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25)화 (125/504)

125화. 가는 길 (3)

소주의 유명한 음식을 맛본 뒤 다시 배를 탄 송인은, 고청운네 보다 이틀 먼저 길을 떠났다.

고청운은 말동무가 없어져 아쉬움을 느꼈다.

이들이 양주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깊은 밤중이라 안전하지 않았기에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선상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배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리하였다.

이때는 4월 초로 그들은 꼬박 한 달간의 여정을 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청운은 간미가 한창 잠든 것을 보고 깨우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어 문 앞에 나가 좀 돌아보려 했다.

4월 양주의 밤 날씨는 아직 한기를 띄고 있어서, 고청운은 겉옷을 여몄다. 그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하늘에는 드문드문 별이 몇 개 보일 뿐이고, 갑판 가까운 곳에 풍등이 걸려 있는 것을 보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두보의 시가 생각났다. 

“물속 달그림자는 불과 지척에 있고, 바람결에 나부끼는 등롱이 밤하늘을 비추고 있으니, 곧 삼경이 될 지어다.” (江月去人只数尺,风灯照夜欲三更)

그래, 그는 집이 그리웠다. 여행 중에 있었으나 항상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했다. 

고청운은 한 줄기 빛이 비추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리고 옆의 조용한 배 몇 척을 바라보다 찬바람이 불자 선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중 물속에서 갑자기 움직임이 일어났다.

고청운은 풍덩하는 소리를 들었다. 매우 경미하였는데, 모르는 사람은 해안가의 돌멩이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밤은 조용했기에 그 작은 소리의 동정은 매우 크게 느껴졌다.

그가 눈썹을 찌푸리고 돌아서서 강바닥을 바라보니, 물결이 반짝이는 수면위로 몇 개의 풍등 때문에 수면 위의 잔잔한 물결이 남실거리는 것까지 모두 똑똑히 보였다.

정말 그냥 돌멩이 소리였나? 계속 추측하다가 다시 돌아가 잠을 청하려 했다.

‘풍덩’, ‘풍덩’, ‘풍덩’ 

연속해서 소리가 세 번이 들려왔다. 고청운의 등이 굳었다. 즉시 걸음을 재촉하여 선실로 되돌아가서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방으로 돌아온 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분명 그것은 돌멩이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무슨 요괴나 귀신도 아닐 터였다. 약간 미신을 믿기는 하지만, 물귀신이라니 역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사람이었을 것인데, 고청운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었다.

근 한 달 동안의 여행길에서 고청운은 매우 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을 보았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시대에는 문을 나설 때에 길을 가다가 갈아입을 옷 외에 우산이나 약품도 가져가야 했다. 우산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 알고 있겠지만, 약도 매우 중요했다.

길을 나섰을 때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병이 났는데 돌봐주는 사람이 없거나 치료약이 없는 것이었다. 특히 외진 곳에서는 의원조차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간미의 집은 장거리 여행 경험이 있어서, 그들이 이번 상경에 많은 환약과 약재를 준비하게 했다. 예를 들면 발진에 사용하는 자설, 가래증 치료에 소반하탕, 지실환, 콜레라 치료에 쓰는 대구탕, 허리 통증치료에 쓰이는 기자, 부인과 질병을 치료하는 만안환과 귀와 입, 이빨을 치료하는 잔치산, 세신산 등등이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고, 처음 고청운은 간미가 이런 걸 준비하는 걸 보고 불가사의 했다.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인데, 적어도 이 약재들 덕에 길 위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고삼원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와 간미는 몸이 건강했고, 또 두 사람은 휴식을 중요히 여겼으며, 물은 직접 끓여서 마셨기에 무슨 병이 생기지는 않았다. 

이런 준비 과정들은 모두 고대의 출항이 참 불편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는데, 어쩐지 그가 떠나기 전에 집안에서 향을 피우고 신에게 절을 하며 그의 평안을 기원해 주었었다. 

그는 여행 중에 육지를 통한다면 노숙하는 것이 매우 잦은 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그렇게 크고, 각지에 언어가 통하지 않으며, 풍속이 달라서 마찰이 생기기 쉬웠다. 게다가 각 지방의 민심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운이 없으면 현지의 건달이나 악질적인 악당을 만날 수도 있었는데, 그들에게 가장 만만한 것은 타향 사람들을 잡아 괴롭히는 것이었다. 관청에 신고한다고 해서 지방 관료들이 꼭 도와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 모든 여행 중에 겪을 수 있는 뜻밖의 일들로 인해 여행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그가 알기로는, 호남에서 경성까지 육지로 가려면 보통 반년이 걸리고,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야 할지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었다. 때문에 많은 불운이 뒤따르는 경우는 시험을 응시하러 가다가 타향에서 객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객잔에 있을 때 그는 가끔 책을 파는 사람이나 상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예를 들면 어떤 선비는 시험에서 낙제하고 돌아가는 길에 쉽게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병이 들기도 하는데, 운이 좋으면 병이 낫지만 운이 나쁜 경우에는 그대로 요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여행 경험이 적어 사기꾼이나 창부 따위의 유혹과 갈취에 넘어가 결국에는 금품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리기도 하고, 의외의 음식을 구할 수 있는 객잔을 지나쳐 비바람에 시달리기도 했다.

