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가는 길 (2)
송인과 고청운은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었는데, 두 사람은 주로 다른 동기들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년 3월 초에 있을 회시 책론의 시험문제를 추측해 보기도 했는데, 과거 시험에 뜻을 둔 두 사람의 거인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결국 시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후 송인은 뱃멀미가 나서 버틸 수 없다며 고청운과 작별한 뒤, 어린 몸종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였다.
고청운도 갑판 위에 그와 함께 이야기 해줄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흥이 깨져 몸을 돌려 선실로 돌아갔다.
그들 부부는 중등 객실을 사용했고, 다른 사람들은 하등 객실을 사용했다.
“아직도 책을 읽는 것이오?”
고청운은 간미가 아직 창가에 앉아 흰 종이 한 묶음을 들고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먼저 잠시 쉬시오. 창밖의 녹색 풍경을 많이 보는 게 눈에 좋다고 하오.”
방금 그가 나갈 때도 그녀는 이 종이뭉치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간미가 듣다가 씩 웃고는 순순히 종이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쓴 여행기를 보고 있었어요. 분명 당신과 같이 겪은 일인데도 왜 당신이 쓴 문장으로 읽자니 그게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계속 보고 싶어져요.”
고청운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소. 천부적인 재능인 것을.”
간미는 뜻밖에도 그 말에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얼굴에는 숭배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낯가죽이 두꺼운 천하의 고청운도 약간 쑥스러워질 지경이었다. 고청운은 민망한 나머지 송인과 마주친 일로 화제를 돌렸다.
“그 집 아녀자가 같이 따라 왔을까요?”
간미가 내심 매우 기쁜 듯 즉시 물었다. 아내가 따라왔다면 그 여인과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고청운이 눈살을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안 따라왔을 거요. 그는 회시를 치르러 온 것이라서 아내는 고향에 남아있을 텐데, 그 옆에 몸종과 시녀 한 명만 봤소.”
간미는 듣자마자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은 단정치 못한 사람이군요. 상경해서 시험을 치르러 오는 사람이 어디 여종을 데리고 온답니까? 상공, 이런 방탕한 기질은 절대 배우시면 안 됩니다.”
고청운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절대 배우지 않을 거요.”
그는 자기 아내가 명실상부한 질투의 화신이라고 느꼈다.
며칠 전 그가 항주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을 때, 뜻밖에 한 젊은 부인이 한 무리의 하인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 부인은 그의 옆을 총총 걸어 지나갔는데, 그녀의 얼굴이 비교적 미모가 출중하고 얼굴 표정이 또 너무 독살스러워서, 고청운은 사람을 때리러 가는 건지, 사람을 잡으러 가는 것인지 추측해 보고자 특별히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쳐다보는 시간이 좀 길었는지 결국 간미에게 허리를 심하게 꼬집혔는데, 만약 그가 허리에 근육이 없었더라면 몇 번을 뒹굴었을 것이다.
고청운은 간미가 질투하는 것을 처음 알았을 뿐 아니라, 아주 뚜렷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걸어 닫으며 인정하지 않고, 다만 손이 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배가 드디어 소주에 도착했다. 소주에 대해, 고청운과 간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익히 그 명성을 들어온 바가 있어서 당연히 며칠간 머무를 터였다. 송인도 여정을 멈추었는데, 그의 경우에는 배멀미를 심하게 해서 첫날에는 여인숙에만 머물 수밖에 없었고, 며칠 뒤엔 친구네 집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고청운은 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관료 집안이니 여기저기에 아는 사람이 많을 터였다.
그는 소주 지역의 서원을 찾아갔는데, 학생들이 거의 다 수재 신분이었다. 현지의 문장은 절정에 달해 있었고, 부학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어서 이 반(半)공식적인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의 교사 대다수는 거인이며 또 몇 명의 진사도 있었다.
고청운의 이름은 아직 지명도가 낮아 일부 사람들은 만나지 못하지만, 방인소의 동기 혹은 지인들은 만나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허나 고청운은 이런 일에는 시간을 별로 많이 쓰지 않았고, 남은 시간에는 간미와 함께 송인이 추천한 송서계어와 가게의 추천을 받아 이른바 '자라'를 먹기도 했다.
