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친정집
절차를 마친 후, 마을의 몇 부인들이 그의 집에 와서 집안 정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잔치하고 남은 음식은 노진씨가 벌써 마을 사람들에게 보내 주었기 때문에 오늘은 설거지만 깨끗이 하고 돌려보내면 끝이었다.
그 부인들이 간미에게 말을 걸며 떠보는 것을 알고 고청운은 그녀가 불편해 할까봐 그녀를 데리고 큰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큰할아버지가 이전에 큰 도움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방문하여 안사람을 소개시켜드리러 온 것이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고청운은 고백산과 함께 올해 춘절을 보내고 나면 사당을 열어 간미의 이름도 족보에 올리는 것으로 상의 ]했다.
두 사람이 떠날 때 간미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큰형님은 말을 잘하셔서, 저희 둘이 잘 통하는 것 같아요.”
“내 동창인 옥당 사형의 여동생인데, 몇 글자 읽을 줄 아는 아이이니, 둘이서 대화가 통하면 좋겠소. 임계촌에서는 좀 마음 편히 있어도 되오.”
고청운은 마을의 아낙네들과 간미가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당초 그는 수재에게 합격했을 때만 해도, 집안이 비슷한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적어도 공통의 생활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방인소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고, 간미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고청운은 셋째 집에까지 인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먼저 그녀가 집안 분위기를 익힐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사이에 끊임없이 마을 여자들이 찾아와서, 핑계를 대며 간미를 보고 싶어 하였다.
고청운은 혹여 그녀가 불편해할까 봐 서재에 건너가 마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 화본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간미는 그를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손수건을 움켜쥐고 낮게 말했다.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전에 규방에 있을 때 가끔 봐왔습니다.”
고청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싫어하지 않으니 다행이오.”
사실, 그는 많은 규방의 여자들이 화본을 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들이 집안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으니, 심심풀이로 이런 소설을 소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얼마 전 완성한 화본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여보, 이건 내가 집필한 소설인데 시간나면 한 번 봐주시오. 이상한 곳이 있으면 좀 고쳐 쓰게.”
<선검> 은 이미 정식으로 인쇄되어 팔리고 있었는데, 제1권부터 아주 잘 팔려서 현재 매달 원고료가 25냥까지 올라, 그가 현학에서 선생으로 일하고 있는 월급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 되었다.
간미는 놀라며 기쁘게 종이뭉치를 받아 들여다보더니 필명을 보고는 또 놀라서 물었다.
“상공, 상공께서 일침황량이셨습니까?
고청운은 이상해하며 말했다.
“아니, 이 필명을 알고 있다는 말이오?”
“당연히 알죠. 사촌이 아주 좋아했어요. 사촌이 제게 소개시켜줘서 저도 보게 되었지요.”
말이 새어 나오는 것을 의식한 듯 간미의 얼굴이 더욱 붉어져 계속 말했다.
“사촌은 일침황량의 글이 아주 신선하고 재미가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상공이 쓰신 소설일 줄이야!”
간미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며 심지어 숭배하는 눈빛을 보내자 고청운도 꽤 기뻐하며 말했다.
“이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오. 방 형에게 말해서는 아니 되오. 만약 형님이 알았다간 화를 아주 많이 낼 거요.”
간미는 자신이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고청운의 신임을 얻은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알았노라고 답하였다.
그래서 한 명은 화본의 오탈자를 수정하고, 한 명은 그 옆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두 사람이 각기 책상 한쪽 끝을 차지하고 있어, 분위기가 유난히 조용하고 침착하게 느껴졌다.
소진씨는 그닥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조심스레 정원을 벗어나 본채의 노진씨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어머니, 전자와 새아가가 책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 둘은 가끔가다 한마디씩 할뿐,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전자도 줄곧 책만 파고 있는데, 집중을 흩트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노진씨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두 손을 모으고 아미타불을 외며 말했다.
“그러면 되었다. 나는 그 둘이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을 했지 뭐니. 저 둘이 그렇게 잘 어울리고 있었다니. 과연 학자의 여식이 좋구나. 우리 전자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감독까지 되니 말이다.”
