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회시 (1)
시험장은 아주 컸고, 담장은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덤불은 아주 울창하게 자라 있어서 밖에서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시험장은 일반적인 다섯 칸짜리 대문이 있지 않았다. 시험장의 대문은 ‘용문(龙门)’이라고도 불렀다. 중간의 문 세 개에는 편액을 걸어 두었는데, 중간문은 천개문운(天開文運), 동문(東門)은 명경취사(明經取士), 서문(西門)은 위국구현(爲國求賢)을 주제로 하였다. 길의 한가운데는 명원루(明遠樓), 공당(*公堂:공무를 보던 곳), 집규각(聚奎阁), 회경당(會經堂) 등이 있었다. 동서 양쪽에는 모두 나지막한 고사장을 짓고, 일명 ‘호실’으로 불렀는데, 모두 9천 여실이 있었고 양측에 늘어서 호실의 입구 쪽에는 향시 때와 마찬가지로 큰 물독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시험장의 네 귀퉁이에는 망루를 세워, 순찰하는 사람을 두고 고사장의 상황을 볼 수 있게 하였다.
회시의 호실은 향시의 호실보다 훨씬 협소했다. 길이가 5척, 너비가 4척, 높이가 8척 밖에 되지 않아 꼭 동물 우리 같았다. 고청운은 어림잡아 보니 대지 면적이 2㎡ 남짓했는데 그처럼 키가 장신인 경우 쪼그려 잠을 자야 했고, 몸을 쭉 뻗기도 어려웠으며, 호실 안을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들어 안에 있는 동안은 꽤 괴로울 것 같았다.
유일한 희소식은 새 황제가 즉위한 후, 3년이란 시간을 들여 예전의 목조 호실을 벽돌 구조로 개조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누수 등의 문제는 물론 화재 예방에도 효과가 있었다.
그전에는 회시를 한 번 거행할 때마다, 거의 매번 불에 타서 유명을 달리하는 응시생이 있었다고 했다. 죽은 응시생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고, 전 왕조에서 한 번은 백여 명 이상의 거인이 한 회차에 불에 타 죽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며, 이번 왕조에는 10여 명이 한 번에 사고에 연루된 참혹한 전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고청운은 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시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향시보다는 더 혹독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최소한 향시 때는 호실 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라도 해서 만약 불이 난다고 해도 시험이야 내팽개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회시보다는 향시 응시 중에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 빈도가 더 적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그는 이렇게 우리 같은 곳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볼 기회조차도 없었다.
가는 길 내내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고청운은 자신이 배정받은 호실로 걸어들어 갔다.
그가 호실로 들어가자 바로 문을 닫혔고, 걸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문밖에 또 한 명의 병사가 손잡이를 잡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고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너무 재소자 취급 같았다.
단지 자물쇠를 채웠을 뿐인데 호실 안은 어두컴컴해졌다. 그는 복도의 등불을 빌려 호실을 좀 둘러보았는데, 청소가 잘 된 편인 듯 했다. 아마 막 지어진 덕인 것 같았다. 구석에는 아직 이끼가 생기지 않았고 건조해서 웅황분 따위를 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더 자세히 안쪽을 관찰했다. 안쪽으로 두 개의 나무판자를 사용한 목조 구조물이 있었는데, 하나는 책상용이고 하나는 침상의 용도 같았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가 말하길, 책상을 밀어서 침상으로 같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나무판자 외에도 맑은 물 한 그릇, 양초 세 개, 숯을 담는 대야 한 개와 숯 세 근이 들어 있고, 마지막으로 구석에 덮개가 있는 변기가 있었다. 맘에 드는 점은 바닥에 화장지가 여러 장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이번에는 악취와의 전쟁은 없을 터였다. 왜냐하면 모두들 식사와 용변 모두 자신의 호실 안에서만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3월로, 날씨가 덥지 않은 덕에 아무리 변기가 호실 내에 있더라도 악취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여름이었다면 아무리 자기가 배출한 것이라고 해도 속이 메스꺼울 것이다.
고대 사람들이란 참 재밌어, 고청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일을 시작하자!’
고청운은 자신의 시험장 바구니를 내려놓고 행주를 집어 들고 닦기 시작했다. 이것이 매 시험에서의 첫걸음이었다.
다 닦은 후, 그는 바구니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들었다. 안에서 붓, 먹, 벼루, 붓걸이, 문진 같은 것들과 기름 등잔불 한 개, 대추술 한 병 등을 꺼냈다. 이외의 다른 물건들은 마음대로 소지할 수가 없었다. 시험장 안의 세 개의 촛불은 아무렇게나 불을 붙여서는 안 됐다.
일일이 잘 배치한 후, 먼저 기름등잔에 불을 붙이고, 고청운은 그제야 입구로 사용하는 판자 오른쪽 벽 위의 널빤지를 발견했다. 그것을 밀어 열었더니, 벽에 작은 창이 하나 나타나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별 것 없고, 한쪽 벽으로 막혀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작은 창문의 먼지를 깨끗이 닦아준 후, 고청운은 비로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며칠간 음식과 시험지가 이 창문으로 들어 올 것이었다.
이렇게 바쁜 일이 끝내고 나니, 고청운은 할 일이 없었다. 날이 밝기까지 아직 한시진이 남은 것을 보고 그는 작디작은 호실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3일 동안은 이 안에서만 문제를 풀고, 저녁에도 안에서 쉬며, 문을 나설 기회조차 없을 터였다.
날이 채 밝기도 전인데도 밖에서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주변에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수험생들의 낮은 불평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고청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애써 숯이 든 화로에 불을 붙였다. 숯을 많이 넣지는 않았다. 숯을 한꺼번에 다 써버리면 앞으로 이틀 밤을 춥게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옷을 단단히 동여매고서 기름등불도 끄고, 창문에 틈이 열려 있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나무판자에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잤다.
