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120)화 (120/504)

120화. 조화 (2)

고청운은 아이 얘기가 나오자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 참 잘 생겼더군요. 하 형을 많이 닮았던데.”

이 말이 나오자 하겸죽이 득의양양해하며 말했다.

“이놈은 얼굴이 좀 반반한데 사실은 장난이 심해서 어른 둘이 있어도 그 녀석 하나 돌보는 것이 쉽지 않네. 나를 부러워할 필요 없어. 자네 집 소식도 금방이지 않는가?”

고청운은 말을 듣자마자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직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요.”

속으로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간미는 왜 아직도 회임을 하지 않았을까? 혼례를 치룬지도 벌써 예닐곱 달이나 되었다. 물론 많은 부부들이 혼례 후에도 몇 년은 지나야 아이를 갖는 경우도 있으니, 뭐 급할 것은 없었다.

고청운은 몇 번 더 칭찬의 말을 건네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내년이 향시를 치르는 해인데, 하 형도 참가하시는지요?”

“물론이지, 이번엔 확률이 높겠지?”

하겸죽의 말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만약에 합격한다면, 다음해에 경성에 올라가서 자네들과 합류할 것이니, 그때 자네들이 내 숙소를 제공해줘야 해. 듣자하니 회시를 치룰 때마다 경성의 방 값이 엄청나게 비싸진다고 하니.”

그는 돈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집은 대단히 부유한 집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를 경성으로 보내 시험에 참가하게 할 만한 은자정도는 내어 줄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외숙부댁은 돈이 많으니, 그가 향시에 합격하기만 하면 되었다. 은자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안심하세요. 때가 되면 제 스승님 댁으로 갑시다. 모두 같은 고향 친구들이 아닙니까. 매년 월양군 출신의 거인들이 가서 스승님을 찾아요. 제일 경제적이지는 않을 테지만 월양 회관으로 갈 수도 있지요. 그곳은 편한 점이 많습니다.”

경성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거처를 회관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회시에 응시하는 거인들은 그런 곳에서 무료로 묵을 수가 있었다. 

경성의 쌀값, 소금값 등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돈은 중간 수준에 불과했지만 주거, 오락 등에서는 일반인이 경성에 집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고청운은 그의 집과 간미의 혼수를 모두 팔아 은자로 바꾼다 한들 경성의 구석진 곳에서나 겨우 정원 딸린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겸죽은 그제야 안심하며 말했다.

“우리 동네가 워낙 벽촌이라 경성에 가면 비웃음을 살까 걱정이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해가 갔다.

“올해 황제폐하께서 남쪽의 남만 땅을 치시고, 남주로 이름을 바꾸신 후, 우리가 있는 월양군과 접한 곳이라 우리 군으로 편입시킬 준비를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의 면적이 커져서 '군' 단위에서 '성(省)' 단위로 바뀔 수도 있다고들 하네. 자네는 소식을 들었는가?”

“알고 있지요. 요즘 현학에서도 이 얘기가 많이 논의되고 있는 걸요. 이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향시 정원이 많아질 테니까요. 물론 남주 쪽에 학자들이 많다면 서로 합격자 수를 놓고 싸워야 할 겁니다.”

고청운은 비록 이미 합격하였지만, 향시에는 여전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의 주변 친척과 친구들이 앞으로 한가득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그곳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한인들이 많으니, 한인들이 있는 곳에는 또 틀림없이 책을 읽는 학자들이 있을 것 아니겠는가.”

하겸죽은 방금까지도 자신만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자니 망설여졌음에도 그냥 말했다.

“비록 그쪽 지방이 여기서 많이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일만 빨리 진행된다면 내년까지는 지역 합병이 끝나 있지 않을까.”

“육 장군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한 달밖에 안 돼 남만의 수장을 신하로 굴복시켰다는데, 이제 막 20대 초반의 나이라고 하니, 설사 장군 출신이라 해도 장래가 매우 유망하네요.”