소진씨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우리 전자는 분별력 있게 처신하는 아이라, 장가간다고 해서 학업을 등한시할 리가 없었잖습니까.”
“이 며느리는 참 잘 얻은 것 같구나. 우리를 무시하지도 않고, 외려 우리를 존경하는 것 같아 이렇게만 해 준다면 마음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간미네 집에서만 고씨 집안에서 딸을 박대할까 걱정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고씨 집안에서도 역시 간씨 집안의 여식이 가세만 믿고 건방지게 구는 것은 아닌지, 집안 어른들마저 깔보게 되면 그 사이에 끼인 아들, 혹은 손주가 난처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다.
옛말에 부인을 얻을 때는 자고로 현명함을 보아야한다고 했는데, 그들도 두 집안이 차이가 커서 걱정이 되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둘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소리에 두 여인의 마음이 놓였다.
* * *
다시 3일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간미가 친정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이 절차까지 끝나야 비로소 그들의 혼례의 정식 절차가 종료되는 것이었다.
간씨 집안이 사용하고 있는 저택은 신혼부부가 살게 될 새 저택보다 크지는 않았다. 간씨네는 식구 수가 적었다. 또한 비록 동일한 양식의 3중 정원 형태의 저택이지만 간씨네는 두 번째 정원을 화원으로 개조하여 안쪽 풍경을 매우 아름답게 꾸몄다.
고청운은 몇 번 와 본 적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새로운 감명을 받았다.
장인 장모를 뵙자마자 두 신혼부부가 각기 떨어져 간미는 방 씨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고청운은 간지원을 따라 서재로 향했다.
간경도 함께 뒤를 따랐다.
고청운과 간지원은 사실 그다지 이야깃거리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담정도는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있었다.
“장인어른, 경성으로 가는 준비는 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현의 관아에 남아서 교유(教谕) 직책을 맡으실 예정이신지요?”
간지원은 한숨을 쉬며, 고청운을 보고 말했다.
“음, 방(庞) 교유가 옆에 위치한 현에서 주부(主簿)직을 수임해서 일하고 있는데, 교유의 직책이 지금 공석이라며 현령이 직접 이 노부를 찾아왔지 뭔가. 게다가 경성은 여기서 너무 멀기도 하거니와, 네 처남이 아직 어리니 노부는 더 이상 여기저기 분주히 따라다니지 않고, 고향에서 잠시 동안은 좀 조용히 지내고 싶어졌다네.”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간지원이 이런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노부는 회시에 응시하기 싫었다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 나이가 많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정말 합격할 자신이 없었는데, 노부는 거인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겉보기엔 이제 겨우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실은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간지원이 자기 스스로를 '노부(老夫)'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고청운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지금 이 말을 듣자하니, 방인소가 일전에 했던 간지원에 대한 평가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방인소는 그는 심경이 너무 복잡하고 집중하지 못해, 대부분의 시간을 연회 유치와 유흥에 보냈다고 하며, 거인에 합격한 후부터 학업에 태만해지기 시작해, 큰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진사 시험에 붙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었다.
“장모님께서 장인어른의 결정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고청운이 미소를 지었다.
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와 간미는 언제 상경할 예정이지?”
간지원이 다시 물었다.
고청운은 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잔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직접 차를 따르려고 하였는데, 생각지 못하게 간경이 잽싸게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고청운이 급히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간경은 방긋 웃어주었는데 그 모습이 참하니 얌전해보였다.
고청운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막 혼례를 치른 터라, 먼저 집에서 좀 더 지내보려 합니다. 아마 내년 초봄이나 되어야 경성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간미의 이름을 족보에 올린 후에나 말씀을 드리자 싶었다. 사당 건립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연말에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때나 되어서야 비로소 한 해 동안 있었던 가문의 구성원의 변화에 대해 한 번에 기입하고는 했다.
비록 방인소 측에서 이미 재촉하고 있지만, 그래도 상경 일자 정도는 직접 정할 수 있게끔 배려해주었다.