잠결에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것만 같았는데, 다행히도 이 호실 사방은 모두 무언가로 둘려져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추웠을 것이다. 그는 나무판자를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깼는데, 고청운은 소리를 듣자마자 서둘러 데구르르 일어났다. 그의 창문의 널빤지가 이미 열려있었고, 안에는 종이 두루마리 두 묶음이 놓여 있었다.
고청운은 재빨리 두루마리를 조심해서 가져온 뒤, 다른 것은 돌볼 겨를 없이 급히 펼쳐보았다. 한 묶음은 원고지, 또 한 묶음은 시험지였다.
시험 내용은 향시 때와 대동소이했다.
첫 번째 시험은 사서에 나오는 경의 문항으로, 고청운이 문제들을 둘러보니 네 문제밖에 없었지만, 오늘 밤 내로 바로 제출해야 해서 서둘러야 했다.
시험 문제를 분석하고 있는데, 다시 나무판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보니 창문으로 그릇 두 개가 들어왔다. 배를 어루만지고 밖을 살펴보니 이제 해가 뜬 줄 알아차렸다.
고개를 숙여 숯 대야를 들여다보니 어느새 숯이 다 타고 남은 잿더미만 남아있었다.
들여보내준 그릇을 살펴보니 한 그릇에는 맑은 물이, 다른 그릇에는 기름을 둘러 구운 밀전병 두 장이 담겨 있었다. 이게 흔히들 말하는 시험식이었다. 그것들은 무료고 보통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이 밀전병은 최상급 소면과 기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계란까지 넣어 반죽한 것이라 하였다.
고기를 넣지 않은 것은 그들이 설사를 할까 봐, 혹은 비용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일 것이다.
고청운이 밀전병을 먹을 때쯤 다시 추워지기 시작했다.
물을 한 모금 더 마시면서 그는 아직 음식에 온기가 있으니, 식기 전에 얼른 먹어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먹다보니 그는 이 전병에 과연 정말 계란이 들어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먹어봐도 계란 맛이 느껴지질 않는데, 고청운은 어릴 때부터 계란을 먹고 자라 냄새만 맡아봐도 안에 계란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관청과는 이치를 따질 수 없었다. 어차피 공짜니 먹을 수 있으면 먹고, 안 먹으면 자기 자신만 배고파 질뿐이었다.
다 먹고 난 뒤에 그릇을 창문에 올려놓으니 누군가 와서 걷어갔다.
고청운은 배불리 먹은 뒤 바로 문제를 풀지 않았다. 일어나서 걷지 못하지만 발은 구를 수 있었다. 이곳은 너무 좁아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다리에 부종이 생겨서 매우 불편할 것이었다.
그는 한쪽에 서서 시험지에 적힌 경의 문제를 생각해봤다.
첫 번째 문제는 수, 화, 금, 목, 토, 곡유수(水、火、金、木、土、谷惟修)였는데, 고청운은 문제를 보고 재빨리 머리를 굴려 그 출처가 상서(尙書)의 대우모(大禹谟)에서 나왔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모’라고 적어뒀다. 좋다, 출처를 알면 문제 풀기는 쉬웠다.
이 문제는 이전 향시의 첫 번째 문제보다 조금 어려웠지만, 못 풀 만큼은 아니다.
먼저 뜻을 해석하면, ‘물은 관개할 수 있고, 불은 조리에 사용할 수 있으며, 금은 끊을 수 있고, 목은 잘 자랄 수 있으며, 토지는 생식할 수 있고, 곡식은 양육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 여섯 가지를 “육부(六府)”라고 하는데, 이는 대자연이 만물과 생명체를 기르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 후 이른바 ‘덕유선정, 정재양민(德惟善政,政在养民)’이라 하여 성인의 덕으로 정무를 돌보아 물, 불, 금, 목, 토, 곡 등을 잘 안배하는 것을 유수(惟修)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잘 실현이 되어야 백성을 잘 돌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었다.
고청운은 2분 정도를 서 있다가 답안 내용을 웬만큼 생각해낸 후 앉아서 원고지를 펼쳐 놓고 벼루에 물을 붓고 천천히 먹을 갈기 시작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언급한 뒤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은 다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등 장황하게 맹자가 경전에서 언급했던 왕도의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최종적으로 원고지를 검토함에 있어서 검사하며 구절의 순서 등을 재배치하면서 문장이 더 매끄러워지자, 내용이 더 논리정연하고 이치에 맞게 정립되었다.
다시 처음부터 훑어보니, 자신의 답변은 비록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매우 견실해서 어떠한 흠도 찾아낼 수 없었다.
답안을 다 쓰고 나서 다음 몇 개를 살펴보니, 마지막 문제가 특수한 양식에 맞춰 답을 써야하는 ‘절탑제(截搭题)’ 형식의 문제 하나만 힘들었을 뿐, 나머지 두 문제 모두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특출나게 잘 써야 한다는 어려움만이 있을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그는 책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였는데, 일어났을 때는 손발이 저렸다.
옆방으로부터 시험지를 큰 힘을 들여 펄럭거리며 뒤적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고청운은 오히려 그 소리를 듣고 기쁨에 젖었다.
‘좋아! 나 혼자만 답을 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었구나.’
오늘 아침에는 정말 이상했다. 옆방 사람이 한참 동안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그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미 몇 차례 시험을 봐왔기 때문에, 이웃한 응시생들이 광분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토록 조용한 응시생이 이웃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고청운의 호실은 골목의 가장 안쪽에 배정되어 있었는데, 왼쪽에만 호실이 위치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작은 통로가 나 있었다.
어쨌든 그는 더 이상 이웃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해서 문제를 풀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