고청운은 이 육 장군에 대해 매우 호감을 갖고 있었다. 허나 이 육 장군이라는 사람이 속전속결로 전승을 거둔다 한들 그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는데, 올해 추수세가 조금 이르게 진행되는 것 말고는 조정에 내는 세금도 이미 징수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처음으로 전쟁이 그에게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애당초 조정에서 남만을 공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무서워서 식량을 준비해서 산으로 옮겨놔야 하진 않을까 궁리했었다. 

육 장군이 남만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들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이렇게 큰 나라에서 국경지대는 늘 다른 세력들과 마찰이 있어기 때문에 간간히 소규모의 싸움을 몇 차례 벌이고 있었지만, 조정이 남쪽 지역을 군대를 정비하여 이렇게 전쟁을 시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민심에서도 동요가 일어났을 땐 남만이 이미 수복 된 이후였다.

하겸죽은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제 이 왕조가 세워진 지 20여 년밖에 안 됐는데, 문벌귀족들의 권세가 아직 대단하다고 지난번 조문헌이 말했잖아. 그들이 경성에서도 몹시 날뛰고 있다고. 아, 문신과 무장 출신의 문벌귀족들은 네가 나중에 벼슬길에 올라서도 조심해야 할게야. 그렇지 않으면 정말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 거라고.”

고청운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하겸죽은 고청운의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 * *

다음 날 고청운은 이번 달 월급을 아직 수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래서 고삼원을 보내 관부에서 월급을 수령해왔다. 지금 현학에서의 그의 지위는 ‘종9품’에 해당하며, 연봉은 겨우 31냥이었다. 연말이 되면 관청에서는 명목이 많이 달려있는 약간의 명절 상여금을 보내올 것이었다. 이 상여금의 금액은 아직 받아본 적이 없어 얼마를 수령하게 될지 아직은 몰랐다. 

예전의 그는 월급을 제외하고는 화본을 집필해서 받는 수입밖에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생활비로 사용하는 은자를 제외하고 남은 은자는 아내가 토지 및 가게나 방 등의 세입자들로부터 받는 수입에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고삼원이 돌아왔을 때 소식을 하나 들고 왔는데, 그것은 바로 고청량이 집을 떠난다고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고청량은 고삼원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고삼원의 뒤에 있는 고청량을 보고 고청운은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 

“집을 떠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예 멀리 떠나지 않고는?”

그 말을 듣고 고청량이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나가려 했다. 

고청운이 그 모습을 보고 바삐 쫓아가 붙잡았다.

“그냥 말도 못해요?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이런 게 바로 뒤늦게 찾아온 반항기라는 것인가?

고청량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기개가 센 게 아니라 아버지와 할아버지 고집이 세서, 나를 이렇게 화가 뻗치게 만드는 거야!”

고청운이 물었다. 

“사업하는 일로 그래요?”

“그거 아니면 또 뭐가 있겠어?”

고청량은 매우 불만이었다.

“나는 독서할 수 있는 학자로서의 자질이 없어. 지금 책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할아버지는 나한테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하게 하려 해. 이게 그런다고 될 일인가? 장사를 하는 것이 무슨 체면 깎는 일도 아니고. 게다가 여기 임산현은 땅 덩어리가 좁디좁아. 너도 나를 지지해줄 텐데 내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고청운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큰할아버지는 사전에 이미 고청량을 돕는 것을 못하게 말을 해놓으셨다. 

고백산에게 받은 은혜가 더 컸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고청량의 푸념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다만 큰할아버지 댁과는 조만간 타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 오늘 오는데 또 한 가지 일이 있었어. 네 어머니께서 네가 보고 싶으신지 언제 귀가할 예정이냐고 물으시던데?”

고청량은 푸념을 늘어놓고서야 비로소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일 바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지금은 농번기라, 만약 하겸죽의 방문만 없었더라면 어제 이미 돌아가 있었을 터였다. 

사실 고청운은 지금 집에 가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는데, 매번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간미가 회임했냐고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간미에게 직접 묻기는 뭐해서 계속해서 그를 붙잡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묻지 않는다고 해도, 마을의 세 고모와 여섯 분의 아주머니들이 그녀들을 도와 계속 물어올 것이었다. 매번 곤란해 하는 간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청운은 마음이 아팠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 때문에 고청운은 기분이 나빴다. 여자가 회임을 안 했다는 것은 남자의 문제가 아닌가? 자존심이 상한 그는 몰래 의원을 찾아봤는데 그에겐 전혀 문제가 없는 몸이라고 했다.

