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감명받다
다음 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생물학적 시계가 또 제시간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가슴이 조금 무거워 고개를 숙이고 보니 새색시가 바짝 붙어 자고 있었다.
고청운은 혼자 자온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이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세가 있는 집안의 부부들은 각방을 썼다. 각방을 쓰지 않더라도 담요만이라도 각자 사용했으니, 앞으로 그래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오늘부터는 진정한 남자로서 책임을 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진사에 합격해 아내와 자식이 기댈 수 있는 남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는 조심히 일어서는데도 간미가 뒤척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서둘러 그녀를 봤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돌려 계속 자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그러곤 깰까 불안해하며 이불을 도로 덮어주었다.
고청운은 소리를 죽여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입었다. 옷은 어젯밤에 물을 마시러 갈 때 여기저기 흩어진 것들을 다 정리해 두었다.
고청운이 문을 밀고 나가보니 온 정원이 다 조용했고, 바닥은 여전히 어질러져 있었다. 어제 너무 늦게까지 북적이는 바람에 청소할 틈이 없었다. 모두 오늘 아침으로 미뤄 치우려고 한 것일 것이다.
그는 세수를 마치고 기분이 상쾌해져, 마을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뭉친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한 바퀴를 돈 뒤, 다시 정원 구석 한쪽에서 자신의 과녁을 꺼내 활쏘기 연습을 했다.
그는 부학에서 활쏘기를 배운 후부터 돌멩이를 던지지 않고 활 연습 단련 방식을 바꾸었다.
반 시진이 지난 후 가족들이 하나하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고청운은 온몸에 땀이 한가득이었지만 마음만은 매우 개운하였다. 마음이 아무리 어지럽고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일렁일지라도, 이렇게 운동을 하고나면 빠르게 진정할 수가 있었다.
이전에 집필했던 수선에 대한 소설로 비유하자면 자신의 심경이 한층 더 높은 경지에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하는 이른 아침부터 고청운이 땀을 한 바가지씩 흘려가며 돌아오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의 아들이 어떻게 평소와 같이 일찍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설마 어젯밤에 합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까? 그날 거사를 치르는 법을 배우질 못해서 그런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일은 안 가르쳐도 다 할 줄 알 텐데?
“전자야, 너 오늘 어떻게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
고청운은 미소를 짓곤 죽간에 묶어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매일 밖에 나가 한 바퀴 돌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해요.”
고대하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별말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아들 목에 보이는 손톱자국을 보고 안심이 되어, 머지않아 그의 집에 손자가 찾아와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청운은 아버지의 이상한 눈빛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땀을 닦으면서 씻을 준비를 하러 방으로 돌아왔다.
약혼을 한 후부터, 그의 아버지는 고청운의 침실을 작은 방으로 분리해 세면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좌우로 2개의 곁방이 있었다. 그 중 한 칸은 마침 간미가 데려온 여종들을 묵게 하고 남은 한 칸은 바로 자신의 서재로 사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침상 위에 아직 간미가 누워있었지만, 세수하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청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여겨보니 침상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참지 못하고 붉어졌다.
“상공, 돌아오셨습니까.”
고청운은 갈아입을 옷을 찾고 있는데 뒤에서 간드러진 소리가 들렸다.
고청운이 몸을 돌려 그녀를 보니 빨간 연수백화 치마를 입은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얼른 마중 나가 웃으며 말했다.
“여보, 왜 좀 더 자지 않고?”
간미는 그의 땀투성이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상공, 왜 이렇게 땀투성이가 되어 돌아오셨어요?”
“활쏘기 연습을 하고 돌아왔소.”
고청운은 솔직히 대답하고는 그녀의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고 친절히 물었다.
“어젯밤에 내가 아프게 했는데, 약까지 쓰게 만들고…… 아직도 아픈 것이오?”
간미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는데, 물러난 혜향을 한 번 쳐다보고 머리를 저으며 작게 말했다.
“안 아픕니다. 걱정 마세요.”
고청운도 어색했다.
“상공, 오늘 아침에는 왜 저를 일찍 깨워주지 않으셨나요? 다행히 혜향이가 깨워주긴 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 아침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간미의 말에는 투정이 어려 있었지만, 말투는 아주 친절했다.
성혼의 첫날, 여성은 주로 직접 요리해 시가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해야 했다. 고청운이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괜찮소. 우리 가족들은 오늘 다들 늦게 일어날 거요.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여종이 있으니 친히 음식을 준비하실 것 없소.”
방씨 가문의 자신에 대한 도움을 생각하면 고씨 집안 가족들은 간미의 트집을 잡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일어나서 마당을 지날 때 당신이 보이지 않아 나가신 줄은 알고 있었어요. 참, 상공. 저는 시중 들어주는 시종이 있는데, 조부모님과 시부모님 모두 시녀를 두지 않으시니, 이러다 저도 심부름시키기가 쉽지 않아지겠어요. 돈을 좀 내서 부엌 시중드는 시녀라도 불러다 조부모님 식사와 세탁정도를 맡기면 어떨까요? 시부모님 쪽도 필요하시지 않을까요?”
간미가 급히 물었다.
고청운은 그녀의 가는 손을 보았다. 응석받이로 자란 아가씨가 고씨 집으로 시집와 거칠어지면 가족들도 미안해할 터라, 동의하기로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필요하실 거고,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의견을 안 따라 주실 테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말해보겠소.”
그들의 가업이 좀 더 커지면 겉치레를 좀 해야 하긴 했다. 하지만 소진씨의 모습을 보면 받아들일지는 또 몰랐다. 은자를 낭비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사람을 불러다 일을 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것은 관념의 문제였다.
