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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142)화 (142/504)

142화. 장군

정오 휴식 시간에, 고청운은 간미에게 방자명 누이의 일을 물었다.

“장 씨가 상경했다지만 그 집 할머니가 영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사람이 교활하게 늙어가지고서는 외당이모한테 얼마나 흠을 안 들키게 잘 숨겨 놓았는지. 그나마 이 일은 작은 외할머니를 찾아가 수다를 떨다가 알게 된 거예요.”

간미는 침상에 옆으로 누워 고청운을 마주하며 계속 이야기 해나갔다.

“작은 외할머니는 작은 외할아버지가 술에 취한 것을 원망하셨대요. 딸아이의 혼인을 술김에 쉽게 허락하고 그 일을 계속 원망 하느라, 얼마 전까지 서로 상대도 않고 지냈다고 하네요.”

간미가 다시 한번 자세히 말해 주었다. 

고청운은 그제야 방인례의 첩실 역시 사촌누이로, 방인례 어머니의 친정조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방인례는 본처를 존경했지만 사촌여동생 역시 매우 총애하여 한때 왕 씨를 집안에서 매우 힘들게 만들었는데, 다행히 방인례의 첩실은 아이를 낳은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방자명 집안이 이렇게 조용할 리 만무했을 것이었다.

사실을 다 듣고 난 고청운은 자세히 생각해 보더니 다시 한번 연 씨와 왕 씨가 마음이 맞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부군, 이것들은 모두 아녀자들의 일인데 어떻게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간미는 매우 궁금했다. 

고청운은 코를 만지다가 이불을 목덜미까지 끌어올리고 웅얼거렸다.

“집안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정상이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으니 말이오.”

‘설마 내가 이런 원한 맺힌 사건 사고를 귀동냥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라는 건가? 내가 사실은 가십거리를 매우 궁금해하고 다닌다고 말하라고? 그럼 내 이미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하지만,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기도 하였다. 아녀자들의 일을 통해 매우 많은 사실들을 알 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가 장수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함이 옳은지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 *

며칠 지나지 않아 시험 낙방이라는 어두운 사건이 방택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고청운은 어리둥절해지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정용후부(靖勇侯府)?” 

고청운은 금테를 두른 서신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정용후인 육택(陆泽)이 내일 방택으로 날 만나러 온다고? 난 별 볼일 없는 하찮은 거인일 뿐인데, 날 찾아오겠다니? 혹시 뭔가 착각을 한 거 아냐? 만일 만날 일이 있다 한들, 초대장 한 통이면 내가 그의 집으로 불려갈 수 있을 텐데. 그게 더 이치에 맞는 일이지 않나?’

간미도 궁금해서 물었다.

“부군이 후부의 사람을 어떻게 아십니까?”

“나도 알고 싶소.”

고청운은 매우 궁금했다. 

비록 경성에서 도는 우스갯소리로 벽돌을 아무렇게나 던져도 3품 대감이나 개국 공신인 후작의 지위를 지닌 왕이 맞는다는 과장된 소문이 있었지만, 그야 전체 왕조의 주요 부서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어 이곳의 관등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어 보여 그런 것이지, 이는 역대 왕조에서 모두 그래왔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후부 역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특히 이들과 같은 품계가 높지 않은 경성의 관리들과 비교하면, 후부는 별천지의 사람과도 같았다.

경성에는 크고 작은 권역이 있었다. 주로 문관권(文官圈), 무장권(武將權), 훈귀권(訓貴權) 등으로 나뉘는데, 정용후는 작위가 있는 귀족권에 속해 방씨 가문과 잘 어울리지 못해 좀처럼 교집합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고청운은 단지 거인의 권역 내에서나 어느 정도 유명할 뿐이었다. 그래도 산술 분야로는 제일 유명했다.

고청운은 신속하게 머릿속으로 정용후부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그는 현재 이 정용후가 새로 후부를 계승하여 작위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정용후는 올해 만 24세이며, 관직은 종3품의 정원장군이며, 성은 육이요 이름은 택이었다.

