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돌아온 목적
“장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먼저 믿을 만한 곳을 찾아 몇 년 배워 보는 것이 낫지요. 다른 사장님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지도 좀 배우고요. 그리고 가게 관리하는 점원은 또 뭐가 어때서요. 나중에 날개가 다 돋아났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 때까지는 기다렸다가 다시 독립해도 늦을 건 없어요.”
고청운은 그가 사업에 종사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제대로 자세히 그의 계획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었다. 지금 와서 들어보니, 그가 그 몇 푼의 은자에 자극을 받아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청량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경험이 부족한데 만약 남에게 속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세상에 사기꾼의 수법이 수두룩한데. 내 생각에도 큰할아버지 고민이 옳아요. 형을 내보내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넌 도대체 누구 편이냐.”
고청량이 갑자기 화를 냈다.
“누구 의견이 옳은지에 따라 내편이 정해지는 거지요.”
고청운은 아주 침착했고, 혜향이 따뜻한 떡 한 접시를 들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떡은 고청량 앞에 밀어 놔주면서 물었다.
“점심은 여기서 먹지 않을래요?”
고청량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퉁퉁 부어 오른 볼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부인에게 고기반찬 두어 개를 더 준비해 달라고 해.”
고청운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혜향에게 분부했다. 고청량이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가 먹고 싶었다. 어차피 점심때는 반드시 육식을 했고 저녁에는 조금 적게 먹는데 주로 채식을 했다.
하늘은 알고 있겠지만, 그는 전생에서 채식만 하는 나날을 견뎠다. 채식은 그렇다 치고 요리에도 기름을 거의 넣지 않았다. 전생에서 육식의 재미를 참아가는 나날을 견디어 냈으니, 지금에서야 어렵사리 생활 조건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더 좋은 것을 먹고 싶지만 건강을 위해서 저녁에 너무 많은 고기는 감히 먹지 못했다.
“예, 나리.”
혜향이 예를 한 뒤에 자리를 떠났다.
고청량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이 혜향이라는 아이는 용모가 평범해서 영향이라는 아이보다는 예쁘지 않은데, 왜 내가 볼 때마다 눈이 마주치게 되는 거지? “
고청운은 그를 힐끗 보았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고 계화떡 한 조각을 집었다. 달고 맛있었다. 따끈따끈 한 것이, 이렇게 자주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행복했다.
고청량이 그를 보고 하하 웃었다. 젓가락도 쓰지 않고 손으로 떡을 집어 먹으면서 웃으며 애매하게 말했다.
“청운아, 역시 장가가는 게 낫지. 옛날 같으면 네가 어디서 이런 간식을 맛봤겠니? 먹고 싶어도 가게를 찾아가서 사와야 하고, 그런 곳은 비싼데다 맛도 없는 것을.”
“그럼 형도 빨리 장가들어요.”
고청운이 의중을 물었다.
고청량은 빠르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난 아냐. 아직 장가들고 싶지 않아. 더 기다렸다가 할래.”
고청운은 그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더 기다렸다가 한다고? 벌써 20살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 그는 요즘 어머니를 통해 백모인 도 씨가 아주 다급해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에는 중매를 구해 품행이 단정한 처녀를 물색 중이라고 했다.
어차피 그는 도망갈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 슬픈 소식을 그에게 전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가 잠시 더 기뻐하도록 두기로 하였다.
“됐어요, 그만 드세요. 살쪄요.”
고청운은 여전히 통통해 보이는 그의 몸을 보고 계화떡 접시를 끌어다 자기가 다 먹었다.
이런 행동에 고청량은 자신의 배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고청운의 훤칠한 몸매를 쳐다보았는데, 눈을 부릅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청량은 고청운의 집에서 점심 한 끼를 먹고는 다시 또 불평불만을 한가득 늘어놓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고청운은 바로 그의 이런 성격이 좋았는데, 그는 보통 화가 나도 그 화가 오래가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얌전히 집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고청운과 간미는 우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그들이 돌아온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고청평과 고청안, 두 사람은 사들고 온 간식들을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고,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계산은 자신의 선물로 작은 대추주 한 병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약간 작아 보이기는 했으나 아주 만족스러웠다.
