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경성 (1)
안절부절못하는 가운데 고청운은 자기가 쓸데없이 참견한 것을 후회하다가도 그냥 지나쳐 버리기로 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그는 지금 그날 밤의 불빛이 밝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을 뿐, 물 아래 사람들은 몇 미터나 떨어져 있어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에게 죽음 직전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길을 오면서 운이 나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듣고 봐서 그런가, 그날 밤의 일은 다행히 그를 진정으로 놀래키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행했다. 그 세 명의 검은 복장이 선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도운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밤에 악몽을 꾸면서도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다행히 다음 날 그들은 무사히 양주를 떠났다.
이어 고청운 일행들은 시간이 없기도 하고, 더 이상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다만 길을 재촉하는 과정에서 간미는 고청운이 때때로 한밤중에 잠에서 깨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 한두 번 정도는 괜찮았는데, 세 번씩이나 깨곤 하자 그녀는 바로 그에게 안정이 되는 탕약인 안신탕을 먹이기로 했다.
탕약을 마시려던 고청운은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익숙한 냄새인데 어디서 얻은 처방전이오?”
말을 마치자 미간을 찌푸리지도 않고 마셔버렸다.
간미는 웃으며 사탕에 절인 과일을 건네주며 가볍게 말했다.
“상공이 어릴 적에 마셨던 것이라고 시어머니께서 전해주셨어요. 효과가 있었다고 하시던데요.”
고청운은 듣고는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안신탕의 효과가 좋은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차피 이 밤이 지나면 새벽까지 깨지 않고 잠을 잘 터였다.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을 것이었다.
며칠 더 지나서 고청운은 그날 밤에 있었던 일에서 거의 벗어났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한 달 후, 그들은 마침내 경성에 도착했다.
* * *
그들이 경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나절이 다 되어있었다. 경성의 우뚝 솟은 성벽을 보자, 고청운 일동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마음속에서는 기쁨이 솟구쳤다.
두 달여간의 여정은 확실히 쉽지 않은 것이었다. 무사히 경성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 병치레도 없고, 재난을 만나지도 않은 것, 모두가 매우 운이 좋았다.
“드디어 도착했으니 이제 우리 장안방(长安坊)으로 갑시다.”
모두들 입성비를 지불하고 들어왔다. 고청운이 짐더미를 보고 있자니 이고지고 걸어가기가 마땅치 않다고 느껴, 그냥 마차 한 대를 대절하기로 하였다.
간미는 당연히 찬성했다.
다만 목적지에 도착하였으니 이삼과 이별하게 되었다. 이산이 있었기에 그들은 오는 길 내내 많은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배운 값진 여행 경험에 대해 고청운은 물질적으로 따질 만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흔쾌히 비용을 지불했다.
이삼이 속한 표국(*鏢局: 고대 중국의 운송, 보험, 경비 업체)은 경성에 본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는 갈 곳이 있었다. 고청운은 그가 월양군의 토박이라서, 다시 또 군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사전에 잘 적어 둔, 양가에 보낼 두 통의 편지와 은자를 건네며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또 군성에 돌아간다면, 우리 집에 전해 줄 수 있겠소?”
두 달 동안 가족들은 분명히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무사히 경성에 도착했다고 편지라도 써서 무사함을 알려야 했다.
“고씨 나리, 안심하십시오. 저희 표국에 임산현으로 가는 객상이 있으니 반드시 안전하게 배달 해 드리겠습니다.”
이삼이 집으로 보낼 편지를 조심스레 받아 넣었다.
고청운은 그제야 마음을 놓였다.
이삼과 작별을 고한 후, 고청운은 성문 입구에서 방인소가 거주 중인 장안방으로 가려고 마차를 대절하려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부와 가격을 흥정하고 있을 때, 고청운이 방 집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위 나리, 아가씨, 드디어 도착하셨군요.”
방 집사는 그들이 갑자기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절을 한 다음에야 말을 이었다.
“주인 나리께서도 마님께서도 집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십여 일 전 사위 나리의 편지를 받은 후, 마님께서 날짜를 셈해보시더니 쇤네를 시켜 며칠간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이제 다들 도착하셨으니 주인 나리께서 무척 기뻐하시겠어요.”
방 집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얼굴엔 희색이 만면했다.
고청운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집사님께서 저희 때문에 기다리시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방 집사는 방인소의 심복으로 이미 20여 년 동안 옆에서 그를 모셨다.
그를 보면 고청운은 방자명네 집안의 집사가 떠올랐는데, 그도 성이 방씨로, 앞으로는 아마도 작은 방 집사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당연히 제가 기다려야죠, 당연히!”
방 집사가 바삐 허리를 굽혔다.
간미도 방 집사와 몇 마디를 나누고, 모두들 마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방 집사는 마차 두 대를 끌고 나타났는데, 그 중 한 대는 전세를 내어 끌고 온 것이었다.
마차에 오른 후, 고청운과 간미는 모두 옆으로 누워버렸는데, 그들은 줄곧 배를 타고 와서 피로했다. 특히 지금은 마치 목적지에 도착해 풀어진 것 마냥, 유달리 피곤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번 여정이 태평스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마차 밖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 고청운이 물었다.
“미아, 경성에서는 자주 외출할 수 있소?”
간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성에는 미혼의 아녀자들은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요, 집을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적죠. 근교에 있는 절에 가서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거나 시회, 연회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다 출입할 수 없다고 봐야죠. 다만 성혼 후에는 바깥출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요. 가끔 가게 구경을 갈 수도 있고요. 물론 시어머니의 동의가 있어야하지만요.”
“이것은 황후…… 아니지 태후의 명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오?”