고청운은 왜 이리도 그를 주목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육택이 바로 고향에부터 명성이 자자하던 그 육 장군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가 남만의 땅을 정벌한 사내였다. 

자기는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고청운은 자신이 그쪽으로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무장들을 모두 선망해 왔는데, 특히 이름이 익숙한 육택은 더욱 공을 들여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비록 상경하여 지내오면서 더 많은 정보들이 모여 기억해야 할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가장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바로 이 육택이라는 사람이었다. 

* * *

저녁이 되어 방인소가 귀가하자마자, 고청운은 그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

방인소도 정용후부에서 왜 서신을 보낸 것인지 매우 갑갑하기만 하였다. 

결국 토론 끝에 이 둘은 육 장군은 평판이 좋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자고 결정했다. 그가 백성들을 억압하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그는 군사 방면에서 타고난 재능이 출중하여 몇 차례 전투를 치렀으나, 모두 깔끔하게 승리하여 휘하 병사들 및 백성들에게 추대 받아왔으며 민중들의 선망도 높았다.

* * *

다음 날 아침, 고청운은 일찍이 일어나 거울 앞에서 예를 다하기 위해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에 은빛 관을 쓰고 소매 가장자리에 은사로 구름무늬를 두르고 있는 남색 옷을 입었고, 허리춤에는 몇 개의 난초를 수놓은 넓은 허리띠를 둘렀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죽신을 신어 늘씬한 자태를 뽐냈다.

자세히 한 번 훑어보니, 색상 매치도 매우 담백해서 튀지 않았다.

 “부군!” 

간미가 옆에서 혜향과 영향을 지휘해 그를 치장해 주다 말고 그의 모습을 보더니 눈이 반짝이며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때 그녀는 거울 속에서 너무 방대한 자신의 모습이 보여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혜향과 영향이 물러나자, 간미는 허리를 받치고 그의 얼굴 앞으로 다가갔다.

“이렇게 하니 참 보기 좋네요.” 

고청운도 자신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키는 충분했고, 자신의 이목구비는 특출 나게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비율이 좋았던 것이다. 근육질이기까지 한 걸 보면, 그가 매일 단련하는 게 헛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앞의 정원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소. 당신은 후원에서 바느질이니 뭐니 바늘 만지는 일은 하지 마시오, 이렇게까지 많은 옷은 입을 수 없으니까.”

고청운이 주의를 줬다.

“안심하세요, 옷 안 지은 지 한참 되었는데 계속 그 말씀을 하시네요.”

간미가 간드러지게 그의 팔뚝을 토닥거리고 말했다.

“육 후작 나리를 만날 때는 말조심하고 신중히 행동하는 것을 잊지 마셔요. 그가 먼저 청해서 찾아오는 것이니 악의는 없을 거예요.”

“알고 있소.”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육택이 오는 일로, 오늘 방인소도 휴가를 내어 집에서 접대하기로 하였다. 온 방택이 귀한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서신을 받은 어제 이후로 구석구석 청소를 하니, 육택은 집안이 매우 깨끗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터였다. 

고청운은 전생에서 정부 말단 부문에서 일했을 때, 매번 높은 지도자가 와서 검사를 할 때마다 위생을 관리해야 했었는데, 이와 같은 이치를 적용해 고대에도 응용해 보기로 하였다. 그 때문에 주방 역시 바쁘기 그지없었다. 

* * *

사시 일각, 육택이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일련의 예를 갖춘 인사말을 건넨 후에, 그는 비로소 본론에 돌입했다.

사실 고청운은 육택을 만나는 순간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아차렸다.

육택은 행차를 간소하게 하고 찾아왔는데, 사복 차림의 하인 몇 명만 대동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몇 하인들의 상명하복 하는 모습을 본 고청운은 그들이 군에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육택과 방인소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던 고청운은 무심코 육택의 얼굴에 난 익숙한 칼자국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오만 감정이 섞였다. 