노진씨는 불평을 하며 말했다.
“나는 몸을 반쯤 흙에 파묻은 사람이인데, 장신구를 사오다니 돈 낭비 아니냐.”
다만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어 설득력은 없어 보였다.
“할머님은 백세까지 오래 사실 거예요. 그럼 아직 40년이나 남았으니 아직 젊으신 것이지요. 장신구를 왜 못 쓰겠어요?”
간미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진짜로 백 살까지 산다면, 이제 늙은 막내가 된 것이겠구나.”
노진씨는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었다.
소진씨는 한 쌍의 은팔찌를 받았다. 그녀는 고청운 부부를 반가워했지만 저녁때가 되어선 고청운에게 말했다.
“너희 부부의 효심이 뿌듯하긴 하다만은, 사람이 살면서 씀씀이가 헤퍼서는 안 된단다. 늘 뭘 이렇게 사오는 게냐.”
심지어 둘째집인 고이하네에도 선물을 보냈으니, 며느리의 소비방식이 그래 보였을 수는 있다.
“괜찮아요, 어머니. 저와 부인은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함부로 은자를 쓰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선물을 드리는 게 어떻게 아무렇게나 쓰는 건가요. 이건 당연히 써야 하는 거지요.”
고청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꽂이에 있는 책을 집어 들고 뒤적거려보았다. 올해 책을 한 번 내다 말렸더니 아직까지는 벌레가 발견되지 않았다.
“입 발린 말을 잘도 하는구나.”
소진씨가 듣고는 속으로는 흐뭇해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재빨리 나지막이 말했다.
“전자야, 네 처자는 왜 아직 회임하지 않은 게냐? 소명이네 며느리는 이번 달에 또 애가 들어섰다는데!”
고청운은 이 말을 듣자마자 손을 멈추었다. 책을 다시 서가에 꽂아 넣고는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었다.
“어머니, 마음이 너무 급하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일 뿐이고, 저는 저예요. 비교할 수가 없지요. 우리는 혼인한 지 이제 반년밖에 안 되었는데 뭐가 그리 급하신지요? 게다가 지금 회임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제 뜻이에요. 내년 초봄에 상경해야 하는데, 그 때가 되어 제 처가 회임 중이면 따라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해야 할까요?”
“회임했으면 못 가는 게 맞지.”
소진씨의 말투는 단호했다.
“그녀가 가지 않으면 저만 스승님을 찾아뵌단 말입니까? 어머니, 제 처가 같이 따라가는 상황이 제일 좋을 겁니다. 스승님이 그녀의 외할아버지이신데, 당초 우리 아이 한 명의 성은 '방'씨로 하자고 했었지만, 지금은 스승님의 사모님께서 포기하셨었죠. 어쨌든 우리도 성의는 다 해야 해요. 저를 보는 것보다 당연히 제 처를 보는 게 더 즐거우실 거예요.”
고청운은 말을 하다 보니 참 좋은 핑곗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하는 것으로 하자. 내가 원하지 않아서 아이를 갖지 않았던 것으로 하자. 여행길이 더 수고로워지지 않도록. 상경을 한 이후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자.’
고청운은 이미 자신이 이쪽 생활에 동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18살에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너무 어린나이라고 여기고 20대 중반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을 터인데, 지금의 그는 18살에 아이를 낳아도 딱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20대가 되면 이 일로 말을 거드는 사람들이 많아져 골치를 앓을 것 같았다.
시간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오늘 뜬금없이 말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간미가 올해로 18살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좀 늦게 아이를 낳는 것이 더 좋기는 했다.
소진씨가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다시 말했다.
“네 말이 맞구나. 그러면 이 어미도 더 이상 재촉하지 않으마.”
다만 손자가 황성의 근처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어머니, 참 현명하십니다.”
고청운은 참지 못하고 몸을 숙여 그녀를 껴안았다.
깜짝 놀란 소진씨가 등짝을 한 대 때렸지만 목소리에서는 웃음기가 묻어났다.
고청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하하 웃었다.
저녁 무렵, 고청운과 간미는 회임 이야기로 대화를 나눴다. 오늘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다시 한번 말해주며 결론을 지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혀 서두르지 않을 예정이오. 상경한 후에 다시 이야기를 꺼내도록 합시다. 심적으로 압박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소.”