그는 본래 이 음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가게에서 알려주어 이것이 비로소 자라임을 알게 되었다. 속칭 별주부. 고청운은 주방에 가서 10근짜리 야생 자라를 보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엄청나게 크구나!’
자라란 음식은 보약중의 보약이었다. 그 가게에서는 조리 방법을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는데, 자라를 토막 내고, 산야초, 죽순, 파, 생강, 술, 표고버섯, 소금 등의 양념과 함께 익힌다고 했다.
고청운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가게는 정말 장사를 잘했다. 그들이 요리를 묘사할 때, 그는 이미 침이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게 점원이 문을 나서자마자 급히 먹기 시작해서, 입에 음식을 집어넣자마자 ‘와, 맛있다!’ 하고 외쳤다. 이 요리의 국물은 맛이 깊고 향이 고소하며, 적당한 간도 있고, 맛이 아주 좋아, 그와 고삼원으로 하여금 배가 둥글어 질 때까지 먹게 했다.
간미는 몇 입만 먹어도 배가 물렀다.
너무 배불리 먹었더니 고청운은 차를 타지 않고 그냥 걸어서 돌아갈 예정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거리를 걸으며, 고청운은 양옆의 떠들썩한 상가와 발밑의 청석판이 깔린 넓은 거리를 보며, 소주의 번화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군성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고청운은 웃으며 말했다.
“경치도 정말 아름답구나. '위로는 천국이, 아래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
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너무 붐비므로 고청운은 그녀 가까이 가서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이들을 뒤따르는 고삼원과 혜향 외에 영향과 경호원 이삼은 여인숙에서 짐을 지키고 있었다.
“보시오, 저기 앞에 얼굴 빚는 사람이 있소. 우리도 하나 만들면 어떠오.”
사람이 비교적 적은 거리에서, 고청운은 앞에 누군가가 밀가루를 빚는 것을 보았는데, 그 노인이 손에 있는 반죽을 여러 번 주무르고 비벼대는 것을 보았다. 죽도를 이용해 정교한 지점을 만들고, 자르고, 새기고, 긁고, 몸통, 손, 머리로 만들고, 머리 장식과 옷을 만들어 걸쳐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만들어 냈다.
고청운은 기예가 좋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습도 만들어 가자며 부산을 떨었다.
간미는 얼굴이 뜨거워지자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앞에 또 두 명의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할 수 없이 아이들의 뒤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앞에 있는 사람, 비켜요, 비켜! 앞사람, 비키세요!”
갑자기 고함소리와 함께 말발굽 소리도 들렸다.
고청운이 눈썹을 찡그렸다. 번화가에서 말을 타? 미처 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게 두렵지 않나?
“빨리 양옆으로 비켜섭시다.”
고청운은 간미의 어깨를 감싸느라 바빴다.
고삼원과 혜향은 급히 그들의 뒤쪽으로 달려갔고, 주변 사람들도 같은 동작을 취했는데, 얼굴을 빚던 사람도 그의 가게 뒤로 자리를 옮겼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은 시끌시끌하였지만, 익숙한 일인지 뭔지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고, 거리에 물건을 벌여 놓는 행상들만 정신없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고청운이 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말 두 마리가 달려왔는데, 대추색 말 한 마리가 매우 준수해 보였고, 갈기가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과 말발굽 네 개에는 흰 털을 두른 것이 눈에 띄었다. 어두운색 옷을 입은 주인은 기세가 대단하여 전신에선 살기를 풍겼다.
고청운도 깜짝 놀랐다. 이토록 놀라운 기세라니! 그는 실제로 이런 기세의 사람을 처음 마주했는데, 감히 직시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기운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매우 젊었는데, 긴 팔뚝에 가느다란 허리로 보아 아마 25살 혹은 26살 정도 같아보였고, 눈매가 수려했지만 얼굴에 흉터가 있어 용모다 더욱 흉악해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말은 아주 빨랐다. 거의 순식간에 두 필의 말이 그들 곁을 빠르게 지나갔고, 고청운은 더 이상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고청운은 이 두 사람이 전쟁터에 나간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 향한 곳으로는 사거리가 하나 있고, 좌우 양쪽에 골목이 있었는데, 골목 안쪽으로는 노점이 없어 사람이 적었다.