고청운이 급히 물었다.
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모두 당(唐) 왕조 때의 아녀자들을 부러워해요. 전 왕조 때가 좋았죠. 아쉽게도 지금의 태후는 여인으로서 천하의 모범이시니, 윗사람이 하는 대로 아랫사람이 따라 본받아야죠.”
고청운은 듣고 나니 황태후에 대한 조금의 호감도 없어졌다. 물론 그의 신분으로는 자신의 감정이 상위 계급의 사람들에겐 대수로울 것 없을 테지만 말이다.
“앞으로는 아녀자들에게 더 큰 자유가 찾아올 거라고 믿소.”
고청운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예전의 태후는 황후였었고, 건국 황제는 그녀를 중히 여겼었지만, 지금은 빈부귀천이 물레바퀴 돌 듯 바뀌어 지금의 황제와 황태후가 한 마음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
간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간미는 속으로 부군이 갈수록 그녀에게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는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여기는 큰길가가 아닌가.
고청운은 간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도 모르고 잠시 쉬었다가 또 말을 이었다.
“나는 끌채 쪽에 앉아 경성의 경치 좀 구경하면서 가겠소.”
그는 경성이 매우 궁금했다. 말을 마치고는 문을 밀어 열었는데, 집사가 뒤돌아보자 웃으며 다시 말했다.
“경성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습니다.”
방 집사도 웃었다.
“지난번에 쇤네가 둘째 도련님을 모시러 왔을 때, 둘째 도련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그가 방자명을 언급하자, 고청운은 그가 상당히 그리워졌다. 필경 그들은 이미 2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잠시 후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기뻤다.
그러다 곧 고청운의 흥미는 다시 경성의 길거리 풍경으로 돌아갔다. 허나 길거리 사람들이 곧잘 호기심에 그의 마차와 그를 쳐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마차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반 시진정도 지나 그들은 마침내 방인소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입구에 걸려있는 “방택(方宅)”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 간미는 격동해 마지않았다.
두 사람은 동남쪽 모퉁이의 대문으로 들어갔는데, 고청운은 간미가 일전에 방택의 배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줬던 것을 듣고, 이 집이 방인소의 개인 사유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이중 정원까지 밖에 없었지만, 이곳은 경성이라 집값이 만만치 않았다. 듣자하니 방인소가 관직에 올랐을 때가 그나마 비교적 이른 때였기에 망정이지, 그 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좋은 지역의 저택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주위의 집들은 모두 관리들이 살고 있는 저택들로 환경과 안전 쪽으로 조건이 매우 좋았는데, 병사들이 자주 순찰을 도는 지역이었다.
지금 이런 집을 사려면 큰 운이 따라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택宅’자를 붙여 부를 수 있는 가택은 조정에서 정한 조례를 따른 것으로, 친왕, 군왕의 작위가 있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만 부(府)라고 칭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거주 하고 있는 곳은 설령 아무리 높은 관직에 올랐다고 한들 부(府)라고 칭할 수 없었고, 택이나 제(第)라고 칭할 수 있었다. 재산의 권리에 있어서는 ‘부’와 ‘왕부’ 모두 황실의 재산에 속했고, 택이나 제는 사유재산에 속했다.
그 외에도 간혹 황제의 신임을 얻어 저택을 하사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경우에는 ‘부’라고 칭할 수 있었다. 지금의 승상부(丞相府)와 같은 개념이었다. 물론, 이 저택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황제가 얼마나 은총을 내렸는지의 정도에 따라 달라졌다.
고청운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집을 사야 한다면 아마도 정원이 하나밖에 없는 사합원(四合院)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번에는 총 6명이 상경했기 때문에 중도에 사용한 교통 운임, 숙식 비용을 모두 합쳐보면 거의 4백 냥 정도를 사용했다. 그나마 이 정도만 깨진 것은, 오는 도중에 대부분 스스로 밥을 해 먹고 최대한 돈을 아껴서 이 정도만 사용한 것이었다.
자기가 사는 곳이 경성에서 가깝지 않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사용한 은자들이 생각나자 매우 아까웠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꽤 대범하게 지출했었는데, 지금 조용히 남은 은자를 세어 보니, 아직도 천금을 돌멩이 보듯 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무지 초연하게 청렴해 지지가 않았다.
그들이 막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문간방에서 그들을 보고 재빨리 한 사람을 내원으로 보냈는데, 곧바로 온 저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마다 하인들의 절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고청운은 고삼원이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집사님, 삼원이 좀 돌봐 주시겠어요.”
방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고삼원과 고청운은 주종의 관계가 아님을 당연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고청운과 간미는 그제야 대문에 들어서서, 첫 번째 정원을 지나 계단을 올라, 두 번째 문으로 들어서서, 가림담벽(*影壁:뜨락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막아 세운 가림벽)을 돌아, 사수회랑(*抄手游廊: 구식 저택의 중문을 지나 정면에 위치한 정방까지 이어진 복도)의 현관을 통과해 정방 입구에 이르니, 청색 치마를 입은 여종 두 명이 방글방글 웃으며 맞이해주고 있었다.
“사위 나리, 아가씨 오셨습니까.”
고청운과 간미는 급히 들어가 드리워진 발을 걷어 올리자, 연 씨가 이미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윗사람의 신분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마중 나오셨으리라.
“할머니!”
연 씨를 보자마자 간미가 연 씨의 품에 달려들 듯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고청운도 같이 할머님, 하고 따라 불렀는데, 방자명의 어머니 왕 씨가 곁에서 웃음 띤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인사를 올렸다.
연 씨와 간미는 한참을 울다가 왕 씨와 고청운의 위로에 점차 울음을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