간미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가볍게 네, 하고 대답했다가 고청운의 품에 와락 안겨 부드럽게 속삭였다.
“상공, 저한테 정말 잘 대해주시는군요.”
고청운이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가녀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내 부인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이 한평생은 나에겐 당신 하나뿐이니, 당연히 잘해주어야지.”
일순간에 작은 침실 안은 분위기가 유달리 부드러워졌다.
이번에 그들이 돌아와서 사실 추수를 도운 것도 아니고, 막상 수확은 모두 고대하가 사람을 청해 일을 진행하였다. 그와 고계산이 하려고 한 유일한 일이라고는 지휘밖에 없었다. 다만 고대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이따금 스스로 두 팔을 걷고 추수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청운은 마음이 놓였다. 예전과는 일을 하는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하고 싶지 않아도 손을 거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일을 하는 마음가짐이나 힘을 들이는 정도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고계산은 완전히 일에서 손을 뗀 모양새였는데, 매일 뒷짐을 지고 나가 일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또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번에 돌아온 주요 목적은 집안의 셋째 여식인 고용의 약혼식 때문이었다. 그가 과거에 급제한 뒤 집안에서 유일하게 혼례를 올리지 않고 있던 고용은 물 만난 고기 같았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혼담을 꺼냈는데, 수재와 지주, 향신들의 자제를 포함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큰딸과 둘째 딸이 시집 갈 적보다는 비교적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주로 혼담을 꺼내 들었다.
이 씨는 처음에는 매우 기뻐했지만, 곧바로 눈이 어지러워졌다. 그녀의 생각엔 이 사람도 괜찮고 또 저 사람도 괜찮아보였던 것이다. 나중에는 친정의 형수님에게 도움을 받아 고용을 친정 쪽으로 시집보내려고 했다.
이 일 때문에 그녀는 고이하에게 욕을 먹었다.
소진씨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일찍이 고청운 앞에서 투덜댔었다.
“너희 숙모는 정말 정신이 없구나. 일전에 우리한테 그렇게 단단히 일러두더니, 제 친정의 큰 올케 말만 귀에 들어오나 보다. 친정 측으로 시집을 보내? 이씨 집에는 단지 2, 30묘의 땅이 있을 뿐, 저 큰 대가족 중의 형제 넷이 모두 분가도 아직 하지 않았고, 이제 막 배를 곯지 않을 정도가 된 게 아니니. 셋째를 그쪽으로 시집보냈다가는 살림살이가 갈수록 나빠지는 것 아닐 런지. 셋째 딸아이가 친딸은 맞나 모르겠구나. 신분 상승까진 바라지 않는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못 쓰는 경우를 만들다니. 게다가 그쪽 친정의 큰올케가 입이 보통 거친 게 아닌데, 결국 네 숙모를 설득시킬 수 있다 한들 혼수나 많이 챙겨서 보내겠다는 건지 모르겠어.”
소진씨와 이씨네는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예전에 고청운이 아직 어렸을 적에 이 씨가 몇 번이나 돈을 후원을 해주었던 것은 그도 기억했다.
고청운은 당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너무 과장이 심하신 것은 아닐까요? 이건 못쓰게 된 것도 아니고 그냥 시집가지 않는 게 좋다고만 말씀하시는 것이 낫죠. 사람들이 익히 말하는 혈연관계가 너무 가까워서 결혼이 어렵다는 말도 괜찮지 않나요. 후대에 아이를 낳을 때 좋지 않긴 하니까요.”
생각을 해보다 결국 하겸죽의 예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들 부부도 결국 아들 하나밖에는 얻지 못했다.
물론 하겸죽 부부는 마침 그쪽으로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많은 사촌형제 간에 혼인한 집안 중에서도 아이를 많이 본 경우도 있고, 게다가 건강하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아무래도 후세에 전해진 중국의 법률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이 말은 숙모께 꼭 전해야 해요. 숙모도 확실히 알 건 알아야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숙모도 편치 못할 거예요.”
소진씨 생각에도 친정이 아무리 중요해도 자기 자식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으니 거리를 둘 것은 거리를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