고청운은 다른 사람들이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마침 왼쪽 골목에서 야채를 어께에 지고 나오고 있는 한 늙은 농부가 길을 뚫고 나오고 있었는데, 말은 바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늙은 농부가 미처 피하지 못해 곧 말발굽과 충돌할 것만 같았다.
그 늙은 농부는 이미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였으나, 반응이 비교적 빨라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으며 바로 쪼그려 앉았다. 어깨 위의 어깨끈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삼태기는 이미 옆으로 넘어져 안에 있던 채소는 바닥에 흩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미처 행동하지 못한 채 눈을 가리고 늙은 농부가 다치려 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몇 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게다가 옆은 사람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어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었다. 물론 만약 건너가 볼 수 있었다고 한들 말발굽 앞의 사람을 구할 재간은 없었다.
'쉬'
말위의 어두운색 옷을 입은 주인은 말의 고삐를 당겨, 말의 앞발을 높이 들어 올린 뒤 방향을 틀어 늙은 농부의 옆을 스쳤다.
고청운은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 말이 너무 빨리 달리지는 않아서, 또 말 위의 사람의 기술도 뛰어나, 가까스로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어두운 옷을 입은 사람의 뒤를 따르던 말도 속도를 낮춰 늙은 농부 옆을 지나갔다.
“상공, 너무 위험했어요! 번화가에서 말을 타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간미는 그의 팔을 꽉 붙잡았는데, 방금 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긴급한 군사적 용무가 있으면 누가 상관하겠소?”
고청운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팔을 툭툭 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추측해보았다. 요 며칠 사이에 어디서 그런 무슨 급한 일이 생겼단 말인가?
그는 더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 늙은 농부가 넋을 잃고 말에 짓밟힌 채소를 보며 탄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옆에서 선심 쓰는 사람도 사람이 무사한 것이 다행이라며 불행 중 다행이니, 재수가 없었으려니 할 수밖에 없다고 위로만 건넬 뿐이었다.
그 늙은 농부는 웅크리고 앉아 일일이 야채를 주우며 고개를 젓고 말했다.
“집에서 겨우 키운 채소인데,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 약을 기다리고 있거늘.”
주위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도 고개를 저어가며 탄식만 할 뿐, 모두 같은 서민들이라 지갑을 열어줄 여력이 없어 각자 제 할 일을 찾아갔다.
고청운도 이런 일을 당하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참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말에 부딪히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공, 저 노인의 모습을 보니 살림이 아주 고달픈 듯해요. 3월인데 이렇게 싱싱한 야채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텐데, 아주 공을 들여서 야채를 키웠을 것 같아요. 우리가 그에게 보상을 좀 해주는 건 어때요?”
간미는 늙은 농부의 얼굴 가득한 주름과 초라한 행색을 보고 동정심이 들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마침 같은 생각이었다. 왠지 그를 보면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간미와 함께 앞으로 걸어가 허리를 굽혀 바닥을 치우려 할 때, 또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방금 두 번째 말을 타고 있던 사람이 돌아왔다. 그는 20살도 안 되어 보였는데, 말에 올라탄 채 품속에서 은 조각을 꺼내 던져주며 소리쳤다.
“영감님, 가져가세요. 보상해드리겠습니다. 다음엔 더 조심하세요. 말이 보이면 급히 피하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그 사람은 말머리를 돌려 다시 급히 떠났다.
고청운은 이 상황을 보고 자못 놀랐다. 이 몇 해 동안에도 그는 부성, 군성에서도 떠들썩한 시장 내에서 말을 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도련님들은 백성들이 허둥지둥 대피하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다가 앙천대소하며 재밌게 여길 뿐이었다. 즉, 조심하지 못하고 부딪친 일반 백성들이 피해를 당해도 보통은 피해보상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는 이 말을 탄 두 사람에게 틀림없이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뜻밖에 돌아와 보상하려는 마음을 보고는,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호감을 느꼈다.
이런 사건도 있었겠다, 고청운과 간미는 더 이상 구경할 기분이 나지 않아 물들인 찹쌀인형 몇 개를 산 뒤 객잔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