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31)화 (131/504)

131화. 추측

2월 말이 되었을 때에 고청운은 일찍이 하겸죽의 편지를 받고, 요 며칠 내로 그가 경성에 도착할 것임을 알고 고삼원과 함께 성문에서 기달렸다.

그렇게 이틀을 기다려 만난 하겸죽을 보고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하 사형, 고, 고생이 많으셨군요.”

고청운은 그가 턱의 수염도 깎지 못하고, 얼굴은 창백하고, 몸의 솜옷은 비대했으나 살이 전체적으로 빠진 모습을 보고 얼른 그를 부축해 마차에 태웠다.

곁에는 여전히 하씨 아저씨가 그를 따르고 있었고, 하씨 아저씨는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얼굴색이 나쁘진 않았다. 

하겸죽은 마지못해 웃으며 푹신한 방석에 반쯤 기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례를 범했네. 견딜 수가 없었어. 혹여 늦을까 급히 왔는데, 그나마 배를 탔기에 망정이지.”

“일단 더 말하지 말고 눈 좀 붙이세요. 따뜻한 차 좀 마시고요.”

고청운은 그에게 차 한 잔을 권했다. 2월의 경성은 아직도 추웠다. 그가 이곳에서 기다리는 동안, 마차 안에서는 뜨거운 물이 끓고 있었다.

그가 순순히 다 마시는 것을 보고, 고청운은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하씨 아저씨께 물었고, 그제야 하겸죽이 길에서 무엇을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간 설사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하씨 아저씨는 큰일이 날까 봐 하겸죽을 며칠 동안 천진(天津)에 머물도록 강요하다가, 완전히 다 나은 다음에야 길을 재촉했기 때문에, 이전에 말했던 시간보다는 좀 더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하겸죽은 뱃멀미까지 하면서 오는 내내 몸이 불편했는데, 이렇게 되면 도착한 것만으로도 크게 운이 따랐던 것이다.

“하씨 아저씨가 잘 하셨네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죠.”

고청운은 자신이 보던 책을 치우고 계속 말했다. 

“이번엔 제가 객잔을 알아보지 않았어요. 그냥 스승님 댁에서 사시면 돼요. 거기는 지내기 편하고, 그곳에서 지낸다면 우리는 함께 토론도 할 수 있어요.”

고청운은 창을 젖히고, 마차를 모는 고삼원에게 말했다.

“삼원아, 이따가 돌아가면 의원 불러 오는 거 잊지말거라.”

고삼원이 한마디 대답하자 입에서는 희뿌연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너무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니고?”

하겸죽은 기운은 있었으나 힘이 없었다.

“하나도 귀찮지 않아요. 스승님 댁에서는 매번 회시에 참가하는 동향의 지인들이 묵고들 갔었대요.”

고청운은 고개를 젓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어 말했다.

“정말 대담하시기들 하지. 조정에서 군대를 보내 비적 토벌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바다 뱃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었을 텐데요. 다들 엄두가 안 났을 텐데.”

조정이 왜구를 무찔렀고, 이미 무사히 돌아온 사람이 있다는 걸 듣고서 하는 말이긴 했다. 하겸죽이 눈을 감고 몸을 쉬는 것을 보고 하씨 아저씨가 입을 열어 상황을 설명했다. 

“작년에 보궐 합격자가 되긴 했지만 순위가 꼴찌여서 시험을 보러 오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집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마음에 걸려 춘절만 쇠고는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한 번 시험 참가만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왔네.”

하겸죽은 느릿느릿 말했다.

“바닷길로 배를 타는 게 가장 빠르고, 아직 얼지 않았으니.”

“됐어요. 나머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주세요. 우선은 좀 쉬세요. 반시진이면 도착할 거예요.”

고청운이 숯을 피우는 대야를 헤집었다.

하겸죽이 ‘그래’ 하고 한마디 대꾸를 하였다.