고청운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암암리에 적어 두었다. 방에 돌아와서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일기 속에 기록해두었는데, 가끔 뒤적여보면 여행 중의 험난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그는 집에서도 먼 곳으로 가지 않으려 했었다. 지금은 관직에 몸을 담고 있는 탓에 각지를 돌며 잠시 머물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 상경 할 때에도 품삯이 더 비싼 배편을 택하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를 타는 것도 똑같이 아주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재수가 없는 경우에는 풍랑과 좌초의 위험이 있으니, 진짜로 재수가 없으면 배가 뒤집혀 죽는 경우도 있었다. 고청운도 여정 중에 어떤 사람들이 탄 배가 암초에 좌초 된 것을 목격했는데, 10여 명이 모두 물에 빠졌지만 다행히 큰 배가 뒤따라와 구조작업을 도왔음에도 4명이나 숨졌다.

그런 일들 말고도 도적을 만난다거나 수적을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고청운은 이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듣고는 당연히 조심스럽고 또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고함을 치지 않았다. 배에 탄 사람들이 깨어났어도 수적의 위세에 눌려 방에 틀어박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터였는데, 결국 소리를 낸 사람은 닭이나 원숭이 잡듯 죽임을 당할 것이다. 

세태염량(世态炎凉), 세력 있고 돈 있을 때에는 아첨하여 빌붙다가 세력과 돈이 없어지면 냉담해지는 것으로, 이 한 달 동안 그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너무 많이 보아왔다. 여행하는 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위험을 가져 올 수 있는 일에 상관하지 않아, 그렇게 쉽게 귀찮은 일을 벌이지 않았다. 

그가 고용한 경호원 이삼은 그들 아래의 하등 객실에서 묵게 했는데, 경호원이라고 했지만, 그 한사람의 힘만으로 어찌 경호가 되겠는가. 다만 고청운이 애초에 그를 고용할 때에, 현지 사람들과 왕래 해 본 경험이 얼마 없기에 이삼에게 좀 우리 일행을 돌봐 달라는 의미가 컸다. 실제로 수적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그가 꼭 목숨을 건다는 보장도 없었다. 

은자가 아무리 소중한들 제 목숨보다 소중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고청운은 길을 지나던 여행객으로부터 밤에 일부 인적 드문 선착장에 배를 정박하다 간혹 수적을 만나거나, 그들이 흉포해지면 배 한 척의 사람들이 몰살당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말이 청산유수 같았는데, 그때 그 나그네의 풍모가 총명하고 침착했던 모습을 보면 그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양주성이 아닌가! 양주성이 이토록 번화하니 이렇게 대담한 수적이 있을 리 만무하고 선주들도 양주의 부두는 안전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수적이 아니면, 그렇다면 지금 물에 들어가 있는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야? 설마 단순히 날 놀래키려는 것은 아닐 테고.’

고청운은 의문이 풀리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간미를 깨우지 않고 스스로 침상 밑에 놓여 있던 활을 더듬어 꺼내서, 조용히 창문으로 다가가 몰래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 빛이 조금 있을 뿐 강물 위에는 여전히 물결이 확산되고 있었다.

안에 뭔가가 있었다!

고청운은 긴장한 채 활을 언제든 당길 자세를 취하고 눈은 수면을 똑바로 쳐다봤다.

천천히, 물결이 물보라로 변했다. 수면아래에서 어떤 것이 심하게 엉켜 있었다. 간혹 노출된 사람의 머리가 그에게 창밖의 강바닥 아래에 확실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물속에서 누군가가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물속에서 싸우다가 뱃전까지 올라왔는데 고청운이 자세히 보자, 네 사람이나 있었다. 심지어 일대삼이었다. 

쫓아가서 죽이는 것 같은 상황이지 수적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고청운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이기든 지든 상관없고, 배 위에 있는 사람들만 죽이려고 하지 않으면 됐다.

고청운은 활을 내려놓았다. 너무 오래 들고 있어서 팔이 불편해졌다.

고청운이 어두운 곳에 숨어 조용히 바라보니, 단신(單身)의 사람은 손힘이 매우 센 듯 다른 세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그의 동작이 점차 느려진 것을 보아 마치 힘이 이전만큼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고청운은 이상했다. 왜 그들은 여기에서 이렇게 심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고, 물소리가 계속 났지만 오히려 그들은 아무도 고함치지 않고 조용히 싸우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심지어 이 배에서도 아무도 일어나 주위를 살피지 않는지, 주변은 여전히 조용했다. 아무도 깨지 않은 것인가? 

그는 매우 긴 시간이 지난 줄 알았으나, 사실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고청운이 배 위의 풍등에 비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봤을 때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그는 엊그제 소주 거리에서 만났던, 어두운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청운이 몰라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남긴 인상은 매우 깊었던 탓도 있었고 게다가 얼굴에 흉터까지 있지 않았는가. 그는 살면서 실제로 이렇게 기세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지금 어두컴컴한 불빛 아래서 그 사람이 서로 목숨을 걸고 다투고 있어 흉악한 얼굴의 흉터가 더욱 짙어보였다.

얼굴에 칼자국이 난 남자를 보고 고청운은 망설였다. 그의 신분이 짐작이 되었는데, 군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관직도 있을 것이었다. 기세도 있고, 저 당당함을 보라. 한 필의 명마가 보여주는 신분은 틀림없이 녹록치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오늘밤 이곳에서 죽는다면, 자신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지 아닐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저 사내가 전쟁터에 나가 적을 죽였을 테고, 또 하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의 수행원이 돌아와 늙은 농부들에게 보상금을 주었던 것에 대해 고청운이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문제를 일으킬까 말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성가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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