간미 쪽도 마찬가지로, 그녀가 친정에 갈 때마다 몰래 지켜보았는데, 그녀 역시 약을 달여 먹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 또한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었다. 

지금 드는 생각으로는 춘절이 지나고 미리 경성으로 상경하는 것은 어떤가 싶었다. 계속 이런 환경에 놓이게 된다면 그들 부부가 받을 스트레스가 너무 클 것 같았다. 

“오늘 현성에 온 건 도대체 무슨 일로 온 거예요? 

고청운이 물었다.

고청량은 말이 없었는데, 손에 든 나뭇잎을 갈기갈기 찢으며 시무룩해 있는 모습이었다.

“진짜 수재 시험 안 볼 거예요? 수재에만 합격해도 큰할아버지께서 더 핍박하지는 않으실 텐데.” 

고청운은 말하면서 석류나무를 애석하게 바라봤다. 만약 이 나무가 너무 잘 자라지만 않았어도 나뭇가지가 모두 정자 안에 있어서 고청량에게 이렇게 쥐어뜯길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그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으면 이러고 있겠니.”

고청량이 그를 노려봤다. 

“모든 사람들이 다 너 같지는 않다고. 천성적으로 학자감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는 거야.”

“천성 탓은 하지 말고, 그냥 형님이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요.”

고청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해보았으나 통하지 않았다.

“우리 형을 한 번 봐봐. 형이 공부에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하지만 올해에도 수재 시험에 떨어졌는데, 하물며 나는?”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뭐라 답하기가 어려워졌다. 고청명은 올해 초 그에게 떠밀려 현학에 입학했다. 원래대로라면, 학문적으로 반드시 성장해 이번 시험에 합격했어야 옳은데도 올해 8월 시험에서 또 낙방하고 말았다. 그 일을 다시 떠올리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고청량에게는 마땅히 할 말은 다 해보았다. 확실히 책을 읽지 않아도 다른 길이 있는 법이었다.

“형이 큰할아버지를 설득시키면, 내가 먼저 하씨 집에서 운영하는 서점에 점원을 소개할게요. 글을 읽을 줄도 알고, 셈을 할 줄고 아니, 그만하면 사람들이 매우 반길 거예요. 하씨 집안 서점은 현과 임양부, 군성에 모두 분점을 가지고 있어서, 관리도 규정을 지켜 잘 운영되고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어서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고청운은 자신과 하씨 집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하림에게 점원 한 사람을 고용하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점원이 되고 싶지 않아. 내가 군성에서 물건 한 번 가져와 현에 풀면, 은자를 몇 냥이나 버는데. 점원이 되면 월급도 적고, 하루 종일 남에게 불려 다녀야 하는데, 그런 일은 정말 참을 수가 없어.”

고청량은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럼 나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렵니다. 내가 보기에 형의 이런 태도 때문에 큰할아버지가 승낙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형이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집에서 어떻게 감히 은자 몇 십 냥씩을 내주겠어요? 지금처럼 매번 운이 그렇게 좋을 수는 없고, 언젠가는 맞지 않는 물건을 사들였을 때도 있을 텐데요.”

고청운은 그래도 자신이 이쪽으로는 문외한이지만, 사업하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막말로 계속해서 암거래하듯 남의 물건만 계속 실어 나르는 역할만 할 것도 아니고, 운임비, 현지 주거비에 식사비 같은 것들도 다 매입 원가에 포함되는 것들인데. 게다가 가게를 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도 해야 하고, 하급 관료들부터 건달까지, 각종 단골손님이 있어야 할 텐데, 설령 내가 버티고 있다고 한들 다른 사람들까지 내 체면 때문에 물건을 사준다는 보장은 없어요.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을 텐데. 어떤 사람이 또 나타날 줄 알고요.” 

고청량 얼굴의 불쾌한 기색이 이제야 겨우 수그러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