고청운은 이견이 없으나, 거인이 된 후 바로 노비와 시종을 부려야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시중을 들어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하지 않아도 된다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지주 계급은 사람의 의지를 쉽게 좀먹게 하는 것이었다.
“너무 늦게 물어도 좋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에는 좋은 시기가 있는 것이었는데, 간미 생각은 고청운과 달랐다.
“괜찮소. 적당한 때 우리가 권하면 그분들은 아마 승낙하실 거요.”
고청운은 위로하며 말했다.
간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고청운을 도와 옷을 찾아 주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옷은 제가 지은 장포인데, 보기 어떠세요? 마음에 드시나요?”
고청운은 비단 장포를 보고 있자니 삶의 질이 또 한 단계 올라간 것 같았다. 한 번 걸쳐보았는데 딱 잘 맞았다.
“아주 잘 지으셨소. 아주 맘에 드오.”
고청운이 칭찬하며 말했다.
간미가 싱긋 웃는 것이 기뻐하는 것 같았다.
고청운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두 사람은 정원의 안방으로 나갔다. 이때, 식구들이 모두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왔다, 왔어.”
노진씨가 멀리서부터 두 사람을 보고 활짝 웃으며 크게 말했다.
“내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고청운이 인사했다. 속으로 좀 미안했다. 오늘은 활쏘기 연습이 좀 길어져 평소보다 조금 늦었던 것이다.
간미도 그의 뒤를 따라 모두에게 예를 올려 절을 했다.
고청운이 어젯밤 대화할 때, 그는 간미에게 고씨 가족 구성원에 대해 이야기 했었는데, 간미는 기억력이 좋아 곧 고씨 집안 가족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고씨 집안사람들은 분주히 손사래를 치며 매우 당황해했다. 여기는 시골이라 새벽같이 일어나 절을 올리고 하는 불필요한 허례허식은 습관 들이지 않았고, 큰일이 아니면 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간미가 지금 갑자기 그들에게 절을 하자 모두들 긴장한 나머지 얼른 답례하기 바빴다.
고청운이 말했다.
“모두들 한 가족인데, 이렇게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되오.”
“그럼 그럼, 손자며느리야, 우리는 다 같은 가족이니 그렇게 하지 말거라.”
노진씨도 한마디 거들자, 진미도 웃으며 낮게 네, 하고 대답했다. 이제야 제자리에 앉게 되었고, 두 여종이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는 간미가 간단하게 준비한 흰죽과 나물, 청경채 한 접시와 계란 지짐 정도였는데 그들의 가풍에 딱 어울리는 간소한 스타일로, 노진씨와 소진씨도 맛을 보고는 만족해했다.
설령 간미가 만든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가족들은 태도로 드러내지 않았는데, 깊이 따질 필요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여종이 돕는 것도 능력의 일종이고 고씨 집안은 일부러 사람을 들볶으려고 작정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고청운은 간미를 보고 감명 받았다. 그녀는 정말 총명해서 어제 저녁에 자기 가족이 평소 뭘 먹는지 물어봐 답해준 것을 그대로 잘 따라서 아침을 준비해 주었다.
식탁에서 고청운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부엌 시중을 드는 하인을 구해드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진씨는 동의하지 않으며 말했다.
“전자야, 그런 사람들을 구할 필요는 없지 않겠니? 내가 말하지 않았니. 내 몸은 아직 정정해 스스로도 문제없이 할 수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우리들에게 밥과 빨래를 시킬 필요가 있겠느냐? 이런 건 우리가 다 할 줄 아는데, 불러온 사람들에게는 품삯까지 줘야 하니 이 얼마나 낭비니.”
고청운은 고계산을 힐끗 보았다.
고계산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부르겠다면 그냥 부르게 해주시오. 남은 여생에 몸 편히 청복을 누리는 게 좋지 않겠소? 우리 모두 나이가 이렇게 지긋해져서, 아이들의 효도를 받는 것이 뭐가 나쁠 게 있겠소. 어떤 신분을 갖고 어떤 일을 할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오.”
노진씨는 고계산을 보더니 어쩔 수 없이 동의해 주기로 했다.
고청운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고대하와 고이하 역시 모두 기뻐했는데, 고청운은 자기네 부모님도 사람을 좀 썼으면 싶었다.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 더 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 일은 이렇게 결정하게 되었다.
고용이 특히 기뻐했는데, 지금처럼 밥 준비를 덜게 되었으니, 짬을 내 천을 짜고 바느질을 하면 쌈짓돈을 늘려갈 수 있었다.
이 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씨는 전자를 보고나니, 아들이 출세하자 며느리의 신분조차 이렇게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무슨 일을 하고자 마음먹으면 나중에 전자가 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잘 보고 또 생각했다.
큰집의 현재 형국으로만 보면 그들이 출세할수록 자기 집도 그 덕을 보고 나중에 늙어서도 두 식구가 노후에 병이 나거나 한다 한들 모두 큰집에서 해결해 줄 것이었다. 작은집에서 돈을 낼 일조차 없을 것이다.
이 일을 해결하고 나니 모두들 안정적으로 식사를 마쳤다. 고청평과 고청안 조차 얌전히 눈만 크게 뜨고 궁금증에 간미를 쳐다 볼 뿐,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해대진 않았다.
밥을 다 먹은 후에, 이제 정식으로 가족이 된 예로 차를 올렸다.
고대하 부부는 간미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차를 올리는 절차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다.