그날 밤의 일이 이리 오랫동안 잠잠했기에 다 지나간 과거의 일로 묻힐 줄 알았는데, 감쪽같이 이렇게 다시 육택이 집까지 찾아오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고청운은 그가 정말 자신을 찾아내지 않기를 바랐으나 지금 결국 수색 당해 버렸다. 이는 그만큼 이 세상에 힘 있는 사람들의 권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육택은 아마 무뚝뚝한 사람일 것 같았는데, 역시나 방인소와 그의 대화는 몇 마디를 채 못 가 끊기고 말았다. 상대는 단지 몇 글자의 짤막한 말로 대답을 할 뿐이라, 이런 화법이 계속 되자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피로해졌다. 새로운 화젯거리를 끊임없이 찾고, 분위기가 너무 썰렁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하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무장이고 또 한 사람은 문관인지라 서로 견해차가 커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어찌되었든 육택의 기세가 매우 위압적이었기에 고청운은 스승님이 진땀을 빼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자진해서 말을 건넸다. 

“대인께서 어찌 분부가 있으셔서 한낱 서생을 찾아주셨는지요?”

방인소는 이제야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로 자진해서 피해 주었다.

갑자기 안색이 보기 좋아진 육택은 사양도 않고 곧 방인소를 떠나게 하였다.

그가 고청운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하였다.

“이번에 찾아와서 확실하게 부탁할 일이 있소.”

이내 그가 손뼉을 치자 문 밖의 하인이 장목나무 상자 두 개를 들고 들어오더니 바닥에 살짝 내려놓고 열었다.

고청운은 호기심에 육택을 한 번 보고 다시 상자를 눈여겨보았는데, 상자 안에는 온통 책뿐이었다. 순간 고청운의 눈이 번쩍 빛이 났다.

“당신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이니, 이 책들은 반드시 마음에 들 거요. 당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니 반드시 받아 주시오.”

육택은 고청운의 눈을 꼭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이 서생은 받을 수 없습니다.”

멍하니 있던 고청운은 머리를 가로 젓느라 바빴다. 허나 그와 동시에 이렇게 완강한 사람 앞에서는 거절해도 소용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받을 수 있소.”

과연 육택은 오히려 강경했다.

“이것은 반드시 그대가 받아야 하는 것들이오. 원래는 금과 은을 보내고 싶었소만, 듣자하니 당신네 학자들은 금과 은에서 나는 돈 냄새를 혐오한다는 말을 듣고는 창고에 있던 책을 꺼내어 드리는 것이오.”

고청운은 참 답답했다. 

하지만, 바로 그 돈 냄새를 마다하지 않는 그런 학자였던 그는 속으로 두 상자씩이나 되는 책을 받으니 좋았다. 그가 사러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 말이다. 

육택은 다시 손뼉을 쳤는데, 줄곧 그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육택 앞으로 걸어 나와 활 하나를 전해 올렸다.

고청운은 그 활을 보고 체념했고, 이 사람들이 이미 자기가 구해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는 건가.’

“이 활은 노련한 목수가 산뽕나무로 만들었고, 현은 소의 힘줄로 만들었는데…….” 

육택은 활의 재질을 자세히 설명하더니 다시 물었다.

“한 번 보시오.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보내겠소.”

이렇게 된 이상 까다롭게 굴 이유가 없었기에, 고청운은 마늘을 찧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 서생은 매우 좋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인!”

그는 얼른 받아들어 자세히 한 번 훑어보고 공터를 향해 시연해 보기도 하였다.

‘음, 내 완력에 딱 맞는구나.’ 

마치 그의 몸에 딱 맞추어 제작한 것처럼 사용하기가 매우 편했다. 

고청운은 활을 강에 버린 후부터 새로운 것을 사려고 경성에서 알아보다가 생각해 보고는 일단 안 사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다시 둘러보려 했는데, 누가 이렇게 주동적으로 배달까지 해 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중요한 것은 방택의 지면적이 작고 또 자기 집도 아니어서, 활과 화살을 사 가지고도 연습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그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닐 뿐이었는데, 이런 행동을 본 하인들은 수군거렸다. 다행히 연 씨가 제대로 관리하고 있기에 이런 일들은 밖으로 새 나가지 않았다. 

고청운은 여기서 또다시 세대차를 느꼈다. 이 시대엔 아직 조깅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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