방택에 도착한 고청운은 의원에게 하겸죽의 맥을 짚고 처방전을 받아 며칠 간 약을 먹였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금방 철저하게 독서에 몰입하였다.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집중력이었다.

이때, 간미는 이미 7개월에 접어들었는데, 이 기간 동안 고청운의 모든 신경은 모두 간미와 회시에만 치중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다른 일들은 잠시 제쳐 둔 채, 그날 밤 물에 빠져 구조된 사장정이 자신을 찾아와 자신의 화본을 출판하겠다고 한 이야기도 잠시 보류하였다. 

사장정은 2월 중순에 찾아왔는데, 그때는 마침 고삼원이 서점의 상황을 모색하러 다닐 때였다. 사장정이 송죽서재(松竹书斋)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둘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고삼원을 먼저 알아본 그가 말을 걸었다.

사장정이 고청운의 근황을 물으니 고삼원이 우물우물대며 잘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정이 어떤 사람인가? 굳이 친히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고 버텨, 결국 더 이상 방도가 없어 고삼원은 바로 집으로 돌아와 고청운에게 보고했다.

고삼원이 그에게 이 일을 고했을 때, 고청운은 매우 놀랐다. 그는 사장정에 대해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같은 배를 탔던 사람이기도 했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며칠 동안 같은 여정에 놓였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갑판위에서 사람을 찾아다니며 잡담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사장정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고작 몇 마디 밖에 나눠보지 못했다. 

기억하기로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에, 당목면(*细棉布: 서양목 혹은 면)으로 만들었지만 바느질 솜씨가 훌륭한 옷을 걸치고 있었고, 곁에는 나이든 유모가 하인으로 따라다니고 있어서, 도통 가정형편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필경 하인을 둘 정도면 보통 가정형편은 아닐 터인데, 1층 하등 객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또한 이 소년은 용모가 매우 수려했는데, 겉으로는 유순해 보이면서도 속내가 검을 것 같은 느낌이 풍겼다. 입술이 약간 치켜 올라가 있고, 요염한 눈매를 지니고 있었으며 늘 미소를 띠고 있는 것 같았다. 자칫 정말 그가 남장이라도 하고 있는 여자라고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그가 고청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첫 번째 이유는 외모지만,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경박한 말투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말투로 마치 색마마냥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작업 거는 것을 좋아했다. 

영향의 경우에도 그가 구실을 잡아 몇 번이나 추근거렸지만, 그래도 그나마 행동거지에 분별력은 있는 듯 짜증나게까지 치근대지는 않았다. 

고청운의 그에 대한 기억은 딱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그날 밤, 그가 운 나쁘게 물속에 딸려 들어가서 그를 구해냈던 일이 없었더라면, 다시는 그를 떠올릴 일이 없었을 것임을 확신했다. 

필경 그저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다만 그들이 생각보다는 인연이 깊었는지, 이렇게 큰 경성에서도 다시 마주칠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말했던 보은에 대해, 고청운은 그날 밤에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러니 당연히 보답 받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당시 사장정은 무서워서 덜덜 떨며 같이 배에 탄 사람이 아무도 나서지 않아줘서 한스럽기만 했을 뿐이었다. 

지금 와서 사장정이 문 앞까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고청운은 몸을 피해 만나지 않으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니 이번 일은 오히려 감추려고 하다 오히려 더 드러나게 하는 꼴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하였는데, 말을 나누다 보니 사장정의 생모 명의의 혼수로 서재(書齋)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십여 년 정도 경성에서 약간의 명성은 있었던 모양인데, 요즘 들어 서서히 기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사장정은 준비를 꽤 한 것 같았다. 스스로 고청운의 집에 찾아오더니, 뜻밖에도 그가 화본을 투고하고 싶어 하는 것까지 알아가지고는, 필사를 하는 사람을 찾아 책을 베껴 팔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책이 유명해진다면 인쇄를 맡겨 출판하겠다고 하였다. 그때가 되면 작업에 들어간 비용 말고는 단 한 푼도 더 남기지 않겠다고도 했다. 

