇠고 싶어서 망설이다가 이른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사형, 임산현에는 가르침을 주실 스승님도 안 계시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동진사였던 유 현령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 전체에 진사가 한 사람도 없는데, 고향에 남아 계시면 공부에 진척을 보기 힘들지는 않으시겠어요? 차라리 형수님과 아이를 모시고 와서 경성에서 함께 계시는 건 어떠세요? 어차피 이미 거인의 신분이라, 일거리를 찾는 것도 아주 쉬울 겁니다.”

고청운은 요 며칠 하겸죽이 방자명이 있는 곳에서 지낸 것을 알고 있었는데, 병이 나은 후에는 자주 길거리를 돌아다녀서인지 이쪽 동네의 사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3년마다 2~300명의 진사가 배출되었지만 사실 각지에 배치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민간에서는 진사가 있는 걸 보기 드물었는데, 모두 벼슬을 하러 떠났기 때문이었다. 하여 경성 지방에서만 유독 진사가 많고, 관리도 많았다.

“정말이에요, 사형. 경성에 남아야 같이 학식을 토론할 사람을 찾는 것이라도 수월하지요.” 

고청운이 계속해서 권했다.

하겸죽은 그 말을 듣더니 주저하며 말했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봤는데 며칠 동안 나가서 돌아보니 거인들이 개인적으로 글방을 차리거나 큰 유지들의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또는 문객이 되어 생활하는 등 확실히 지내기는 좋아 보이더군. 하지만, 경성은 크고 거처할 곳을 찾기도 어려워서, 내가 보기에는 그들의 생활 조건이 내가 시골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었어. 정신적으로도 여러모로 힘들 테니 말이야. 

나 하나만 건사한다면야 상관없지만, 아내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함께 고생을 시키려니……. 그건 확실히 원하지 않는 상황이네. 그리고 그렇게 재산을 낭비하는 것도 너무 터무니없이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그의 사촌 여동생의 혼수가 있었지만 가용하기가 어려웠고, 가지고 있는 가산은 임산현에서나 편하게 살만한 돈이지 경성에서는 생활하기에 빠듯하였다.

“됐다, 나는 그냥 임산현에 남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뱀의 머리가 될지언정 용의 꼬리는 되고 싶지 않네. 내가 고향에 가면 어디를 가던 사람들이 반겨 줄 걸세.”

하겸죽이 웃어 보였다.

“난 아직 내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어 다음 회시에는 아예 상경도 하지 않을 거다. 준비가 되면 그때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야.”

고청운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말했다.

“그 방법도 좋군요.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이 다른 거죠. 경성에서 생활하는 것은 확실히 정신적으로 힘들긴 해요.”

그 역시 본래 300여 냥의 은자를 지니고 있었으나, 간미가 회임했다고 해서 생활비를 모두 처가에서 부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돈이 어찌나 물 쓰듯 빠져나가는지,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제 겨우 2백여 냥 밖에 남지는 않아 확실히 고향에서보다 소비가 훨씬 많았다.

주로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데 들어가는 사교비 항목의 지출이 컸는데, 2, 3명이 함께 하는 단출한 한 끼 식사에 한두 푼이 넘는 돈이 드는 것은 아주 소박한 경우였고, 사치니, 뭐니 하는 것을 따지면 끝도 없었다. 

하겸죽이 부채를 꺼내 흔들며 자조하듯 말했다. 

“나는 집을 지키는 개처럼 집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구나.”

그 말에 고청운이 웃었다. 그는 서랍에서 두 통의 두꺼운 편지를 꺼내 하겸죽에게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우리 부모님 그리고 장인, 장모님께 드리는 편지인데, 번거롭더라도 좀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고청운은 시험 결과에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미 마음을 비우고 낙방한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젯밤에 가족들에게 전할 편지를 쓸 때는, 손에 붓은 들었으나 아무리 해도 내용을 써 내려갈 수가 없었다. 먹물이 붓끝에 매달려 방울방울 떨어지는데도 종이에는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좀처럼 얼굴이 두꺼운 고청운이었음에도 이번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정말 가족을 볼 면목도 없었고, 이 사실을 편지로 전하자니 좀 민망하기도 하였다.

결국 여러 번 마음을 다잡은 그는 먼저 시험에 떨어진 일을 언급한 후, 간미가 곧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사실을 전한 뒤에 비로소 최근의 그의 일상생활들에 대해 적어 내려갔다. 예를 들면, 지금 자신과 간미가 살이 얼마나 쪘는지, 지내기 어떠한지 하는 것들 말이다. 또 자신이 일거리를 찾았기에 매달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도 전했다. 

그는 사실 부모님은 서신 뒤쪽의 글들을 보고 더 기뻐하실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시험을 보는 것보다 자신의 신체의 전반적인 상황과 생활 형편에 더 관심이 가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어 지난 8월 원시가 있었는데, 사촌 형인 고청명이 시험에 참가했는지도 서신 말미에 물어보았다. 

하겸죽이 서신을 받아들며 말했다.

“안심해, 내가 너희 집에 꼭 가져다줄게.”

잠시 대화를 좀 더 이어가던 둘은 아직 헤어지기도 전인데도 벌써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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