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그간의 속사정
예부의 좌시랑 온형(温衡)이 주임 시험관이란 말에 방인소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백부님, 이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방자명과 고청운은 서로 마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방인소는 이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잠시 중얼거리다 말했다.
“예상을 아주 빗나갔구나. 온 대인은 평소에 조정에서 몸을 숨기는 자인데, 선황제의 추종자로, 줏대 없이 선황제의 의견에 앞장서서 따르기만 하던 사람이라 무위일치(*无为而治: 인위를 가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맡겨 천하를 다스리다.)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 인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지. 무슨 일이던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미룰 수 없으면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니, 그 능력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다.”
고청운은 방인소에게 차를 마저 따라주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그리고요?”
그는 온형이 권문세가인 온씨 가문 출신이라는 것, 또 그 집안은 한 집안에서 진사 3명을 배출해낸 명성을 지닌 집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저는 알겠어요.”
방자명은 문득 깨달았다.
“온 대인은 아직 현 황후의 친 숙부잖아요. 백부님께서 말씀 하셨던 게 기억나는데, 선황제께서 아직 살아 계실 적에, 온 대인은 무조건적으로 선황제의 명령만 들었었고, 지금의 황제의 계획을 몇 개나 망쳐버리신 분이죠. 그런데 황제 폐하께서 주임 시험관을 맡기시다니……”
방자명이 말하자 고청운도 덩달아 기억나는 게 있었다. 이런 일은 진짜 타고나야 하는 것인데, 방인소가 딱 한 번 그들에게 알려줬기에 고청운은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런데 방자명은 그들 사이의 관계와 당시 상황까지 똑똑히 기억해냈다.
고청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방자명을 훑어보았다.
‘설마 이놈이 앞으로 진짜 진국이 될 녀석인가? 그럼 이제부터라도 좀 더 잘해줘야 하나?’
“황제 폐하께선 태자를 책봉 하시죠.”
방자명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황후 소생의 태자가 이제 겨우 3살인데 너무 이른 것은 아닌지……”
3살이면 아직 유아인데, 황위를 잇기엔 확실히 상당히 위험한 나이였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고청운은 황실 아이들의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의 황제는 올해 43세인데, 일전에 전쟁터에서 사적인 것을 돌보지 않고 살다가 20대 초반에야 성혼하여, 결혼 후 4남 6녀를 보았다. 그 중 황후는 2남 1녀를 낳았고, 지금 성인이 되어 아직 생존해 있는 자식은 총 2남 5녀로, 황후의 장남은 8살 때 요절하였고, 유일한 본처소생의 공주는 올해 15살이고, 둘째 아들은 막 3살이 되었는데, 황후는 38살의 나이로 목숨을 걸고 다시 아들을 보았고, 이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 등극이 이뤄진 것이었다.
황제에게는 몸이 아주 좋지 않은 한 명의 황자가 더 있다고 들었으나, 생모의 신분이 높지 않았고, 아이는 올해로 10살인데, 존재감이 거의 없다고 했다.
지금 황제가 등극한 지 3년이 지났는데, 보아하니 태자를 책봉하고자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다.
“황제가 필요로 하는 한 얼마나 이르던, 이른 것이 아니지.”
고청운이 중얼거렸다.
방인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쓸며 말했다.
“노부는 온 대인과는 친분이 없어서, 그의 평소 문장은 너무 보수적이며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것 말고는 알아내기가 힘들구나. 이 며칠간은 너희들은 그가 예전에 낸 시집이나 문장을 보는 것이 좋겠다. 노부는 정말 그의 서적에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그의 말이 끝나고, 고청운과 방자명이 서재를 떠나 하겸죽과 함께 책을 사러 나갔다. 그들이 찾은 몇 군데 큰 서점에서는 온형이 일찍이 출판했던 유일한 책은 몽땅 팔려 나가버렸고, 결국은 좀 더 작은 서점으로 갔지만 그곳 역시 진작에 다 팔리고 없었다.
세 사람은 실망하여 돌아갔다.
“우리는 총명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죠.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책을 찾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고청운은 맥이 빠졌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하지만 어차피 온 대인이 아주 예전에 출간했던 책일 뿐이잖아요. 그동안 사상이 분명 변했을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네.”
하겸죽은 이 상황이 자못 달갑지 않았다.
이들은 길에서 조문헌이 보낸 조삼을 만났다. 그도 책을 사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책을 샀는지 물어봤음에도 그들 또한 수중에 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조삼은 실망해서 돌아갔다.
그들이 거리로 나섰을 때 여전히 몇몇 학자들이 책방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는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었는데, 그들 역시 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가 이 실낱같은 성공의 희망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하고 고청운은 생각했다.
가는 길에 고청운은 참지 못하고 방자명에게 숨죽여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안 가지고 계신가요?”
그는 방인소와 방인례가 비록 친형제이기는 해도, 두 사람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거의 없고, 방인례가 방택에 방문하는 횟수 역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관계만 보면 방인소와 방자명만 못해보였다.
“없을 거야.”
방자명이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아니면, 내가 조금 이따가 가서 여쭈어 볼게.”
그는 자신의 아버지 소식통이 백부님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중에 매형에게도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혹시 그의 스승님께서 가지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점 한 곳을 지나던 고청운은 긴 도포를 입은 학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넋을 놓은 채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문득 자신이 지금 이 책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 보았다고 해서 곧바로 그 시험관과 비슷한 문체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지금은 어떤 취향일지, 젊었을 적과 동일한 취향을 고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또 누가 알겠느냔 말이다.