실은 고청운은 자기가 봐야 할 책을 끝까지 다 보고 나서도 학문적 성장이 더디면 그때서야 방인소를 찾아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도 많으셔서 이미 61세와 60세가 되셨는데, 이미 이순(*耳顺: 60세)라고 부르는 나이대가 아닌가. 비록 이 시대에서는 장수하신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는 좀 더 곁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고자 함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자신이 이미 지금 거인의 신분이고, 그 다음 목표는 진사이지만, 그것만이 그의 삶에 있어 유일한 목표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모든 신경을 회시라는 시험에만 쓰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살면서 가치 있는 다른 일들도 충분히 귀하게 여기고, 시간을 쏟을 생각이었다.
요 근래 그는 줄곧 집에서 지냈는데, 집에 계신 조부모와 부모님 모두 매우 기뻐하시며 온종일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의 이러한 사유를 들은 간지원은 그의 생각에 매우 크게 동의했다.
다른 쪽에서는 방 씨가 하인들을 모두 물리고 간미에게 이것저것 캐묻고 있었다.
“시집간 집에서, 그쪽 집안사람들은 네게 잘해주더냐? 어울리기 힘들진 않고?”
간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머니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어머니, 안심하세요.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있어요. 시조부모님들도 인자하시고, 시아버지는 제게 간섭하지 않으세요. 시어머니도 말이 잘 통하고요. 남들이 쉽게 상상하는 것처럼 저속하거나 이상한 집은 아녔어요.”
“그, 그 숙모? 거기 아직 분가하지 않고 있는 숙모님이 계시질 않니? 이렇게 식솔이 많아서야……”
“안심하세요, 숙모랑도 잘 지내요. 제게 예의 바르시고, 작은 시누도 얌전하니까요. 요 며칠 제가 자수를 가르쳐드리니 저에 대한 태도가 더 좋아졌어요.”
간미가 그녀의 손등을 매만졌다.
“어머니, 이미 몰래 다 조사해 보신 것 아녀요? 진작부터 암암리에 분가가 되어있었어요. 식솔들끼리는 아직 친해서 어두운 속사정 같은 것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되었다. 이 어미는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해서 너를 고생시킬까봐.”
방 씨는 작은 침상에서 잠들어 있는 아들을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일 중요한 건 사위가 네게 얼마나 잘해주는 지야.”
간미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공은 제게 아주 잘해주어요. 아마 여자형제들 말고는 다른 여자들과 어울린 적이 없나 봐요. 보아하니 굉장히 정숙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도 제겐 세심하게 잘 챙겨주는 편인데, 많은 일들을 잘 생각해서 배려해줘요. 다만 너무 열심히 인데, 하루 종일 서재에 들어앉아 책만 봐요.”
방 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위가 그런 사람이라더라, 외할아버지가 듬직하고 믿음직하다고 말씀하셨었지. 비록 나중에 큰 부귀영화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너 하나에게 만큼은 일편단심으로 대해서 무슨 바람둥이 같은 짓거리는 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더라.”
간미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 참, 너희 부부사이는……”
방 씨는 생각 끝에 결국 직접적으로 물었다.
“너희 침상 위에서는 괜찮았니? 우리 사위가 그쪽으로 문제 있는 것은 아니지?”
간미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없어요. 다만 아마도 상공은 경험이 없었던 것 같은데, 첫날밤에 한참을 뒤척이고 나서야 성공했어요. 그 후 제가 너무 아파서 참지 못하고 상공을 몇 번이나 때리고, 긁혀 피가 좀 났을 뿐, 그 다음 날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제게 다른 언급 없이 지내더라고요.”
그녀와 어머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쑥스럽지만 그래도 진실을 말했다.
“그걸로 되었다.”
방 씨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위가 순결을 지니고 있는 것도, 네 복인 게야.”
“음, 그리고 그의 곁을 따라다니는 친척 삼원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아직 어리고 물정을 잘 몰라요. 혜향이가 나서서 말을 좀 붙이면 묻는 대로 술술 부는 것 같아요. 과거에 급제한 그날 밤에도 너저분하게 놀지 않았다고 해요.”
여기까지 생각하자, 간미의 마음속이 한껏 달달해졌다.
철이 든 후부터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외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부러웠었다. 언젠가 그녀도 자기한테만 전념하는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정말 그녀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