사장정은 또 거리낌 없이, 자신은 지금 수중에 은자가 많지 않으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빚져 놓았다가 이 다음에 마저 갚겠다고 했다. 

고청운은 그가 영평백부(永平伯府)의 둘째 도련님임에도 이런 모양새로 지낸다는 사실에 놀랐으나, 이때가 벌써 2월이라 고청운은 속으로 3월에 있을 회시를 늘 염려하고 있었기에 다른 일에 한눈을 팔지 않기 위해 우선 좋은 말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사장정은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지, 시험이 끝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고청운에게 사장정의 방문은 단순한 작은 사건이었을 뿐, 그의 마음은 회임한 간미와 회시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 * *

하겸죽이 경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2월 말이었는데, 며칠 간 약을 복용하면서까지 몸을 풀고는 서둘러 3월 초사일에 예부(礼部)에 공문을 보내 경성에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만약 보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회시에 참가할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수험표를 받은 뒤 마음 편히 회시의 시험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시는 예부가 주관했는데, 다루는 내용은 향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험에 합격한 자는 ‘공사(贡士)’라고 불렀고, 장원을 한 사람은 ‘회원(会元)’이라고 불렀다. 시험은 봄이 오는 3월에 치러졌기에, 춘시라고도 불렀다.

회시는 향시와 마찬가지로 3장(*三场: 과거의 초장, 중장, 종장, 총 3단계 시험)으로 구성되어 진행되는데, 한 장을 3일씩 거행했다. 첫 번째 장은 3월 9일, 두 번째 장은 12일, 세 번째 장은 15일에 진행됐다. 

향시와의 다른 점은 회시의 경우 시험장에서 9일간 꼬박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각 장의 시험마다 하루 먼저 입장하여 대기하고, 시험이 시작한 하루 뒤면 시험장에서 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시험이 진행되는 총 9일간의 기간 동안 집에서 이틀은 잘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런 부분은 향시보다는 좀 각박하지 않았다. 고청운 일행들은 이런 제도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는데, 향시를 치르는 9일간의 강행군은 정말 힘들었어서 몇 번을 다시 겪어본다 해도 쉬워지지가 않는 부분이었다. 

거인의 수는 적고, 조정에서는 결손이 많아서는 안 되는 입장이었다. 제법 추운 날씨인 3월 초 경성의 한 칸짜리 비좁은 호실에서 9일씩이나 시험 때문에 대기하게 된다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쓰러질 것이 자명하기에, 회시는 조금 특수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조정에서 거인 하나를 양성해 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고청운의 개인적인 추측일 뿐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은 없고, 심심할 때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라고 상상해봤을 뿐이었다.

3월에는 조정 전체의 관심이 회시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특히 주임 시험관의 발탁이 그러했다. 회시는 비교적 높은 등급의 시험이기 때문에, 시험관의 인원이 향시 때보다는 더 많이 배정되었다. 시험관을 비롯한 현장 관리관 등 비교적 고위 관료가 이런 직무를 담당했다.

이번 왕조의 주임 시험관은 일반적으로 진사 출신 대학사나 3품 이상의 고위 관료가 맡았는데, 예부에서 지명하고 황제의 명으로 특파되었다. 주임 시험관은 총재(总裁)라고 불리며 좌주(座主) 혹은 좌사(座师)라고도 했다.

회시의 주임 시험관은 한 명의 최고 주임과 세 명의 부시험관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보통 시험관은 8명이 맡게 되는데 한림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방인소 역시 주임 시험관이 누가 될지 매우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는 집안에 있는 세 명의 응시생의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3월 초육일에는 조회에서 주임 시험관의 이름이 공표되었다. 지명된 시험관들은 공표된 직후부터 짐을 싸서 과거 시험장에서 직무를 보기 시작하며, 외부와의 왕래를 끊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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