그는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 코앞의 3일후로 다가왔는데, 이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집에서 조용히 쉬거나, 아니면 간미를 좀 더 돌보는 게 나았다.
그녀는 요즘 배가 점점 불러왔는데, 여전히 움직이기 싫어하여 매일같이 여러 번 재촉하고 부탁을 해야 겨우 산책이 가능했다.
듣자 하니 많이 걷는 것이 순산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요즘 들어 매끼 식사 후에 그는 그녀를 끌다시피 하여 함께 정원을 산책 중이었다. 회임 전에는, 간미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식사 후의 산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르고 달래야만이 겨우 산책이 가능했다.
‘아, 회임한 여자들은 정말 고생이 많다.’
간미의 다리가 붓는 것을 보고 고청운은 다시 한번 회임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탄복하곤 했다.
* * *
집에 돌아온 고청운는 정방(正房)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해 찾다가 연 씨로부터 간미가 방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닭곰탕을 천천히 마시고 있던 간미를 발견했다.
“왜 혼자 있소? 혜향이와 영향이는?”
고청운은 자못 불만스러웠다. 임산부 주변에는 반드시 수시로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거늘.
“제가 애들더러 당신 옷 좀 만들어 주라고 보냈어요.”
간미는 그를 보고 눈을 번쩍 뜨고는 다급히 대답했다.
“뭐 더 먹고 싶은 것은 없소? 내가 가서 사오리다.”
고청운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안색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얼굴색이 발그스름한 것이, 마음이 놓였다.
간미는 먹고 있던 사기 그릇을 내려놓더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쳐다보지 마세요!”
‘얼굴에 반점이 생겼구나, 아주 심한데!’
고청운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그러겠소! 안 봐요. 내가 요즘에 책을 너무 열심히 봐서 그런지 눈이 잘 안 보이오!”
간미는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신, 말만 번지르르 해서는! 분명히 처음 혼인했을 때만 해도 이러지 않으셨는데.”
“이게 어딜 봐서 번지르르한 말이란 말이오?”
고청운은 인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본인 스스로는 말이 무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자신이 앉은 쪽의 탁자를 보니 차 한 잔이 놓여있기에 의아해졌다.
“아까 누가 왔다 갔소?”
“임 언니요.”
간미가 또 화를 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 사내들 중에서는 좋은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죠!”
“스승님도 포함해서 하는 말인 게요?”
고청운은 승복하지 않았다.
간미가 숨을 좀 돌리자, 기세가 한풀 누그러져 낮은 소리로 말했다.
“외할아버지는 제외예요.”
“조 사형이 첩을 들이기로 한 일 때문인 게지요?”
고청운도 나름 이 일을 주시하고 있던 터였다. 오래 알고 지내던 오랜 친구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첩을 두게 되었는데, 조옥당, 고청명, 하겸죽 같은 사람들은 첩을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자명은 아직 아내가 없었다. 최근에 마음을 깨끗하게 먹고 욕심을 버리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혼사를 정하기도 전부터도 여종으로서 첩을 겸한 여자로 들어온 사람들도 다 내보내고 없었다.
“그 일이 아니면 뭐가 또 있어요? 지금 임 언니는 나를 찾아와 말을 좀 나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간미가 한숨을 쉬었다.
고청운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향시에 응시해서 조문헌이 보궐 합격자 명단에 오른 뒤, 학업으로 국자감에 들어가자,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공부하러 가는데 함께 따라 왔었다. 공부를 위해 국자감에 있는 동안 어차피 집에 남겨질 사람들이 모두 아녀자의 몸이라 한 집안을 책임지고 돌보기가 여의치 않아서였다. 평소에 조문헌은 국자감에서 살았는데, 매년 있는 두 달 가량의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자감 안에서만 지냈다. 방학을 제외하면 매달 5~6일밖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지내게 되자, 누구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후 3년이 넘어서도 줄곧 회임이 되지 않았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조 사형의 어머니가 얼마 전에 조문헌에게 건강한 여자 하나를 사들였다. 첩이라고 말은 하였으나, 사실 조문헌은 아직 정식 거인도 아니고 정식으로 첩으로 들이는 공문서도 작성하지 않아서, 기껏해야 첩을 겸비하는 하녀 정도였다.
“임 씨가 어떻게 동의를 하겠소? 이런 일은 시작해서도 안 되고 진행이라도 되면 뒤로 갈수록 비슷한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거요.”
고청운은 그간 들었던 견문이 떠올라 눈살을 찌푸렸다.
“임 언니의 시어머니가 건강이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하더래요. 만일 죽기 전에 손자를 못 본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 할 거라고 했나 봐요. 이 지경으로 말을 꺼내는데, 임 언니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또, 이번 경우는 언니가 도리를 못 지킨 것이 확실하다고, 이렇게 오랫동안 회임이 되지 않은 것을 보라며,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동정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했대요.”
간미는 눈썹을 찡그려가며 그간의 속사정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간미가 한차례 설명을 풀어내 준 덕에 고청운은 조씨 집안의 갈등을 이제서라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는 조문헌과 이렇게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면서도, 그는 줄곧 그들 두 모자가 도화진으로 이사 온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간미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임 씨와 몇 번 접촉한 후, 바로 속사정까지 알게 되는 사이까지 발전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녀의 사교성에 대해 감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의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녀는 말하는 억양이 매우 리듬감이 있으며 발음이 정확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듣고 싶은 욕망이 불러일으켜 쉽게 신뢰를 얻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